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73)
게이트를 넘었다.
습한 기운이 확 느껴졌다.
축축함에 젖은 풀 냄새가 진하게 코를 자극했다.
눈을 떴다.
“…??”
예상 밖의 전경에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한동안 전혀 볼 수 없었던 초록의 향연… 아니, 그 이상을 보여 주는 푸르름으로 사방이 가득 차 있었다.
“저, 정글인가?”
그런 듯했다.
종아리 높이를 웃도는 길고 억센 풀들이 지천에 깔렸고, 너른 잎사귀와 주렁주렁한 넝쿨들을 몸에 걸친 이름 모를 나무들이 빼곡했다.
‘으스스하네….’
해가 잘 들지 않아 어둑하고, 습한 기운이 넘실대는 통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심리적인 한기가 느껴진다랄까?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 믿을 수 있는 이와 함께 있는 것이다.
곧장 나의 든든한 동료들을 소환했다.
“크륵?”
제일 먼저 불러낸 오식이가 낯선 주변 환경에 당황한 듯 반응했다.
다음으로 불러낸 린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여긴….”
“나도 몰라. 게이트를 넘었더니 이곳이었어.”
“아….”
마지막으로 왕울이를 소환했다.
“크르르… 킁! 킁!”
소환된 왕울이는 곧장 경계심을 드러내며 주변 살피기에 바빴다.
한참이나 그러던 녀석이 다소 편안해진 느낌으로 내게 말했다.
“별다른 위험은 없어 보인다.”
녀석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보다는 못하지만, 내 한계의 동물적 감각으로도 딱히 주변의 위험은 찾지 못했었다.
나보다 더 먼 곳까지 감지가 가능한 녀석의 말이니, 조금 더 안심해도 된다는 뜻이었다.
“비가 그친 건가요?”
린의 말에 잠시 잊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비가 전혀 오지 않고 있었다.
예상 밖의 전경과 나름의 경계심에 빠져 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제야 뒤를 제대로 살폈다.
이미 건너온 게이트는 사라진 채였다.
그 뒤로는 여느 게이트… 던전의 초입처럼 실제인지 허상인지 헷갈리는 모양새의 벽으로 막혀 있었다.
“흐음….”
샌드 웜이 있던 곳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라 여겼다.
던전 안의 던전… 그렇게 보는 게 좋을 듯했다.
“일단, 이곳부터 빠져나가자.”
축축함으로 절여질 것만 같은 습한 기운이 너무나 싫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걸음을 재촉했다.
우거진 풀과 장애물 등에 이동하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
1시간쯤 이동했다.
여전히 주변은 오지의 정글이었다.
“아우, 힘들어. 대체 언제까지 이따위인 거야?”
절로 투덜거림이 쏟아졌다.
그 순간!
나보다 앞서가던 왕울이가 걸음을 멈췄다.
멈칫!
왕울이의 반응에 녀석보다 앞서가던 오식이는 물론, 뒤따르던 나와 린도 걸음을 멈췄다.
녀석이 나무와 언덕으로 막혀 있는 정면의 어딘가를 넘겨보듯 응시했다.
나도 재빨리 동물적 감각을 높이며 언덕 너머를 살폈다.
별다른 기척이나 어떤 것을 감지할 수는 없었다.
“왜 그래? 뭐가 있어?”
“있다. 빠르다.”
“…??”
“그리고 많다.”
왕울이는 농담 따위나 괜한 소리를 하는 타입이 절대로 아니었다.
녀석이 빠르다고 하면 빠른 것이고, 많다고 하면 많은 것이었다.
뭐가 됐든 간에 긴장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
“언덕 너머지?”
“그렇다.”
“좋아, 다들 긴장하고. 천천히 조심해서 움직인다.”
내 말에 다들 자세를 낮췄다.
지금껏 이동하던 속도의 절반 정도로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언덕을 올랐다.
경계와 긴장 탓에 체력 소모가 절로 느껴졌다.
‘대체 뭐가 있는 걸까?’
더해 가는 궁금증을 안고서 한참 만에야 언덕 끝에 오를 수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전경에 입에 떡 벌어졌다.
“와우….”
언덕 아래로는 끝도 없이 펼쳐진 드넓은 황금빛의 평원과 그 끝인지 중심인지 모를 곳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둑하고, 축축하며, 답답하기까지 한 곳에서 장시간 헤매다가 햇살이 가득하여 절로 뽀송뽀송한 느낌이 들고, 시원스럽게 탁 트인 곳을 마주한 느낌은 말로 표현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쨌든.
아무리 좋아도 감탄으로 전경에 취해 있을 때는 아니었다.
왕울이가 미리 감지했던 위협의 존재가 뿜어내는 기운을 이제는 나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딱히 시야에 잡히는 건 없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집요하게 살펴봐도 그랬다.
드넓게 펼쳐진 황금빛 평원은 사실 기다랗고 빽빽한 풀… 마치, 갈대와 비슷한 것이었고, 아마도 그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이 몸을 숨기고 있으리라는 정도가 전부였다.
‘일단은 내려가서 직접 맞닥뜨려 봐야 알 수 있겠군.’
그래야만 할 것 같았고, 그럴 수밖에 없으며, 그게 제일 빠른 방법이었다.
“오식이가 앞장서고, 뒤는 왕울이가 맡는다. 린, 너는 왼쪽!”
진형을 갖추고는 천천히 언덕을 내려갔다.
….
언덕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스스스….
기다란 풀들이 동시에 한쪽으로 살짝 기울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경계심과 긴장감이 배가 되었다.
‘흐음… 전혀 앞을 볼 수가 없잖아?’
풀들이 기다랗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식이의 키를 훌쩍 넘을 줄을 몰랐다.
게다가 빽빽함과 촘촘함으로 시야 확보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이대로는 제대로 된 전진조차도 힘이 들 터.
“오식아, 잠깐만….”
앞서가는 오식이를 멈춰 세웠다.
이어, 왕울이를 쳐다봤다.
“왕울아, 길 좀 터 줘!”
“알았다.”
오식이는 옆으로 물러나고, 왕울이가 앞으로 나섰다.
이내, 앞발을 높이 치켜든 왕울이가 강렬한 기운을 모은 뒤, 거대한 윈드 커터를 날렸다.
촤아아아….
스스스스슷….
풀들이 별다른 저항 없이 잘려 나가며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됐다.
그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할 정도였다.
“저쪽도, 그리고 이쪽도 부탁해!”
조금 더 넓게 풀들을 깎아 냈다.
같은 방식으로 전진을 하면 될 듯했다.
깎인 풀숲으로 들어와 이동한 뒤, 다시금 왕울이에게 길을 내라 명령했다.
“시원하게 깎아 봐!”
고오오오오….
촤아아아아….
스스스스스슷….
3미터짜리 윈드 커터가 풀들의 밑동을 사정없이 절단하며 앞으로 뻗어 나갔다.
그 순간!
파앗! 팟! 팟!
풀숲 속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사방으로 튀며 움직였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고, 나름의 살기를 내비친 채였다.
“조, 조심해!”
소리치며 재빨리 아수라 스워드를 뽑아 들었다.
다른 녀석들도 곧장 전투 모드에 들어갔다.
‘어디 있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순식간에 흔적을 지워 버린 탓에 기척조차 찾을 수 없었다.
거의 엎드리다시피 하며 한껏 경계 태세 중인 왕울이에게 물었다.
“느껴져?”
녀석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왕울이가 감지하지 못할 정도라면 문제는 심각했다.
‘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어떠한 정보도 없는 상황이라 막막하고, 더욱더 긴장이 됐다.
해서, 오식이와 린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전하려 했다.
“다들 정신 바짝….”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섬뜩한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며 아수라 스워드를 곧추세웠다.
스갓!
까앙!
팔과 어깨가 들썩일 만큼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기다란 낫처럼 생긴 것이 아수라 스워드를 휘감고 있었다.
머리 위에 뜬 태양 때문에 제대로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삼각형의 실루엣이 그 너머로 보였다.
끼기기기….
놈이 기다란 낫에 힘을 줬다.
아수라 스워드가 휘청이듯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이를 악물며 버텼다.
“이익!”
귀를 자극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버텨도 소용없다. 죽어라!”
사용하는 무기가 낫처럼 보이는 것도 그렇고… 마치, 사신의 목소리가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였다.
부우우웅!
묵직한 바람 소리와 함께 시커먼 그림자가 하늘을 가렸다.
이어, 아수라 스워드를 뒤흔들려던 힘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살짝 나가 버린 정신 속에 든든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냐, 형님?”
오식이였다.
“어, 어….”
어찌어찌 대답은 했지만, 몸을 가눌 타이밍은 없었다.
린의 외침이 이어졌다.
“오식 씨, 또 와요!”
린의 외침에 먼저 움직인 것은 왕울이였다.
반쯤 주저앉은 내게 뒷발로 찬 흙을 튀기며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크르르르!”
격한 으르렁거림과 함께 바람을 가르는 앞발질의 몸짓이 보지 않아도 느껴졌다.
뒤쪽에 선 린의 움직임은 파악할 수 없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기합 소리에 정신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았다.
그보다는….
“크아아아아아앙!”
우렁찬 포효를 토해 내며, 내 앞을 막아선 채 온몸을 흔들고, 양팔을 휘두르는 오식이에게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여전히 놈들의 정체는 모른 채였다.
‘일어나자.’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수라 스워드를 꼬나쥔 채 오식이에게 말했다.
“난 됐어! 마음껏 싸워!”
그제야 오식이가 자리를 벗어나며 더욱더 격한 몸짓으로 움직였다.
나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이동하여 전투에 참여했다.
“감히 뒤를 노려? 이제는 네놈들이 죽어 봐라!”
온 힘을 다해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
“하아, 하아… 대체, 언제까지 나타날 셈인 거지?”
1시간가량 사투를 벌였다.
나 혼자 놈들을 잡은 수만 해도 상당수를 넘었다.
하지만, 놈들의 습격과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죽이면 죽이는 대로 또다시 기다란 풀숲을 뚫고 다른 놈들이 달려들었다.
“크르르르….”
“이잇… 흐읏!”
“헥헥! 크르르르륵!”
녀석들도 확실히 지쳐 있음을 표했다.
앞으로 10분… 아니, 5분만 지나도 판세나 형세가 역전될 분위기였다.
‘이대로는 안 돼! 튀자… 그런데 어디로?’
마땅히 도망칠 곳이 없었다.
풀숲은 놈들의 서식지인 만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딱 한 군데… 우리가 넘어왔던 언덕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다들 언덕 쪽으로 뛰어!”
크게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진심으로 미친 듯이 내달렸다.
“…?!”
빠르게 내 옆으로 붙은 왕울이가 몸으로 나를 밀쳤다.
몸이 옆으로 기울며, 녀석의 등에 걸친 느낌으로 올라타게 됐다.
“꽉 붙잡아라!”
왕울이의 외침에 녀석의 털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러자 녀석이 속도를 올렸다.
다다다다다닷….
“앗!”
내 뒤를 바짝 따르던 오식이와 린이 뒤처지는가 싶더니만, 이내 거리 차가 나려 했다.
그 뒤로는 수십 마리나 되는 놈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추격하고 있었다.
“보, 봉인!”
재빨리 봉인 스킬을 사용해 제일 뒤처진 오식이를 불러들였다.
이어, 린도 불러들인 뒤에 왕울이에게 소리쳤다.
“됐어! 더 빨리 달려도 돼!”
왕울이가 더욱더 속도를 올리며, 놈들의 추격을 따돌렸다.
….
다행히도 놈들은 언덕 중반까지만 우리를 추격했다.
그 뒤로는 무슨 일인지 우왕좌왕하다가 다시 풀숲으로 되돌아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는 언덕을 넘어 한참이나 더 정글 안으로 도망쳤다.
나뿐만 아니라, 왕울이의 동물적 감각으로도 감지가 되지 않는 지점까지 와서야 도망치기를 멈췄다.
‘소환!’
오식이와 린을 소환했다.
“다들 괜찮아?”
보아하니, 크게 다친 곳들은 없는 듯했다.
왕울이를 제외하곤 말이다.
“헥! 헥! 헥… 크르르….”
완전히 지쳐 버린 왕울이가 혀를 길게 내밀고는 힘들어했다.
그런 녀석의 털을 쓰다듬으며 수고의 말을 전했다.
“고생했어. 너 때문에 살았다.”
그러고는 뒤로 벌러덩 누워 지친 몸을 회복했다.
“하, 살벌한 놈들이네….”
살벌할 정도로 끔찍한 놈들이었다.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짓도 그렇고….
“꼭 사마귀처럼 생겼던데, 이름은 뭘까? 레벨은 못해도 40쯤 될 것 같던데….”
놈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놈들이라 궁금한 것도 많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무척이나 고민이었다.
아, 그전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배고프다. 형님!”
이미 한참이나 식사 시간이 지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