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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59화 (159/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59)

‘정인영.’

잊을 리가 없었다.

살면서 그녀보다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더불어, 그런 출중한 외모로 날 죽이려고까지 했던 여자를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솔직히 그녀를 늘 생각했다거나 당시의 일을 자주 떠올리지는 않았다.

사건이 있고 얼마간은 그랬을지언정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점점 잊고 지낸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동굴 속에 처박혀 있던 AIR WIND를 보자마자, 그녀의 이름과 얼굴을 생생하게 떠올린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닮았군.’

처음 봤을 때부터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릴 정도로 예쁘장한 외모.

정인수라는 이름도 그렇고, 정인영의 이름을 들먹이며 누나라고 밝힌 놈은 확실히 그녀와 닮아 있었다.

‘왜 몰랐지?’

곧장 의문을 품었지만,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내 반응을 살피던 놈… 정인수가 입을 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기억하는 모양이군.”

그렇다는 뉘앙스를 한 번 더 표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누나는 촉망받는 헌터였다.”

말의 마침표가 찍히기도 전에 인정해 버렸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당시 정인영의 나이는 스물셋이었다.

B 클래스 검사였고, 3레벨이라고도 했었다.

물론,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실상은 10레벨 이상… 이후에 보여 준 실력이 충분히 그것을 증명했었다.

“각성 이후, 곧장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이 또한 바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B 클래스 하나만 보고도 영입의 조건은 충족이 될 테니까.

뭐, 나였다면 정인영의 뛰어난 외모만 보고도 당장에 모셔 왔을 듯… 킁!

“계약 조건은 실로 엄청났다. 누가 봐도 이제 갓 각성한 누나의 실력 그 이상… 어떠한 꿍꿍이가 있음이 분명했고, 의심도 했었다.”

정인수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가족인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누나의 외모는 빼어났고, 그것이 문제였다. 조직의 보스가 다른 의미로 누나를 데려오고 싶어 했거든.”

역시….

남자들 생각은 죄다 똑같다니까.

쩝!

입맛을 다시다가 급히 말했다.

“잠깐! 말 끊어서 미안한데, 하나만 먼저 묻자.”

“뭐지?”

“왜 조직이지? 보통은 길드라고 하지 않나?”

아까부터 이질감을 자아내던 의문이었다.

같은 맥락이라 봐도 좋겠지만, 느낌상 길드는 정식 모임 같고, 조직은 어째 범죄 집단 같다.

그런데도 굳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조직이라 낮춰 말하는 게 이상했다.

“우리는 조직이 맞다. 보통의 길드처럼 헌터를 육성하고, 던전과 게이트를 통해 활동하기보다는 어둡고, 더러운 일을 더 많이 하니까. 근본부터도 그렇고….”

정인수의 말투와 표정에서 진한 증오가 느껴졌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잠시 참기로 했다.

“그렇군. 이제 하던 얘기를 계속해 봐.”

식탁에 내려놨던 생수를 한 모금 마신 정인수가 이야기를 이어 갔다.

“보스의 총애와 관심이 남달랐기에 누나는 빠르게 성장할 거라 여겼다. 아니었다. 조직이 원하는 건 돈이지, 조직원의 성장이 아니었거든.”

“에? 고레벨이 되면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지 않나?”

“그렇지. 하지만, 레벨이 높아질수록 통제하기가 어렵고, 배신이나 배반의 위험도 커지니까, 조직의 입장에서는 원하지도, 지향하지도 않는다.”

“그렇겠군.”

바로 이해했다.

다시 말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그날… 사건이 있던 그날도 누나는 팀원들과 조직에서 내린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나섰다. 그리고 사고나 났지.”

정인수가 나를 똑바로 노려봤다.

증오와 분노 등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아….”

그날의 일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내 반응이 끝나기도 전에 정인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누나의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에 누워 있는 누나의 모습은 처참했다. 어린 나이의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 복받치는지, 정인수의 목소리가 점점 흔들렸다.

당장에 변명을 좀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잠시 틈을 준 정인수가 말을 이어 갔다.

“그날의 사고로 누나의 인생은 바뀌었다. 오랜 시간, 여러 번의 수술 끝에 간신히 목숨은 구했지만, 심하게 망가져 버린 몸 때문에 헌터로서의 생명은 완전히 끝이 났다.”

정인영이 살았다는 말에 내심 안도했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처럼 말을 흘렸다.

“헌터로서의 생명이 끝난 게 뭐가 대수인가? 일단 살았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에, 정인수가 더욱더 강렬한 분노를 표하며 나를 노려봤다.

“뭐가 대수냐고? 그게 네놈이 할 소리냐?”

“나도 죽을뻔했거든? 그건 엄연한 정당방위였다고!”

나도 모르게 욱해서 소리를 질렀다.

사실이었고, 진실이었고, 할 말도 많았다.

정인수와 내가 서로를 노려보며 동시에 이까지 부득부득 갈았다.

한참 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기 싸움을 이어갔다.

이대로는 끝이 없을 것 같아 내가 먼저 기를 죽였다.

“아, 됐고. 그래서? 다음 얘기나 계속해!”

정인수가 식탁을 주먹으로 내리치고는 조금 더 식식거렸다.

그러고는 약간의 흥분 상태를 유지한 채 이야기를 이어 갔다.

“누나의 수술비와 치료비는 엄청났다. 평범한 가정에서 부담하기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아니, 애초에 조직에서 내주지 않았다면, 수술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겠지.”

“흥, 그래도 복지 혜택은 좋았네.”

콧방귀에 비아냥을 듬뿍 담아 말했다.

하긴, 막말로 보스의 여자인데,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겠지.

하지만, 그건 그냥 내 수준의 평범한 생각일 뿐이었던 모양이다.

“훗, 복지라고? 웃기는 소리!”

“…??”

“무엇보다 돈을 중요시하고, 먼저 생각하는 게 우리 조직이라고 했다.”

“….”

“엄청난 액수의 수술비와 치료비는 모두 누나가 갚아야 할 빚이었단 소리다. 그것도 하루하루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와 함께 말이다.”

“헐….”

“그뿐만이 아니다. 누나가 갚아야 할 빚은 더 있었다.”

“…??”

“네가 훔쳐 간 신발, 그 검….”

정인수의 말에 곧장 허리에 찬 아수라 스워드를 손으로 잡았다.

“이, 이거?”

“그래, 아수라 스워드.”

입맛이 바로 씁쓸해졌다.

정인수가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있었다.

B 클래스라지만, 10레벨 남짓 되는 초보 검사가 쓰기에 5천만 원이나 하는 검은 솔직히 오버였다.

정인영을 예뻐한 조직의 보스가 검을 내줬을 테고, 그것을 잃어버렸으니 갚아야 할 빚에 추가된 것이 분명했다.

“누나는 빚을 갚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대체 이자가 얼마나 되기에… 시간도 많이 흘렀겠다, 레벨도 꽤 올랐을 텐데 말이야.”

그랬다.

3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때 1레벨이었던 나는 현재 50레벨이 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말도 안 되게 어려웠고, 개고생도 심했지만, 이후로는 남들보다 확실히 빠른 페이스였다.

그런 것들을 죄다 따진다 해도, 정인영의 실력이라면 40레벨은 찍었지 싶었다.

그 정도 레벨이라면 5천만 원이 아니라 1, 2억 정도는 우습지도 않을 터였다.

‘아니지, 어떤 자식 때문에 우리처럼 어마무시한 식비를 들이지도 않을 텐데…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그보다 훨씬 더 벌 수 있지 않나? 그런데 불가능했다고?’

해서, 이유를 높은 이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사고와 판단에 착오가 있었다.

“레벨? 좀 전에 내가 누나는 헌터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했던 걸 벌써 잊었나?”

“아….”

“누나는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만 했다. 개, 돼지만도 못한 더러운 놈들에게 몸을….”

정인수의 독기와 분노로 가득한 음성과 치를 떨어대는 몸짓… 흘러나온 말에서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조금 늦은 듯했지만, 정인수의 입에서 정인영의 안타까운 치부가 모두 나오는 것은 그와 그녀에게 너무나 몹쓸 짓을 하는 것이라 여겼다.

해서, 빠르게 그의 말을 막아섰다.

“아아! 그, 그만!”

간신히 말을 멈췄지만, 정인수는 온몸을 떨어대며,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려대고 있었다.

“미, 미안하다.”

저절로 사과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에, 정인수가 소리 내어 흐느꼈다.

다시금 진심 어린 사과를 하려는데, 그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늦었다. 이제 누나는 사과를 받지 못한다.”

지랄 같게도 정인수가 하는 말의 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들고 있던 생수병을 바닥에 떨어뜨릴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사건이 있던 날, 정인영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나와 지랄 같게 얽힌 사이였고, 직접적인 사인도 오식이 때문이었기에 죄책감 같은 건 거의 없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더불어, 불과 몇 분 전에는 정인영이 살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안심했고, 다행이라 여겼다.

다른 얘기들 때문에 크나큰 감정이나 파장은 없었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랜 병원 생활의 고생과 이어진 조직의 뭐 같은 복지에 고통받다가 끝내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얘기를 듣자, 잔잔한 줄 알았던 감정의 파도가 크게 너울졌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어떠한 리액션도 하지 못 했다.

이어진 정인수의 말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용서할 수 없… 힘이 없었… 각성… 채무 변제… 힘을 키… 복수의 칼… 누나의 AIR WIND….”

뭐, 듣지 않아도 얼추 예상이 되는 얘기들이긴 했다.

….

정인수의 긴 이야기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넋을 뺐다.

정신이 돌아오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밀려오는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사고 회로가 더디게 돌아갔다.

“후우우….”

계속되는 한숨과 함께 혼자서 생각들을 정리했다.

오랜 시간 그렇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날이 슬슬 밝아 오고 있었다.

….

인터넷을 통해 업체 하나를 찾았다.

바로 전화를 했다.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아, 그리고….”

“예, 예. 그것도 가능합니다.”

뭐든 다 된다는 광고에 전화를 건 것인데,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시원시원한 답변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내친김에 몇 가지를 더 부탁했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됐다.

약 2시간 후.

‘배달 완료’라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비대면 요구 사항까지 완벽한 서비스였다.

오식이를 대동한 채 집 밖으로 나왔다.

대문 앞에는 가장 먼저 요구했던 물건… 컨테이너가 실린 ‘탑차’가 서 있었다.

끼기긱….

컨테이너를 열었다.

커다란 종이 상자 두 개와 등산용 배낭 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

추가로 주문했던 물품들이었다.

“어디 보자….”

하나같이 묵직한 배낭을 열어 일일이 안을 확인했다.

주문한 내용 그대로의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깔끔한 일 처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오식이에게 말을 전했다.

“상자만 들어.”

오식이가 상자를 들어 집 안으로 옮겼다.

바로 놈들 앞에서 상자를 열고 안에 든 것을 쏟아 냈다.

수부우욱….

알록달록한 옷가지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B 구역 시장에 가면 넘치도록 볼 수 있는 아줌마 패션의 일 바지와 셔츠들이었다.

옷들을 보며 놈들은 물론, 린도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보호 장비를 모두 푼다. 실시!”

놈들에게 명령했다.

서로 눈치를 보고, 머뭇거리는 모습에 발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

“다들 귓구멍이 막혔어? 빨리들 못 움직여?”

그제야 놈들이 스멀스멀 몸을 움직였다.

때아닌 단체 스트립쇼가 벌어졌다.

“다 벗은 놈들은 이것들 주워 입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옷들을 발로 툭 걷어찼다.

몇몇 놈들이 다시 눈치를 보다가 꾸물꾸물 움직였다.

“야, 너!”

가장 먼저 옷을 입은 놈을 불러냈다.

놈이 엉거주춤하며 앞으로 나왔다.

곁에 있던 오식이를 향해 명령했다.

“꺾어!”

당장에 오식이가 불려 나온 놈의 팔을 비틀었다.

우두두둑!

“끄아아아악!”

놈이 빠져 버린 어깨를 감싼 채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무심한 표정과 단호함을 내비치며 놈들을 향해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면 목숨도 보장하지 않겠다.”

놈들이 두려운 표정으로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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