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356화 (356/501)

# 356

배우 리아와 에이꼬 (1)

(356)

구건호가 신사동 빌딩으로 출근한 날이었다.

비서 오연수가 가져온 차를 마시고 경제신문을 보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전화의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사장님 접니다. 심운학 감독입니다.”

“아, 심감독님. 한국 들어왔지요?”

“예, 지금 한국에 와서 일을 다 보고 캐스팅한 여배우와 중국에 들어갑니다. 사장님께 잠깐 인사드리러 가겠습니다.“

“지금요?”

“네, 지금 직산공장이나 아산공장에 안계시죠?”

“예, 신사동 빌딩에 있습니다.”

“그럼, 잘됐습니다. 30분 후에 방문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청담동에 있는 BM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졸다가 깼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서 소변을 보고 얼굴만 고양이 세수를 하였다. 그리고 사장실로 다시 와서 생수를 마셨다.

신문을 보고 있는데 심운학 감독이 사장실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혼자 온 것이 아니고 BM 엔터테인먼트 이사와 함께 화려하게 치장을 한 여성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여자는 화장도 요란하게 하였지만 엄청 예쁘게 생겼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구건호는 이 여자가 개스팅한 배우라고 짐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오, 어서 와요. 심감독님. BM엔터테인먼트 이사도 오셨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심운학 감독과 BM엔터테인먼트 이사는 구건호에게 정중히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BM엔터테인먼트 이사가 여자를 소개했다.

“저희 BM엔터테인먼트의 보물 ‘리아’입니다.

“오, 그래요?”

구건호가 손을 내밀었다. 손을 굳이 안 내밀어도 되는데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여자도 생글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구건호는 여자의 손을 잡고 깜짝 놀랐다. 손이 뼈가 없는 것처럼 뭉클했기 때문이었다. 여자에게서는 요란한 샤넬 향수 냄새가 났다.

“자, 앉으세요.”

세명이 의자에 앉자 구건호가 비서 오연수를 불렀다.

“여기, 차 좀 가져와요.”

오연수는 화려하게 치장을 한 여자를 호기심 있게 자꾸 쳐다보았다.

“차, 가져오라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구건호가 심감독에게 물었다.

“그래, 지금 같이 중국에 들어가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B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했으니 정식으로 중국에 가서 며칠간 있을 겁니다.”

“숙소는 다 배정이 잘 되었지요?”

“환러스지 공사에서 최고급 5성급 호텔로 잡아 놓았습니다.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고 보디가드 겸해서 BM엔터테인먼트 직원이 한명 동행합니다.”

BM엔터테인먼트 이사가 눈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리아는 걸그룹에서 활동하다가 한국 드라마에도 몇 번 나왔습니다.”

“아, 그래요?”

구건호가 다리를 꼬며 미소 띤 얼굴로 리아를 쳐다보았다. 리아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까닥했다.

“보아하니 얼굴도 예쁘고 잘 할 것 같네요. 이름도 강리아는 중국 발음으로 ”쟝리얼“이라 드라마가 만들어지면 중국의 시청자들도 기억하기 좋을 겁니다.”

리아가 또 웃었다. 구건호가 보기엔 리아라는 배우가 설빙과 모리에이꼬의 중간쯤 되는 스타일로 보였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BM엔터테인먼트의 이사가 리아를 보고 말했다.

“여기 계신 구사장님은 회사를 몇 개 가지고 계신 분이야. 우리로 치면 이현만 회장님 같으신 분이지.”

“아, 예.”

리아가 또 구건호를 쳐다보며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하는 표정을 지었다.

비서 오연수가 차를 넉 잔 가져왔다. 오연수는 계속해서 리아를 쳐다보았다. 오연수도 높은 경쟁률을 뚫고 비서로 채용된 여자지만 역시 아이돌 가수 출신인 인기 연예인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우선 스타일에서 차이가 났다. 연예인들은 걷는 것에서부터 손을 흔드는 모습까지 소속 메니지먼트사에서 교육을 시키는 모양이었다. 구건호는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BM엔터테인먼트의 이사라는 친구가 그런 교육을 시키나 생각을 했다.

“차들 드세요.”

“아, 예.”

심감독이 차를 마시며 말했다.

“이번에 리아가 가게 되면 거기 스탭들과 인사도 하고 캐스팅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초반 대본 리딩도 가져볼 계획입니다. 그리고 환러스지 공사의 천바오깡 사장이 방송국 홍보팀과 의논해 가까운 시일 내에 기자들을 불러 제작 발표회도 갖는다고 했습니다.”

“흠, 그래요?

”제작 발표회 때 한국의 유명배우가 참여한다고 하면 그날 아마 리아가 카메라 세례 좀 많이 받을 겁니다.“

“흠.”

BM엔터테인먼트 이사가 또 말했다.

“이번 중국드라마 <시광여몽>은 저희 이현만 회장님께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특히 구사장님이 펀딩을 하셨다니까 BM엔터테인먼트에서 기술적 지원이 필요한 것은 협조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흠, 고마운 말씀이네요.”

“또 저에게 구사장님을 만나면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고마운 말씀이시네요. 이사님도 회사에 돌아가시면 회장님께 저의 안부도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심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공항에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마침 고맙게도 이사님이 차를 내 주셔서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흠, 그래요? 고마운 일이네요. 그리고 신사장님은 만났습니까?”

“예, 아까 올라오다가 만났습니다.”

“그리고 잠깐만.”

구건호는 자기의 책상으로 가서 잠을 쇠로 채워진 서랍을 열었다. 봉투 하나를 꺼냈다. 빳빳한 5만원권 새 돈으로 100만원이 든 봉투였다.

“좋은 드라마 만들어 보세요.”

구건호가 웃으며 리아에게 봉투를 주었다. 리아가 받지 않고 머뭇거렸다.

“중국가서 맛있는 것 있으면 사 먹으세요.”

리아가 계속 머뭇거리자 BM엔터테인먼트 이사가 눈웃음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

리아는 이사의 눈치를 보더니 이사의 말이 떨어지자 얼른 받았다.

“고맙습니다.”

리아가 허리 깊숙이 구건호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럼 잘 갔다 와요.”

구건호가 손을 내밀었다. 리아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였다. 다시 한 번 뼈가 없는 것 같은 리아의 손이 물컹하고 잡혔다.

구건호는 이들을 사무실 밖까지만 배웅해 주었다. 비서 오연수가 쫓아와 물었다.

“방금 온 여자가 누구에요?”

“리아라고 하는 배우에요.”

“어머! 리아에요? 리아인 줄 알았으면 싸인 좀 받을 걸 그랬네요!”

“라아가 이름 좀 있는 여자인가?”

“이름 있어요. 원래 걸그룹 가수로 활동도 했는데 요즘 드라마에도 나와요. 어휴, 정말 실물 보니까 예쁘네요. 그런데 우리 사무실은 왜 온 거에요?”

“심감독이 중국에서 찍는 드라마에 여자 주인공으로 나온 데요.”

“어머, 그랬었구나.”

“여기 찻잔 좀 치워줘요.”

“알겠습니다.‘

비서 오연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구건호의 방에 들어와 찻잔을 치워가지고 나갔다.

구건호는 사장실에 앉아서 방금 나간 리아를 생각해 보았다.

눈을 감아도 자꾸 리아가 떠오르더니 화사한 기모노를 입은 모리에이꼬의 모습도 떠올랐다.

“이거 내가 왜 이러지?”

구건호는 모리에이꼬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실은 김영은이 임신 중이라 부부관계를 오랫동안 못한 원인도 있었던 것 같았다. 구건호는 자기도 모르게 책상으로 가더니 컴퓨터를 열고 내일 오전 동경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말았다.

“영은이가 금요일 저녁이나 집에 오니 1박 2일로 잠깐 다녀오지.”

구건호는 모리에이꼬에게 내일 동경에 들리겠다고 영문 메시지를 보냈다.

구건호는 비행기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타기 전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동경의 하늘은 서울과 같았다. 가을 하늘이라 그런지 구름도 높게 떠 있는 것 같았다.

구건호는 천천히 입국장을 빠져나왔다. 짐도 없어 먼저 나왔다.

“오빠!”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았더니 놀랍게도 모리에이꼬가 나와 있었다.

“웬일이야 공항에!”

모리에이꼬는 여행 가방인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야? 오는 거야?”

구건호가 모리에이꼬의 캐리어 손잡이를 잡아주었다.

“나고야에서 오는 길이에요.”

“나고야? 거기서 공연이 있었나?”

“나고야의 니노마루(二の丸)에서 야외 행사가 있었어요.”

“오, 그래? 행사가 끝났나?”

“행사는 진작 끝났어요. 행사 끝나고 친구들과 이누야마의 메이지무라(明治村)에 놀러갔다가 오빠가 온다는 문자 받고 부랴부랴 온 거예요.”

“그랬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리에이꼬를 쳐다보았다. 모리에이꼬는 가을용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를 뒤로 묶고 캐리어를 들고 있으니 영낙 없는 스튜어디스 같았다. 하지만 스튜어디스 중에서도 아주 예쁜 스튜어디스 같았다.

“오, 그랬나? 그럼 미안한데. 친구들과 관광도중에.”

“나고야는 갈 기회가 많아요. 이누야마(犬山)는 나고야에서 가까우니 다음에 가도 돼요.”

하얀 피부의 모리에이꼬가 미소를 짓자 구건호는 와락 껴안고 뽀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공항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구건호는 다른 사람들 보다도 걸음이 좀 빨랐다. 구건호가 모리에이꼬의 캐리어를 끌고 성큼성큼 라운지를 빠져나가자 모리에이꼬는 구건호의 팔을 끼고 깡충거리며 따라갔다.

구건호는 지하철을 타지 않고 짐도 있으며 두 사람이라 콜택시를 탔다.

“다이칸야마로 갑시다.”

택시기사는 20대 초반의 모리에이꼬와 30대 후반의 구건호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인데 팔짱을 낀 게 이상하게 보이는지 룸미러로 자꾸 뒤를 쳐다 보았다.

차가 출발하자 모리에이꼬는 피곤한지 구건호의 어깨에 기댄 채 바로 잠이 들었다. 모리에이꼬의 따듯한 체온이 느껴졌다.

[아아, 참으로 귀여운 한 마리 파랑새 같다. 한국 사람이면 나한테 이렇게 해줄까? 일본인이라 그런가? 애인도 아닌 후견인 사이일 뿐인데 이렇게 충성스럽게 변함없이 나를 대해주니 고맙다.]

구건호는 모리에이꼬의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당겼다.

구건호는 다이칸야마의 맨션에 에이꼬의 짐을 풀어 넣고 함께 거리로 나왔다. 집안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외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둘은 우동을 먹었다. 허름한 우동집이지만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아주 맛이 있었다.

“국물도 아주 시원한데?”

“100년 된 집이래요. 저도 어느 때 늦으면 이집에 가끔 와요.”

“100년?”

구건호가 자세히 보니 벽의 나무판자에 한자로 100년 전통의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에이꼬는 우동을 먹고 나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빠른 일본어라 구건호가 잘 못 알아듣겠는데 에이꼬가 자주 마마상 소리를 하는걸 보니 마마상 세가와 준꼬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구건호가 에이꼬에게 물었다.

“세가와 준꼬?”

“응.”

“무슨 전화야?”

“나고야에서 왔냐고 물었어요. 그리고 귀중한 손님이 오셨다고 신쥬꾸의 요정으로 올수 있느냐고 해서 못 간다고 했어요.”

“그래?”

“지금 막 올라와서 피곤하고 마침 구사쪼상(구사장)이 왔다고 하니까 전화 끊었어요.”

“귀한 손님이 왔다는데 못가니 언짢아하고 그러는건 없어?”

“아니, 사쪼상이 왔다니까 좋아했어요.”

“그래?”

구건호는 모리에이꼬가 피곤해 보이는 것 같았다.

구건호와 에이꼬는 슈퍼에서 맥주와 마른안주, 과일과 음료수 같은 것을 잔뜩 사가지고 맨션으로 돌아왔다.

“오빠 먼저 목욕해요.”

“아니, 에이꼬가 먼저해.”

둘은 목욕을 하고 유카타만 입은 채 식탁에 마주 앉았다.

“맥주 사온 것 조금만 마시고 잘까?”

“나, 요즘 술 잘 마셔.”

에이꼬는 주량이 늘었는지 술을 정말 잘 마셨다. 에이꼬는 술을 마시면서 울기 시작했다.

“왜 울어? 오빠 왔는데?‘

구건호가 에이꼬를 안고 안방 침대로 갔다. 그리고 불을 끄고 에이꼬를 그대로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오빠, 우리 오타루에 가서 살까?”

“오타루?”

“응, 오타루.”

그러면서 모리에이꼬의 샛별 같은 두 눈에선 눈물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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