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31화 (31/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31화>

제국 시절, 겨우 성인이 되었을 때쯤이다.

난 처음으로 흑마법에 손을 댔고, 이건 그때 영감이 내게 해 줬던 말이었다.

“흑마법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심층 세계, ‘허무 세계’의 힘을 끌어오는 마법이다.”

“흔히 흑마법은 악하다고 말한다. 불쾌하고 음습하다고들 하지. 다 허무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음차원의 마나 때문이다. 사기(死氣)를 띤 마나이니 생기(生氣)를 지닌 존재들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거지.”

“그럼 정녕 흑마법은 악한가? 우리는 이에 대해 고찰해 봐야 한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의외로 흑마법에서 파생된 마법들이 많고, 이미 많은 곳에서 활용된다는 것을.

‘헤이스트’가 대표적인 예시다.

단순히 속도와 움직임을 빠르게 하는 버프로 여겨지지만, 사실 이 마법은 신체가 지닌 민첩성의 한계점을 끌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담보는?

이 헤이스트가 흑마법이라면 흑마법의 필수 요소인 담보, 혹은 제물은 무엇인가?

바로 몸뚱이.

신체 그 자체다.

한계점을 끌어내는 대신, 신체의 생기를 잡아먹힌다.

헤이스트가 끝난 이후 급격히 피로해지는 것도 이 생기가 잡아먹혀서 그런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쓰는 지원계 마법. 그러니까 신체에 작용하는 버프는 절반 이상이 흑마법에서 파생된 마법이었다.

“……자, 그러면 다시 되돌아오자. 이미 흔하게 사용되며, 심지어 유용하기까지 한 흑마법이 왜 천대받고 악하다 평가받는가.”

“간단하다. 이미지야. 나쁜 놈들은 흑마법을 쓴다는 이미지.”

흑마법이 나쁜 건 아니다. 고로 모든 흑마법사들이 악인은 아니다.

그러나.

악인이라면 흑마법에 손을 댄다!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왜?

악인들이 사용하기에 최적의 마법이니까.

“가진 바 실력이 모자라도 상관없다. 평소 공부가 모자라도 상관없어.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더 많은 제물만 있으면 되거든. 실력이 좋다면? 훨씬 더 강해지지.”

“흑마법에서 제물은 모든 요소를 상회할, 절대적 플러스다.”

이처럼 상응하는 제물만 보장된다면 기본적인 재능으로도 상상 이상의 성능을 보장하는 게 흑마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하나.

흑마법의 가장 큰 장점.

한계가 없다는 것.

“이렇듯 제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능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결국에는 모든 마법사들이 그토록 원하는 ‘진리’에도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이론이지만, 의외로 이 이론에 목매는 놈들 많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고통 따윈 신경 쓰지 않는 진정한 악인이라면.

흑마법만큼 군침 도는 마법이 또 있을까.

굳이 타고난 재능도 없이. 나를 깎는 노력도 필요 없이.

설령 그것이 이론이라도 제물만으로 손쉽게 경지에 오를 수 있는 흑마법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게 흑마법이 절대 악이라 평가받는 이유였다.

*   *   *

나무 위, 저 멀리서 인기척이 들렸다.

“온…….”

“쉿…….”

“…….”

우리는 마법으로 몸을 숨긴 채 다가오는 인영들에게 귀 기울였다.

“찾았다. 통신기. 하, 양아치 새끼들. 진짜 도망친 거야? 돌아 버리겠네. 이 새끼들, 선금 얼마나 걸었어?”

“다 줬을걸요?”

“뭐? 다 줘? 왜 다 줘?!”

“기억 안 나요, 선배? 바쁘다고 빨리 줘 버리라고 말한 건 선배님이라고요.”

“내가? 허…….”

복면을 쓴 두 인영.

세 살 먹은 꼬맹이가 봐도 ‘저 아저씨들 수상해요.’라고 말할 정도로 음침한 기운을 팍팍 풍기는 사람들이었다.

“키킥. 와, 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 새끼들 완전 미친놈들이구만. 설마 이대로 넘어갈 수 있을 줄 아나? 어이가 없네. 담배 하나만 줘 봐.”

“봐요 선배. 내가 아까 말했잖아요. 이런 양아치 새끼들은 다리 하나 부러뜨려야 말귀를 알아먹는다고요.”

“후우~ 누가 모르냐. 나도 마음 같아선 갈비뼈 하나씩 뽑고 대화하고 싶지. 그런데 위에서 뭐라 하잖냐. 너도 알지? 얼뜨기 사고 친 거.”

“얼뜨기요?”

“몰랐구나. 어떤 얼뜨기 새끼가 검사장 애새끼 건드렸다더라. 덕분에 단속이 심해졌잖아.”

“아…… 그래서 대장이 아까 그렇게 말한 거였구나. 그럼 선배, 양아치 새끼들 고용한 것도?”

“맞아. 혹시나 걸리면 덤탱이 씌우려고.”

“푸하하! 말이 되는 소릴 해요! 우리가 여기서 담근 놈들만 수십 명인데, 겨우 그딴 놈들한테 덤탱이를 씌워요? 잘도 믿겠어요.”

“흐, 후배님아. 이 바닥에 언제부터 진실이 중요했냐…… 어? 무전 왔다. 조용해 봐. 나 보고하게. 너도 할 거 없으면 근처 수색이나 하고 와. 혹시 아냐. 얘들 당해서 묻혀 있을 수도.”

“오히려 그랬으면 좋겠네요. 피맛 좀 보게. 흐흐.”

복면을 쓴 인영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둘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제야 숨을 몰아쉬는 메리.

“후우…….”

“설마 지금까지 숨 참은 거야?”

“마법진 그려져 있다는 건 나도 알아요. 그래도 긴장되는 걸 어떡해요.”

“푸훕.”

귀여워라.

우리는 불편한 나무에서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급하게 몸을 숨겼던 터라, 대충 사정만 들은 두 아이가 날 뚫어져라 노려봤다.

“이제 말해 봐요. 저 사람들은 뭐예요. 흑마법은 또 뭐고요.”

“염동석이랑 흑마법이 무슨 상관인가.”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흑마법과 염동석.

전혀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단어지만, 사실 이 둘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흑마법은 근본.

허무 세계에서 힘을 가져온다.

사실 단어가 생소하지 그냥 ‘죽은 자의 세계’. 생을 다한 영혼이 흘러들어 가는 세계라고 보면 된다. 흑마법이 지옥에서 힘을 빌린다는 속설이 여기서 생겨난 거다.

“……그래서 이 허무 세계의 힘은 허상이야. 영혼이나 다를 바 없지. 그 힘만으로는 이쪽 세상에 간섭할 수 없어. 제물이 필요한 이유도 이래서고.”

“제물이 있으면 이쪽 세계에 간섭할 수 있나?”

“정답.”

“뭔가 악마 소환 같네요. 께름칙해요.”

“오! 방금 메리 날카로웠어. 맞아. 악마 소환도 흑마법 계통이니까,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보면 다를 바 없지.”

“허업!”

“그럼 염동석은. 이게 염동석이랑 무슨 관계인가.”

“상관있지. 허무 세계의 힘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그릇이 바로 이 염동석이거든.”

“……!!”

“……!!”

쉽게 귀신으로 빗대 볼까.

죽어서 육체를 잃어버린 귀신.

이들은 살아생전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다, 끝내 희미해져 허무 세계로 사라진다.

이들이 왜 이쪽 세계에 간섭할 수 없을까.

간단하게 말해, 물리력이 없어서다.

원한이 있으면 뭐 하나,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못하는데.

그래서 귀신들은 염동석에 환장한다.

본능적으로 알거든.

염동석만 있으면 자신들도 물리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이쪽 세계에 간섭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에에? 진짜예요? 모른다고 막 말하는 거 아니죠?”

“진짜야. 디테일까지는 안 들어갔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래.”

“차라리 같은 인간에게 빙의되는 게 더 좋지 않나.”

“마…… 맞아요. 그런 영화 많잖아요. 귀신이 인간에 깃드는, 뭐 그런 거요.”

“그 말 왜 안 나오나 했다. 영화가 이래서 무서워. 얘들아, 내가 친구로서 당부하는데 절대 어디 가서 그런 말하면 안 된다. 창피당해.”

한낱 장기도 잘못 이식하면 거부 반응으로 죽는 게 인간이다. 죽은 ‘인간’의 영혼이 생면부지, 모르는 ‘인간’의 육체에 깃든다?

영혼과 육체 둘 다 시들어 버린다.

그럼 난?

나도 다른 사람 몸에 깃든 것 아닌가.

예외가 떡하니 여기 있다고?

맞다. 내가 이 법칙에서 벗어난 존재다.

근데 나 처음 환생했을 때 천신 찾던 거 기억나나. 신이 안배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서다.

난 적어도 나 같은 기적이 이 땅에 또 존재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정리해 볼게요. 기혁은 여기서 염동석을 독점하는 복면인들이 흑마법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최소 연관은 있겠지.”

“그냥 재료만 조달할 수도…….”

“아니, 아까 하는 말 못 들었나. 꽤 많은 사람들을 담궜다고 했다. 여기서 오래도록 작업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메리가 침을 꼴깍 삼키고는.

“우리 X된 거네요?”

“푸훕!”

놀란 눈으로 메리를 본다.

“……너 어디서 그런 말을 배운 거야?”

“영화요. 왜요? 틀렸어요?”

“표현이 거칠지만, 동의.”

둘의 눈이 날 본다.

마치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 눈빛에 쓰게 웃었다.

“어쩔래?”

방법은 두 가지다.

이대로 모른 척 나가는 것과, 이 일을 더 파헤치는 것.

전자는 안전이 보장된다면, 후자는 충돌이 필연적이다.

한쪽은 리스크가 없고, 한쪽은 리스크뿐이다.

당연히 리스크가 없는 쪽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둘의 눈빛은 달랐다.

이미 기대로 가득 찼다.

아마 나도 같은 눈빛이겠지.

“두근두근해요.”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악인은 지옥으로.”

무기를 챙기며 몸을 일으키는 두 어린 친구.

“내가 이래서 너네들을 좋아한다니까.”

긴 말 필요 없이 답은 정해진 것 같다. 나도 입맛을 다시며 몸을 일으켰다.

*   *   *

정찰 나갔던 두 복면인이 본대로 복귀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뭐가요.”

“나도 몰라. 그냥, 감이 좋지 않아.”

“하여튼 선배도, 세상 예민하다니까요.”

“너도 내 나이 돼 바…….”

말을 끝맺으려는 순간, 아까부터 불안했던 감각이 끝내 경종을 올렸다!

“……붙어!”

남자가 급히 실드를 전개했고.

콰직!

실드를 때린 건.

……도끼?

“빨리 무전……! 야! 정신 차려!”

“네, 네엣!!”

후배가 급히 본대를 향해 무전을 날렸다.

그러나 무전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 치지지지직

“통신 막혔어요!”

“시X 걸렸어. 노린 거야! 시X! 시X알!!”

남자가 “시X!”이라는 욕을 반복적으로 뱉으며 달려 나갔다. 실드를 전개한 채 이곳을 뚫겠다는 의지.

남자의 후배도 이에 맞춰 보조에 나섰다.

“제가 길 뚫겠습니다!”

“비켜 시X!! 쓸데없는 짓거리 말고 버프 스톤부터 써!”

“네, 넵! 헤이스트! 스트렝스!”

갖가지 버프들이 둘러지며 두 남자의 신체에 빛이 일렁이길 잠시.

무서운 속도로 숲을 질주해 나갔다.

스쳐 가는 나무를 보며 빠르게 판단하는 남자.

‘다행히 이곳은 3레벨 게이트야. 부지가 넓지 않아. 이대로 달려가면 금방이다. 금방 본대랑 합ㄹ…….’

과연 관록이 느껴지는 날카로운 판단력이지만, 안타깝게도 거기까지였다.

콰직!!

실드가 무언가에 막혀 버렸다.

뚫으려 해 보지만 실드에 불꽃이 튈 뿐이다.

“뭐야!”

“선배, 저거!”

“……!!”

실드 표면. 불꽃이 튀는 곳에 어렴풋이 보이는 건.

……와이어다!

와이어를 확인한 순간, 남자의 뒷목이 서늘해졌다.

당했구나! 완전히 당했어! 여긴 함정이구나!

그리고 남자의 판단은 정확했다.

순식간에 남자의 실드가 해체됐다. 강제로 이뤄진 디스펠.

이다음은 뻔하다.

곧바로 남자가 “숙여!!”라고 소리치며 몸을 숙였지만.

“커억!!”

이미 늦었다.

한발 늦은 후배가 목이 뚫려 흙바닥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후배의 목을 관통한 무기는 창.

아니, 뼈. 뼈로 만든 창이었다.

꺼억꺼억.

목을 부여잡은 채 후배가 피거품을 문다.

후배가 살려 달라는 눈빛으로 손을 뻗어 애원해 보지만, 지금 남자의 머리에 후배의 안위 따위는 없었다.

“……!!”

투창.

방향은 좌측 40도. 무투계 능력자도 반응하지 못할 만큼의 속도…….

마법사인 내가 피할 가능성은.

0.

없다.

죽는다!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남자의 선택은.

구르기.

흙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온몸이 흙바닥에 더럽혀졌지만, 간간이 있는 돌부리에 상처가 났지만, 최선을 다해 굴러 가까스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허억, 허억.”

겨우 숨을 고르는데 나무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야, 그래도 넌 제법 관록 있다? 역시 경험은 배신하지 않는다니까.”

남성스러움이 흠뻑 느껴지는 굵은 저음의 목소리…….

“응? 얘는 아직도 살아 있었네. 하여튼 나쁜 놈들은 목숨도 질겨요. 쯧, 얼마나 죽이고 다녔으면 원혼이 걸레짝이 돼 있냐? 넌 곱게 죽기는 글렀다.”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치밀함. 함정에 걸린 사냥감에게 일말의 자비도 주지 않는 난폭함.

“어이, 거기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놈. 너. 그래, 너 말이야. 피차 피곤하게 하지 말고 나올래? 듣고 싶은 것도 있고. 넌 얘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야.”

결론이 내려졌다.

도망치지 못한다.

남자는 이를 까득 깨물며 술식을 구축했다.

‘시야라도 해결된다면…….’

검은 마나가 왼쪽 동공을 스멀스멀 채워 나갔다.

제3의 눈이라는 관측용 마법.

매직 아이(Magic Eye).

보이지 않는 곳에서 투창으로 무투계 초인을 무력화시킬 정도라면 상대도 틀림없이 무투계다. 시야의 우위를 선점한 채 몸을 숨기고 요격한다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남자는 그렇게 판단하며 매직 아이를 생성하는데.

“……!!”

매직 아이가 눈을 뜬 시야에 가득 찬 건…….

어둠?

태양이 떠 있는데 어둠이라고?

그 순간.

어둠에서 수백 개의 눈동자가 일시에 눈을 뜨고.

“끄아아악!!”

남자의 왼쪽 눈알이 터져 버렸다.

“쯧, 그러게 누가 함부로 흑마법 쓰래. 쓸 거면 제대로 쓰든가. 더 놀고 싶은데, 조금 있으면 내 꼬마 친구들 오거든. 그러니까.”

퍼억!

나무가 사방으로 산산조각 나며, 주저앉은 남자의 시야에 드디어 상대가 확인됐다.

시야를 가릴 만큼 거구의 남자.

바로 박기혁이었다.

“우리, 조용히 이야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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