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41)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재력의 방벽으로 인해 리차드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차피 방벽 너머에 있는 터라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바로 돈 자루의 공격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이전까지는 리차드의 시선이 닿는 곳에 돈 자루가 떨어지니, 어느 정도 공격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지금부터는 그런 꼼수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로 린과 오식이에게는 리차드의 시선에 관한 얘기를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재력의 방벽을 공격하거나 전투가 시작되면 무조건 머리 위에서 돈 자루가 떨어지니, 항시 조심하고 피하라 일렀을 뿐이었다.
뭐, 그동안 수차례나 경험하면서 얼핏 눈치를 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게 따로 보고하거나 내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확률은 낮았다.
오식이라면 모를까, 린이라면 즉시 내게 알렸을 것이고, 눈치 빠른 린이 알아채지 못했다면, 오식이가 파악하는 건 어렵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항시 머리 위를 살피도록 해!”
한 번 더 돈 자루 공격을 일깨워 주고는 황금빛 방벽을 향해 한 움큼의 동전을 집어 던졌다.
휘이익!
태댕, 탱탱탱….
자잘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황금빛 방벽에 여러 개의 흠집이 생겼다.
날아가 부딪친 동전의 힘과 속도 등을 따졌을 때, 이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은 듯했다.
이는, 상황이 바뀌었지만, 재력의 방벽을 향한 동전 공격이 유효하다는 의미였다.
“일단은 좋아!”
낮게 읊조리고는 아수라 스워드를 뽑아 들었다.
곧바로 방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아아악!
있는 힘껏 아수라 스워드를 휘둘렀다.
카가가가가강!
확실한 손맛과 함께 길쭉한 검의 흔적이 황금빛 방벽에 새겨졌다.
“똑같군!”
역시나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절로 그려지는 입가의 미소와 만족의 끄덕임을 표하고는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2초쯤의 여유를 두고는 내가 서 있던 자리 위로 돈 자루가 떨어져 내렸다.
쿠우우우우웅!
동전을 집어 던졌던 위치쯤에 다다라서는 크게 소리쳤다.
“다들 동전으로 공격해! 오식이는 미리 자루부터 하나 작업하고!”
내 외침에 린과 오식이가 바로 움직였다.
휘익!
파아앗!
타닥!
휘익!
파아앗!
린은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가며 동전을 날려댔다.
당연히 린을 노리는 돈 자루가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린의 비호같은 몸놀림에 돈 자루의 공격은 몇 템포나 늦게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쿵쿵쿵!
오식이는 곧장 재력의 방벽을 향해 다가섰다.
이내 근처에 떨어져 있는 돈 자루를 집어 든 채, 강하게 후려쳤다.
부우우우웅!
퍼어어어엉….
좌르르르르륵!
단번에 돈 자루가 터지면서 안에 든 동전이 쏟아져 나왔다.
강렬한 후려침에 방벽이 흔들리고, 엄청난 대미지를 입어 큼직한 파손의 흔적이 생긴 게 먼저였다.
쿠우우우웅!
조금은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떨어지는 돈 자루를 피한 오식이는 크게 자리를 옮긴 뒤, 다시금 돈 자루를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퍼어어어엉….
좌르르르르륵!
쿵쿵쿵!
부우우웅!
퍼어어엉….
좌르르르륵!
같은 짓을 두어 번 더 반복한 오식이가 떨어지는 돈 자루를 피한 뒤에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런 녀석을 향해 바로 소리쳤다.
“이제 됐어! 뒤로 물러나!”
내 명령에 오식이가 방벽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러고는 방벽을 향해 동전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상황과 광경이 이어졌다.
재력의 방벽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는 동전을 집어 던지고, 떨어지는 돈 자루를 피한 뒤에 또다시 동전을 던지는 행위의 반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눈치를 챈 이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했던 무언가가 달라져 있음을 말이다.
그랬다.
대미지를 입은 방벽의 복구… 그것을 위한 금화의 폭발이 더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재력의 방벽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뒤에 보이는 가장 큰 변화였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갑부의 몰락!’ 내지는 ‘리차드의 폭망!’ 등으로 부르고, 해석했다.
방벽이 대미지를 입는 즉시 금화를 써서 복구하던 리차드가 더는 돈을 쓰지 못하는 모양새가 그와 딱 맞아떨어지는 모습이긴 했다.
어쨌든.
더는 금화의 폭발이나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는 재력의 방벽은 이제 단순한 벽에 불과해졌다.
뭐, 엄청나게 단단한 내구성을 자랑하긴 한다.
그래도 부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열심히 두드리고, 부수다 보면, 언젠가는 깨지고, 구멍이 뚫리며, 무너져 내린다.
그 후에 부서진 파편은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재력의 방벽을 어느 정도까지 부수느냐는 공격자의 마음이었다.
전체를 다 부숴도 되고, 일부… 건너편에 있는 리차드가 보이고, 그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까지만 부숴도 상관이 없었다.
“크르르… 보인다.”
같은 동전을 던져도 확실히 힘이 좋은 오식이 쪽에서 먼저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아직은 구멍이 너무 작았다.
나나 오식이는 턱도 없어 보였고, 제일 체구가 작은 린도 빠져나가지 못할 크기였다.
“계속 뚫어! 더 크게!”
오식이를 향해 소리치고는 하던 짓을 이어 나갔다.
어차피 나와 린이 재력의 방벽을 공격하는 것은 클리어가 아닌 부수적인 노림수였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터였다.
무슨 소리냐고?
그건 잠시 후에….
휘이이익!
투카아아아앙!
오식이가 압도적인 힘으로 점점 더 재력의 방벽에 뚫린 구멍을 넓혀 갔다.
어느새 린은 물론, 나까지도 지나갈 만큼이나 되는 크기가 되어 있었다.
‘시간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일몰까지의 시간을 대충 가늠해 봤다.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지금부터는 일몰까지의 타이밍이 무척이나 중요했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괜히 버티다가 죄다 날려 먹기 전에 일단 끝내자.’
결정을 내리고는 린을 향해 소리쳤다.
“린! 가자!”
“네, 주인님!”
이제 막 동전을 던지려던 린이 자세를 풀고는 방벽의 구멍을 향해 움직였다.
나 역시, 같은 곳을 향해 뛰어갔다.
오식이의 곁을 지나치며 빠르게 말했다.
“넌, 계속 뚫어!”
“알았다, 크르르!”
방벽의 구멍 앞에 도착했다.
머뭇거림 없이 구멍을 통과했다.
린이 곧장 뒤를 따라 들어왔다.
포그으은….
이제껏 있던 방벽 너머와는 다른 따스함과 포근함이 바로 느껴졌다.
“이런 느낌이었군.”
넘치는 정보 속에서 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고는 린을 잠시 쳐다봤다.
나만 알고 있던 터라 린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딱히 동요하거나 특별히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에 한 곳을 응시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린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당연히 리차드였다.
리차드 역시, 방벽을 넘어온 우리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알프레도에 의해 처음 등장하면서부터 재력의 방벽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까지 늘 여유롭고, 세상만사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느낌과 표정을 고수하던 리차드였다.
하지만, 지금은 몹시도 불편하고,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앓는 듯한 신음까지 흘리면서 말이다.
“끄으응….”
리차드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방벽 너머인 이곳에서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나 집요하게 우리를 노리던 돈 자루도 떨어지지 않았고,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리차드도 겁낼 필요가 없었다.
아니, 표정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오히려 그가 우리를 두려워한다고 보는 게 옳았다.
느낌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리차드는 나나 린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 또한 분명했다.
저택 3층의 보스인 리차드의 레벨이 겨우 35였거든….
분명, 35레벨은 높은 것이었다.
정원에서부터 시작해 저택의 3층까지 오르는 동안 상대한 그 어떤 괴물보다 높은 레벨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우리와 비교… 다들 알고 있는 대로 레벨 40에 오른 우리에게는 ‘겨우’라는 수식어를 붙일 충분한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더불어 그런 우리를 리차드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역시나 재력의 방벽이었다.
다들 보고, 들었다시피 리차드는 자신의 어마무시한 재력으로 방벽을 세우고, 침입자들의 거센 공격에 대항하고 있었다.
통계적으로 밝혀진 재력의 방벽을 부수고, 구멍을 뚫는 것이 가능한 최소 레벨은 45 언저리, 못해도 44레벨은 넘어야 했다.
실로 염치없고, 사기적인 짓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뭐, 최소 레벨이 45라고는 했지만, 그 이하도 방벽을 뚫을 수는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수의 인원이 강력한 스킬이나 공격력으로 한 곳만을 집중적으로 노려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더불어 마구잡이로 떨어지는 돈 자루를 피하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린은 재력의 방벽에 구멍을 뚫거나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같은 40레벨이지만, 힘과 공격력에서 동급 이상의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오식이만이 가능한 일이었고, 동전 던지기가 아니었으면 녀석도 힘들었을 게 분명했다.
결론은….
오식이 만세!
동전 던지기 만세!
크크크!
….
처억!
아수라 스워드를 들어 리차드에게 겨누었다.
그가 더욱더 두려운 눈빛과 낯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죽인다.”
그를 죽이겠다는 마음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듯하여 말까지 뱉어 냈다.
살기… 리차드에게 나의 살기를 느끼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고오오오….
“으으으….”
살의의 기운이 느껴진 것인지 리차드가 질린듯한 신음을 흘렸다.
눈빛과 낯빛은 더욱더 처량해지고, 어두워졌다.
파르르 떨리던 그의 입술이 조심스레 벌어졌다.
“사, 살려 주게… 내 목숨을 보장해 준다면, 더 큰 것을 주겠네.”
애절하게 목숨을 구걸하며 딜까지 걸어대는 리차드였다.
피식하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새삼 대단함을 느꼈다.
‘얼추 맞는군. 아무튼, 대단들 해.’
나는 리스닝 스킬을 통해 리차드가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각성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여러 번의 경험과 돌아가는 분위기, 찍어 맞추는 식 등으로 해서 주어진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대부분일 듯.
이곳 저주받은 저택 3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구걸하며, 좋은 것으로 보답하겠다는 리차드의 애원과 딜을 제대로 알아듣고 행동한 이들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행할 행동은 크게 두 가지쯤으로 분류가 될 터였다.
리차드를 죽여 버린다.
아니면,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난다.
뭐, 어느 쪽을 선택하든 본인의 마음대로였지만, 그에 따른 의미나 결과는 확연히 달랐다.
전자의 경우… 그러니까 ‘리차드를 죽여 버린다’를 선택하고, 일을 진행한다는 것은 클리어를 위한 방향과 전개라 할 수 있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겨우, 35레벨인 리차드를 죽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대로 겨누고 있는 검을 찔러 넣기만 하면 끝이다.
검에 찔린 리차드는 곧장 명을 다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이후, 2층에서처럼 ‘리차드 코어’라 불리는 것이 나타나고, 그것을 파괴하면 저주받은 저택 3층은 완전히 클리어가 된다.
당연히 저택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게이트가 열리기도 한다.
저주받은 저택에 도전하는 각성자들 대부분은 리차드를 죽이는 선택을 한다.
던전 자체의 클리어가 최종 목표이고, 더 두고 보거나 따로 작업을 할 이유와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다르다.
무조건 후자의 선택을 해야 했다.
왜냐고?
우리는 얻어야 할 게 많았고, 시간도 많았으니까.
스윽….
계획대로 리차드의 목에 겨눈 아수라 스워드를 거둬들였다.
두려움으로 가득하던 리차드의 눈빛과 표정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이어, 그가 내 앞으로 주먹 쥔 손을 내밀었다.
처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