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87)
투욱!
거대 사마귀 놈의 대가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끈질긴 목숨으로 버티며 놈이 기괴한 소리를 흘려 냈다.
“키이익….”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완전한 원형의 궤적을 그리고 멈춰선 아수라 스워드를 챙겼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아직 살아 있어요.”
“…?!”
여유를 부리던 차라 풀려 버렸던 긴장감을 일깨우며 당장에 자리를 피했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서늘하게 등 뒤를 스쳤다.
쐐애애애액!
콰아아아아아아!
직전에 서 있던 자리 위로 거대 사마귀의 살벌한 앞발이 꼿꼿하게 찍혔다.
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곧장 반응하여 피하지 못했더라면….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봉변을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빠직!
절로 미간이 꿈틀대며, 이마의 핏줄이 솟았다.
“이 자식이!”
더는 기괴한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거대 사마귀 놈의 대가리를 그대로 짓밟아 버렸다.
퍼걱!
단단한 박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진득한 액체가 터져 버렸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썩을… 끝까지 마음에 안 드는 놈이잖아?”
투덜거리며 신발과 바지에 묻은 놈의 체액을 털어 냈다.
대가리도 떨어지고, 완전히 끝장났다고 여겼던 거대 사마귀 놈의 반항(?)은 조금 더 이어졌다.
바닥에 꽂아 버린 앞발을 바들바들 떨어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쪽 앞발로는 지휘자처럼 허공을 아무렇게나 휘저어댔다.
거의 무의미한 짓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혹여라도 가까이 다가갔다가 재수 없게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듯싶었다.
파드드드드드드득….
수 분간 반항을 해대던 거대 사마귀는 끝내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펴기까지 하다가 완전히 멈춰 버렸다.
그 뒤, 온몸을 회색빛으로 물들였고, 이내 바스러지며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췟….”
끝까지 그 모습을 지켜봤다.
시원섭섭함이 물씬 느껴졌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머릿속과 마음을 정리했다.
“이제 피라미드다. 가자!”
피라미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어라? 저건….”
피라미드를 지척에 둔 곳….
정확히는 거의 눈앞에 있다고 봐도 좋을 피라미드를 흐릿하고, 아른거리도록 보이게 하는 투명한 장막에 이를 때쯤 무언가를 발견했다.
게이트였다.
그것도 두 개… 게다가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나뉜 것이었으며, 둘 다 투명한 장막에 걸쳐 있었다.
살면서 딱 한 번뿐이었지만, 그렇게 생긴 게이트를 본 기억이 있었다.
바로 저주받은 저택 던전에서였다.
맞다.
보금자리에 갑자기 생겨난 게이트.
그것을 넘어 들어간 신비의 공간.
그곳에서 본 빨간색과 파란색의 게이트들.
이곳이 저주받은 저택 던전과 여러모로 비슷하다는 얘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비슷한 부분이 또 있음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뭐, 이중 게이트와는 좀 다르지만… 돈과 경험치는 맞겠지?’
다소 생뚱맞다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여기는 던전 안이니까.
이론적으로 익히고, 어디서 주워들은 것들로 채운 던전의 룰이나 정보가 있다지만, 직접 경험을 하면서 그것들이 모두 옳지는 않다는 걸 이미 너무나 실감한 상태였으니까.
더불어 빨간색 게이트는 돈, 파란색 게이트는 경험치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당연히 돈보다는 경험치가 우선이었기에 고민도 하지 않았다.
“이쪽으로 간다.”
파란색 게이트 앞에 섰다.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왕울이를 카드 속에 봉인한 뒤, 그대로 게이트를 넘었다.
* * *
미약하게 일었던 현기증이 사라질 즈음 눈을 떴다.
눈앞의 전경에 당황했다.
“…??”
하얀색 빛을 발하는 큼직한 돌기둥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특별한 장식이나 무늬는 없었지만, 튼튼해 보이기는 했다.
그중 몇 개는 쓰러진 채, 커다란 덩어리로 분해되어 있기도 했다.
웃긴 것은 으레 기둥들이 받치고 있어야 할 천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냥 뻥 뚫려 있었다.
하얀 뭉게구름과 푸르른 하늘이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부서진 것인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바닥도 반듯한 돌들로 깔려 있었다.
역시나 군데군데 부서져 있고, 돌 틈 사이로 잡풀들이 돋아나 있었지만, 고르고 평평한 것이 처음 만들 때 공을 좀 들였지 싶었다.
“흐음….”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밟아 보는 딱딱한 돌바닥의 느낌이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돌바닥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기 직전, 다시금 시야에 들어온 전경에 놀라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어머나… 마, 마을이에요.”
린도 놀라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다.
마을이 보였다.
꽤 떨어진 곳… 살짝이 비탈진 아래쪽으로 상당히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갑자기 이런 곳이라니….’
게이트를 넘기 전만 해도 눈을 뜨면 바로 앞에 피라미드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당연했다.
흐릿하고, 아른거렸지만 바로 지척에 피라미드가 있었으니까.
여러모로 비슷한 저주받은 저택 때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전혀 예상 밖의 전경과 상황이 펼쳐졌다.
무척이나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혼란스러움을 감추거나 해소할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툭… 투둑… 툭….
등 뒤로 기척과 함께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당장에 고개를 돌렸다.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찬 아수라 스워드의 손잡이를 움켜잡은 채였다.
사람들이 서 있었다.
직전에 우리가 서 있던 바로 그 위치였다.
인원은 세 명이었고, 이제 막 게이트를 넘어왔다는 것을 알려 주듯 죄다 눈을 감은 채, 몸에서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
경계의 눈빛과 표정을 짓던 그들이 이내 무시하듯 시선을 거두고는 얌전히 자리를 벗어났다.
우리는 한참이나 못 박힌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느 정도 그들과 거리가 벌어진 뒤에야 턱짓으로 이동 명령을 내렸다.
계속해서 일정 거리를 유치한 채, 그들의 뒤를 따라 마을로 향했다.
….
마을은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세련됐으며, 활기가 넘쳤다.
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수도 많았고, 약간의 이질감도 있었지만, 제대로 잡힌 특색과 콘셉트가 있는 곳이었다.
뭐, 세세하게 설명하자면 끝이 없을 듯했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제대로 즐겨 본 적은 없지만, 가상현실 게임의 최고봉이라는 ‘린쥐’ 시리즈의 최신판쯤 된다고나 할까?
그냥 옛날부터 꾸준하게 유행하는 판타지 풍 RPG 게임의 마을 하나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다고 보면 됐다.
두리번두리번….
힐끔힐끔….
어쨌거나 낯선 곳이었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관찰에 관찰을 거듭했다.
가장 먼저 파악된 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이었다.
한쪽은 누가 봐도 서양권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반대쪽은 당연히 동양권의 외모였다.
입고 있는 옷이나 착용한 장비 등의 행색도 차이가 확실했다.
서양권의 이들은 마을의 분위기에 맞는… 딱 그렇게 보이는 평범한 일반인의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동양권의 이들은 대부분 무기나 장비를 착용했고, 옷도 현대풍의 것들을 입고 있었다.
다음으로 알아낸 것은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건전지가 다 되어 무용지물이 된 구형 통역기가 없음에도 말이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었다.
뭐, 던전의 효과라고 보는 게 옳을 듯했다.
또한, 아직 시도해 보지는 않았지만, 어째 내 말도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참으로 천만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던전 안에 마을이나 인간과 똑같은 이들이 사는 곳도 있다고 하더니만… 여기가 그런 곳인가 보지?’
그런 곳이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나랑은 상관없는 곳이라 여기며 무관심했고, 하도 오래되어 가물가물한 기억을 어렵사리 떠올렸다.
처음 등장한 곳은 러시아던가 그랬다.
이후로는 미국과 프랑스 등등에서 나타났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타입의 던전이었다.
아니, 아시아 쪽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 희귀했는데, 죄다 중국에서만 등장했다고….
뭐, 현실에서도 깊은 산속에 가면, 진짜 용을 볼 수 있다는 뻥을 아무렇지도 않게 쳐대는 곳이 중국이기에 그렇게 신빙성이 있는 얘기는 아니었다.
아무튼.
그런 의미와 정보를 바탕으로 봤을 때, 평범해 보이는 서양권의 이들은 던전 안의 사람들이었고, 무장한 동양인들… 아마, 일본인들일 그들은 각성자라고 판단했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다른 곳도 아니고, 일본에서 이런 던전이 등장하다니.’
한때는 야망과 야욕을 대놓고 드러내도 별 탈이 없었던 강대국.
하지만, 천벌이라 불리는 재해와 인재로 급격히 쇠퇴하고, 몰락해 버린 나라.
더불어 남들이 다 한다는 헌터 육성과 던전 사업 대신에 다른 노선을 탄 이상한 나라.
그런 일본에서 이런 타입의 던전이 등장했다는 게 놀라웠다.
정말이지 아까웠고, 부러웠다.
또한, 한편으로는 무서웠고, 두려웠다.
솔직히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던전 사업과 헌터 육성에 열을 올리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노력과 열정이 넘치고 흘렀다.
한국인의 장점이자 단점인 특성 때문이었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이런 타입의 던전이 등장한다면, 대체 얼마나 즐기고, 어떻게 활용할지 눈에 훤할 뿐만 아니라 무한한 기대감마저 드는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피라미드로 들어오기 전인 기다란 풀숲 구역에서의 엄청난 레벨 업 속도.
한계치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이용한다면 그 어떤 나라와 그 나라의 각성자들보다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헌터 육성에 관심이 별로 없는 일본에게는 무척이나 아깝고도 부러운 혜택이었다.
더불어 만약에 내가 사용한 방법을 알게 되어 그것을 활용하게 된다면, 빈약하기 그지없는 일본의 헌터 육성과 던전 사업이 활기를 띰은 물론, 크게 발전할 게 분명했다.
지금이야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와 물정에 알량한 자존심으로 겨우겨우 버티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아직 속 깊은 곳에 남아 있을 야망에 다시 불을 지피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그것만큼 대한민국으로서 지랄 같은 일도 없을 터였다.
그것이 짜증 나고, 두려웠다.
‘그래, 죽을 때까지 비밀이다.’
나처럼 다른 이들이 우연으로 광속 레벨 업의 방법을 찾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주받은 저택의 트랩 사냥법처럼 나중에 돈 받고 정보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기로 했다.
일체의 기록은 물론이고,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함구하기로 다짐했다.
뭐, 한국에서 똑같은 던전이 발견된다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때도 내가 먼저… 그 누구도 위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안 돼!’
더불어 한 가지 더 확실한 목표를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클리어 한다.’
던전의 클리어.
코어를 파괴하고, 던전을 완전히 정화해 버리자는 목표였다.
애초에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클리어가 답이라 여겼다.
다른 방법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그것밖에 없었다.
거기에 ‘우리 것이 아니고, 위협이 될 요소라면 차라리 없애 버리는 게 낫지!’라는 생각을 추가했다.
‘일단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
아는 만큼 힘이 된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것은 진리였다.
툭… 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갈 곳은 정해져 있었다.
별의별 얘기들이 난무하고, 흥에 겨워 경계심이 취약하며, 친분의 교류마저도 손쉬운 곳.
바로 술집이었다.
“형님!”
막 발걸음을 떼려는데, 오식이가 나를 불렀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의외라는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