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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30화 (30/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30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와 천수만과의 거래는 이뤄졌다.

왜? 그렇게 큰소리 뻥뻥 치고 나왔으면서?

맞다.

난 내가 원하는 대로 삽니다!

폼 나게 지르고 학장실을 나왔다.

하지만 자존심 좀 세웠다고 내가 현실 파악을 못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 저쪽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엄연히 이 아카데미의 일원이었고, 천수만은 아카데미의 학장이다. 아카데미에서의 재량권은 저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내가 마냥 고집을 피울 위치가 아니란 말이다.

그래도 뭐, 초장에 내가 지른 탓일까. 이후에 이어진 거래는 비교적 부드럽게 진행됐다.

그 결과가 이거다.

화요일. 오전 11시 38분.

평소라면 점심을 먹으러 학생 식당에 있어야 할 지금. 우리는 강원도의 이름도 모르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흐음~ 시원하고 좋네.”

“허, 시원요? 이게 시원해요?”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부슬부슬이라니요!! 우비 안에도 다 젖었어요! 이게 어딜 봐서 부슬부슬이에요! 아악-!”

털썩.

메르헴이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졌다.

찰팍.

비에 젖은 흙이 메르헴의 명품 트레이닝복을 더럽혔다.

평소라면 주술사가 고작 나뭇가지에 걸려 넘어지냐며 신나게 놀렸겠지만.

나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음, 풀 냄새 좋구만.”

“씨익! 씨익! 짜증 나아악!! 왜 하필 오늘이냐고요! 주문한 헬기는 다음 주에 오기로 했는데!!”

“조금만 참아라. 다 와 간다.”

“준우는 이 상황이 좋은가 봐요? 네, 그렇겠어요. 준우가 좋아하는 실전을 죽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아주 좋으시겠어요.”

“내 탓으로 돌리지 마라. 난 범인이 아니다.”

“후우…… 그렇죠. 그래요. 맞아요. 준우 말이 다 맞아요. 범인은 따로 있죠.”

메리가 도끼눈으로 나를 찍는다.

“뚫어지겠다.”

“뚫어졌으면 좋겠어요.”

“큼, 우리 메리 많이 과격해졌는걸?”

“헛소리 말고요. 제대로 말해요.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죠? 왜 수업 받을 시간에 산을 오르고 있냐고요. 분명히 학장이랑 잘 해결했다고 했잖아요.”

“음, 그건 말이지…….”

천수만과 다시 마주한 거래 테이블.

말은 안 했지만 우리 둘 다 이번 자리가 마지막이 될 거라 짐작했고, 서로 신중하게 딜을 했다.

“천수만이 원하는 건 균형, 쉽게 말해 애들 노는 데 끼지 말라는 거야.”

“하긴, 네가 끼면 경쟁이 무의미해진다.”

“쉿, 준우. 말 끊지 마요. 기혁, 계속해 봐요.”

그래, 천수만이 원하는 바는 알았다.

문제는 내가 원하는 게 딱히 없었단 것. 서로 필요한 것을 꺼내는 게 거래의 기본인데, 그런 면에서 우리의 거래는 너무 일방적이었다.

그러면 과연 내게 필요한 게 뭘까. 한참을 고민하던 때, 조언자가 등장했다.

자식 둘을 수석으로 졸업시킨 배태랑 학부모.

김연희 여사님의 등장이시다.

“정말 천수만이 그렇게 말했다고? 풋. 어지간히 다급했나 보다. 너한테 아쉬운 소리를 다 하고.”

“내가 보기에 너희는 굳이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차라리 실전 위주로 경험을 쌓는 게 어때? 3학년처럼 게이트 공략으로 학점을 받는 거지.”

“수업? 듣고 싶은 수업 있어? 아, 포지셔닝! 그 수업 좋지. 그럼 동영상으로 제공해 달라고 해. 뭐가 문제니. 원하는 거 다 말해. 천수만이 굽힌 순간, 이 거래는 압도적으로 유리해.”

그리고 이번에도 어머니의 예상은 적중했다.

천수만은 가타부타 조건 없이 내 딜을 모두 수용한 것이다.

“자, 잠깐만요. 그러면요, 설마 이번에 ‘학력 우수생’을 10명이나 뽑은 것도…….”

“맞아. 우리 조 때문이야.”

학력 우수생.

각 기수마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품행이 바르고,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을 일컫는 말.

……이지만, 사실 이건 ‘프리 패스권’이라는 단어로 더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수업을 빼먹어도 되거든.

학력 우수생이란 말인즉, 교수들이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고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말이다.

때문에 이 학력 우수생들은 외부 활동 기관, 에이전트나 협회 같은 곳에서의 활동만 인증되면 수업을 안 들어도 학점을 인정해 주는 제도였다.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는 말이지.’

하지만 한국 아카데미는 조별 활동을 기본으로 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단체로 활동하는 ‘전공 수업’.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포지셔닝의 이해와 활용’ 같은 수업은 무조건 조가 공동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즉 학력 우수생이지만 같은 조원을 위해서라도 결국 이 조별로 수행해야 하는 전공 수업은 참여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리 패스권’이라 불리는 학력 우수생이란 제도는 자질구레한 교양 수업이나 패스하는, 그저 그런 장학생으로 평가받는 정도였다.

바로 어제까지는.

“……본 학장은 그렇게 판단하여, 이번 중간고사 10등 이내의 학생들을 우수 장학생으로 선별하게 됐습니다.”

중간고사 1등부터 10등까지 우수 장학생으로 선발한 천수만.

메리가 9등, 준우가 3등, 난 1등. 이로써 우리 조는 전부 우수 장학생이 됐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이제 우리 조는 공식적으로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단 말이다.

“우리는 자유에요!”

“자유는 무슨!!”

퍽!

메리의 손바닥이 내 뒤통수를 가격했다.

“의뢰받는 거라면서요! 이제 맨날 굴러야 하는데 그게 무슨 자유예요?”

“에이~ 의뢰야 구실이지.”

“장난해요! 그게 자랑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편안한 학교에서 수업받고 있는데, 나, 너, 너는 비 쫄딱 맞으면서 산 오르고 있어요. 이게 좋냐고요!!”

광분하는 메리.

하지만 어쩌나, 여기에 그녀의 분노에 공감하는 이는 없는걸.

“어, 좋아. 개꿀.”

“개…… 꿀?”

“사냥은 언제나 옳지.”

“옳…… 아?”

수업도 좋지만 아직은 전투가 더 좋은 나와, 나만큼이나 전투를 좋아하는 준우.

전투에 진심인 우리에게 메리의 호소가 들릴 리가 없다.

“허, 하…… 열 받아서 못 걷겠어요.”

“업어 줄까?”

“부탁해요.”

메리를 번쩍 업어 들었다.

“승차감은 괜찮으신지?”

“닥치고 걸어요.”

“넵.”

그렇게 빗속을 뚫고 산을 오르길 잠시.

저 멀리 보이는 파란색 게이트.

“다 왔다.”

“그러게. 보이네.”

“저기서 오크 사냥하면 ‘염동석’을 구할 수 있는 거예요?”

“응.”

오늘 우리가 들어갈 게이트는 ‘갈퀴 손 오크 부족.’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을 제물로 바쳐, ‘염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오크 부족.

우리의 첫 의뢰는 이 오크 족에게서 ‘염동석’을 구해 오는 거였다.

“가자.”

“그래.”

“쓰읍, 어딜 슬쩍 내려요. 꿈도 꾸지 마요.”

“팔 바꾸려고 하는 거다 뭐.”

*   *   *

뚜벅뚜벅.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걸음을 옮긴다.

“푸하하하하! 풀 하우스! 터졌드아아!!”

“마, 말도 안 돼! 이건 사기야! 내 돈, 내 도온!!”

“아무것도 건들지 마, 개새끼들아! 여기 담당자 나와! 내가 말이야. 경찰서장…….”

오늘도 사람으로 가득 찬 불법 카지노가 보였다.

평일 대낮임에도 술에 취해 카드를 내밀고 있는 인간 이하의 버러지들.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쉰다는 것조차 불쾌하다.

선글라스 안 사내의 표정이 일순간 찡그러졌다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오셨습니까, 부장님.”

“사장님은?”

“안에 계십니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가드들의 인사를 받으며 사내가 문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서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는 남자.

이곳의 총책임자이자 사내가 모시는 김 사장이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왔어? 일은?”

“처리했습니다.”

“고생했다. 한 대 피워.”

“감사합니다.”

치익-

김 사장은 직접 사내에게 담배를 물려 주고는 불까지 피워 줬다. 그만의 칭찬 방식이었다.

“그래, 뭐라 하든? 왜 갑자기 ‘물량’이 빵꾸가 난 거래?”

“신입 한 명이 멋도 모르고 검사장 손자를 ‘회수’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물량이 늘어나 사전 조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말했습니다.”

“어이쿠, 대책 없는 자식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탈 날 걸 집어 삼켜.”

“검사장이 칼춤을 추면서 경찰 병력 총출동하고 난리였습니다. 우리 쪽 끈을 통해 아이와 작업장 하나를 넘기는 선에서 마무리했습니다.”

“미치겠네. 병신 새끼들, 대체 일 처리를 어떤 식으로 하는 거야?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후우, 네가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김 사장은 다 타들어 간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다시 담배를 물며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아보고 있는 건.”

“박기혁에 관해선 당분간 접근이 불가능할 듯 보입니다. 시선이 너무 모였습니다.”

“애새끼가 관상부터 범상치 않더니, 너무 유명해졌어. 아포칼립스라 했던가…… 호랑이 새끼가 무슨 마법이라며 비웃었는데, 엄청나더만.”

“안 그래도 단원들이 연구 중입니다.”

“아쉽네, 나도 시간만 있으면 같이 들여다보는 건데… 지원이나 늘려 줘. 혹시 아냐, 우리 연구에 도움이 될지.”

“네, 알겠습니다.”

“참, 깜빡할 뻔했다. ‘염동석’ 건은 잘 진행되고 있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있는 자금 몽땅 동원해서 최대한 끌어모아. 너도 돈 있으면 좀 쟁여 놓고. 고생하는데 뽀찌는 챙겨야지.”

“감사합니다.”

“그래, 밥이나 먹으러 가자.”

*   *   *

염동석(念動石).

‘물리’ 속성이 각인된 마석.

결론적으로, 여기 지구에서 염동석은 비인기 재료였다.

동일한 용량의 순수한 마석보다 절반의 절반도 못 미치는 가격에 거래될 정도.

이유인즉, 속성이 각인된 순간 용도가 한정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필수 연료는 마석이다. 마석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자동차가 굴러간다. 마석으로 세계가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속성이 덧입혀진 마석은 이 연료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활용 범위가 뚝 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염동석의 물리력 속성은 여타의 속성…… 예를 들면 불, 물, 땅 같은 자연계 속성에 비하면 활용도가 월등히 떨어진다.

이런 현실에 염동석의 가격은 그야말로 똥값.

자연스럽게 염동석을 구할 수 있는 게이트는, 비주류 사냥터가 된 것이 현실이었다.

자, 여기까지가 지구에서의 염동석 평가다.

갑자기 염동석 이야기가 왜 나왔냐면.

여기 내 앞에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는 모지리들 때문이다.

“살려 주세요.”

“제발 한 번만.”

“저희는 아무것도 몰라요.”

자신을 백호파라 말한 놈들.

잠깐, 생각해 보니까 열 받네.

“야, 너희들 이름 바꿔.”

“네에?”

“바꾸라면 바꿔. 백호, 산군, 호랑이 들어가는 거는 다 빼. 쓰다 걸리면 디진다.”

“즈, 즉시 바꾸겠습니다.”

“해체하겠습니다.”

“착하게 살겠습니다.”

어쨌든, 이 모자란 녀석들이 우릴 방해한 건 10분 전.

막 짐 좀 정리하고 막 사냥에 나서려 할 때였다.

“퉤, 재수 없게 이상한 날파리들이 꼬이네. 얌마, 너희들 여기 왜 왔어?”

“왜 애들한테 그래. 잘 타일러서 보내자.”

“여긴 우리 ‘백호파’ 자리다. 좋은 말할 때 나가라.”

일단 상대의 역량도 모르고 대뜸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이 녀석들은 머리에 문제가 있거나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모지리’로 결정됐다.

안 그래도 하루 종일 메리에게 시달려서 스트레스가 쌓인 상황. 얘들은 쉬게 해 두고 친히 내가 모지리들을 좋게 설득했다.

설득(물리)로.

그렇게 한창 설득(물리)로 조곤조곤 패는 와중에, 얘들이 이상한 말을 꺼내는 거 아닌가.

“살려 주세요. 저희는 시킨 대로 한 것뿐이에요.”

“겁만 주고 내보내려 했어요. 진짜라니까요? 저희도 고용된 거예요.”

“저도 잘 몰라…… 아악! 아닙니다. 압니다! 염동석 모은다고 했습니다! 내일까지 ‘물량’ 맞추려면 힘들다고 한 명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제발 때리지 마세요!”

염동석을 모은단다.

그 쓸모없는 것을 ‘물량’까지 정해 놓고 독점하려고 한다.

“정말 왜 모으는지 몰라?”

“모릅니다!”

“대충 눈치라는 게 있잖아. 눈치로 먹고사는 녀석들이.”

“큰일 날 소리예요. 저희도 정해 놓은 구역 안으로는 못 들어갑니다.”

“돈 받을 때 외에는 의뢰자 얼굴도 못 봤어요.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일걸요.”

“자기들한테 신경 끄라면서, 알면 다친다고 했습니다.”

“……흠.”

사실 재료를 구하려고 게이트를 독점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다.

다만 내가 의문인 건.

‘직접 처리하지 않고 이런 멍청이들을 앞에 세운 것과.’

‘이렇게 복잡하게 독점할 정도로 염동석이 가치 있는가.’

……였다.

“……일단 너희들은 꺼져.”

“사, 살려 주시는 겁니까.”

“그래, 맘 바뀌기 전에 나가. 이름 꼭 바꾸고. 착하게는…… 알아서 해라. 근데 명심해. 그 실력으로 지랄하다간 언젠간 지옥 구경할 테니까.”

“네! 네엣! 감사합니다!!”

부리나케 사라지는 일당들.

도망가는 꼴마저 한심스럽다.

어휴, 쟤들은 저 실력으로 무슨 나쁜 짓을 한다는 건지…… 한심함을 넘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의외예요. 정말 살려 주다니요.”

“동감.”

“뭐가 의외야?”

“저는 기혁이 다 담글 줄 알았어요.”

“다, 담궈? 뭘 담궈. 그건 또 어디서 배운 말인데.”

“영화요. ‘넌 나한테 모욕감을 줬어.’ 하며 푸쉭 푸쉭! 멋진 장면이었어요. 근데 왜 살려 줬어요? 기혁은 저런 거에 인정사정없잖아요.”

“궁금하다.”

“뭐…… 너무 허접하잖아.”

“하긴.”

“……불쌍했다.”

사실 원혼이 깨끗해서다.

설사 그 사람이 악인이라도, 그 목적이 정의를 위해서라도, 이유야 일단 인간이 인간을 죽이면 영혼에 상처가 난다.

그런 의미에서 저 모지리들은 너무 깨끗하다. 허접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런데 저 허접들, 염동석을 모은다고 하지 않았나요. 대체 왜 모을까요. 제 말은 굳이 이렇게까지 자리싸움하면서 독점할 필요가 있냐는 말이에요.”

“나도 궁금하다. 기혁은 아는가.”

“음…….”

짚이는 게 없지는 않은데…….

제국에서는 염동석을 마그네틱이라 부른다.

물리라는 애매한 속성답게 일반 마법사에게조차 외면당하는 게 염동석이다.

하지만 이런 쓸모없는 물건임에도 딱 한 분야.

딱 한 분야만큼은 대체 불가능이라 불릴 만큼 유용하게 쓰이는 분야가 존재했다.

허무 세계에서 영혼을 담보로 존재를 구현하는 마법.

‘……흑마법.’

아무래도 어처구니없는 것과 엮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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