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20)
잠시 후.
모든 이들이 한자리에 다시 모였다.
“준비가 끝난 것 같군요. 오늘 우리는 샤그란의 역사에….”
차크무트가 목소리를 깔며, 일장 연설을 늘어놨다.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옆에 있는 오식이와 마주 서 있는 비그의 얼굴을 비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힐끔… 힐끔….
린도 마찬가지였다.
뚫어지게 둘을 살피던 린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전까지는 몰랐는데, 둘이 엄청 닮았어요.”
바로 반박하듯 린의 귀에 속삭였다.
“오크는 죄다 비슷하게 생겼거든?”
하지만… 그러기에 둘은 정말로 닮아 있었다.
‘아아, 아니야! 그냥 그렇게 생각하니까, 닮아 보이는 걸 거야!’
끝까지 현실을 부정했다.
….
“여기 있습니다.”
차크무트가 내게 코바타를 내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답은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여 줬다.
식후 땡… 아니, 역사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의 코바타 타임이 이루어졌다.
이미 코바타를 피운 차크무트와 론, 파스트와 세타니를 제외한 이들이 잠시 눈치를 보다가 하나씩 불을 붙였다.
첫 타자는 비그였고, 이내 리트도 코바타 연기를 뿜어냈다.
우리 쪽에서는 내가 먼저 피우게 됐다.
치이익….
“뻐끔뻐끔… 스으읍….”
나름의 태를 신경 쓰며 코바타의 연기를 빨아들였다.
처음 피우는 담배였다.
살짝 목이 간지럽긴 했지만, 무난한 시연이 이루어졌다.
‘흠….’
론을 보며 골초를 운운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뭐, 사과할 마음은 없었다.
‘나쁘지는 않은데….’
이 정도면 누구나 피울 수 있겠다 싶을 만큼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나 딱히 뭔가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끝까지 다 피워야 효과나 나타나려나?’
타들어 가는 코바타를 보며 잠시 의문을 가졌다.
“….”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코바타를 피우는 모습을 본 린이 조심스럽게 불을 붙였다.
그러더니 천천히 연기를 빨아들였다.
“…커, 커헉! 콜록! 콜록콜록!”
완전 난리가 났다.
예쁜 얼굴이 더없이 망가질 정도였다.
옆에 있던 오식이도 덩달아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나 역시 깜짝 놀라서는 걱정을 담아 물었다.
“괜찮아?”
“콜록! 콜록콜록….”
전혀 괜찮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콜록거림은 물론, 눈물에 콧물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러움이 가득히 느껴졌다.
“안 되겠다. 자리에 앉아서 쉬어.”
오식이가 린을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이후로도 한동안 린은 괴로워했다.
그런 린을 차크무트가 매우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린의 코바타는 오식이가 피우게 됐다.
“뻐끔뻐끔… 후우우….”
녀석도 처음일 텐데, 그 누구보다 잘 피우는 모습을 보여 줬다.
엄청난 흡입력으로 연기를 빨아대고, 성능 좋은 가습기처럼 풍성한 연기를 뿜어냈다.
몇 모금이나 먼저 시작한 나보다 끝도 빨랐다.
“크르르….”
코바타를 다 피운 녀석이 기분 좋게 으르렁거렸다.
주먹을 쥐었다 펴 보기도 하고, 팔근육과 가슴근육 등을 확인하며, 상당히 만족해하기도 했다.
“어때?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내 물음에 고개를 크게 끄덕인 녀석이 한 번 더 근육을 자랑하는 포즈를 취했다.
“우와! 괴, 굉장하다.”
“그치? 내가 뭐랬어? 끝내준다고 했잖아!”
론과 녀석들도 환호와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서로 손을 잡고서 힘겨루기를 해댔고, 의자와 테이블을 들었다 놨다 해대며 장난을 쳐댔다.
“흐음….”
녀석들의 모습을 보니, 괜히 조바심이 났다.
시작부터 있었던 기대감이 한층 더 높아지기도 했다.
서둘러 코바타를 피웠다.
“뻐끔뻐끔… 후우우… 뻐끔뻐끔… 후우우우….”
마지막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천천히 코바타를 비벼 끄고는 몸 상태를 확인했다.
딱히 달라지거나 힘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원래 이런 건가?’
살짝 고개를 갸웃하고는 오식이를 쳐다봤다.
녀석이 당장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주저 없이 녀석의 손을 잡았다.
묵직함이 확 느껴졌다.
‘어라?’
곧장 불길함이 치솟았다.
‘아, 안 돼!’
속으로 생각했고, 막 입 밖으로 멈추라는 말을 뱉어 내려던 순간!
오식이가 맞잡은 손에 힘을 가했다.
꽈아아악!
손이 으스러지다 못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도 함께였다.
“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자 오식이가 당황하며 황급히 손을 놨다.
얼얼함과 통증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어쩌지 못한 채, 앓는 소리를 끊임없이 흘려 냈다.
“끄으으응….”
….
세타니가 바로 달려와 치유의 기도를 해 줬다.
그 덕에 통증도 가시고, 손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고마워.”
“후웃!”
감사의 인사에 세타니가 환하게 웃어 줬다.
충격의 여파가 머릿속에 남아서인지 살짝 둔감하게 느껴지는 손을 계속해서 움직여댔다.
서너 걸음쯤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오식이는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야, 괜찮아. 네 잘못도 아닌데, 뭐….”
일부러 손을 들어 흔들고는 괜찮음을 어필했다.
그래도 녀석의 굳은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린도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그려지지 않는 미소를 억지로 입가에 새기고는 최대한 밝게 답했다.
“어, 괜찮아. 능력 좋은 힐러가 우리 곁에 있다니, 완전 든든하다.”
말과 함께 세타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나저나….’
린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어째 코바타가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린은 아예 시도조차 못 할 정도였고, 코바타를 끝까지 다 피운 나는 아무런 효험도 없는 것이 말이다.
때마침 곁으로 다가온 차크무트가 나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코바타는 오크 족에게만 효험이 있는 걸까요?”
확실치는 않지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옳을 듯했다.
“아마도요. 뭐, 저나 린이 특이한 체질일 수도 있겠죠. 훗날, 여러 방면으로 다시 시험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차크무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딱히 더 나눌 얘기가 없기에 눈짓을 한 번 보내고는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생각을 마친 차크무트가 변경된 작전을 브리핑했다.
선두에 나서야 할 내가 뒤로 빠져 서포트 자리에 서게 됐다.
또한, 세타니의 보호를 맡았던 파스트 대신에 린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괜찮겠지요?”
차크무트가 파스트에게 물었다.
지팡이를 버리고, 언월도와 비슷해 보이는 거대한 창을 든 파스트가 자신 있게 답했다.
“한바탕 놀아볼 준비가 되었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모든 준비가 끝났다.
다들 결의에 찬 눈빛을 주고받은 뒤, 밖으로 나왔다.
….
마부투의 전경은 칠흑과도 같았다.
파스트의 명령에 모든 불빛을 꺼 놓았기 때문이었고, 정찰조의 늦은 귀환에 혹시라도 놈들이 주변을 살폈을 경우,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주인님.”
린이 허공을 향해 시선을 주며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별 무리가 가득히 수 놓인 밤하늘에 커다란 붉은 만월이 떠올라 있었다.
주변에서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게 혼잣말을 흘렸다.
“이제 좀 역사와 똑같아 보이네.”
붉은 만월과 함께 등장한다는 빛나는 잿빛 갑옷의 위대한 왕과 7인의 영웅, 그리고 신녀.
역사에 기록된 것과 똑같은 광경이 연출됐다.
비록, 그러한 모습을 우리끼리만 보고, 느껴야 한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결과도 똑같으면 좋으련만….’
애써 감추며 드러내지 않았던 불안감과 초조함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주먹을 불끈 쥐고는 서서히 커지려는 긴장감을 다스렸다.
그리고 힘차게 전진하는 차크무트의 뒤를 따라 크게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땅을 구르는 힘찬 발소리는 물론, 비장한 표정과 눈빛들.
그에, 주변의 공기마저 경건함과 비장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자, 잠시만요!”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목소리에 비장했던 분위기가 홀딱 깨졌다.
힘차게 전진하던 발걸음이 멈추고,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비그가 그곳에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잊은 게 있어서요.”
미안함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비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떨려댔고, 상기되어 있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한숨 소리도 들려왔다.
“알았다. 시간을 주마.”
차크무트의 허락이 떨어졌다.
애써 차분함을 유지하려는 뉘앙스가 짙게 느껴졌다.
“가, 감사합니다. 곧장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크게 허리를 굽신거린 비그가 이내 어딘가로 뛰어갔다.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 더 맥이 빠진 분위기가 연출됐다.
자칫 침묵으로 넘어갈 뻔한 분위기를 뚫고서 론의 투덜거림이 날아들었다.
“에휴, 저 자식은 꼭 중요한 상황에서 이러더라?”
곧장 리트가 론의 말을 거들었다.
“그러게 말이야. 오늘 낮에도 그러더니만….”
보호 차원에서 마부투를 떠나 있도록 했던 삼총사가 난데없이 마을로 돌아갔던 이유와 원인도 비그 녀석 때문이었다는 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힐끔….
나도 모르게 오식이를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회피했다.
입맛을 다시며 작게 말을 흐렸다.
“쩝! 장 트러블이라도 걸린 건가?”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긴장된 상황에서 급 똥이 마렵거나 배가 아픈….
비그 녀석도 그런 타입이 아닐까 싶었다.
뭐, 평소에 좀 많이 먹어야 말이지….
“장 트러블? 그게 뭐야?”
옆에 있던 세타니가 내게 물어왔다.
세타니를 향해 시선을 내리고는 답해줬다.
“아, 화장실… 아까 보니까 표정이 그런 것 같아서.”
“음… 아닌데?”
“응? 아니라고? 그럼, 뭐야?”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세타니가 빙긋 웃었다.
그러면서 확신한다는 투로 말했다.
“기도!”
“엥? 기도?”
“응! 비그는 이럴 때 꼭 혼자서 기도를 해.”
“너처럼?”
“아니, 나랑은 좀 달라.”
고개가 갸웃해졌다.
다시금 입가에 미소를 그린 세타니가 말을 이었다.
“비그는 돌아가신 엄마의 유품에 기도를 해.”
“아아….”
“비그 말로는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는 날에는 응답도 해 준다는데, 안타깝지만 우린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다시금 고개가 갸웃해지려 했다.
그 틈을 비집고, 론이 끼어들었다.
“응답은 무슨… 그거 다 거짓말이야! 어떻게 그런 돌에서 빛이 나냐? 말이 안 되지!”
론의 말에 머릿속이 번쩍했다.
동시에 린과 오식이도 반응을 보였다.
“…!!”
“핫….”
잠시간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재빨리 세타니를 향해 물었다.
“도, 돌이 빛난다고?”
“응? 아아, 응… 그런다고… 하지만….”
“어, 어디야?”
“응?”
“비그네 집이 어디냐고!”
갑작스러운 내 격분과 흥분에 세타니의 얼굴에 놀람이 들어섰다.
사정을 모르는 다른 이들도 관심과 의아함을 내비쳤다.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빠, 빨리! 비그네 집이 어디야?”
내 다그침에 론이 대신 대답했다.
“저, 저쪽….”
론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을 확인하고는 냅다 뛰었다.
오식이와 린도 곧장 뒤를 따랐다.
몇 개의 천막이 동시에 눈에 들어왔다.
죄다 불이 꺼져 있고, 기척도 없기에 하나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어디지?”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물음이었다.
뒤를 따르던 린이 나를 앞질러 가며 소리쳤다.
“이쪽이에요.”
린을 따라 다시 움직였다.
린은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천막 하나를 향해 뛰어갔고, 그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 맞아?”
“네. 확실해요.”
자신 있게 말하는 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고는 비그의 이름을 부르며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비그! 안에 있어?”
바깥보다 더욱더 어둑한 천막 안의 공간에서 비그의 놀란 반응이 들려왔다.
“네?”
그 순간.
파아아아앗!
순식간에 천막 안을 밝게 비추는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