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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213화 (213/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13)

‘미치겠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귀로 들리는 듯했다.

몸을 숨긴 것으로는 모자라기에 그림자 숨기기를 시전해야 하는데,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아 발동 자체가 되지 않았다.

자박자박….

누님과 소녀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졌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통로의 특성상 울림 때문에 더욱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스으흡!”

빠르게 숨을 들이켜고는 딱 멈췄다.

거의 될 대로 되란 식의 마지막 시도였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냥 숨을 죽이고… 진짜로 호흡을 멈춘 채 버티며, 운명을 하늘에 맡겨야 할 판이었다.

스르르….

그림자 숨기기가 발동됐다.

8할은 포기 상태였는데, 성공하다니….

진심으로 놀라 버렸다.

그에, 하마터면 어렵게 발동된 그림자 숨기기가 맥없이 해제될 뻔했다.

자박자박….

누님과 소녀들의 발걸음 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5미터… 4미터… 3미터… 2미터….

통로의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걸린 횃불들로 인해 길게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어, 그녀들의 실물도 시야에 들어왔다.

심신의 릴렉스가 기본이 되어야 하는 그림자 숨기기였다.

해서, 이미 긴장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그 쫄깃하고 찌릿찌릿한 ‘쫄림’의 느낌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자박자박….

누님과 소녀들이 풍성한 머리카락으로 덮인 정수리를 드러내며 바로 내 아래쪽을 지나갔다.

그 순간!

‘헛!’

기적처럼 마지막에 성공한 그림자 숨기기에 놀라서 스킬이 해제될 뻔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험천만한 상황을 맞이했다.

슬립인지, 잠옷인지, 아니면 그냥 원피스인지 모를….

가녀린 바람 한 가닥에도 하늘하늘하고, 나풀대는 천 쪼가리 한 장을 걸친 누님의 슈퍼 울트라 하드코어 다이너마이트 급의 하얗고, 풍만한 동산이 내 시야에 그대로 잡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적나라하게… 누님이 목에 건 목걸이의 작고 앙증맞은 펜던트가 부끄럽게… 아니, 부럽게 몸을 숨긴 풍만한 동산 사이의 골짜기마저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말이다.

예상에도 없던 뜻밖의 수확(?)에 평정심이 깨질 뻔했다.

코끝으로 몰리려는 찡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다른 곳도 신호가 오려 했다.

이럴 때, 경건한 마음으로 애국가를 부르면 좋다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흐트러지고, 무너지며, 곧 깨져 버릴 것 같은 평정심을 억지로 붙잡고 버텼다.

그런 내 애처로운 상황도 모른 채, 남자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는 특수한 능력 ‘매의 눈’이 멋대로 발동하여 누님의 하얗고 풍만한 그곳을 계속해서 따라갔다.

미약한 한 줌의 바람에도 나비처럼 이리저리 나풀대는 누님의 천 쪼가리처럼… 지면을 스치는 듯한 가볍기 그지없는 사뿐한 발걸음에도 누님의 그곳은 멋진 출렁임을 연출해댔다.

‘크읏….’

진심, 0.1초만 더 누님의 하얗고, 풍만한 동산이 내 매의 눈에 걸려 있었더라면, 더없이 지랄 같은 상황이 전개됐을 것이 분명했다.

자박자박….

누님과 소녀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고, 서서히 발걸음 소리도 멀어져 갔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겨우 버텨 낸 내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이미 한계를 뛰어넘은 그림자 숨기기를 풀며, 참았던 호흡을 꽉 다문 앞니 사이로 낮고, 작게 그리고 길게 흘려 냈다.

“스으으으으….”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누님의 그곳이 잔상처럼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킁!’

….

아직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누님과 소녀들이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온 것은 침입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아직 침입 전이라 딱히 발견될 게 없으니, 곧 다시 돌아 나올 게 분명했다.

스윽… 스윽….

꾸욱… 꾸욱….

내 몸을 꼬옥 조이는 비좁은 틈새에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몸을 비틀었다.

아래쪽을 향하고 있던 시선과 몸의 방향을 반대로 틀기 위함이었다.

‘아깝기는 하지만… 또 눈에 들어온다면 그땐… 크으!’

예정된 치명적 유혹의 고난을 또 겪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 번 보거나 경험하면 무뎌진다고 하지만, 그럴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너무나 잘 알기에 한 번 더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결과는 정말이지 장담할 수 없었다.

“후우우….”

최대한 넓게 펼쳐 놓은 동물적 감각에 아무런 기척도 걸리지 않음을 확인하고는 마음껏 한숨을 내쉬었다.

비좁은 틈새에 끼어 코앞에 드리워진 벽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쩝,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나름 잠잠해진 분위기를 틈타 그냥 돌아갈까도 싶었다.

‘아니야, 그래도 이왕 들어왔으니까….’

억지로 명분을 만들며, 점점 떨어져 가는 흥미와 더없이 시큰둥해지려는 마음을 붙잡았다.

‘그나저나, 왜 안 돌아오지?’

시간이 꽤 지났다.

틈새에 낀 몸이 피가 통하지 않아서인지 살짝 저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안으로 들어갔던 누님과 소녀들은 다시 돌아 나올 기미조차 없었다.

‘넓어서 그런 거겠지?’

분명히 그럴 것이라 여기며 한참을 또 버텼다.

그렇게 30분쯤 지났다.

살짝이 저리던 몸이 이제는 근질근질하기까지 하며,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이상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흐음….’

아무래도 이상했다.

이대로 좀 더 버티느냐 아니면 슬슬 움직이느냐를 두고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 미치겠네….’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는 팽팽한 고민으로 다시 5분이 흘렀다.

전혀 기울지 않는 추를 억지로 기울이듯 비좁은 틈에서 몸을 비틀어 빠져나왔다.

툭….

사뿐하게 바닥으로 착지한 뒤에 한 번 더 동물적 감각을 끌어올리며 최대한 넓게 퍼트렸다.

아무런 기척도 걸리는 게 없었다.

‘일단은 안전해.’

아무리 애를 써도 왕울이만큼 정확하지 않은 탓에 미심쩍음이 살짝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 반응이 없다는 건 그래도 안심할 수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려 나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뜨고는 납작 엎드려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스으윽….

먼저, 누님과 소녀들이 사라진 통로 안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어, 반대쪽인 피라미드의 입구를 쳐다봤다.

휘익.

몸을 돌려세웠다.

피라미드의 입구 쪽으로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자박자박….

피라미드의 입구 근처에 다다를 즈음 다시 몸을 한껏 낮췄다.

우스꽝스러운 오리걸음으로 입구까지 남은 거리를 이동했다.

입구에 도착해서는 고개를 빼꼼하게 내밀어 밖의 상황을 살폈다.

“어라?”

의아함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까지 내 버렸다.

순간, 아차 싶어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뒤 엉덩방아를 찧듯 뒤로 몸을 숨겼다.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했다.

‘어찌 된 거지?’

피라미드 입구 밖 상황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했다.

숙소를 빠져나와 피라미드 근처까지 왔을 때 처음 봤던 것처럼 두 명의 소녀가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이 와중에 입 밖으로 소리를 낼 만큼 놀랍다거나 의아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 누님과 함께 들어왔던 두 명의 소녀 중 한 명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못 봤나?’

착각했음을 먼저 떠올렸다.

확인을 해 보면 될 일이었다.

다시금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소녀를 살폈다.

확실하게 하려고 가늘게 뜬 눈을 사용하기도 했다.

‘맞는데….’

그 소녀가 분명했다.

확신하는 이유도 있었다.

나름 문제의 그 소녀를 주시했던 일이 있었고, 그 때문에 기억에 또렷이 남은 까닭이었다.

그녀가 바로 내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다소 요란스럽고, 무모하게 펼쳤던 파탄 작전의 첫 번째 희생양이었거든.

그랬다.

건물과 건물 사이 틈새에 날린 1차 파탄의 폭음에 제일 먼저 달려와 내 앞을 스치고 갔던….

이어, 2차 파탄에 놀라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던….

더불어 하얗고 풍성한… 아니, 잠옷 차림의 누님에게 결코, 자리를 뜬 적이 없다며 맹랑한 거짓말을 했고, 곧장 지목당하여 잔뜩 긴장한 채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왔던 것도 그 소녀였다.

‘흠….’

말을 하다 보니, 오늘 사건에서 거의 주·조연급 활약을 한 수준이었다.

그런 소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어찌 보면 더 이상할 수도 있을 일이었다.

아무튼.

그런 그 소녀가 버젓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보초를 서고 있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스윽….

고개를 돌려 뒤쪽을 쳐다봤다.

이쪽으로 들어와 눈앞의 긴 통로를 지난 뒤, 다른 쪽 입구를 통해 빠져나간 것이 분명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그 비좁은 틈새에서 몸이 저릴 때까지 버틴 나의 한심함에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 했다… 크으!

왠지 싸우지도 않고 진 것만 같은 허망함을 느꼈다.

“젠장….”

* * *

“배고….”

“쉬잇! 오식 씨, 조용히 해요.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라고요.”

린이 눈치 없는 오식이를 나무라고, 달래듯이 속삭였다.

조그마한 소리도 울림 때문에 크게 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 그렇기도 했지만, 신경이 상당히 예민해진 탓에 그마저도 거슬리기가 한이 없었다.

3시간도 넘게 피라미드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가 더없는 답답함과 함께 절로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더불어 쉬지도 않고 3시간을 돌아다녔건만, 그 어떤 것도 건진 게 없다는 것이 더욱더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랬다.

피라미드 안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통로 다음 통로, 이어서 또 통로 다음 통로의 연속이었고, 이따금 위나 아래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있을 뿐이었다.

솔직히, 중간중간 몇 개의 방… 석실이라 불러야 할 곳들을 발견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냥 텅 빈 창고나 다름이 없었다.

개중에는 커다란 돌을 깎고, 다듬어 만든 침대와 테이블, 의자 등이 배치된 방도 있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사용한 흔적이 없고,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했다.

또한, 흙으로 빚어 만든 항아리나 그릇 같은 것들도 보기는 했는데, 어차피 그딴 것들은 하등 쓸데가 없기에 있으나 마나 한 것들이었다.

뭐, 혹시 몰라서 그 안을 뒤져 보기는 했지만, 역시나 먼지만 쌓여 있었다.

“젠장! 이딴 곳을 왜 밤낮으로 지키고 자빠져 있는 거야? 사람 헷갈리게스리….”

분명히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기대는 이제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제대로 낚여 헛된 꿈을 꾸고, 괜한 헛짓거리를 했다는 생각에 짜증과 분노가 치밀었다.

누가 등 떠밀며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어떤 정확한 정보가 있어서 확신에 차 움직인 것도 아닌, 그저 나 혼자 착각해서 멋대로 한 짓이었지만, 그게 더 분하고 열이 받았다.

‘아오! 그냥 확 다 때려 부술까?’

당장에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

축제 대신에 제대로 된 깽판 이벤트를 선사해 주는 것도 나름 괜찮을 듯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그래, 아직이야.’

아직 살피지 못한 곳이 좀 더 있었다.

피라미드의 최상층부.

얼추 계산했을 때, 이제 곧 도달할 것 같은 그곳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뭐라도 꼭 있어야 했다.

만약, 그곳에도 먼지와 거미줄뿐이라면….

‘그때 지랄을 해도 늦지 않아!’

….

위로 올라갈수록 넓이가 줄어드는 피라미드의 구조상, 미로 같은 통로로 인한 헤맴과 수색 및 탐색의 시간은 단축됐다.

이제는 하나하나 살피고 뒤지는 행동도 거의 하지 않기에 최상층의 도착은 더 빨라졌다.

마지막 계단을 올라 도착한 짧은 통로.

그 끝에서, 정말이지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확 느껴지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두근두근….

기대감으로 요동치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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