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19)
의문과 의심을 대놓고 표하는 내 표정을 본 오식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아니다. 인정을 받은 루파(오크 전사)만이 가능하다.”
“야, 가문이니, 혈통이니 하는 건?”
“그건….”
오식이가 살짝 당황의 빛을 발했다.
이어, 약간의 귀찮음을 드러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전사의 상징이 가문의 문장으로 사용된 것은 차크무트 시대부터다.”
오식이의 길고, 복잡한 설명이 조금 더 이어졌다.
대충 정리를 하자면….
전사의 상징은 차크무트가 왕위에 오르기 전과 후로 그 쓰임새나 가치가 크게 나뉘게 된다.
어떠한 공을 세우거나 특별한 일을 앞둔 오크 전사에게 주어진다는 점은 비슷했다.
족장 이상의 위치에 있는 자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는 룰도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따로 관리를 한다거나 하는 일이 없기에 사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새길 수 있었다.
나름으로 인정은 하지만, 업적과 진위를 판가름할 수 없기에 딱히 효용 가치는 크게 없었다고나 할까?
차크무트가 왕위에 오른 이후부터는 전사의 상징에 관한 법이 만들어지고,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진다.
세워야 하는 공의 수준이 높아졌고, 인정과 허락 또한 왕만의 권한으로 바뀌었다.
해서, 전사의 상징을 허락받은 이들은 어디를 가든, 누구에게나 대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선조의 업적과 공을 기리자는 의미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가문의 증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멋대로 전사의 상징을 새기거나 그것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자가 있다면, 큰 벌을 받아야만 했다.
“전사의 상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어떻게 구분하지?”
“바르바르의 약초다.”
바르바르 약초는 그리느브래크의 전역에서 나고 자라는 상처 치료제였다.
흔하게 구할 수 있음에도 효능은 자부심을 가질 정도라나?
다들 알겠지만, 오크는 애초부터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회복력을 자랑했다.
웬만한 상처는 단 몇 시간 만에… 제법 큰 상처도 며칠 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해서, 그냥 새긴 전사의 상징은 정말로 무의미한 짓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기에 정식으로 인정을 받고 전사의 상징을 새겨 넣을 때 사용하는 것이 ‘타트’였다.
타트는 바르바르와 정반대의 효능을 가진 식물로 오크의 상처를 잘 아물지 않게 하는 독초였다.
그것을 물에 희석하여 전사의 상징을 새기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재차 발라 상징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
그런 의미로 타트는 오래전부터 오크들 사이에서 마음대로 사용하거나 소지하면 안 되는 불법과 금지 품목의 식물이었다.
족장 이상의 위치에 있는 자가 인정하고 허락해야만 전사의 상징을 새길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룰을 어기고, 몰래 새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지만….
아무튼.
이러나저러나 몸에 상처처럼 새긴 전사의 상징이다.
그냥 둬도 알아서 치료가 되는 마당에 효능이 좋은 상처 치료제를 바른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될 터.
왕의 허락 없이 제멋대로 새긴 가짜 전사의 상징은 바로 들통이 나기 마련이었다.
“뭐야? 그럼, 약초나 오크의 회복력으로도 전사의 상징은 지워지지 않는 거야?”
물음을 뱉어 내면서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식이의 발바닥에 새겨진 표식은 지워지지 않는 것 같았고, 따로 다시 새기거나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 진짜 전사의 상징은 바르바르의 약초로도 지울 수가 없다.”
“어째서지? 어떻게 가능한 거지?”
“그건….”
곧장 대답하려다가 잠시 말을 끊은 오식이가 슬쩍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녀석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론 일행과 세타니가 있었다.
관련이 있는 듯했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기에 재촉했다.
“뭔데?”
“세타니… 신녀 때문이다.”
“…??”
고개를 갸웃했다.
오식이가 상체를 숙였다.
표정에서부터 뭔가 비밀스러운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게 느껴졌다.
나도 그랬고,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린도 본능적으로 귀를 기울이며, 바짝 다가섰다.
오식이가 한껏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속닥속닥….”
목소리를 낮추고, 비밀스럽게 속삭인 오식이의 말에 나와 린은 같은 반응을 보였다.
“헐….”
그리고 여전히 론 일행과 속닥이고 있는 세타니를 동시에 쳐다봤다.
그런 우리를 잠시 기다린 오식이가 나머지 얘기를 계속해서 들려줬다.
앞서도 말했듯이 전사의 상징은 치유와 회복,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말끔히 지울 수가 있었다.
그냥 생살을 파 새겨 넣거나 타트를 이용하던 시기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차크무트가 왕위에 오른 뒤, 전사의 상징에 관한 법을 만들고, 철저하게 관리를 하면서부터는 그런 문제(?)들이 사라졌다.
아니, 한 번 새겨 넣은 전사의 상징을 특별한 방법… 해당 부위를 완전히 도려내거나 하는 등의 방법 외에는 지울 수 없게 되면서부터 그런 것들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게 옳을 듯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세타니… 신녀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참고로 세타니는 그리느브래크의 역사에서 최초의 신녀로 기록된다.
뭐, 이전에도 세타니와 같거나 비슷한 이들이 있었겠지만, 정확한 명칭이나 활약이 기록된 것은 세타니가 최초였다.
이후, 신녀를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 차크무트는 물론, 후대의 왕들도 무한한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느브래크의 전 지역을 샅샅이 뒤져, 신녀의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을 찾아내고, 막대한 후원과 최고의 대우로 모시며, 샤그란의 평화와 영광을 도모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들의 기도와 치유 능력은 오크들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회복력조차 월등히 뛰어넘고, 극대화시킬 만큼 막강했으니까.
또한, 다그블 같은 반역의 무리가 신녀의 힘과 도움을 받게 된다면, 그리느브래크는 또다시 암흑의 길로 접어들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신녀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은 누가 봐도 당연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기도로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는 신녀의 피가 오크에게는 치명적인 독과 다름이 없다는 아이러니함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와중에 웃기고도 신기한 것은 독성이 루파들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챠큰(일반 오크)이나 로틴(여자 오크)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 신녀의 피가 오로지 전사 타입인 루파에게만은 치명적이었다.
적은 양으로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일정량 이상이 되면 피부와 뼈를 녹이고,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다.
그러니 더더욱 신녀들의 보호… 관리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차크무트는 당연히 그것을 비밀에 부쳤다.
그러다가 새삼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바로 지금껏 얘기한 전사의 상징… 신녀의 피로 그것을 새기면 영구적인 새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차크무트의 엉뚱한 상상은 성공했고, 현실이 됐다.
한 번 새긴 전사의 상징은 해당 부위를 도려내거나 잘라내지 않는 이상 절대로 지워지지 않았고, 흔적 또한 없앨 수 없었다.
뭐, 여기서 끝이라면, 차크무트가 한 짓은 정말로 엉뚱하기만 한 에피소드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 그의 위대한 업적들에 획 하나를 추가하는 일이 이어졌다.
신녀의 피로 전사의 상징을 새겨 넣은 루파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내성을 갖게 됐던 것이다.
마치, 약한 독부터 시작해 강한 독을 수년간 몸에 조금씩 주입하여 수련한다는 ‘만독불침’이나 항체를 이용해 서서히 병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치료법처럼 말이다.
“그래서 가문의 순수 혈통… 그 중에서도 루파들이 태어나면, 바로 문장을 새겨 넣는 거구나?”
“그렇다.”
물론, 우연히 알게 되고, 벌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샤그란… 루파들에게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며, 차크무트를 찬양하고 떠받드는 또 다른 업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되는 놈은 뭐를 해도 된다더니만… 쩝!’
부러움에 씁쓸해지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던 중,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비그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정확히는 오식이를 향해서였다.
“저기….”
비그가 상당히 부끄러워하며 운을 띄웠다.
오식이의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나와 린도 호기심을 갖고 둘을 쳐다봤다.
머뭇거리는 비그를 향해 오식이가 다소 퉁명스러운 뉘앙스를 내비치며 물었다.
“뭐냐?”
오식이의 물음에도 뜸을 들이던 비그가 한참 만에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저희가 전사의 상징을 새기기로 했거든요. 파스트님께 허락도 받았어요.”
“안다.”
“아, 알고 계셨구나….”
비그가 말끝을 흐리며 잠시 틈을 줬다.
답답한 감이 있었지만, 참고 기다렸다.
비그의 입술이 다시 열렸다.
“론은 마부투(희망)를 새긴데요. 리트는 란무(용기)를 새기기로 했고요.”
“다들 좋은 뜻을 골랐구나.”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요….”
“…??”
“저는 란타(용맹)를… 그러니, 제게 스승님의 문장을 새겨주실 수 있을까요?”
비그가 눈을 질끈 감으며, 용기를 짜내듯이 말했다.
그런 비그를 향해 오식이가 이유를 물었다.
“왜지?”
오식이의 물음에 비그는 제법 큰 소리로 답했다.
여전히 눈은 질끈 감은 채였다.
“스승님처럼 용맹하고, 멋진 전사가 되고 싶어서요!”
론과 리트, 그리고 세타니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 쏟아졌다.
린도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식이의 다음 반응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스윽….
오식이가 손을 뻗어 비그의 머리 쪽으로 가져갔다.
‘꿀밤? 아니, 쓰다듬어 주려는 건가?’
느낌상은 쓰다듬음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비그의 머리로 향하던 오식이의 손길이 갑자기 멈칫했다.
그러더니 이내 방향을 바꾸면서 비그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토닥토닥….
가벼운 토닥임과 함께 오식이가 말했다.
“그랬구나… 좋다, 내가 멋지게 새겨 주마.”
엄청나게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느낌.
정말이지 평소의 녀석과는 전혀 어울리지 말투와 인자한 표정 등에 나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이 자식… 아무리 칭찬이 좋다지만, 어떻게 이런… 흐미!’
몸을 떨어대는 내 반응과 미간을 찌푸린 표정을 본 린이 ‘풉!’하며 작게 웃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나 린의 반응을 전혀 보지 못한 오식이와 비그는 사제 간의 정을 뿜뿜하며, 전사의 상징을 새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모습이 하도 징그럽고, 꼴불견이라 아예 밖으로 나와 버렸다.
“아우….”
밖으로 나와서도 진저리를 쳤다.
팔뚝에 돋아난 소름을 문질러 지우기도 했다.
나를 따라나선 린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러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앗!”
“응? 왜 그래?”
영문을 몰라 물었다.
원래도 큰 눈을 더욱더 크게 뜨고서는 나를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던 린이 입을 열었다.
“주인님. 아직 전사의 상징이 가문의 문장이 되기 전인 거죠?”
“그렇지. 차크무트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그렇게 된다고 했으니까, 아직 한참이나 멀었지.”
“그렇다면 혹시….”
“응? 혹시 뭐… 헉!”
되묻던 중에 깨달았다.
너무 놀라서 입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건물 안에 있기에 보이지 않는 오식이와 비그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아, 아니겠지?”
“맞는 것 같은데요?”
“에이, 설마… 아닐 거야….”
믿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