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47)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리안느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렸다.
린과 오식이가 다리 없는 새들을 잘 유인한 덕분에 오롯이 마리안느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부릅!
가늘게 뜬 눈을 시전했다.
금색의 실을 찾기 위함이었다.
한 번 찾아봤다고,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엔 마리안느의 오른쪽 어깨 부근에 있었다.
“찾았다. 금방 끝낼 테니까 조금만 더 버텨!”
크게 외치고는 마리안느를 향해 뛰어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마리안느가 허공에다가 팔과 손을 휘저었다.
쐐애애액….
뒤통수로 날아드는 날카로운 소리와 섬뜩한 느낌에 급히 허리를 숙였다.
내 정수리를 스치고 지나간 다리 없는 새가 유턴하듯 돌아서서는 다시금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앞세운 아수라 스워드를 거둬들이며 옆으로 몸을 굴렸다.
“젠장!”
쓴소리가 바로 튀어나왔다.
휙! 휙!
마리안느의 손이 다시금 허공을 휘저었다.
또 다른 다리 없는 새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크!”
좁혔던 거리를 어쩔 수 없이 벌려야 했다.
린의 사과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뭔가를 잘못한 건 없었다.
“괜찮아! 일단, 다시 놈들의 시선을 돌리자!”
“네, 주인님.”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먼저 가까운 오식이 쪽으로 향했고, 교차하듯 돌아서는 린에게로 다가갔다.
다행히 한 놈이 오식이에게 붙었다.
‘좋아!’
비슷한 방식으로 린과 교차하며 나머지 한 놈을 떨어뜨리려 했다.
하지만, 놈은 끈질기게 나만 노렸다.
‘젠장, 죽일 수도 없고….’
짜증이 났지만, 그렇다고 놈들을 죽일 수가 없었다.
다섯….
놈들의 숫자를 다섯으로 유지해야만 했다.
앞선 용수철 광대도 그렇고, 지금의 다리 없는 새도 그렇고, 또 앞으로의 어떤 놈일지 모를 놈들도 그렇고….
일단은 다섯 마리가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뒤에는 그대로 그 숫자를 유지한다.
하나를 처리하면, 곧장 새로운 놈이 나타난다.
다섯을 해치울 때까지는 그렇다.
그렇게 다섯을 해치우고, 다섯을 유지하며 시간을 보내면 마리안느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하나라도 더 숫자를 줄이게 되면 마리안느는 그대로 숨어 버린다.
금색의 실을 끊어 버릴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말이다.
한 번 숨어 버린 마리안느는 다시 나오지 않는다.
남아 있는 놈들을 모두 처리할 때까지….
이후 다섯이 새롭게 등장하고 다시 다섯을 잡은 뒤에 다섯을 유지할 때까지 말이다.
“췟! 어쩔 수 없지.”
끈질기게 따라붙는 놈을 뒤에 달고서 마리안느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타다닥!
벽과 바닥을 번갈아 내딛고는 몸을 날렸다.
쐐애애액….
다리 없는 새의 공격을 한 번 피하고는 그대로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가가가가각….
거리 조절 실패로 검 끝이 벽면을 긁었다.
개의치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갔다.
티잉….
금색의 실이 아수라 스워드에 걸렸다.
있는 힘껏 팔과 허리를 비틀었다.
그그그그긋….
늘어지는 버팀과의 줄다리기가 잠시간 이어졌다.
하지만, 승리자는 나였다.
그그그그긋….
뚜둑… 뚝!
휘이익….
버티던 힘이 사라지고, 몸이 회전하며 휘청였다.
“앗! 주인님….”
다급함과 위험을 알리는 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틀면서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촤아아아….
터덕….
둔탁한 걸림과 함께 손맛이 전해졌다.
퍼덕! 퍽….
좌아아아악!
비스듬히 잘린 다리 없는 새가 바닥으로 추락하며 저만치 미끄러졌다.
운이 좋았다.
완전히 얻어걸린 케이스라 봐야 했다.
기쁨과 얼떨떨함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하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마리안느의 괴성이 지척에서 들려왔다.
고개가 멋대로 돌아갔다.
휘익!
지척….
진심,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마리안느가 있었다.
핏빛으로 물든 새빨간 눈으로 나를 노려본 채였다.
“크으….”
다시금 몸이 굳었다.
이대로라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내 몸은 꼼짝도 할 수 없이 굳어진 상태였고, 마리안느와는 고작 1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었으니 말이다.
여리고, 어여쁜 소녀의 모습을 한 마리안느의 레벨은 무려 45였다.
뭐, 내가 훨씬 더 레벨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전혀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뭐든 당하거나 일을 치를 확률은 높았다.
만약에 내가 수많은 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밝혀낸 정석의 공략법을 따르지 않은 채, 금색의 실이 아닌 무턱대고 마리안느를 공격했다면 분명히 큰일이 나도 났을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가장 완벽하고, 검증에 검증을 거친 공략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꼼짝할 수 없는 상태지만, 지척에서 살벌하게 나를 노려보는 마리안느의 해코지나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도 살이 떨리긴 하네….’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그럴 듯싶었다.
“스하아아아….”
마리안느가 괴성의 여운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나머지 다리 없는 새들은 린과 오식이가 진작 처리해 버렸다.
“후아아아….”
긴 한숨을 뱉어 내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린과 오식이가 바로 곁으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린이 다시금 사과했다.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 괜찮다니까. 네 잘못이 아닌걸.”
그랬다.
린은 정말 잘못한 게 없었다.
공격당할 위기에 처한 마리안느가 놈들을 조종해 나를 타깃으로 삼았을 뿐이었다.
“얼른 물약이나 마시자.”
회복 물약을 마시고는 곧장 이어진 3차전에 돌입했다.
빙빙빙….
팽이 병정 놈들이 천장을 뚫듯 모습을 드러내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
철저하게 공략법대로 움직였다.
팽이 병정 놈들에 이어 등장한 한 쪽 귀가 없는 토끼 놈들을 4차전에서 물리쳤다.
정석대로 움직이고, 모습을 드러낸 마리안느와 금색의 실도 하나씩 잘라냈다.
‘이제 하나 남았다.’
남은 금색의 실은 이제 하나였다.
클리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다.
“췟! 그나저나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가장 약한 놈들 다음으로 가장 강하고 까다로운 놈들을 상대해야 했다.
그만큼 여유를 가지고 컨디션 및 상황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이라고 봐도 좋을 타이밍에 지랄 같은 놈들이 앞을 막는 꼴이라 미래를 단정 짓기가 모호했다.
이미 눈치를 챈 이들도 있겠지만, 이제 곧 벌어질 마지막 싸움…. 대미를 장식할 놈들은 강철 말이었다.
“푸륵, 푸르륵… 히이이이힝!”
다리 없는 새들처럼 사방의 벽을 뚫고 나타나듯 강철 말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다섯 마리였다.
하지만, 지금껏 그 어떤 놈들보다 육중하고, 거대한 크기에 실제적인 공간의 비좁음을 느껴야만 했다.
또한, 놈들이 미친 듯이 뿜어내는 거침과 강인함에 정신적인 압박감도 지울 수가 없었다.
옹기종기….
우리는 방 안의 정 가운데에 삼각 편대를 이루듯 서로의 등을 반씩 기댄 채 똘똘 뭉쳐 있었다.
이 또한 정석의 공략법을 따른 것이었다.
“오식아, 이번엔 막지 말고 피하는 거 알지?”
“안다.”
상황을 상기시키듯 물은 내 말에 오식이가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진심과 진실이 다분하게 느껴졌다.
‘호오….’
오늘만큼 녀석이 진중하고, 믿음직하며, 기특한 적이 없는 듯했다.
미리 브리핑한 모든 작전과 계획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제대로 수행한 까닭이었다.
“다 끝내고 나가면 진짜 소 한 마리 잡아 준다!”
나 또한, 농담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말했다.
“푸릉! 푸르릉….”
“푸륵푸륵… 히이이이힝!”
“히이이이힝… 푸르르릉….”
….
놈들이 막바지에 다다른 열기와 흥분을 마구 쏟아 냈다.
파앗! 파앗!
빠각! 빠각!
바닥을 긁는 앞발굽의 소리도 때가 됐음을 말해 주듯 심상치 않았다.
“온다. 정신들 바짝 차려!”
외침과 함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놈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
순간, 놈들이 힘차게 바닥을 박차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섯 놈이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고 봐도 좋았다.
“둘, 셋!”
다급함에도 타이밍의 신호를 보내는 걸 잊지 않았다.
우리 역시도 거의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파앗! 팟! 팟!
천장에 거의 닿을 정도로 뛴 점프였다.
허공에서 잠시 머물렀고, 이내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 사이, 발바닥 아래에서는 굉음과 격렬한 뒤섞임의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앙!
우당탕탕!
놈들의 정신없는 울음소리도 함께였다.
“히이이이힝!”
“히잉! 히힝! 푸르르르….”
진심, 발을 디딜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로 난잡한 놈들의 뒤섞임 위로 착지한 뒤, 곧장 발바닥에 힘을 더했다.
파앗….
삐끗!
어디를 어떻게 밟았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디딤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몸의 중심이 흐트러졌다.
힘과 탄력도 모자란 듯했다.
‘이, 이런….’
위기를 느끼고는 몸을 억지로 비틀었다.
겨우겨우 난장판의 경계를 넘은 맨바닥에 떨어질 수 있었다.
쿠웅….
데굴데굴….
어깨부터 떨어지고, 볼품없이 바닥을 굴러야 하는 추잡한 꼴을 보여야 했지만 말이다.
“에고고….”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무사히 자리를 벗어난 린이 소리치며 내게로 달려왔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어어…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다.
쪽팔림에 얼굴은 달아올랐다.
이어, 오식이도 다시 합류했다.
놈들은 여전히 난장판에 개판인 상황을 이어가고 있었다.
바둥바둥….
얽히고설키고….
“푸푸! 푸르르릉….”
“히이이힝… 푸륵푸륵….”
쉼 없이 콧바람과 울음소리를 내며 서로들 마구잡이로 엉켜있고, 뒤섞여 있는 모양새가 참으로 가관이었다.
“두 마리인가?”
“네, 그런 듯싶어요.”
난리 블루스를 춰대는 놈들 사이에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사지를 늘어뜨린 채 뻗어 있는 강철 말이 두 놈 있었다.
강렬한 부딪침의 충격과 바둥거리는 아우성에 목숨을 잃은 놈들이었다.
“흠….”
누가 봐도 무식하고, 무모하기 그지없는 이 행동과 방법은 어이없게도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정석 플레이였다.
무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강철 말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저희끼리 부딪치게 하여 피해를 보게 한다는 나름의 계산된 전법이라고나 할까?
“단무지라고 하셨었죠?”
“응? 아아, 응….”
놈들의 공략법을 브리핑하면서 ‘단무지’라는 용어를 사용했었다.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 같다는 뜻이었다.
“되긴 되네요.”
“그러게… 쩝!”
입맛을 짧게 다시고는 서서히 엉킴과 뒤섞임을 풀고 일어서는 놈들을 주시했다.
어느새 깔려 있던 두 놈은 사라졌고, 벽을 통해 새로운 두 마리의 강철 말이 등장했다.
“자, 다시 가 보자!”
이번에는 실수와 쪽팔림 없이 성공하기를 내심 바라며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적당한 자리와 몰려 있는 놈들의 배치를 흐트러뜨리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
다다다닷!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우당탕탕!
두 번째 놈들의 무식한 돌격과 충돌이 이루어졌다.
파앗!
휘리리릭!
이번에는 안전한 도움닫기와 멋진 공중제비까지 선보이며 난장판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둘입니다.”
나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한 린이 빠르게 보고했다.
내 눈으로도 확인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문제를 떠올리기도 했다.
“아, 이러면 곤란한데….”
다섯을 잡아야 했다.
그래야 마리안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안 된다.
이하라면 다섯을 맞출 때까지….
이상이라면 남은 놈들을 처리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처음에 두 마리가 죽었고, 이번에도 두 마리가 죽었으니, 한 마리가 남은 상태였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기에 상황을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왠지 다음번에도 두 마리가 죽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단무지스러운 작전을 몇 번이나 더 해야만 했다.
“아, 미치겠네….”
난감과 짜증, 씁쓸함에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그때였다.
“한 마리….”
오식이가 의미심장한 투로 말하고는 여전히 난장판인 놈들을 향해 다가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