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40화>
미라클 에이전트 본사.
“……이걸 보고서라고 가져온 거예요? 진심으로요?”
수석 팀장, 연수지는 황당한 얼굴로 직원을 바라봤다.
직원이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데, 얼굴에는 불만이 그득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 모습이 연수지를 더욱 빡치게 만들었다.
“1학년 수석 선우가람. 1학년 차석 선우슬기. 동아리 ‘출구 없는 지옥’ 가입. 동아리 선배인 박기혁이랑 함께 행동…….”
연수지가 직원을 노려봤다.
“이봐요. 당신, 당신이 맡은 일이 뭐예요. 중요 인물들 밀착 관리 아닌가요? 근데, 여기에 뭐? 동아리 가입? 동아리~ 가이입~? 대체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했어요?!”
“……겨우 동아리입니다. 학교에서 친목이나 쌓는 그런 동아리를.”
“학교? 친목? 하!!”
결국 폭발하는 연수지.
혹시 미친 건가? 아냐, 미친 게 분명해.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잖아.
지금 이게 비초인,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는 아카데미가 어떠한지 단적으로 나타내는 상황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아카데미는, 그냥 대학이다. 고등학교 끝나고 가는 대학.
초인들만 모인다는 점에서 약간 특별한 대학, 그뿐이었다.
이런 시각을 전제로 하자, 아카데미의 모든 행사가 대학과 다름없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초인의 입장에서 아카데미는 뭘까.
초인들, 그중에서도 소수의 선택받은 재능들이 모이는 별들의 집합소다.
이곳은 모든 게 특별하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하다못해 학생회도. 어느 하나 허투루 볼 수 없다.
지금 말하고 있는 친목? 동아리?
그래,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짝이는 별들이 뭉쳐 은하수가 되고 우주가 된다.
에이전트 입장에서 일주일간의 축제, 그러니까 ‘영입 시장’ 기간 동안 영입만큼이나 중요한 업무가 재능 있는 자들의 동태 파악이다.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흩어지느냐.
왜냐하면 저들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유망주에서 단숨에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극단적인 예시가 있잖나.
옵티멈.
한국 최고의 에이전트.
세계 5대, 파이브 시스터즈의 일원.
이제는 현존하는 전설로 불리는 이 옵티멈이 방금 전, ‘친목질’이라며 폄하받던 동아리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연수지는 직원을 내보냈다. 그 멍청한 낯짝을 계속 보고 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본부장님, 영입 시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직원부터 다시 뽑아야 할 것 같은데요. 이쪽의 생태계를 전혀 모르잖아요. 최소한 아카데미에 대해서는 알아야지…… 하.”
“어쩔 수 없습니다. 요즘에는 능력이 모자란 초인들도 곧잘 사냥에 나가니까요.”
“……하, 옵티멈. 박기혁, 정말.”
이게 다 옵티멈 때문이다.
정확히는 박기혁, 더 정확히는 박기혁이 만든 ‘인공 정령석’ 때문.
옛날에는 초인임에도 타고난 능력이 모자라면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목숨은 하나잖나.
아무리 마석이 비싸고 사냥이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해도 죽으면 아무 쓸모없는 일이니까.
근데 인공 정령석의 등장으로 아티팩트의 가격이 급감한다.
어느 분석가는 아티팩트 시세에 대해 ‘체감상 10분의 1로 떨어진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현재 아티팩트 가격은 연일 하향세를 그리는 중이었다.
여담이지만 이런 가격 하락에 ‘헌터 연합’은 아티팩트 산업이 붕괴됐다며, 규제에 나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중이다.
이전까지 헌터 연합의 주 수입원이 아티팩트였다.
아무튼, 이렇게 시장에 저렴하고 질 좋은 아티팩트가 풀리자 능력이 모자란 초인들에게 희망이 보이게 된다. 일단 쓸 만한 아티팩트를 몸에 칭칭 두르면 1레벨 게이트 정도는 충분히 공략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게 박기혁이 던진 작은 공이 끼친 파장이었다.
“……게이트 생태계 붕괴가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는 이 산업 생태계의 붕괴. 이게 진짜입니다.”
“걱정 마세요, 본부장님. 우리는 적응할 테니까요. 오히려 이 혼란스런 상황이, 우리에게는 찬스일 수 있어요.”
메이저 에이전트의 혼란과 시장의 붕괴. 이런 난세야말로 신흥 세력이 부상하기 좋은 환경이니까.
때문에 이번 영입 시장이 더욱 중요하다.
이 찬스를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미라클이 ‘한때 이름 좀 날린 졸부의 에이전트’가 되느냐, 아니면 기존 메이저 에이전트를 위협하는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느냐, 이게 결정된다.
“선우가람과 선우슬기는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인재예요. 다시 컨택하는 걸로 하죠. 이전처럼 물렁한 방식 말고요. 더 강력하게.”
“강력하게라면…….”
“예산 맥시멈 측정하세요. 무엇을 원하는지,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그게 무엇이든 지원한다고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동아리 옮길 생각 없는지 설득해 보세요.”
“옵티멈 때문입니까?”
“인재 욕심이 유별난 옵티멈의 마녀가 자기 품에 들어온 보물들을 놓칠 리 없으니까요.”
“알겠습니다.”
“다음은, 이쪽. 여기는 절대 놓치면 안 돼요.”
페이지를 넘기자, 대문짝만하게 ‘2학년’이라고 적힌 페이지가 나왔다.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 몰린 기수는, 현 4학년이다.
검호와 진룡, 이 나라를 대표하는 두 가문이 함께 들어온 것만 봐도 이미 게임은 끝난 것.
근데, 에이전트 입장에서 이 4학년이 매력적이냐면…… 또 그건 아니다.
냉정하게 평가할 때, 황금 기수인 4학년은 몇몇 찬란한 재능이 평균을 올린 거다.
거품이 존재한다는 것.
실제로 하위권의 실력은 그저 그렇거나, 오히려 못한 수준이었다.
반면 여기 적혀 있는 2학년은 찬란한 재능이 없어도 그 평균치가 월등히 높은 기수였다.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2학년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 매력 덩어리들 중 연수지의 미라클이 사력을 다해 노리는 이는.
프로필 속, 기형적인 검은 동공이 인상적인, 바로 이 남자였다.
“송새벽.”
키 1미터 98센티미터. 몸무게 87킬로그램.
주 무기는 도끼.
양손에 하나씩 드는 양손 도끼와 등 뒤에 메고 다니는 배틀 액스. 압도적인 신체 스펙을 앞세워 내려치는 부술(斧術)은 일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별명이.
“제2의 박기혁이라…….”
물론 박기혁을 아는 연수지에게는 우스운 이야기다. 걔를 누가 따라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하나, 이를 다르게 보면 그 괴물 같은 박기혁과 비교된다는 것 아닌가.
이것만으로도 송새벽의 재능은 진짜란 말이다.
“성적 우수. 성격도 인품도 훌륭하다.”
박기혁이 타협이 불가능한, 속된 말로 자기 꼴리는 대로 살았다면, 송새벽은 힘을 가졌음에도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주변을 감화시켰다.
그래서 2학년은 조를 떠나 송새벽을 중심으로 무리를 짓는 기형적인 구조가 구축됐는데, 이게 ‘파이트 클럽’이었다.
“특히, 이거. 이게 주요해.”
극비리에 얻은 정보.
송새벽이 한국의 유명 혈족 ‘신장(神將)’ 가문과 일본의 대표 혈족 ‘오니(鬼:オニ)’ 가문. 양쪽의 혈족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정보였다.
다혈족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의심되지만 일단은 넘긴다.
양쪽의 힘을 50퍼센트씩이라도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송새벽은 괴물이었다.
“출생에 비화가 있어, 두 가문에서 배척된다…… 이런 보석을 겨우 출생 때문에 품지 않다니. 이래서 혈족들이란. 쯧.”
송새벽, 송새벽…….
연수지가 홀린 듯 이름을 되뇌었다.
“행동 대장으로 제격이야. 무조건 우리가 가져야 해.”
김연희에게 유해련이 있었듯이, 자신에게 송새벽이 있다면…… 연수지가 몸을 부르르 떤다. 상상만으로도 황홀했다.
이럴 때가 아니다. 당장 송새벽을 봐야겠다.
“본부장님, 아카데미로 가야겠어요. 차 준비해 주세요.”
연수지가 아카데미로 향했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다. 에이전트, 파티, 협회, 연합…… 다양한 곳에서 출발한 차량이 아카데미로 향하고 있었다.
아카데미는 이미 전쟁터였다.
* * *
“얘도 X. 얘도 X. 여기도 X.”
온통 X표 천지다.
나는 X표가 쳐져 있는 가입 신청서를 보며 허무하게 웃었다.
이거 뭐.
“전쟁이네.”
바로 어제 가입한다고 했던 애들이, 하루아침에 말을 바꿨다. 옆에 있는 동아리가 더 좋은 대우를 해 줬다나.
어제까지만 해도 30명 넘었던 것 같은데, 남은 사람은 겨우 일곱.
선우 쌍둥이하고, 마주리와 함께 온 애들이 전부다.
아직도 어이가 없네. 이렇게 손쉽게 바꿀 수 있다고?
김하니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이게 보통이래요.”
“누가 그래?”
“친구가요.”
아카데미는 ‘영입’을 통제한다.
여기서 영입은, 모든 종류의 영입이다.
비단 에이전트의 스카우트뿐만 아니라, 우리가 1학년 때 만든 ‘조’나, 친목으로 만든 동아리 전부 통제의 대상이다.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올바른 경쟁의 장을 만든다는 명목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런 아카데미가 일 년에 딱 2번 통제를 푸는 날이 있는데, 이게 바로 축제 기간이었다.
상반기, 하반기 축제.
일주일간 함께 치러지는 영입 시장.
이때만큼은 모든 영입이 자유롭다.
가입도, 탈퇴도, 자유롭다. 마음 가는 데로 옮기면 되는 거다.
그 기간 동안은.
“작년에는 이거보다 더 심했다고 하던데요. 사인하면 바로 옆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하이재킹하고. 다시 거기에 얹어서 조건 부르는 데로 옮기고. 그래서 칼부림도 났대요.”
“그 정도야?”
“저도 칼부림까지는 아니더라도 싸우는 모습은 많이 봤어요. 동아리는 특히 더 그랬고요. 선배님도 보시다시피 에이전트는 가입에 계약금이나 위약금이나 이런 게 있지만 동아리는 뭐, 아무것도 제약이 없잖아요. 난장판인 거죠.”
“끔찍하네.”
시장 바닥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거기는 최소한 상도덕은 있지 않나.
옛날에는 이런 게 싫어서 어느 동아리가 실제로 거액의 계약금을 주는 경우도 허다했단다. 물론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며 아카데미 내에서 금전 거래는 금지됐다나.
이상 김하니의 TMI였다.
너무 안일하게 봤나.
가입 명단에 그어져 있는 X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짜증도 나고, 어이도 없고, 한편으론 우습기까지 하다.
허허, 허탈하게 웃는데 내 어깨에 누군가 손을 올린다. 진유리였다.
“표정 풀어. 뭘 그리 실망해.”
“실망하는 거 아니다. 우스워서 그렇지.”
“괜찮아, 괜찮아. 괜찮은 애들 건졌잖아. 넌 충분히 잘했다니까?”
“맞아요, 기혁.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때맞춰 메리가 거든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기혁 입에서 한 번이라도 언급됐던 사람들은 모두 남았잖아요.”
“그건 그렇지.”
“보세요. 하니 덕분에 마주리 후배님을 비롯해서 사제 계열 아이들이 많잖아요. 이거 엄청난 거라고요.”
“고럼 고럼.”
“기대 이상이에요. 솔직히 전 이 정도로 기대 안 했어요. 그런데 가람과 슬기만 건져도 훌륭하다 생각했거든요.”
“맞쥐, 맞쥐. 메리 말이 모두 맞아~.”
“넌 열심히 하고 있다.”
마지막에 한준우까지 와서 이런다.
진짜 괜찮다니까 그러네.
내 작은 친구들은 내가 실망해서 기분이 다운된 줄 아는 가보다.
근데 그건 아니다.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런 것뿐이다.
뭐, 그래도 신경 써 주는 건 고맙다.
생각해 보니, 얘들하고도 꽤 오래 붙어 다녔다.
누군가 그랬던가, 인연이란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시간이 갈수록 질겨지고 복잡해져 나중에는 끊을 수 없는 일부가 된다는데, 내게 얘들이 꼭 그랬다.
“3일 남았어요. 힘내 봐요.”
“힘내자! 내가 도와줄게! 아빠한테 도와 달라 할까? ‘여의주’ 들고 오면 뒤집어질 건데.”
“……진유리, 제발 이상한 짓 하지 마라. ‘파초선’ 빌려주신 것만 해도 고마운데.”
다들 이러니, 어쩔 수 있나. 내가 더 열심히 해야지.
“기분 꿀꿀한데 점심이나 먹자. 막내야!!”
“…….”, “…….”
“막내야!”
“…….”, “…….”
대답이 없다.
분명 선우 쌍둥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 함은.
“너희들 아직도 결판 못 냈냐?”
“…….”, “…….”
“하하. 못 말린다. 정말.”
내 웃음에 둘이 서로를 노려보다, 눈을 피한다. 불쾌하다는 듯 찌푸리는 게 정말 싫은가 보다.
“하니야, 네가 오늘만 주문해라. 너희 둘은 올라와.”
식전 운동으로 막내나 정해 줘야지. 두 사람이 서로 먼저 올라가겠다고 아옹다옹하며 링으로 올라오는데.
그 순간, 내 귀를 때리는 외침.
“박기혁 선배님 계십니까!!”
쿵!!
부스의 한쪽 문이 날아간다.
보호 마법을 두른 건데 종잇장처럼 날아가는 문.
일단 손가락을 튕겨 문을 허공에서 멈춰 세웠다. 동시에 정문 쪽으로 시선을 향하는데.
시선 한가득 모인 아이들과, 그 사이로 독특한 존재감을 내뿜는 사내 녀석 하나.
“한 수 배우러 왔습니다.”
녀석이 도끼를 빼 들고 치켜들자, 다른 아이들도 차례대로 무기를 빼 들었다.
배우러 온 놈들이 살기를 내뿜고 있다.
여기가 무슨 전쟁터인 줄 아나, 누구 하나 담글 기세였다.
나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본다.
“음…….”
하나, 둘, 셋…… 열둘.
열 둘. 12명이라…….
도전자가 12명이라…….
다들 아주 좋다. 터무니없이 출중하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후배님들아.
내가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하니야, 가입 신청서 열두 장 준비해라.”
“네……?”
“아, 점심 주문도 12인분씩 더 준비하…….”
“무슨…… 선배에!!”
김하니가 비명을 지르는 이유.
간단하다.
그 짧은 시간에 김하니를 스쳐 간 내가 이미 한 놈을 하늘로 던졌거든.
“……!!”
“환영한다.”
그리고.
“미리 축하한다.”
가입을.
찡긋.
하늘 위로 스켈레톤의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