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72)
“일단은 놈들부터….”
작게 말끝을 흘리고는 샌드 웜들을 처리했다.
린과 왕울이의 활약으로 금세 정리가 됐다.
시간을 지체하면 계속해서 놈들이 몰려올 터였다.
오식이와 린을 봉인하고, 왕울이의 등에 올라탔다.
“가자!”
바람을 가르듯 달려 던전 입구로 향했다.
….
던전의 입구 앞에 도착해서 왕울이를 잠시 쉬게 했다.
오식이와 린을 소환했고, 직전에 떠올렸던 작전을 빠르게 설명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바로 해 보자! 린, 할 수 있겠지?”
“네!”
씩씩하게 대답한 린이 곧장 앞으로 뛰어갔고, 달빛에 의지한 한정된 시야를 벗어났다.
왕울이 덕에 얻은 동물적 감각과 청각으로만 어렴풋이 린의 자취를 가늠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멀어졌던 린의 자취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온다.”
내 말에 왕울이가 앞으로 나섰다.
린의 모습도 시야에 들어왔다.
‘허, 무리하지 말라니까, 많이도 끌고 왔네….’
린의 뒤로 꽤 많은 샌드 웜들이 따라붙어 있었다.
진액의 효과로 인해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할 테니, 큰 위협은 없을 듯했다.
하지만, 바글바글함에서 오는… 더불어 놈들이 죄다 밖으로 튀어나왔을 때의 징그러움과 끔찍함을 상상하니,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린, 시작해!”
내 명령에 린이 빗자루를 빼 들었다.
그러고는 곧장 바닥 쓸기 스킬을 시전했다.
촤아아아아….
반원을 그린 빗자루의 궤적에 지면의 모래가 멋들어지게 퍼져 나갔다.
이어, 속에서 꿈틀거리던 샌드 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대가리를 쭉 내밀며 솟구쳐 올랐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끔찍하고, 징그러운 광경이었다.
“크… 보, 봉인!”
인상을 잔뜩 쓴 채 린을 카드 속으로 불러들였다.
슈슈슉….
그냥 둬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일 테지만, 순식간에 린이 사라지자 샌드 웜들이 우왕좌왕하며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 놈들을 향해 거대한 푸른 빛의 초승달이 빠르게 날아들었다.
촤아아아아….
이내, 끔찍하고, 서늘하기 그지없는 소리도 이어졌다.
서걱서걱.
스슷… 슥! 석! 삭!
요란법석을 떨어대던 샌드 웜들이 죄다 두 동강이 나며 바닥을 굴렀다.
고통에 찬 몸부림은 그리 길지 않았고,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이스!”
생각대로 이루어진 결과에 쾌재를 불렀다.
….
다음 날부터 비슷한 방식으로 샌드 웜들을 사냥했다.
오식이와 린이 샌드 웜들을 잔뜩 몰아오는 역할이었고, 왕울이가 윈드 커터로 단숨에 놈들을 처리했다.
나는 봉인과 소환, 그리고 왕울이의 윈드 커터에 운 좋게 살아남은 샌드 웜을 마무리했다.
결과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진액 때문에 전혀 위험할 것이 없었다.
필요한 진액은 자이언트 샌드 웜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이들에게 부탁하면 쉽게 얻을 수도 있었다.
대량으로 몰아 잡기에 이전보다 능률적이었다.
활성화 던전이라 샌드 웜의 수는 넘쳤고, 우리만 사냥한다고 봐야 했기에 눈치를 보거나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몰이 사냥을 시작한 지 3일, 드디어 51레벨에 오를 수 있었다.
며칠 후….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린과 오식이도 차례대로 51레벨이 되었다.
몰이 사냥에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
***
“오늘도 열심히 달려 볼까나?”
이른 아침부터 신나게 샌드 웜 사냥에 나섰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 봤자, 늘 똑같은 하루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온다, 왕울아!”
“크르르!”
촤아아아아….
서걱서걱… 스슷! 스스슥!
두어 시간쯤 몰이 사냥에 열중하던 그때였다.
번쩍!
먼 하늘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멀뚱멀뚱한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봤다.
“…?!”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 모를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했다.
요란하고 웅장한 소리가 이어졌다.
쿠르르르릉….
‘비?’
무척이나 생뚱맞은 느낌이었지만, 그 외에는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인님. 설마 비가 내리려는 건가요?”
린이 신기하다는 듯 물어왔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응.”
“어머! 이런 곳에도 비가 오나요?”
“사막에도 비가 내리긴 하지. 물론, 많은 양은 아니지만….”
“아아, 그렇군요.”
다들 신기한 듯 점점 더 짙어지는 먹구름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걱정이 담긴 말을 나도 모르게 흘려 냈다.
“이쪽으로는 안 왔으면 좋겠는데….”
비가 오는 건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나 비를 맞는 건 더욱더 좋지 않았다.
몸이 무거워지고, 비에 젖은 땅에 움직임은 더 나빠질 테니까.
‘시원하긴 하려나?’
더위를 조금 가시게 할 것 같긴 했다.
그 뒤로는 한층 더 심각한 찝찝함과 습함을 느껴야겠지만….
‘아! 그건 좋을지도 모르겠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린을 힐끔거렸다.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은 린의 모스… 큽!
아무튼.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먹구름이 있는 곳이 상당히 먼 곳이라는 점이었다.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기에는 그만큼 가능성이 작았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뒤로 더 물러날까? 아니면….’
먹구름과의 거리를 더 벌리고 사냥을 이어 나가느냐와 다 때려치우고 오늘은 일찍 돌아가느냐를 두고 고민했다.
‘에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냐? 쉬기는 무슨! 정신 차려라, 나선우!’
짧은 고민과 꾸짖음.
결국… 아니, 당연하게 뒤로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솔직히 갈 길이 너무나 멀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두 개의 선택지 모두 채택되지 못했다.
“어? 주인님. 저기….”
“응?”
린의 반응에 시선을 돌렸다.
그사이 더 크고, 짙어진 먹구름 아래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무언가가 보였다.
흐릿하고 가물거리는 느낌의 그것은 끝이 뾰족한 삼각형의 거대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사, 산?’
처음엔 자연스럽게 산을 떠올렸다.
당장에 가늘게 뜬 눈을 시전했다.
번뜩!
최대한으로 줌인하여 그것을 살폈다.
거리도 거리였고, 어둑하니 비까지 내리는 통에 확실치는 않았지만, 일단 산은 아닌듯했다.
‘저게 뭘까?’
고개를 갸웃하던 중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사막과 삼각형이라는 키워드에서 떠올릴 수 있는 그것.
험난한 던전과 게이트 시대를 거치면서도 파괴되지 않고 남은 거대한 인공 건축물.
바로 피라미드였다.
‘그런데 저게 왜?’
사막에 피라미드가 한 개쯤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게 여길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막연히 떠오르는 이미지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던전 안이었다.
더군다나 이전까지는 전혀 있지도, 보이지도 않았고, 있을 리도 없다고 여기던 것이었다.
그런 것이 난데없이 나타나다니… 너무나 이상하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가 볼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뭔가에 이끌리듯 바로 실행에 옮겼다.
….
먹구름과 가까워질수록 피라미드의 형체는 또렷해졌다.
더불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소리도 점점 커졌다.
솨아아아아….
잠시 후, 거리를 더 좁혔을 때, 린이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재밌는 광경이네요.”
오직 피라미드에만 신경을 쓰던 터라, 다른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던 터였다.
린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는 시선을 돌렸다.
“응? 아아….”
먹구름이 낀 하늘과 청명한 하늘 쪽으로 나뉜 경계선….
우리가 있는 곳은 햇빛이 쨍쨍했고, 비도 전혀 오지 않았으며, 땅도 바짝 말라 있었다.
반면, 몇 미터 앞은 어둑했고,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고 있었으며, 땅도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흐음….”
딱 봐도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 전경에 잠시 망설여졌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도착하기까지는 약 3분쯤 걸렸다.
멀리서부터 우리를 의식하는 게 빤히 보였다.
경계선에 바짝 붙어 선 그들이 떠들어댔다.
“후아, 늦는 줄 알았네.”
“아직 아니야! 지체할 시간 없다고!”
“그래, 빨리빨리!”
그들이 급하게 서두르는 모습에 뭔가가 있음을 직감했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무리 중 하나가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벗어 열고는 안을 뒤적거렸다.
이내 그의 손에 딸려 나온 것은 다름 아닌 마정석이었다.
‘엥?’
고개가 절로 갸웃해졌다.
미간에 힘을 주며 더욱더 집중했다.
“다들 준비됐지?”
“어! 준비 완료!”
“나도! 나도!”
“크아! 드디어 들어가 보는구나!”
“자, 이제 한다.”
흥분과 호들갑 속에 배낭에서 마정석을 꺼낸 이가 이번엔 마정석을 경계선 안쪽… 비가 내리는 곳을 향해 툭 집어 던졌다.
“…??”
당연히 날아든 의문.
하지만, 곧장 벌어진 놀라운 광경에 의문은 사라지고, 눈이 찻잔만 하게 커졌다.
번쩍번쩍….
지이이이잉….
그가 집어던진 마정석이 번쩍이는 빛을 발했다.
번쩍이던 빛은 이내 원형의 광채로 변했고, 부풀어 오르듯 빠르게 크기를 늘려 갔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놀라운 현상은 계속 이어졌다.
우우우우웅….
어떤 울림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어느새 2미터가량 크기를 늘린 원형의 빛이 자잘하게 진동했다.
이어, 원형의 한가운데가 뻥 뚫리기라도 한 듯 시커멓게 변했다.
원형의 빛이 빠르게 크기를 늘렸던 것처럼 시커먼 구멍도 금세 크기를 늘려 갔다.
“어, 어라?”
놀라움에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반응을 내뱉었다.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린도 목소리를 냈다.
“저건… 설마, 게이튼가요?”
그랬다.
마정석에서 쏟아진 것이 확실한 빛.
그것이 만들어 낸 원형의 빛과 시커먼 구멍은 누가 봐도 게이트처럼 보였다.
무리가 그것이 게이트임을 확실하게 증명시켜 줬다.
“자, 서둘러!”
마정석을 던졌던 이가 말을 뱉음과 동시에 구멍 속으로 몸을 던졌다.
대기하고 있던 다른 이들도 재빨리 움직였다.
“읏차!”
마지막… 여섯 번째 남자까지 모두 게이트를 넘어갔다.
바로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게이트가 사라졌다.
팟!
마치, 전등이 꺼지는 듯한 느낌.
굉장히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황당하고도 놀라운 광경과 상황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몇 번이나 눈만 깜빡이며 멍을 때렸는지도 모르겠다.
“주인님….”
린의 부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
잠시 비가 내리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러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곧바로 녀석들이 내 뒤를 따르려 반응했다.
“기다려!”
빠르게 명령을 내리고는 혼자서 경계선을 넘었다.
솨아아아아….
금세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비를 맞았다.
떨어지는 비와 흘러내리며 눈가를 적시는 빗물에 제대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황급히 뒤로 뛰쳐나왔다.
쫄딱 젖은 몸은 그냥 둔 채, 눈가에 묻은 물기만 급히 제거했다.
“괜찮으세요?”
린이 걱정스레 물으며 손으로 물기를 닦아 줬다.
잠시 후.
녀석들을 모두 카드 속에 봉인했다.
이어, 배낭을 풀고는 안에 든 마정석을 꺼냈다.
내가 꺼내든 마정석은 두 개.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마정석과 자이언트 샌드 웜을 잡아 얻은 마정석이었다.
먼저,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마정석을 경계선 안으로 던졌다.
툭….
“….”
예상했던 대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끄덕임을 하다가 아차 싶은 생각과 함께 미간을 좁혔다.
집어던진 마정석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다시 빗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탓이었다.
‘젠장….’
그렇다고 그냥 버릴 수는 없기에 다시 빗속으로 들어가 마정석을 회수했다.
‘이번에는 되겠지?’
손에 든 마정석… 자이언트 샌드 웜을 잡고 얻은 마정석을 내려다보며, 이번에는 앞선 무리가 보여 줬던 광경이 연출 되리라 여겼다.
휘익….
툭….
기대감과 함께 마정석을 던졌다.
경계선을 넘어 바닥에 떨어진 마정석은 곧장 나의 기대와 예상을 충족시켜 줬다.
번쩍번쩍….
지이이이잉….
빛을 발한 마정석이 이내 게이트를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