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58)
“커엉! 컹!”
마당에서 왕울이의 짖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집의 안과 밖에서 난리가 일었다.
벌컥!
닫혀 있던 방문이 격하게 열렸다.
센서 등으로 환해진 복도의 불빛에 침입자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됐다.
보호 장비로 얼굴을 가린 괴한이었다.
“웬 놈이냐?”
“죽어!”
채앵!
스슷! 촤아아악….
대놓고 목숨을 노리는 살기가 담긴 검을 막아내고서 자연스럽게 몸을 틀며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검 끝에 느낌이 왔고, 놈의 입에서는 이를 악문 신음이 흘러나왔다.
빠르게 방을 빠져나왔다.
이미 복도가 좁을 정도로 여럿의 괴한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주, 주인님!”
린의 다급한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려왔다.
시선을 뒤로 줄 틈이 없어 그냥 소리쳤다.
“쓸어버려! 다치지 말고!”
외침이 끝나기가 무섭게 등 뒤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몸을 낮추고는 앞을 막아선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적었다.
적들의 수도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죽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슷! 팟! 팟!
나름의 여유를 내비치며 괴한들의 다리만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살상은 최소화해도 움직임만큼은 철저하게 봉쇄하자는 의미였다.
촤아악….
“크윽!”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마주친 마지막 괴한의 아킬레스건을 끊었다.
인상을 구기며 나를 노려보는 놈을 향해 작게 말했다.
“그나마 이 정도가 다행인 줄 알아.”
콰직!
뒤쪽에서 둔탁하고,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노려보던 놈의 시선이 내 뒤로 넘어갔다.
이내, 눈동자가 찻잔만큼 커졌다.
“훗! 얼른 기절한 척이라도 하라고….”
다시금 놈에게 속삭이듯 말하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반도 채 내려오지 않았을 때, 놈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니, 둔탁하고, 끔찍한 소리가 먼저였었나?
“쯧!”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린이 이상한 형태로 꺾인 놈의 다리를 이제 막 던지듯 내려놓고 있었다.
놈은 게거품을 문 채, 척이 아닌 진짜 기절 상태가 된 듯했다.
타다닥….
잠시 기다린 틈을 타고 린이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빠르게 린의 상태를 살폈다.
“다친 데는 없지?”
“네, 주인님. 주인님은요?”
“나도 괜찮아.”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노파심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살려는 뒀지?”
새로운 보금자리로의 이사와 함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녀석들에게 한 가지 얘기를 해 둔 것이 있었다.
던전 밖에서는 물론, 던전 안에서도 최악의 상황이나 내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인간들을 해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팔다리를 부수고, 전투 불능을 만들지언정 목숨까지는 뺏지 말라는 의미로 아무리 상황이 지랄 같아도 살인까지 벌어지면, 그 뒷수습이나 사태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네, 당연하죠.”
그제야 안심이 됐… 아니, 제일 문제가 많은 녀석이 몇 걸음 앞에 있을 터라, 아직 마음을 놓는 것은 금물이었다.
걱정을 끝내기도 전에 둔탁한 소리와 요란 법석한 소리가 어우러졌다.
뻐어어억!
쿠당탕탕!
“뭐, 뭐야… 이놈은?”
“크아아아앙!”
“다들 조심… 으아아악!”
쿠우우웅!
쾅! 쾅… 뻐어억!
1층과 거실은 진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꽤 비싼 가격에 산 TV와 에어컨을 비롯한 전자 제품은 물론이고, ‘알티오’라 불리는 물소 괴물의 가죽으로 제작한 최고급 소파와 ‘타이런’의 껍질을 벗겨 만든 러그도 걸레가 되어 있었다.
‘헐… 저게 다 얼마짜린데….’
벽과 바닥도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깨진 창문으로 숭숭 들어오는 바람이 하늘거리는 커튼을 이리저리 날리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런 광경에 짜증이 확 일었다.
“하… 그냥 다 죽일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뱉었다.
진심 어린 살기가 뿜어져 나온 탓일까?
바로 옆에 있던 린이 조용히 물어 왔다.
“작전 변경인가요?”
….
한밤중에 벌어진 괴한의 침입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막을 내렸다.
당연히 우리의 완승… 아니, 집 안 전체가 엉망이 됐으니, 엄청난 재산 피해를 고려한다면 쌍방이 다 패자라 볼 수 있었다.
어쨌든.
20여 명이나 되는 괴한들이 거실 한 쪽에 찌그러져 있었다.
다들 어디 하나는 부러지고, 꺾인 채였고, 끙끙 앓는 소리를 연신 흘려대고 있었다.
“끄응….”
가실 길 없는 분노와 짜증을 억지로 누르며 놈들을 노려봤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다가 물음을 던졌다.
“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누군데,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거지?”
물음에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상처에 신음하기 급급한 모습들이었다.
기가 막혔다.
앉아 있던 의자를 세게 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소리에 놀라 장내가 살짝 소란해졌다.
“조용! 이제부터 묻는 말 외에 찍소리가 난다면 지옥이 뭔지 보여 주겠다.”
진심이 담긴 으름장을 놓았다.
앓는 소리마저 뚝 끊어졌다.
시선만으로 놈들을 죽 훑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놈을 하나 찾았다.
“너!”
손가락질과 함께 놈을 불렀다.
놈이 당황의 몸짓을 선보였다.
“이리 나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머뭇거림 뒤의 엉거주춤한 몸짓으로 놈이 앞으로 기어 나왔다.
“말해 봐, 네놈들이 누구인지.”
“….”
놈은 대꾸하지 않았다.
스윽….
발을 들어 놈의 허벅지에 가져다 댔다.
“한 번만 더 묻는다. 말해!”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놈의 허벅지에 가져다 댄 발을 지그시 눌렀다.
꾸우욱….
이내 놈의 입에서 신음이 쏟아졌다.
“크으흑….”
아랑곳없이 힘을 더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때였다.
무리 중에서 한 놈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만!”
놈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뭐지?”
내 물음에 부들부들 떨어대던 놈이 입을 열었다.
“그만해… 어차피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놈의 말이 이어졌다.
“조직에 대해 말하면 죽게 된다. 그러니….”
듣자마자 어처구니없는 소리라 여겼다.
해서, 중간에 말을 끊었다.
“이봐! 말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 죽을 거야.”
살벌한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오히려 그것이 더욱더 큰 공포가 됐지 싶다.
신음만 뱉어 내던 발아래 놈이 크게 움찔하는 것이 말이다.
조금 더 분위기를 조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 같아?”
물음과 동시에 오식이를 향해 턱짓을 했다.
녀석이 단번에 내 뜻을 알아듣고는 들고 있던 모닝스타를 놈의 머리통 위로 가져갔다.
“크륵… 한 방이면 끝난다.”
오식이의 거친 음성에 피식했다.
이어, 천천히 숫자를 헤아렸다.
“하나… 두울….”
숫자에 맞춰 오식이가 모닝스타를 들썩거렸다.
누가 봐도 셋에 휘갈길 뉘앙스였다.
“자, 잠깐!”
무리 중에서 나섰던 놈이 다시금 상황을 멈춰 세웠다.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를 듬뿍 담아 놈을 쳐다봤다.
한 번 더 부들거린 놈이 큰 결심을 한 듯이 입을 열었다.
“내, 내가 말하겠다. 그를 놔줘.”
놈을 보며 비아냥을 섞어 물었다.
“호오, 넌 말을 해도 되나 보지? 뭐, 이놈들의 대장쯤 되는 건가?”
내 물음에 잠시 틈을 준 놈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답했다.
“후우우… 아니… 어차피 난 죽은 목숨이니까.”
딱 들어도 뭔가 사정이 있어 보였다.
이거 저거 궁금한 것이 더 많아졌다.
놈의 얘기를 천천히 들어보기로 했다.
“좋아, 네 얘기를 들어 보겠어. 일단 자리를 옮기도록 하자.”
린과 오식이, 왕울이에게 놈들을 잘 감시하라 이르고는 놈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
“앉아.”
주방의 식탁을 사이에 두고 놈과 마주했다.
냉장고 문을 열며 물었다.
“마실 것 좀 줄까?”
배려를 가장한 여유의 표현이었다.
“그냥 물이면 돼.”
생수 두 병을 꺼내 놈에게 하나를 건넨 뒤, 뚜껑을 열고는 한 모금 마셨다.
놈이 얼굴에 쓴 보호 장비를 벗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자식… 역시, 한패였군.’
눈치들 챘겠지만, 놈은 나와 AIR WIND–31을 직거래 하려던 바로 그놈이었다.
“꿀꺽… 꿀꺽….”
목이 말랐던지, 놈은 생수를 반 이상 꿀꺽거렸다.
얌전히 생수병을 식탁에 내려놓은 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정인수, 헌터다.”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놈은 누가 봐도 헌터였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거실에 모여 있는 놈들도 죄다 각성자들이었다.
“알아. 레벨은 한 25에서 30쯤? 맞지?”
놈과 합을 섞지는 않았다.
오식이나 왕울이와 붙었을 듯.
하지만, 다른 놈들을 상대하면서 얼추 레벨을 측정할 수 있었다.
30레벨에 근접한 몇몇을 제외한 나머지는 끽해야 20레벨 내외.
해서, 놈도 그 정도 수준일 거라 여기며 던진 물음이었다.
순간, 쪽팔림이 들었다.
‘젠장….’
며칠 전, 직거래를 하러 나갔다가 갑작스럽게 느낀 살기에 줄행랑을 쳤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상황을 두고서 갑작스러웠다는 둥, 경황이 없었다는 둥, 장소가 어떻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별것 아니었다는 얘기들로 변명을 해댔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놈들의 수준이 떨어졌을 줄은 솔직히 생각도 못 했다.
‘아직 멀었군. 쩝!’
왕울이를 통해 얻은 감각을 조금 더 갈고 다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내 말에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30레벨이다.”
놈의 말투에는 상당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다.
50레벨인 지금의 내가 듣기에는 별것 아니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부분이었다.
놈은 아무리 봐도 20대 초반의 나이였고, 그때의 나는 특성의 개화조차 못 한 1레벨의 초라한 짐꾼이었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각성자들도 저만한 나이에 30레벨 이상 된다는 건 솔직히 어려운 일이었다.
“좋아, 자기소개는 그쯤 해 두고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놈을 재촉했다.
빠른 진행을 위해 먼저 물음을 던졌다.
“왜 날 노린 거지? AIR WIND 때문인가?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지?”
하다 보니 몇 개의 질문이 연달아 이어졌다.
이내 아차 싶었지만 놈은 차근히 질문에 답을 했다.
“맞아, AIR WIND 때문이야. 집은 판매 게시글의 IP를 추적했다.”
놈의 말에 눈을 몇 번이나 껌뻑거렸다.
IP로 집 주소를 알아냈다는 부분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구나. 몰랐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나중에는 나도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다시 질문을 던졌다.
“고작 AIR WIND 때문에 이런 짓을 한다고? 니들 아까 무슨 조직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번에도 질문을 던지는 중에 어이없음이 느껴졌다.
아무리 인기가 폭발하고, 가격이 올랐기로서니, 이깟 신발 하나에 조직이 움직이고, 한밤중에 목숨까지 노리며 쳐들어올까도 싶었다.
“고작이라… 네게는 그렇겠지.”
“엥?”
“네가 가지고 있는 AIR WIND는 특별한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 내 AIR WIND의 모습을 떠올렸다.
리미티드 에디션이긴 했지만, 그 외에 특별함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설마… 한정판 위의 특별판?’
그런 것들이 가끔 있다.
제조 공정 중에 오류나 불량 또는 어떤 사유로 인해, 유일한 제품이 되는 경우.
그게 아니라면, 특별한 의미의 시리얼 넘버를 가진 경우.
그럴 경우, 진정한 희귀품으로 분류되며, 진심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가 되는 것들 말이다.
‘확실해!’
분명히 그런 것이라 단정 지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난리가 벌어질 리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어진 놈의 말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아니, 내 입장에서는 더욱더 충격적인 얘기로 이어졌다.
“네가 가진 AIR WIND… 아니, 네가 훔친 AIR WIND는 내 누나의 것이다.”
“…??”
“모르는 척하지 마라. 정인영이라는 이름까지 잊지는 않았겠지?”
대애애애애앵….
누군가 내 머리를 해머로 내리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