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83)
“린….”
“네?”
“대단해! 멋져!”
양쪽 엄지를 치켜세웠다.
린이 상큼하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후훗! 감사합니다.”
살 만해진 환경 덕분에 진출이 순조로워졌다.
불길 속 사마귀 놈들의 실루엣을 주시하며, 계속해서 자리를 이동했다.
“아, 목말라….”
나부끼는 재와 열기에 점점 목이 타들어 갔다.
과일로라도 목을 좀 축여야 할 듯싶었다.
내친김에 점심도 해결하고 말이다.
“오식아! 밥 먹자!”
전혀 적당할 리 없는 곳에 대충 자리를 잡고 모였다.
바닥에 앉을 수도 없어, 그냥 선 채로 식사를 해야만 했다.
오식이가 내려놓은 그물 배낭 안에서 빨갛게 생긴 과일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아작! 쭈웁쭈웁… 꿀꺽꿀꺽… 크으! 이제 좀 살 것 같네! 휴우우우….”
열기에 살짝 뜨끈해진 과일이었지만, 안쪽의 과즙은 신선했고, 가뭄 뒤의 단비처럼 목을 적셔 줬다.
쥐어짜 듯 끝까지 과즙을 빨아 먹고 오식이가 반으로 쪼개 놓은 빅너트를 집어 들었다.
“익히지 않은 것을 먹는 건 오랜만인 것 같네?”
익힌 빅너트의 맛을 알고부터는 계속 불에 구워 먹은 터라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콰작! 우물우물… 응?”
빅너트의 속살을 크게 베어 물고는 몇 번 씹자, 고소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느낌이 좋았다.
좋아도 너무 좋았다.
더욱더 잘근잘근 씹어 과즙을 내고는 목으로 넘겼다.
“아작아작… 꿀꺽! 오오! 뭐지, 이 느낌은?”
갑갑하고, 칼칼했던 목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어머! 이게 뭐죠? 왜 이런 거죠?”
린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듯했다.
다시금 빅너트의 속살을 베어 물고, 잘근잘근 씹어가며 맛과 느낌을 만끽했다.
“음… 유분기 때문인 것 같은데?”
“유분기요?”
“응, 기름기 말이야.”
내 말을 들은 린이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며, 빅너트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는 척을 하며 설명을 좀 더 이어 갔다.
“이렇게 먼지 같은 걸 많이 마셨을 때,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삼겹살을 먹어.”
“삼겹살이요? 그게 뭐죠?”
“음, 돼지 고긴데… 기름 부위인 비계와 살코기가 층층을 이루고 있어서 삼겹살이라고 해.”
“아아… 그런데, 그걸 왜 먹어요?”
“기름기가 먼지를 씻어 내준다고 해서 먹지.”
“그렇군요.”
“응. 지금도 빅너트의 유분기가 삼겹살의 기름과 같은 역할을 한 것 같아.”
말을 하고 보니, 빅너트가 참으로 대단하고, 유용한 것임을 한 번 더 깨달았다.
맛 좋은 식사에 대량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주요 재료인 것도 모자라, 이런 상황에서도 유익하게 쓰이다니… 이곳에 없어서는 안 될 것 중, 단연 1순위가 아닐까?
뭐,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먹거리 중 하나로밖에 여기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
식사를 마치고는 계속해서 자리를 이동했다.
움직일 때마다 린이 부지런하게 청소를 해 준 덕분에 목의 갑갑함이나 칼칼함은 확실히 덜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빅너트를 야금야금 씹어 가며 해소해 버렸다.
‘이대로라면 끝까지도 갈 수 있겠다.’
끝이란 피라미드를 말함이었다.
이제 겨우 기다란 풀숲 구역의 절반쯤 온 것 같았지만, 이런 식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니야… 아직은 일러.’
대부분의 던전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다음 구역으로 넘어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진다.
이곳도 그럴 것이 분명했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모양새는 물론이고, 클리어를 위한 코어와 그것을 지키는 최종 보스가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럴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들의 수준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피라미드보다 수준 낮을 것이 분명한 이곳 기다란 풀숲 구역에서도 겨우 1시간… 아니, 이제는 레벨이 조금 올랐으니, 넉넉잡고 2시간쯤 사냥할 수 있다고 해도 답이 없다.
하물며,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수준의 2시간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스윽….
고개를 돌려 지나온 길을 돌아봤다.
천천히 돌아간다면 저녁은 정글 안에서 먹을 수 있을 듯했다.
왕울이가 전속력으로 달린다면 시간은 훨씬 더 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왕울이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기에 무리를 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이쯤에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곧장 내 뜻을 녀석들에게 전했다.
“다들 정지! 다시 정글로 돌아간다.”
내심 기다렸던 것일까?
다들 전혀 미련 같은 것을 두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 * *
새롭게 바뀐 일과에 따라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냈다.
이곳에 온 지가 벌써 석 달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이제 한 번만 더!’
며칠 전부터 계속해서 되뇌던 말이었다.
당연히 레벨 업을 말하는 것이었고, 한 번 더 레벨 업을 하면 60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60레벨에 도달하면 피라미드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 전에 기다란 풀숲을 정식으로 돌파할 예정이었다.
사마귀 놈들과 정식으로 붙어봐서 실력이 모자란다면 다시금 레벨을 올려야 할 것이고, 충분하다면 피라미드에 도전, 만약 거기서 벽에 부딪힌다면 또다시 방화범이 되어야 할 터였다.
….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다.
[스킬 ‘교감’의 숙련도가 오릅니다.]
[숙련도 상승으로 교감의 범위가 소폭 늘어납니다.]
[숙련도 상승으로 교감의 파장이 소폭 강해집니다.]
[스킬 ‘소환’의 숙련도가 오릅니다.]
[숙련도 상승으로 소환 시간이 소폭 단축됩니다.]
[스킬 ‘봉인’의 숙련도가 오릅니다.]
[숙련도 상승으로 봉인 시간이 소폭 단축됩니다.]
10레벨 단위로 오르는 기본 스킬의 능력치도 상승했다.
처음엔 ‘소폭’이란 단어처럼 미미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봉인과 소환의 속도가 티가 날 정도로 빨라졌다.
“흠… 끝인가?”
봉인된 다른 스킬이나 능력을 내심 기대했지만, 더는 없는 모양이었다.
“자, 나는 됐고. 이제 너희만 오르면 도전이다.”
오식이와 린의 레벨 업을 기다려야 했다.
하루나 이틀이면 가능할 터였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정확히 이틀 후에 린과 오식이가 차례대로 레벨 업을 했다.
문제는 오식이의 레벨 업 타이밍이 살짝 애매했다는 것이었다.
‘흐음… 어쩐다?’
이미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지나온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이대로라면 정글보다 피라미드가 더 가까운 상태.
물론, 거대한 불길이 가로막고 있기에 그곳을 통과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말이다.
왕울이를 타고 미친 듯이 내달린다고 한들, 정글에 도착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이 틀 것 같았다.
그냥 하루를 쉬면 모를까, 그 상태에서 사마귀 놈들에게 도전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냥 이대로 끝장을 한번 봐?’
나쁘지 않을 듯했다.
타이밍상, 동이 트기 직전이나 조금 지나서 불길이 피라미드에 닿을 듯싶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대로 불길이 꺼질지 아니면 피라미드까지 잡아먹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시야에 잡히는 까닭에 복구는 이루어지지 않을 터였다.
해서, 어떻게 마무리가 되는지 구경을 한 뒤에 정글로 돌아가 쉬고, 다음 날 도전에 임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 뭐 하면 피라미드도 한번 구경해 보지 뭐!’
생각은 그리 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컨디션 문제로 사마귀 놈들을 상대하는 것도 마다하자 하는 마당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 더 강한 놈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고?
아무리 내가 호기심이 강하다 한들 그 정도로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전진!”
불길을 따라 계속해서 앞으로 이동했다.
….
몇 시간 후.
피라미드가 거의 눈앞에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제 막 동이 터 오려고도 했다.
여전히 불길은 꺼질 기미 없이 활활 타오르는 중이었다.
“하아암….”
이동 중에 몇 번이나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을 해댔는지 모르겠다.
몸도 살짝 무거웠다.
괜한 짓을 했나 싶은 후회도 엄청 해댔다.
발길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기어이 끝을 보겠다는 일념과 의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끝이 다가오고는 있었다.
“후우… 여기서 잠깐 쉬자.”
자리를 잡았다.
린이 곧장 주변을 빗자루로 쓸어댔다.
잿더미가 거둬진//개인 자리에 간이 의자를 펴고 앉았다.
이동 중에 조금이나마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조악한 생김새와는 달리 무척이나 요긴하게 쓰고 있었다.
“으그그, 다리야… 에고고, 허리야….”
노인네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피라미드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멀리서 봤을 때도 거대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니 이건 뭐 말도 안 되게 크고 웅장했다.
‘으음… 역시….’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면서 그럴 줄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또한, 멀리서 볼 때부터 혹시나 그러지 않을까 했던 것인데, 막상 앞에 두고 보니 확실해진 것이었다.
이곳은 저주받은 저택 던전과 매우 비슷했다.
여러모로 저주받은 저택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 많아, 저절로 떠오르게 할 정도였다.
일단, 안전지대가 있는 것이 그랬다.
다들 알겠지만, 저주받은 저택의 대문… 쇠창살 문밖은 절대적인 안전지대였다.
이곳은 정글이 안전지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크기에서는 어마무시한 차이가 있었지만, 던전의 초입이란 점도 똑같았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으로 막혀 있고, 득달같이 달려들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괴물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같았다.
약간의 억지가 들어가야 할 테지만, 소소하리만치 간단한 트랩을 이용해 괴물들을 학살… 대량의 경험치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같다면 같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저주받은 저택의 안전지대나 정원에서 저택을 쳐다봤을 때, 어딘지 흐릿하고, 흐늘거리게 보이더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정 레벨이 되어야만 넘어갈 수 있는 투명한 벽을 통과해야 비로소 진정한 저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말이다.
이곳도 그랬다.
바로 피라미드가 그렇게 보였다.
흐릿하고, 흐늘거리게 말이다.
사실, 언덕이나 기다란 풀숲 구역 초반부에서 볼 때는 거리가 멀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 거리에서도 흐릿하고, 흐늘거리게 보인다는 것은 분명 어떤 제약이 걸린 투명한 벽이 둘러쳐 있음을 예상케 하는 것이었다.
‘설마하니, 레벨이 낮아서 못 들어가진 않겠지?’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다행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애초에 레벨 제한이 걸려 있다면, 그 안에 득실대는 놈들의 수준이 높다는 것일 테니까.
어차피 그것에 맞춰 충분히 레벨을 올리고 들어가야 뭐를 해도 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후우우… 뭐가 됐든, 빨리 좀 끝나라.”
푸념하듯 한숨과 함께 재촉했다.
그런 내 바람과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당장에 어떤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크륵!”
나뭇잎을 덧대어 만든 전용 깔개를 깔고서 엎드려 있던 왕울이가 다급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뭔가를 느낀 것이 분명했다.
“왜 그래?”
물음과 함께 동물적 감각을 높였다.
섬뜩!
뒷머리가 삐쭉 설만큼의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어, 왕울이의 반응이나 내가 느낀 기운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피라미드가 있는 곳… 시뻘건 불길이 여전히 치솟고 타오르는 곳에서였다.
“저, 전투 대형!”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식이와 린이 나를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다.
선두에 오식이가 섰고, 그 뒤로 나와 린이 좌우로 섰으며, 중심의 후위에 왕울이가 자리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엑!”
다시금 기괴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보다 가까이 다가온 것인지 아니면 더욱더 크게 소리를 낸 것인지 확실치 않았다.
전자였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키에에에에엑!”
또 한 번의 기괴한 울음소리에 이어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을 뚫고서 거대한 그것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