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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214화 (214/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14)

거대한 석실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음….”

석실은 오래된 먼지로 가득했던 다른 곳들과 달리 너무나 깨끗했다.

또한, 그림자도 지지 않을 만큼 밝았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없이 봤던 횃불 따위는 없었다.

“엄청 멋지네요.”

린이 넋이 살짝 나간 것처럼 말했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는 눈빛과 표정도 그랬다.

거대한 석실 벽면에 음각과 양각으로 새겨진 호화로운 무늬들과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는 벽화들이 멋스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딱 하나….

석실의 중앙쯤에 ‘이곳이 중심이다’라는 느낌으로 시커먼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일단, 그것 앞으로 다가갔다.

“이게 뭘까?”

낮게 혼잣말을 흘리며 그것을 찬찬히 살폈다.

사각기둥… 정확히는 직사각기둥이었다.

2미터가량의 높이에 가로와 세로는 1미터가 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테이블이라 하기에는 높이가 너무 높았고, 상당한 크기의 어떤 것을 올려놓을 받침대라 하면 될 듯했다.

물론, 무언가가 올려져 있지 않았고, 주변에도 그럴만한 게 전혀 없었다.

색깔은 검은색이다.

잡티 하나 보이지 않고, 은은한 광이 났으며, 무척이나 매끄러웠다.

양옆과 뒤… 그러니까 석실의 입구와 마주한 면을 제외하고는 흠집 하나 없이 평평했다.

다만, 석실의 입구와 마주한 정면에는 마치, 두 개의 원을 가로로 붙여 놓은 것 같은 모양의 홈이 패여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손으로 만져 보고 이리저리 살펴봤지만, 아무리 봐도 뭐를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톡톡!

노크를 하듯 두들겨도 봤다.

그 정도로도 엄청나게 단단함을 알 수 있었다.

“흐음… 바닥에 박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석실을 이룬 것과는 전혀 다른 재질이었다.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바닥 면과의 유격이지만, 확실히 박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식아, 밀어 봐!”

내 명령에 오식이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

힘 좀 써 보겠다는 듯이 양쪽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양손으로 사각기둥을 밀었다.

“크르르르….”

요지부동.

녀석의 표정을 보니까 제법 힘을 쓰는 것 같은데, 사각기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만만치 않음에 자존심이 살짝 상한 것인지, 녀석이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번엔 한쪽 어깨를 가져다 붙였다.

그러고는 더욱더 힘껏 밀어 댔다.

“끄으으으으으으!”

앙다문 이빨 사이로 흘려 내는 신음도 그렇고,

있는 대로 구겨진 인상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도 그렇고,

아등바등하는 몸짓과 울룩불룩 움직이는 근육들마저도 녀석이 지금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알려 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각기둥은 한 치의 미동도 허락지 않았다.

“혀, 형님….”

“어어, 그만해. 됐어, 고생했다.”

잘못한 게 전혀 없지만, 어째 죄스러워하는 녀석이 안쓰러워 등을 토닥여 줬다.

스으윽….

손끝으로 사각기둥을 매만지며 한 바퀴를 빙 돌았다.

뭔가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흐음….”

사각기둥 앞에서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움푹 들어간 둥근 모양의 홈을 물끄러미 보다가는 별생각 없이 발가락 끝을 그곳에 걸쳤다.

그러고는 도움닫기 하듯 차오르며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정확히는 사각기둥의 위로 올라서는 행위였다.

톡톡!

사각기둥의 위에 올라서서는 발끝으로 두드려 봤다.

역시나 단단함만 느껴질 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괜히 방향을 바꿔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에휴, 도저히 모르겠다.”

끝내는 포기에 이르렀다.

투덜거림을 뱉어 내고는 사각기둥에 엉덩이를 깔고 걸터앉았다.

부풀었던 기대감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허탈함이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긴 한숨을 뱉어 냈다.

의욕을 잃은 눈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굽은 등과 아래로 떨어진 고개 탓에 그냥 시선이 닿은 곳이 그곳이었다.

오식이가 보였다.

왕울이도 보였다.

린도 보였다.

그중, 나와 정면으로 마주한 자리에 서 있는 린의 정수리 부근에 최종 시선이 머물렀다.

우연이었지만 문득, 이와 비슷한 구도의 장면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걸 두고 ‘데자뷔’라 하든가?

‘언제… 어디서였지?’

물음에 이어 답을 떠올리려는 와중에 시선이 멋대로 움직였다.

미리 말하지만, 절대로 뭔가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진짜 일말의 거짓도 없이 저 혼자 멋대로 움직인 시선이 닿은 곳은 린의 가슴 부근이었다.

다시 또 오해를 할까 싶어 말하지만, 뭔가를 느낀다거나 절대로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냥 멍하니, 아무런 사심 하나 없이 시선만 두고 있을 뿐이었다.

‘….’

그러다가 살짝 정신이 돌아왔다.

바로 부끄럽다거나, 이상하다거나, 주책맞다, 변태스럽다 등의 생각이 들기보다는 직전에 찾으려던 질문의 답이 어렴풋하게 떠올랐다.

좀 더 정확히는 린의 모습 위로 무언가 아른거리듯 겹쳐짐이 있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가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됐다.

‘아… 누님….’

피라미드로 들어오기 위한 요란스러운 파탄 작전에 자다 말고 불려 나온 하늘하늘 원피스 차림의 누님.

비좁은 통로의 천장 틈새에 끼어 몸을 숨긴 내게 더없는 고난과 역경을 선사했던 누님의 하얗고, 풍만한 동산.

그랬다.

린의 정수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졌던… 절대적으로 내 의지가 아닌 무의식적 시선의 움직임이 가져다준 데자뷔와 이미지의 겹침 현상은 바로 그 누님으로 인한 것이었다.

잘 모를까 봐 얘기하는데, 린이 현재 입고 있는 옷은 무진장 정숙하다.

방어구의 역할을 하며, 평상복에 가까운 타입이라고 설명하는 게 더 옳겠지만, 앞선 얘기들이 좀 그렇기에 정숙하다는 표현을 썼다.

아무튼.

해서, 특별한 노출이 없었다.

쇄골 밑 3센티미터 아래로는 완전히 가려져 있다.

나를 아찔하고, 난감하게 만들었던 누님의 깊은 골짜기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단 소리다.

물론, 린도 그 누님에게 절대로 뒤지지 않는 또렷하고, 깊은 골짜기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깊은 골짜기를 만드는 하얗고, 풍만하기 그지없는 동산도 가지고 있다.

확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누님보다는 린이 조금 더… 흠흠!

어쨌든 간에 정답을 찾았다.

그런데 그게 뭐?

어쩌라고?

이 질문의 답은 나도 모르겠다.

그냥… ‘우리에겐 웬만한 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 그것이 있기에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정도로 마무리하면 되려나?

어쩌다가 생겨난 의문의 해답을 찾고 나니, 잠시 잊고 있던 허탈감이 다시금 나를 한숨짓게 했다.

“후우우우….”

그러다가 문득,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게 있었다.

굉장히 엉뚱하고, 기괴한 생각이었다.

더불어… 앞서도 몇 번이나 말했던 것처럼, 절대로 이상하거나, 음흉하고, 변태스러운 마음을 갖거나 그런 의도로 뭔가를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음을 미리 밝힌다.

‘에이, 설마….’

고개를 갸웃했다.

이쪽으로 한 번, 저쪽으로 한 번.

린에게 시선을 주기도 했다.

‘얼추 맞을 것도 같은데… 그래, 밑져야 본전인데, 직접 해 보지 뭐?’

불현듯 떠오른 엉뚱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결심은 섰는데, 막상 또 하려니까 긴장이 되고, 무안해지고, 좀, 막, 딱 그랬다.

그래도 해봐야 할 건 해야 했기에 목구멍으로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린을 불렀다.

“꿀꺽… 리, 린?”

“네, 주인님.”

린이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어쩌지 못한 채,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좀 와 볼래?”

“네? 이, 이렇게요?”

갑작스러운 내 부탁에 린이 의아해하면서도 조심스레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좀 더….”

“이렇게요?”

“더, 더, 더.”

사각기둥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인지 갈수록 보폭이 소심해지는 탓에 ‘더’를 몇 번이나 외쳐야 했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어쩔 수 없이 주문을 쉽게 풀었다.

“그냥 사각기둥에 붙어 봐.”

“이, 이렇게요?”

“아니, 좀 더… 그렇지… 아니, 아니….”

“…?”

“거기 파인 홈 보이지?”

“네.”

“거기에 그러니까… 음… 그러니까….”

“여기에 뭐요?”

“그 홈에 그러니까 너의 가, 가, 가… 가슴을 딱 맞춰 봐!”

결국엔 질러 버렸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녀석들의 시선이 내게 닿아 있음이 느껴졌다.

어째 눈을 뜨기가 겁이 났다.

나를 향한 녀석들의 눈빛이 두려웠다.

스슥… 슥….

발아래에서 살짝이 애를 쓰는 움직임이 전해졌다.

착하고, 순종적인 린이 나의 엉뚱하고, 변태스러운 명령을 아무런 토도 달지 않은 채, 따르고 있음이었다.

그에, 나도 용기를 얻고는 질끈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떴다.

스으윽….

양쪽을 다 뜨지 못하고, 한쪽 눈만 겨우 떴다.

다른 것도 좀 그렇지만, 오식이 녀석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만큼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해서, 곧장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때마침 내 말을 따른 린이 제대로 홈에 제 가슴을 끼우고(?)는 사각기둥을 크게 끌어안고 있었다.

꽈아악….

“….”

“….”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아니었나 싶었다.

하긴, 너무나 엉뚱한 상상이긴 했다.

민망함이 급하게 날아들었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쪽팔림을 숨기려 했다.

그 와중에 린이 나를 더욱더 부끄럽고, 부담스럽고, 민망하게 만들었다.

“주인님, 제가 잘못한 건가요?”

당장에 아니라고 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대답 없는 나를 향해 린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제대로 한 것 같… 헉!”

말을 하던 린이 갑자기 바람 빠지는 소리를 토해 냈다.

바로 린을 쳐다봤다.

여전히 사각기둥을 크게 끌어안은 채,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린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짝 벌린 입술과 흰자위를 잔뜩 드러낸 눈동자는 현재 린의 상태가 어떤지를 똑똑히 알려 주고 있었다.

“리, 린!”

다급하게 린의 이름을 부르며 사각기둥 위에서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왔다.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린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 린이 눈부신 광채를 폭발하듯 뿌려 댔다.

파아아아아아아앗!

“크읏!”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뽕’을 제대로 맞았다.

하얗고 까만 번쩍임으로 물들어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뻗은 손을 열심히 허우적거렸다.

어떻게든 린을 붙잡은 뒤, 사각기둥에서 떼어 내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허우적대는 내 손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만을 헤맬 뿐이었다.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이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어, 동물적 감각이 곧장 파괴될 것처럼 떨려왔다.

파르르르르르릇!

등골이 서늘해지다 못해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았다.

본능이 경고를 알리는 듯했다.

더없는 두려움과 극강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뭐, 뭐야? 뭐, 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소환된 왕울이가 곁에 있었다.

딱히 동물적 감각을 넓게 펼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거의 내 주변에만 집중되어있는 최소화 모드로만 사용 중이랄까?

그런 상태의 동물적 감각을 찢어발길 듯이 자극하는 엄청난 기운은 뭐가 됐든 간에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했다.

더욱이 눈뽕을 맞아 앞이 보이지도 않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도 오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말이다.

“오, 오식아! 괜찮아?”

다급하게 오식이를 찾았다.

“아, 안 보인다, 형님!”

젠장.

녀석도 눈뽕을 맞은 모양이었다.

“왕울이는? 너도 안 보여?”

“그렇다, 크르르….”

진짜 뭐 됐다는 생각이 딱 들었다.

그때였다.

얼음처럼 차가운 것이 내 목덜미를 휘감았다.

스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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