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88)
“왜? 무슨 일 있어?”
“나 배고프다.”
“….”
녀석에게 뭐를 기대했나 싶었다.
입맛을 살짝 다시고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밥부터 먹자.”
밥을 먼저 먹기로 했다.
그제야 수중에 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식당을 가든 술집을 가든 돈이 있어야 했다.
‘아, 돈을 어디 가서 마련한담?’
난감함에 눈만 깜빡거렸다.
….
예정에도 없던 아르바이트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던전 안… 그것도 그 안에서 생성된 마을이었다.
마을 밖에 서식 중인 괴물의 사냥이 가능했고, 사냥을 통해 얻은 전리품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리품의 꽃이자 주요 품목인 마정석의 거래는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비상금용으로 가지고 다니길 잘했군.’
어깨에 짊어진 배낭 속에는 늘 몇 개의 마정석이 들어 있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화폐로서의 가치가 충분했으며, 바로바로 교환 또는 환전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마정석을 던전 안에서 팔게 될 줄은 솔직히 예상치 못했지만….
“여기 있습니다.”
가지고 있던 마정석 두 개를 모두 팔아 돈을 마련했다.
20레벨짜리였는데, 금화 여섯 개와 은화 여섯 개를 받았다.
인심 좋게 생긴 가게 주인이 허허거리면서 은화 한 개를 더 준거라 했는데… 영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어쨌든, 수중에 돈이 들어왔다.
틈만 나면 제 배를 문지르며 신호와 압박을 보내는 오식이의 배를 제일 먼저 채워 주기로 했다.
“야야, 천천히 먹어!”
“그래요, 오식 씨… 사람들이 자꾸만 쳐다보잖아요.”
“알았… 우적우적! 우오오오! 다 먹어 치우겠다아아아!”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다가 겨우 식사를 끝내고 나왔다.
일단, 음식은 대체로 입에 맞았다.
긴가민가하거나 전혀 알 수 없는 식재료들이 몇 개 있기도 했다.
오식이는 뭐 말할 것도 없었고, 린도 만족한 듯했다.
배불리 먹고 포장까지 한 식사 비용으로 금화 한 개를 냈다.
아직 물가나 시세 파악이 덜 된 탓에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 아리송했다.
뭐, 바깥세상에서의 환율로 얼추 따진다면, 20만 원 정도의 금액으로 우리가 평소에 쓰는 한 끼 식사 비용과 비슷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식당을 벗어나 한적한 공터를 찾은 뒤, 왕울이를 소환했다.
“배고팠지? 얼른 먹어.”
포장한 음식들을 풀어 왕울이에게 줬다.
평소처럼 오식이가 눈독을 들이지 않는 게 특이 사항이었다.
하긴, 식당에서 녀석이 오지게 먹긴 했었다.
….
왕울이가 식사를 마친 뒤,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왕울이를 봉인하지 않고서 거리로 나와 봤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는 했지만,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 듯했다.
‘호, 바깥보다 편하긴 하네.’
안심과 흡족으로 편안하게 움직였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숙소였다.
중간중간 길을 물어 찾을 수 있었다.
다른 건물들처럼 벽돌로 지어진 제법 큰 규모의 3층짜리 건물 앞에 잠시 멈춰 섰다.
‘마찬가지군.’
건물 입구 상단에 걸린 간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판에는 대체 어느 나라의 글자인지 모를 이상하게 생긴 글자와 함께 침대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당연히 이상하게 생긴 글자는 이곳에서 사용하는 글자일 터였고, 침대 모양의 그림은 숙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전체를 다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우리가 들르고, 지나가며 봤던 다른 곳들도 똑같았다.
마정석 가게는 마정석이 그려져 있었고, 식당에는 숟가락과 포크, 접시가 그려져 있었다.
누가 봐도 과일 가게인 곳에는 과일이 그려진 간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말이다.
해서, 글자를 읽을 줄 몰라도 필요한 곳을 찾는 데는 그리 어려움을 겪지 않을 듯했으며, 앞서도 그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돈을 어찌 마련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눈에 들어온 마정석 그림을 보고서 가게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으니까.
이상한 글자 외에 일본어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간판 종류는 아니었고, 건물의 벽 같은 곳에 붙어 있는 전단 같은 것들이었다.
왠지 눈에 익은 글자가 보이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상한 글자와 마찬가지로 전혀 읽고 쓸 수가 없다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들어가 보자.”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녀석들이 기차처럼 줄줄이 뒤를 따라왔다.
“어서 오세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친절함으로 가득한 투의 인사가 날아들었다.
목소리만큼이나 친절하고, 푸근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묵을 방이 있나요?”
물음에 아주머니가 고개를 옆으로 빼고는 내 뒤로 서 있는 녀석들을 살폈다.
“음… 큰 방이 필요하세요? 아니면, 작은 방을 따로 드릴까요?”
오식이나 왕울이를 보고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언제부터 하고 있었는지 모를 긴장이 풀어지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가격이 어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하루만 묵으실 건가요?”
“음… 일단은 하루인데… 상황 봐서 며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아주머니가 다시금 친절한 표정으로 천천히 답했다.
“큰 방은 하룻밤에 5 실버에요. 작은 방은 3 실버고요 3일 이상 묵으시면 조금씩 가격을 빼 드리고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마정석의 시세와 음식값을 기준으로 책정했던 가격 등을 대입하니, 큰 방은 10만 원, 작은 방은 6만 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왔다.
바깥세상과 얼추 비슷하게 맞아떨어지는 시세가 살짝 소름을 돋게 했다.
“큰 방이랑 작은 방의 차이는 어떻죠?”
“큰 방은 거실에 침대 방이 따로 하나 있고, 푹신한 소파도 마련되어 있어요. 작은 방은 침대와 테이블이 있고요.”
대충 이미지가 그려졌다.
하지만, 확실하게 봐야 할 듯싶었다.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러시는 게 좋겠죠? 따라오세요.”
아주머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2층의 작은 방부터 볼 수 있었다.
설명처럼 침대 하나와 테이블이 있었고, 화장실 겸 욕실이 딸려 있었다.
셋 이상은 아무래도 무리겠고, 두 사람은 그럭저럭 사용할 만 해 보였다.
다음으로는 3층의 큰 방을 봤다.
앞선 설명이나 가격 등으로 미루어 봤을 때, 막연히 두 배 내지는 그보다 크기가 작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예상은 무참히 깨져 버렸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넓은 거실은 물론이고,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었으며, 오식이가 누워도 남을 만큼 소파 또한 큼직했다.
침대 하나로도 꽉 찬 듯한 침실의 크기가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화장실 겸 욕실도 작은 방과 비교해 거의 두 배쯤 되는 터라 괜히 고민할 것도 없어 보였다.
‘호, 이 정도면 우리 넷이 쓰기에 전혀 무리가 없겠는걸?’
만족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잠시 고민했다.
‘아, 그냥 작은 방 하나만 얻을까?’
그래도 될 일이었다.
녀석들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카드 속에 봉인해 둔 상태라면, 나 혼자 작은 방을 써도 괜찮을 테니 말이다.
하루 이틀이야 큰 방을 써도 그리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이곳에 있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무지막지한 식비도 그렇고, 혹시 모를 일 등을 따진다면 아껴서 나쁠 것도 없었다.
‘흐음… 에잇, 뒷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결국에는 그냥 큰 방을 쓰기로 했다.
밤새도록 답답하다며, 아우성을 쳐대고, 괴롭힐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 벌어질 일을 감당하는 것이 더 편할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
“침대는 주인님이 쓰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됐어. 뭘 새삼스럽게… 난 소파로도 만족하니까, 침대는 네가 쓰도록 해.”
평소처럼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바깥세상에서도 호텔이나 모텔 등에 묵을 때마다 하던 짓이었다.
오랜만이라 어색한 면도 있었지만, 언제나 승자는 나였다.
아, 승자가 맞긴 한 건가?
아무튼….
몇 달 만에 푹신한 곳에 누우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앗!”
벌떡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커튼을 걷고 밖을 쳐다봤다.
아직 곳곳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다행이다.”
가슴까지 쓸어내리며 돌아섰는데, 다른 녀석들이 내 갑작스러운 반응에 놀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별일 아니야. 다들 나갈 준비 하자.”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일단은 술집부터 찾았다.
방음이 잘되지 않는 것인지 시끌벅적한 소리가 밖으로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 너희들은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녀석들이었다.
오식이와 왕울이는 물론이고, 다른 의미에서 린도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혼자 술을 즐기는 콘셉트가 사람들의 얘기를 엿듣기에도 그렇고, 혹시 모를 친분을 쌓기에도 훨씬 나을 것이라는 판단도 섰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잠시 들어가 녀석들을 카드에 봉인했다.
괜한 헛기침 몇 번을 하고는 술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호오….’
밖으로 삐져나오던 시끌벅적한 소리만큼이나 술집 안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너무나 시끄럽고, 많은 인원수에 제대로 뭔가를 들을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쨌거나 한쪽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장 늘씬하고, 풍만한 몸매에 짙은 화장까지 한 여종업원이 곁으로 다가왔다.
서양권의 외모인 것이 던전 주민이 확실했다.
“어떤 거로 하시겠어요?”
여종업원의 말투는 꽤 퉁명스러웠다.
영혼도 없고, 진심도 없고, 마치 기계처럼 느껴졌다.
“아, 맥주… 맥주 있나요?”
“안주는요?”
있다 또는 없다 하는 대답은 물론, 숨 쉴 틈도 없이 이어진 다음 물음에 잠시 멈칫했다.
이내 빠르게 눈을 굴려 다른 테이블을 살폈다.
딱 봐도 감자튀김처럼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 저거로 하나 주세요.”
내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 여종업원이 다시 내게로 시선을 던졌다.
위아래로 빠르게 훑는 것이 영 기분을 뭐 같게 했다.
욱하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뭔가를 시작도 하기 전에 사고부터 칠 수는 없기에 꾹 하고 눌러 참았다.
슥슥슥….
여종업원이 손에 든 메모지에 뭔가를 쭉쭉 써 내려갔다.
아마도 내가 주문한 메뉴들일 터였다.
작성을 마친 여종업원이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
“…??”
잠시간의 소리 없는 눈치 싸움이 이어졌다.
미간을 살짝 꿈틀거린 여종업원이 짜증이 실린 목소리를 툭 하고 뱉어 냈다.
“1 실버요.”
“네?”
“맥주 하나, 와타 하나, 합해서 1 실버라고요.”
“아아….”
이곳은 술값이 선불인 모양이었다.
그제야 말귀를 알아듣고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잘그락….
동전을 보관할 지갑 같은 게 없었다.
대충 주먹에 잡히는 대로 동전을 꺼내고는 테이블에 올렸다.
금화 한 개와 은화 세 개가 딸려 나왔다.
그중에서 은화 한 개를 손가락으로 집어 여종업원에게 건넸다.
힐끔….
여종업원의 시선이 테이블 위의 동전에 꽂혀 있었다.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제야 나를 또 위아래로 빤히 쳐다봤다.
순간, 기계 같고, 정나미 없던 표정이 희미하게 미소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나도 모르게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확실할 정도로 미소를 얼굴에 그린 여종업원이 검지를 세워 테이블 위의 은화에 가져다 댔다.
“멋진 오빠! 나 팁 좀 주면 안 돼?”
어이가 없었다.
당장에 목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너 같으면 주고 싶겠냐?’
근질거리는 입과 지랄 같은 속내와는 다르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