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39화>
사실 박기혁이 간과한 부분이 있다.
그는 자신이 인기(?)가 없는 줄 알고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재앙이다 뭐다 워낙 소문이 흉흉하잖나. 실제로 아직도 동기들은 그를 마주하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이를 전재로 깔고 접근하니까 축제가 어렵고 영입 시장이 복잡한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건 박기혁의 착각이다.
김연희는 확신했다.
“기혁이가 나가면 벌떼같이 몰려들걸.”
초인들은 기본적으로 강함을 추종한다. 더욱이 상대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아이들이다.
숨만 쉬어도 호르몬이 팡팡 터지고,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서는 이 시기. 단순히 압도적인 수준을 넘어 범접 불가로 불리는 박기혁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아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 왜 박 서방한테 그런 말을 한 거야.”
“해쫑이 너…… 그놈의 박 서방 언제까지 할 거야.”
레모네이드를 마시던 유해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한다.
“왜, 바꿔 줘? 봄이 아빠? 여름이 아빠? 말만 해.”
“……봄이는 그렇다 치는데, 여름은 또 뭔데.”
“우리 진유리 씨 자녀 계획이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때, 센스 괜찮지?”
“하아…….”
“걱정 마. 내가 책임지고 키워 줄게. 원래 친정어머니가…….”
“스탑! 닥쳐, 유해쫑. 정신 사나우니까.”
“그러니까,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 박 서방한테 왜 그런 말한 거야?”
김연희는 잠깐 생각하다, 피식 웃으며.
“귀엽잖아.”
새끼 강아지 같은 얼굴로 엄마 앞에서 곤란해하는 모습이라니.
이건 못 참지.
“새끼 강아지? 와…… 못 말린다.”
“뭐?”
“내가 아무리 박 서방을 좋아해도, 귀엽다는 좀.”
김연희도 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자신의 막둥이가 곰, 아니, 그 이상의 끔찍한 무언가로 보인다는 것을.
그래서 뭐? 내가 엄만데.
엄마 눈에 자식은 언제나 아기일 뿐이다.
“그게 다야?”
“……뭐, 그런 것만은 아니고.”
귀여운 것이 주요했지만, 온전히 그 이유만이겠나.
“축제도 경험하고, 이참에 사회생활도 배우라는 거지.”
수틀리면 몸부터 먼저 나가는 아이다. 많이 나아졌지만 인간관계나 커뮤니케이션도 투박하기 그지없고.
그때, 잠자코 듣던 유해련이 참지 못하고 피식피식 비웃는다.
“뭐야. 그 기분 나쁜 웃음은.”
“네가 하는 짓이 웃기잖아.”
“뭐가.”
“검호는 원래 다 그렇지 않아?”
수틀리면 몸부터 나가는 것이나, 인간관계 좁은 것이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읽고 ‘결투’라 해석하는 것이나.
전부 검호 종특인데?
“꿈이 야무지십니다, 김희땡 씨. 인성 개조가 그렇게 쉬웠으면 박수혁은 왜 아카데미 교수를 쥐 잡듯 잡았으며, 박민지는 허구한 날 칼부림을 했을까요. 네? 그렇잖아요?”
“막내는 달라.”
“…….”
“다르다고.”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다만 유해련은 생각했다.
‘퍽이나 다를까.’
내가 보기엔 더하면 더했지 덜할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머니는 자식을 다 아는 것 같지만, 때로는 자식을 가장 모르는 사람 역시 어머니다.
같은 시각, 박기혁은 후배의 무기를 두 동강 내며 세 번째 ‘교습’을 끝내는 중이었다.
* * *
공포는 빠르게 희석된다.
박기혁이 신입생으로 아카데미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당시의 박기혁은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파괴적인 폭력으로 아카데미 전원에게 살아 있는 ‘재앙’으로 군림했었다.
감히 대항할 생각조차 가질 수 없었다.
애초에 재앙은 대항하는 게 아니다. 대비하는 거다.
당시의 동기들도, 선배들도…… 심지어 교수들까지 모두 그를 피해 다녔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어느새 박기혁은 4학년 졸업반이 됐다.
단순히 시간만으로 약 3년.
신입생이 세 번이나 들어왔다.
이제 아카데미에서 재앙 시절 공포를 아는 자들은 교수를 제외하면 같은 동기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아카데미에서 박기혁에 대한 이미지는 점점 옅어진다.
4학년 동기에게는 여전히 공포의 재앙이지만.
3학년들 사이에서는 살아 있는 ‘전설’로 취급받고.
2학년들부터는 ‘검호’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럼 1학년은?
그냥 선배다. 이름 좀 날린 선배?
그나마 사정에 밝은 이들에게는 아카데미에서 제일 강한 선배쯤으로 취급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 사람들이 있었다.
박기혁을 잡아 단숨에 명성을 올리겠다는, 정신 나간 상상을 하는 ‘무리’가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 1학년. 나란히 수석과 차석으로 오른 ‘선우가람’과 ‘선우슬기’가 바로 그런 부류였다.
‘충분해. 이길 수 있어.’
‘이번에야말로 검호를 꺾을 거야.’
약속이나 한 듯 둘은 서로를 본다.
‘미친년이랑 같이하는 게 좀 걸리지만.’
‘이 머저리랑 손발을 맞추기는 싫지만.’
‘오빠인 내가 참아야지.’
‘검호를 꺾으려면 누나인 내가 참아야지.’
서로 원수 같은 사이.
보다시피 두 사람은 남매다.
창술명가인 혈마(血馬) 가문의 쌍둥이 남매.
한국에서 검호와 진룡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그러나 한국에 이 두 혈족만 있나?
전혀 아니다.
창조주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에는 게이트뿐만 아니라 혈족도 많다.
그중에서 ‘혈마’는 ‘패웅’, ‘청랑’과 더불어 검호의 바로 밑줄로 취급받는 무가(武家)였다.
“……하체를 단련하지 않았을 때 이런 식으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단 거다. 방금처럼 시간을 끌며 침착하게 하단을 노린다면 다소 실력 차이가 나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단 말이지.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어이, 거기 너. 초록 머리.”
“하체 단련입니다!”
“그래, 하체의 중요성은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남자든 여자든, 무투계든 마법계든, 일단 하체가 튼튼해야 한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한창 모여든 후배들에게 설명을 끝낸 박기혁이 뒤를 돌아본다.
형형한 눈에 선우 남매가 살짝 쫄았다. 그래도 눈을 피하지는 않았다.
기세가 만만치 않다.
박기혁이 ‘호~.’ 가볍게 감탄하며 빙그레 웃었다.
“안녕.”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소개.”
“선우가람입니다.”, “선우슬기입니다.”
“쌍둥이야?”
“네!”,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오디오가 겹친다. 한 명쯤은 양보해 줄 만도 한데, 두 사람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정신없네. 누가 먼저야?”
“제가 오빠입니다!”, “제가 누나입니다!”
“파핫!”
재미있는 애들이네.
박기혁이 유쾌하게 웃었다.
“좋아, 마음에 들어. 뭘 알고 싶지?”
놀랍게도 현재 이곳, ‘출구 없는 지옥’ 동아리 부스에서 이뤄지고 있는 건 ‘교습’이지 대련이 아니다.
다소 ‘과격’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교습의 영역 안에서 확실하게 ‘예시’를 들어 정보 전달이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적 현장이었다.
지금껏 땅을 구르던 사람들도 한 가지씩 배움을 받고 들어갔다.
하지만 선우 남매는 달랐는데.
교습? 배움? 그런 말랑한 마음으로 이곳에 선 것이 아니다.
둘은 투기를 뿜어내며 장창을 꺼냈다.
“저희는 혈마가의 일원으로서.”
“선배님에게 도전을 청합니다.”
“호오!”
오늘 본 중에 제일 눈에 띄는 애들이었는데, 역시나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괜히 탐나네. 안 되겠다.
‘너희로 정했다.’
박기혁의 얼굴에 웃음이 짙어졌다.
“도전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았어. 그 도전 받아들이지.”
박기혁이 미소를 띤 체.
손가락을 까딱까딱.
“덤벼.”
‘혈마’ 혈족 특유의 아릿한 혈향이 코끝을 스치길 무섭게, 두 줄기 혈광이 박기혁을 향해 짓쳐 들어갔고.
박기혁이 전시되어 있던 무기 중 검 한 자루를 뽑았다.
잠시 뒤.
콰아아앙-!!
강화 철벽이 무너지며 두 사람이 바닥을 구른다.
운동장에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겨우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양쪽으로 몸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 “……!!”
집채만 한 손바닥이 먼지를 뚫고 두 사람의 머리를 잡아 바닥에 메다꽂았다.
“커헉!”, “크윽!”
“내가 이겼지?”
누구나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공포는 빠르게 희석된다고?
다시 각인시키면 그만이다. 뼛속 깊숙이.
“하니야, 여기 가입 신청서 가져와라!”
두 사람은 바닥에 머리가 박힌 채 가입 신청서에 지장을 찍었다.
자기가 흘린 피로.
* 출구 없는 지옥 *
선우가람(1학년) 가입.
선우슬기(1학년) 가입.
“환영한다, 후배님들.”
* * *
음, 인정해야겠다.
나, 많이 유순해진 것 같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교습은 무슨 말인가. 당장 글러브 던지고 찐한 몸의 대화부터 했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분명 시커먼 애들인데, 똘망똘망한 게…… 귀엽다.
그래, 귀엽다고!
뭔가 꿈 많은 새끼 새 같은 게, 괜히 잘해 주고 싶다.
진심이다. 나도 이런 내가 적응이 안 된다.
이번에 도전한 이 쌍둥이도 봐라.
옛날 같았으면 ‘으디 으른한테 건방지게 도전이야!’ 하며 다리 하나쯤은 부러트렸을 건데, 그냥 토닥여 주고 치료까지 해 줬다.
선우가람, 선우슬기라 했던가.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말씀드리니까, 얘들이 나름 이름 있는 가문의 자제라고 하더라.
창술과 환수를 이용한 기마술이 특기라고 하던데, 그래서인가 내가 매번 강조하는 하체 단련도 꽤 우수했다.
각각 1학년 수석하고 차석으로 들어왔다는데, 그럴 만하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확실히 손맛이 남달랐던 것 같다.
“괜찮냐.”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시끄럽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돼. 어제 김하니한테 우리 동아리에 대해 들었지? 궁금한 거 있으면 걔한테 물어보면 돼.”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이네.”
참고로 얘들, 놀리는 맛도 좋다.
“너희들, 하니한테 가서 점심 시켜. 우리 동아리 전통이 막내가 점심 주문하는 거야.”
“저는.”, “막내가.”
“막,내,가 주문하는 거야. 막,내,가. 내 말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
서로를 향해 죽일 듯 노려보며 사라지는 쌍둥이.
아마 동아리실로 갔을 거다. 거기만큼 싸우기 좋은 곳은 드물잖나.
하여튼 귀엽다니까.
귀염둥이들에 대한 건 여기까지.
이후로도 신입들을 계속해서 영입했다.
다만 아쉬운 건, 처음 선우 쌍둥이들만큼 귀엽지는 않았다. 그냥 그럭저럭 쓸 만한 정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쩌나, 김하니하고 메리가 강력하게 말하는데.
“기혁 선배님! 선배님 눈에 차는 사람만 넣는 건 불가능해요!
“하니 말이 맞아요. 기혁 수준으로 보면 안 돼요.”
“평판 좋고 성격 좋고 실력 괜찮으면 일단 넣는 걸로 해요. 알았죠, 선배님?”
당사자가 저러는데 내가 어쩌겠나.
내가 동아리에 매여 있을 것도 아니고, 우리가 떠난 뒤에는 김하니가 동아리를 책임져야 하니 하니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게 맞았다.
그렇게 우리는 적당한 수준에 눈빛이 살아 있는 애들로 채워 나갔다.
그래도 간간이 실력 있는 애가 등장했는데.
마주리가 그 예였다.
“신이시여, 드디어 기혁 님을 뵙습니다. 후욱후욱, 침착해. 침착해, 마주리. 넌 할 수 있어.”
“처음 뵙겠습니다! 김하니 친구! 마주리입뉘다앗!! ‘작은 거인’의 부회ㅈ…… 웁!”
“아하하하. 선배, 얘가 좀 아파서요. 머리가, 머리가 아파요.”
……첫인상이 다소 정신없긴 한데, 실력은 괜찮았다.
육체 단련이나 신성력이나 어느 하나 모자라지 않더라.
성기사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을 아주 착실하게 채운 인재였다. 제국에 갖다 놔도 바로 신성기사단에 뽑힐 정도였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세상은 실력에 비해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 재능을 지켜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축제란 거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내일은 또 어떤 재능들이 나올까.
기대된다.
그렇게 난, 나도 모르는 새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 * *
한편, 축제가 한창인 아카데미 기숙사.
몇 명의 아이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앉아 있는 건장한 체구의 남자.
“현태야, 다 모였다.”
“고생했다.”
앞전에 말했던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는 박기혁을 잡아 단숨에 명성을 올리겠다는 ‘무리’가 등장했다고.
바로 이들이 그 무리.
이름은 ‘파이트 클럽’.
역대 최고의 황금 기수인 4학년에 비견된다는 2학년들이, 이 아카데미의 주류가 되려고 만든 서클이었다.
모두의 시선 속에 남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바라본다.
“동지들, 오늘 우리는…….”
흰자가 없는, 온통 검은자인 기괴한 눈이 아이들을 담고.
“박기혁을 잡는다.”
“우와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