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3
버스 터미널 건설 (2)
(323)
구건호는 문재식이 있는 합자사 사장실에서 조은화가 번역한 계약서 한글 본을 보았다.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출자금으로 중방측은 1만평의 터미널 부지를 현물출자하고 한방측은 투자 총액의 절반인 2,500만 달러를 현금 출자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중방은 토지 감정평가액이 2,500만 달러에 미치지 못하여 고속버스 운송사업 면허를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구건호가 계약서를 보고 있는데 판공실 주임이라는 30대 여성이 차를 가지고 왔다.
“귀주성의 명물인 홍차입니다.”
구건호가 차를 음미해 보았다. 맛과 향이 괜찮았다.
“좋은데? 이 차 이름이 뭐라고 합니까?”
“지엔홍(黔紅)이라고 부르는 차입니다.”
홍차 맛은 좋았다.
구건호는 문재식이 얻으려고 하는 아파트를 가 보았다. 위치는 회사에서 멀지 않았지만 그다지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여기 아파트는 하지마라.”
“왜? 난 좋아 보이는데?”
“어차피 합자사 돈 가지고 하는데 후진 아파트 선택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 나와 있는 외국인 사장들이 어느 지역에 사는 가 살펴봐라. 조은화가 중국인들과 자주 대화하니 조은화한테도 물어보고 중방의 부장급들에게도 물어봐봐. 걔들은 이 지역에서 오래 산 얘들이라 잘 알거야.”
“조금 비싸도 상관없나?”
“합자사도 집을 살 때는 투자의 목적으로 사는 거야. 네 개인 명의가 아니고 법인 명의니 비싸다고 사양할 필요는 없다. 모르긴 몰라도 중방측도 다소 비싸더라도 올라갈 수 있는 지역을 택할 거다.”
“흠, 알았다.”
“첫째,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들어가야 한다. 너, 한국에 있을 때 강남 불패의 신화를 못 들었어? 빈부의 차이가 심한 것은 노동자들의 생산의욕을 꺾기 때문에 정부에서 항상 대책 마련에 고심하지. 하지만 언제나 강남의 부동산은 나 잡아봐라 하면서 값은 먼저 달려가지 않느냐.”
“네 말 들으니 이해가 간다. 저 정도 아파트면 인천의 주공아파트 수준이라 얻을까 했는데 다른데 알아보지.”
샹그릴라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였다. 호텔까지 따라온 문재식이 말했다.
“술 한 잔 할까?”
“내일은 회의가 있으니까 여기 호텔 식당에서 간단히 하자. 차는 돌려보내도 되지? 차는 내일아침 9시까지 이리로 오면 되겠다. 너 여기서 네가 있는 호텔까지 혼자서 택시탈수 있지?”
“탈 수 있어. 택시기사들이 호텔이름은 대개 아니까 숙소 찾아가긴 좋아. 여기서 공공버스를 타도 돼.”
“총경리니까 공공버스 이용은 자주하면 안 좋겠지. 여기 로비에서 기다려라.”
구건호는 가방을 들고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간편복으로 갈아입은 구건호가 검은색 고무봉지 하나를 들고 내려왔다.
“뭐냐? 이것은?”
“너 주려고 가져왔어. 고추장하고 김하고 명란젓이야.”
“하이고, 이 귀한걸! 그렇지 않아도 고추장도 떨어져가는 것 같았는데 한국 식재료를 보니 반갑다.”
“여기 한국 식재료 파는데 없나?”
“있다는데 아직 못 찾았어. 하지만 물건이 신선하고 다양하겠어?”
“차는 보냈지?”
“차는 보냈어. 식사는 호텔도 좋지만 나가서 먹자. 여기는 시내 중심가라 한발자국만 나가도 좋은 식당들이 많아.”
“그래? 그럼 나가자.”
구건호와 문재식은 거리에 있는 아담한 식당엘 들어갔다. 20살도 안되어 보이는 여자 종업원이 나와 메뉴판을 들고 왔다.
“시켜라.”
문재식이 겸연쩍게 웃으면서 메뉴판을 구건호에게 넘겼다.
“내가 아직 음식 주문이 서툴러. 구사장은 중국어 잘하니까 먼저 시켜봐.”
구건호가 중국어로 종업원에게 물었다.
“이 집에서 잘하는 것이 뭐요?”
“묘족들이 즐겨먹는 싼탕위(酸湯魚)가 유명합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소?”
“뉴러펀(牛肉粉)도 좋습니다.”
“그럼, 방금 아가씨가 추천한 싼탕위와 뉴러펀을 주세요. 공기 밥도 주고 맥주도 한 병 주고요.”
중국말을 잘 모르는 문재식이 물었다.
“뭐래?”
“싼탕위와 뉴러펀이란 음식이 유명하다고 하네. 시큼한 생선매운탕 같은 것 하고 우동 같은 것인 모양이야.”
“아, 시큼한 생선매운탕? 먹어봤어. 괜찮아.”
구건호가 문재식의 빈 잔에 맥주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이제 본 계약 서명을 하면 내가 열흘 안에 300만 달러를 보내야할 거야.”
“돈은 되나? 300만 달러면 우리나라 돈 30억원이 넘는 돈인데.”
“땅 판돈 있잖아?”
“양도 소득세 많이 낸다며?”
“좀 나오긴 해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수 있어. 법인이니까 양도소득세 신고도 바로 할 필요는 없고 나중에 법인세 낼 때 합산하면 돼.”
“그런가?”
“참 로지스틱스는 거래하는 세무사를 옮겼어. 네가 성환에 있을 때 거래하던 세무사는 천안에 있어서 아무래도 거리상 불편해서 누나가 옮긴 모양이야.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세무사 사무실로 옮겼어.”
“그래? 그거야 뭐, 편하게 하면 되지.”
“정왕동에 있는 세무사 사무실에 가서 양도소득세 문제를 상의해 보았어. 거기선 보유기간이 짧아 양도차익의 30%를 맞을 가능성이 있는데 자기들이 필요 경비를 최대한 반영해 보겠다고 했어.”
“흠, 그래?”
“너, 주소는 참 망원동에서 부모님 계신 인천 주공아파트로 옮겼나?”
“옮겼어. 그 아파트 명의가 내 이름으로 되어있어서 주소도 함께 옮겨버렸어.”
“잘했다. 혹시 네가 성환에 있는 논 판 것 양도소득세가 개인 명의로 나오면 나한테 알려줘라. 너는 취득원가에 얼마 붙이지 않고 법인에 넘긴 것으로 해서 양도소득세가 많지는 않을 거다.”
“알았다. 나오면 알려줄게.”
구건호가 맥주를 마시면서 말했다.
“300만 달러 빨리 보내주면 중방 애들이 너한테 집사주고 자동차 사고 최대한 배려는 해줄 거다. 그리고 터미널 공사는 토목공사가 바로 시작되겠지. 운송사업도 시작되면 일단은 네 급여와 건설 본부요원들 인건비도 커버 되므로 중방측도 노선권 획득을 위해 노력은 할 거다.”
“알겠다.”
“그리고 집을 계약하거나 차를 사는 것이나, 고속버스를 살 때 모든 계약행위는 네가 하지 말고 중방측 부사장 시켜. 그게 좋아.”
“알았다.“
“고속버스는 대우계림에서 가져올 건가?”
“중방 부사장에게 이야기했더니 다른 곳하고 비교견적 내봐서 좋으면 해도 된다고 했어.”
“흠, 차 가지고 올 때 계림에서 안당시까지 가져오려면 엄청난 거리일 텐데. 여기서는 성(省)과 성 사이가 다른 나라 가는 것처럼 멀잖아. 서울서 부산가는 거리 몇 배 될 걸?”
“그러겠지.”
“운전기사는 객운공사에 있는 사람들 뽑아서 넘어오겠구나.”
“그렇게 되겠지.”
“이 산탕위라는 매운탕 먹을 만하냐? 육수 좀 더 부어달라고 할까?”
“좀 더 먹고 해도 되겠다. 맥주 한 병 더 시킬 가?”
“좋지!”
구건호는 맥주를 한 병 더 시켰다.
구건호와 문재식은 컵에 맥주를 따라 부딪쳤다.
“여기서 합자사가 얻어주는 30평짜리 고급 아파트에 살고 아우디 새차 타고 다니면 그런대로 지낼 만 할 거야. 터미널 사업이나 고속버스 사업은 중방 애들이 하는 대로 맡겨주고 너는 딱 2가지만 하면 돼.”
“두 가지? 뭔데?”
“하나는 토지를 합자사에 넘겨달라고 주장하는 것이지.”
“아니 돈 들어가면 당연히 합자사에 넘기는 거지 무슨 소리야. 더구나 토지를 현물 출자하기로 되어있잖아.”
구건호가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두고 봐라. 그렇지 않을 것이다. 터미널 사업은 상가 임대문제도 있고 입주한 버스회사들 운행시간 조정문제도 있고, 아까 보다시피 파출소도 밑에 두고 있다. 돈이 없어 미끼로 던지기는 하지만 공익적 목적이 강한 터미널 사업은 내심 외국인과 손을 잡을 목적은 없을 거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는 합자사로 토지를 넘기지 않으면 이후 돈을 넣지 않겠다고 해야지.”
“아예 300만 달러도 넣기 전에 강력히 주장하고 철수해야하는 것 아니야?”
구건호가 웃으며 문재식에게 맥주를 따라주었다.
“300만 달러는 내가 던지는 미끼지.”
“미끼?”
“300만 달러라는 떡밥을 던지면 버스 운송사업은 하게 해주겠지. 좋은 노선은 객운공사 총부에서 가져가고 여기는 20대 규모로 움직이게 해주겠지.”
“그렇게 돠나?”
“문사장. 합자사는 말이다. 외국과의 거래다. 예리한 검을 가지고 서로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 거지. 중방이 고수급이라면 나도 고수급이다. 강호의 고수급끼리 맞붙어 실력이 비등하다면 어떻게 되겠나? 서로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화해를 해야 되겠지.”
“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두 번째는 뭐냐?”
“두 번째는 회의할 때 마다 노선을 늘려달라고 해야 되겠지.”
“노선패는 20대 가지라며?‘
구건호는 고개를 좌우로 살래살래 흔들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모습은 청담동 이회장에게거 배운 것이었다.
“선로패 20대도 금방 안준다. 한방의 태도도 보아야 하고 투입하는 노선 수요예측도 해야 하지. 하지만 너는 여기에 와 있는 목적이 두 가지만 하고 있으면 네가 와있는 임무는 다하는 거야. 첫째, 토지 합자사 이관문제, 둘째 선로패 확보 문제만 주장하면 된다. 강력하게 주장하되 중방을 너무 몰아붙이지는 말아라. 이것만 하면 된다.”
“알았다.”
“그리고 여기 와 있는 동안 중국어 열심히 공부하고 집 얻고 제수씨 오게 되면 좋은 부업거리나 찾아보면 된다.”
“고맙다. 사업적 안목은 네가 천부적 자질이 있어 내가 배우는 게 많다.”
“천만에. 나도 너한테 배우는 게 많아.”
둘은 웃으면서 잔을 또 부딪쳤다.
다음 날이 되었다. 호텔 앞으로 문재식이 차를 가지고와서 같이 안당시 동부터미널 내에 있는 합자사 사무실로 갔다.
회의실에는 안당시 객차 유한공사의 옌룬셩(嚴潤生) 사장과 합자사 부사장인 창춘(常春) 부사장이 먼저 와서 앉아있었다. 50대의 건설 본부장도 함께 와있었고 오늘은 중방측 통역으로 사회과학원의 조선족 통역 최선생도 와 있었다. 건설 본부장은 합자사 소속으로 문재식 사장 밑에 있는 기구로 편제되어 있었다.
한방 측에서는 구건호와 문재식, 그리고 통역 조은화가 나와 맞은편에 앉았다.
중방의 부총경리가 마지막으로 계약서를 검토하는 회의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계약서 기본조항을 읽어나갔다.
각 조항은 이미 이야기가 나왔던 이야기들이 많아 구건호는 대체로 동의한다고 하였다. 구건호가 질문을 했다.
“그런데 돈 들어가면 토지는 합자사 명의가 가능한 거요?”
“획발(劃發: 계획토지)토지는 명의 가능합니다. 건설용지 허가증은 합자사 명의가 가능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전량(轉諒: 양도 가능토지)토지가 가능하나는 것입니다.”
“중방의 옌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토지를 전량으로 변경하는 것은 엄청난 수수료가 들어갑니다. 터미널은 민간에게 함부로 팔수 있는 토지가 아닙니다. 이 점을 구사장님께서는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토지의 평가가 과대하게 잡혀있습니다. 이 부지가 2,500만 달러라니 말도 안 됩니다. 이제 와서 내가 따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에 상응하는 조건으로 운송면허를 30대로 늘려주셔야 합니다.”
“사실 우리도 합자를 추진하면서 토지의 감정평가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감정평가 유효기간이 남아있어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평가한다면 15만 위안의 감정평가 수수료가 들어갑니다. 안당시 국유자산관리국에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 주고 있습니다.”
구건호는 토지의 합자사 이전과 노선패의 적음을 주장하는 선에서 회의를 끝마치고 서명을 해주기로 하였다.
“서명은 교통국장의 입회하에 합니다. 아울러 사진촬영도 있습니다. 서명식은 11시 30분에 하겠습니다.
옌사장이 일어서며 구건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당시 시민들은 귀주성 성도인 귀양시까지 언제 고속버스가 개통하냐고 문의 전화가 많습니다. 사업 전망은 아주 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