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57화 (357/501)

# 357

배우 리아와 에이꼬 (2)

(357)

구건호가 에이꼬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웬 오타루는?”

“우리 가족이 오타루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

“그래? 참, 아빠가 오타루에서 교사생활을 하셨다고 했지?”

오타루는 일본의 북쪽에 있는 홋카이도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도청 소재지인 삿뽀로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에이꼬의 아빠는 이곳에서 교사생활을 했었다. 주말이면 엄마와 함께 이곳에서 와서 아빠의 손을 잡고 운하변을 걷기도 하였고 맛있는 초밥을 먹기도 하였다.

오타루는 추운 북쪽에 있는 도시라 눈도 많이 오는 고장이었다. 모리에이꼬는 가끔 눈에 싸인 항구도시 오타루를 생각하고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걷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도 잠시뿐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한날한시에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삿뽀로에 있는 할머니 손에서 클 수밖에 없었다.

“오타루에 가서 오빠는 고기 잡는 어부하고 나는 초밥집 할까?”

모리에이꼬는 구건호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말했다. 구건호가 옅은 한숨을 쉬었다.

[참, 철딱서니 없는 아이이군.]

가족이 없이 자란 모리에이꼬는 구건호에게서 꿈에도 잊지 못할 아빠의 망령과 미래의 남편에 대한 환영을 보는 것 같았다. 또 구건호는 나이 차이를 넘어 첫정을 준 남자이고 처녀를 바친 남자였다. 모리에이꼬는 정말 구건호와 오타루에 돌아가서 살고 싶었다. 어부의 아내라도 좋으니 언제라도 구건호와 함께 있고 싶었다.

[얘야, 나는 한국인이고 결혼도 했어. 모든 삶의 기반이 다 한국에 있어. 너는 아직도 중2 병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 같구나.]

모리에이꼬는 지원(祗園: 일본 유곽)에서만 생활하여 경제관념도 희박했다. 지금은 인기 절정일 때라 수입도 많지만 모리에이꼬의 뒤를 돌봐주고 있는 마마상 세가와 준꼬는 생활비만 주고 다른 것은 몰수하였다. 나고야나 교또에서의 공연이나 요정의 수입도 모두 관리했다. 30이 넘어가기 전에 투자한 돈도 뽑아야하고 노후대책도 마련해 주어야하기 때문이었다.

춤추는 게이샤를 만들어 내려면 한국의 걸그룹을 만들어 내는 메니지먼트사 처럼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후견인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런데 모리에이꼬는 그 후견인에게 형식적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애정을 느끼고 있어 실상은 구건호에게도 부담은 되었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를 껴안고 또 생각해 보았다.

[만약에 에이꼬에게 애인이 생긴다면? 내가 질투할까?]

아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건호가 가슴속을 파고드는 에이꼬를 보았다. 에이꼬는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두 팔로 구건호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구건호가 에이꼬의 흐트러진 머리를 올려주었다. 에이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 오타루에 와 있는 것 같아.”

에이꼬는 오타루의 눈덮힌 운하변을 생각해 내는 것 같았다.

오타루는 우리에게 아주 낯선 도시는 아니었다.

일본감독 이다이 슌지가 만든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되기도 했고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 세키구치 쇼타의 고향으로도 나오는 도시였다.

구건호의 가슴 속에 모리에이꼬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전해져왔다. 구건호는 참지 못하고 에이꼬의 옷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아침이 되었다.

모리에이꼬와 함께 잠을 잔 날은 언제나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구건호가 시계를 보았다. 벌써 아침 10시가 되고 있었다.

“에이꼬, 일어나! 10시다.”

“싫어. 그냥 이대로 있고 싶어. 오랫동안.”

에이꼬는 더욱 구건호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앉았다. 구건호가 에이꼬의 뺨에 뽀뽀를 해주며 말했다.

“오빠가 한국에서 큰 사업을 하기 때문에 가봐야 돼.”

“그럼, 우리 미나도구에 있는 다마찌(田町)에 놀러가자.”

“거긴 뭐가 있는데?”

“운하가 있어 게이힌(京浜)운하가 있어.”

“운하를 보러가자고?”

“응.”

구건호의 예약 비행기 시간은 오후 5시다. 구건호는 멀지 않은 곳이라면 다녀와도 될 것 같았다.

구건호와 에이꼬는 콜택시를 타고 다마찌에 있는 게이힌 운하변으로 갔다. 양복 속에 티셔츠를 받쳐 입은 구건호와 트렌치코트를 입은 에이꼬가 운하변을 걸었다. 둘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

“운하가 깨끗한 모양이지? 낚시하는 사람도 있네.”

운하변은 정비가 잘 되어있었다. 구청 같은데서 여러 가지 화초도 군데군데 심어놓은 것도 보였다. 맑은 가을하늘과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운하변을 걷는 에이꼬는 행복한 모습으로 자꾸 구건호를 올려다보았다.

“좋다.”

“좋지?”

“잠깐!”

에이꼬가 까치발을 하고 구건호의 얼굴에 붙은 풀잎을 떼어주었다. 해맑게 웃는 에이꼬는 언제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구건호는 에이꼬를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오빠, 사랑해.”

“그래, 나도.”

“정말?”

“그럼, 정말이지.”

“그럼, 우리 오타루에 가서 살 수 있는 거야?”

구건호는 이 말엔 난감했다.

가끔 동경서 만나 재미나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살자고 하는 말엔 답변이 궁색했다.

“지금은 어려워, 오빠 사업 벌려놓은 게 많아. 가서 처리해야 될 것이 많아.”

에이꼬가 슬그머니 구건호의 손을 놓았다. 구건호가 얼른 손을 다시 잡아주었다.

“하지만 말이야, 오빠가 이제는 더 자주 동경엘 올께.”

에이꼬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운하만 쳐다보았다.

“참, 대만에서 찍는 드라마는 어떻게 됐어?”

“대만 제작사가 파산했어요.”

“그럼 드라마도 중간에 그만두었겠네.”

“35부작인데 중간에 끝냈어요.”

“출연료는 잘 받았나?”

에이꼬가 말없이 고개만 가로 저었다.

“흠, 에이꼬가 상심이 크겠다.”

“저보다도 마마상 세가와준꼬가 더 상심했어요.”

“마마상이? 그럴 테지. 메니지먼트 역할을 하던 여자니까.”

“그런데 드라마가 시청율이 낮았었나?”

“낮았어요.”

“왜 그러지? 에이꼬가 나오는 작품인데.”

“저는 주연이 아니고 잠깐 나왔어요.”

“에이꼬처럼 예쁜 여자를 주인공으로 했으면 성공했을 텐데.”

이 말에 에이꼬는 운하를 바라보며 미소만 지었다.

구건호와 에이꼬는 다시 다이칸야마로 와서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갈 준비를 하였다.

“오빠는 바람이야.”

“바람?”

“언제나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리잖아.”

구건호는 에이꼬를 꼭 껴안았다.

“그럼 너는 바람을 불러 모으는 꽃이 되렴.”

구건호는 에이꼬의 입술을 향해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구건호가 안 포켓에서 봉투를 꺼냈다.

“생활비야. 가끔 맛있는 것도 사 먹고 그래.”

에이꼬는 봉투를 받으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쓸쓸히 웃었다.

구건호는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출국장에 엄찬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장님!”

“찬호 왔구나.”

“동경에서 사업이 바빴던 모양이에요. 살이 좀 빠지신 것 같아요.”

“내가? 이틀 사이에 무슨 살이 빠지냐?”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구건호는 강변도로를 달리며 차창을 열었다. 바람이 차창 안으로 들어왔다. 멀리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였다.

“흠, 익숙한 바람의 냄새야. 동경의 냄새하곤 또 다른 것 같아.”

엄찬호가 의아해 룸미러로 구건호를 보며 말했다.

“예? 냄새가 동경하고 틀려요?”

구건호가 차 안에서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을 보았다. 메인화면에 리아의 사진이 떴다.

“리아의 공항 패션?”

리아가 중국 갈 때 공항에서 찍힌 모양이었다. 선그라스를 낀 모습으로 찍혔다.

한참 운전을 하던 엄찬호가 질문을 했다.

“저, 사장님. 영화배우 리아가 우리 사무실 왔었다면서요?”

“응, 왔었어.”

“사장님 영화산업에도 손대십니까?”

“아니야. 심감독이 중국서 만드는 드라마에 캐스팅한 모양이야.”

“걔, 예쁘죠? 저도 실물 한번 보았으면 좋았을 뻔 했네요.”

“응, 예쁘더군.”

“사장님 요즘 드라마 <욕망의 찬가> 안보시죠?”

“난, 드라마 안 봐.“

“거기 나오잖아요. 회장 아들하고 연예하는 여자로요.”

“흠, 그래?”

“저는 사장님 모셔드리고 숙직실이나 경비실에서 가끔 <욕망의 찬가> 재방송 봅니다. 재미있어요. 사장님도 한번 보세요.”

“알았다. 운전이나 해라.”,

다음날이 되었다.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을 하였다.

심운학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리아는 여기 있는 스탭들과 인사를 다 나누었습니다. 실물을 보고 여기 스탭들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제작 발표회 때 대박날거라고 했습니다.”“그래요?”

“연기자들이 한번 모였었는데 대본 소화도 잘하고 캐릭터를 잘 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연출자인 환러스지 공사 사장 천바오깡도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중국말을 못하니 더빙하겠군요.”

“물론입니다. 연기력만 좋으면 됩니다.”

“제작발표회는 언제 하나요?”

“저, 실상은 그것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제작 발표회는 돈이 들어와야 한답니다. 100만달러 말입니다.”

“100만 달러는 연기자 캐스팅이 끝나면 내가 보내주기로 했잖습니까?”

“예, 맞습니다. 연기자 캐스팅은 끝났습니다.”

“그럼 보내드리죠.”

“기왕이면 리아가 중국 체류할 때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리아가 한국에서의 스케줄도 있기 때문입니다.”

“돈은 오늘이라도 보내드리죠. 거기서 돈 인출은 금방 못할 수도 있으니 송금 영수증만 사진 찍어서 보내드리죠.”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신 돈 보내면 천바오깡 사장에게 이야기해서 증자에 따른 변경 등기서류를 보내달라고 하세요.”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

“돈 보내면 증자하고 상해시 상무국에 가서 자본금 변경등기하고 관련 서류를 보내달라고 하세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리아는 언제 귀국합니까?‘

“일주일 정도는 여기에 더 있을 예정입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구건호는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심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구건호입니다.”

“예, 사장님.”

“변경 등기할 때 혹시 상무국에서 투자계약서 같은 것을 가져오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찬바오깡 사장에게 물어볼까요?”

“그때 당시 우리가 계약할 때 양해각서만 체결했단 말입니다. 본 계약서는 작성을 하지 않았습니다. 필요하다면 신정숙 사장을 중국으로 출장을 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월요일 가도록 부탁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확실히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세요.”

30분 정도 지나서 심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계약서 필요하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양해각서 체결당시 가져갔던 지에이치 미디어의 사업자등록증이나 등기서류 공증한 것도 잘 챙겨 놓으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신정숙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월요일 중국 출장을 한번 가셔야겠는데요?”

“왜요?”

“환러스지 공사와 전에 맺은 계약은 본 계약이 아니고 단지 양해각서일 뿐입니다. 이제 돈이 들어가야 하니까 본 계약을 체결해 주어야 합니다. 상해에 가서 서명만 하고 오시면 됩니다.”

“뭐, 그 그렇게 하지요.”

“항공권은 오늘 예매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복수 비자는 있지요?”

“복수비자는 지난번 받아 놓은 게 있습니다.”

“그럼 서명만 하고 오시면 됩니다.”

“사장님은 안 가십니까?”

“계약 주체가 지에이치 미디어니까 사장님만 가셔도 됩니다. 상해 공항에 도착하면 심감독이 차를 가지고 나올 겁니다. 통역도 함께 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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