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97)
31레벨이 되기를 기다렸다.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서도 몇 번이나 말했고, 당연한 말이지만, 각성자들은 레벨 업을 통해 강해진다.
정확히는 레벨 업으로 인해 추가되는 스킬과 해당 레벨에 오르기까지의 노력, 수련, 경험 등이 어우러져 그렇게 된다.
게임처럼 힘이나 민첩 등의 스테이터스를 포인트로 찍거나 레벨 업마다 알아서 능력치가 오르는 것은 아니란 소리.
또한, 본인이 가진 신체적 스펙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같은 직업과 같은 레벨, 똑같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각성자들의 능력치나 강함이 똑같다고 할 수는 없었다.
꾸준히 신체를 단련하고, 정진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남들보다 훨씬 더 척박한 조건 속에서 사지를 넘나든 자와 돈이든 뭐든 간에 편하게 버스를 타고 레벨을 올린 자.
타고나기를 강골로 태어난 자와 병약한 자 등등….
강함의 차이를 벌어지게 하는 요소는 다양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무언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뭐, 자타가 공인하기에 제법 멀쩡한 허우대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별 볼 일이 없었다.
짐꾼으로 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진심 살기 위해서 기본적인 뜀박질이나 최소의 근력 운동을 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어디 가서 내세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내가 변했다는 것… 더불어 남들보다 특별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약 1년 전쯤이었다.
냥이에게 플로리 사냥을 도맡긴 후, 체력 단련을 하던 그때 말이다.
당시, 체력 단련의 효과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은 물론, 본보기로 삼았던 전설의 헌터 ‘오야타마’를 능가하는 성장 속도에 나조차도 놀랐을 정도였으니까.
또한, 그런 이유가 오식이나 냥이의 영향을 받아서라는 것도 얼핏 깨달았었다.
어느 정도 목표치를 채운 후에는 체력 단련을 잠시 중단했었다.
이후에도 대놓고, 능력치를 올리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사냥과 레벨 업에 따라 조금씩 성장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그러던 중… 그러니까 로레나를 잡으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좀 더 정확히는 내가 레벨 30을 찍고 난 후부터였다.
진작부터 오식이는 로레나를 한 방에 보낼 정도의 경악스러운 힘의 능력치와 전투력을 보여 줬다.
하지만, 같은 레벨인 나는 아무리 해도 그에 미치지 못했다.
뭐, 타고난 신체적 스펙의 차이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는 해도, 그 격차가 너무 나기에 이상했고, 불만이었다.
해서, 매일 같이 체력 단련에 몰두했다.
초반엔 놀라울 정도로 힘이 붙었다.
이런 식이라면 금방 오식이를 능가해 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고는 완전히 정체되어 버렸다.
그즈음, 린이 30레벨이 되었다.
이미 레벨 차이가 나는 고양이 놈들은 전혀 린의 상대도 되지 않았고, 29레벨 때까지만 해도 곁에 가기조차 망설이던 로레나에 대한 두려움마저도 떨쳐 냈다.
마음가짐뿐만이 아니었다.
직접 로레나와 맞서면서 보여 준 린의 실력… 특히나 민첩성 면에서는 로레나를 거뜬히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반대로 파워 면에서는 한참이나 떨어지는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린을 보며, 민첩성 훈련에 돌입했다.
역시나 초반에는 빠른 성장을 보였고, 이후에는 완전히 멈춰 버린 결과를 얻게 됐다.
솔직히 이전보다 강하고, 빠르게 성장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힘에서는 오식이에게 밀리고, 빠르기에서는 린을 따라갈 수 없었다.
좋게 말하면 힘과 민첩성을 고루 갖춘 균형적인 상태라 말할 수 있지만, 왠지 특출남이 없는 어정쩡한 상태 같다는 게 불만이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성장이 완전히 멈춘 이유가 레벨 때문은 아닐까?’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정해져 있기에 아무리 쏟아부어도 딱 그만큼만 가지거나 얻을 수 있는 단순한 이치.
해서, 초반의 빠른 성장은 모자랐던 부분을 채우느라 그랬고, 30레벨까지의 한계를 채운 후에는 성장이 멈춘다는 가설이었다.
‘확인이 필요해.’
그러기 위해서는 31레벨이 되어야만 했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흐흐, 완전 대박인데 말이지.’
게임처럼 스테이터스나 포인트가 없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그것도 엄청나게 노력해야만 강해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특별한 직업과 녀석들 덕분에 레벨에 걸맞은… 아니, 그 이상으로 단숨에 강해질 수 있는 상태라면, 이건 말할 것도 없는 초대박에 개이득이었다.
….
“좋아! 당장에 수련이다!”
기대감을 한껏 품고서 체력 단련에 돌입했다.
“헛둘! 헛둘!”
내가 세웠던 가설이 옳았다.
완전히 멈춰 버렸던 성장의 리미트가 풀려 버렸다.
체력 단련을 하면 하는 대로 능력치가 올라갔다.
“좋아! 최고야! 역시, 난 특별했어! 크하하하하!”
신이 나고 기뻐서 힘든 줄도 몰랐다.
이제는 믿고 맡겨도 될 사냥을 오식이와 린에게 모두 전담시키고는 오로지 체력 단련에만 몰두했다.
그렇게 며칠 후.
조금씩 느려지던 성장세가 완전히 멈춰 버렸다.
“이게 끝인가?”
살짝 아쉬움이 드는 결과였지만, 여기서 끝이 아님을 알기에 만족했다.
….
31레벨이 담을 수 있는 최대의 능력치를 얻었으니, 얼마나 강해졌는지 테스트를 해 봐야 했다.
“훗!”
그냥 느낌만으로도 자신감이 넘쳐났다.
“침입… 냐악!”
“시끄럽… 캬악!”
“냐양? 케엑!”
아지랑이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여섯 마리의 고양이 놈들은 제대로 대사를 뱉어 내기도 전에 목숨 줄을 내놓아야만 했다.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정확히 1분… 로레나가 지랄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나타나는 그 시간이 남아돌고 있었다.
‘이쯤이면 되겠지?’
로레나가 등장하는 위치에서 약 5미터쯤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껏 차오른 자신감이나 느낌상으로는 조금 더 가까이 붙어도 될 듯했지만, 혹시라도 모르는 일이기에 일단은 거리를 뒀다.
몇 초 뒤, 로레나의 지랄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호호호호호호호! 오호호호호호호호!”
지금껏 몇백 번을 들었지만,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정말이지 격한 짜증만을 불러일으키는 웃음소리였다.
“쓰읍! 먼저 죽일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지랄 같은 퍼포먼스가 끝난 후에야 로레나를 공격할 수 있다는 더 지랄 같은 룰이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다.
어쨌거나.
당장에 기품의 아우라를 몸에 두른 로레나가 표독스럽게 외쳐댔다.
“이런, 미천한 것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러고는 나를 향해 깃털을 날려댔다.
슈슉! 슉! 슉….
제자리에 서서는 아수라 스워드를 가볍게 휘둘러 깃털들을 죄다 튕겨 냈다.
티딩! 팅! 투둑, 툭….
‘확실히 느려졌군.’
깃털의 속도가 느려졌을 리는 없었다.
내가 그만큼 빨라졌기에 느려 보인다는 게 옳았다.
뭐가 됐든, 이제 로레나의 깃털 공격은 전혀 무섭거나 주의해야 할 수준조차 되지 않았다.
‘열여덟, 열아홉, 스물!’
20발의 깃털을 모두 다 튕겨내고는 로레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나를 향해 로레나가 소리를 질렀다.
“당장 꺼지지 못해?”
그러더니 부채를 휘둘렀다.
아수라 스워드로 가볍게 부채를 막아내며 응대했다.
“너나 꺼지시지!”
이어, 아수라 스워드를 크게 휘둘렀다.
그에, 부채를 놓치지는 않았지만, 로레나의 팔이 저만치 튕겨 나갔다.
번뜩!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눈을 빛내며, 로레나의 이마를 향해 아수라 스워드를 내리쳤다.
린에게서 배운 먼지 털기… 아니, 끊어치기였다.
콰아악!
검으로 내려친 것 치고는 조금 묘한 소리가 났다.
아수라 스워드의 검 날이 기품의 아우라를 파고들며 박혀 버린 결과였다.
‘호오!’
이전까지는 아무리 강하게 내리쳐도 매번 튕겨 나가기 일쑤였었다.
여전히 오식이와 비교할 바는 안 되지만, 확실히 내가 강해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이얍! 으라차! 뒈져 버려라!”
한껏 차올라 있던 자신감을 조금 더 끌어 올린 채, 융단폭격과도 같은 공격을 퍼부었다.
콰직! 콰지직! 콰직….
아수라 스워드가 휘둘러질 때마다 기품의 아우라가 찢어지고, 부서졌다.
그러다 결국, 로레나의 마지막 공격이자, 최후의 발악이 터져 나오기에 이르렀다.
“당장 꺼져….”
시작부터 고막을 자극하고, 최고 음에 다다랐을 때는 자못 심각한 대미지를 주는 그녀의 괴성이었다.
해서, 크게 벌어진 로레나의 입에 거침없이 아수라 스워드를 찔러 넣었다.
푸우욱!
그리 크지 않은 손맛과 함께 아수라 스워드의 검끝이 로레나의 목덜미를 뚫고 나왔다.
“너나 꺼져.”
낮게 읊조리고는 아수라 스워드를 옆으로 잡아당겼다.
찌이익….
로레나의 입술 왼쪽이 길게 찢어졌다.
그 귓불 아래쪽으로 아수라 스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덜렁….
깔끔하게 잘린 로레나의 얼굴과 목이 오른쪽으로 기울다가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후우우….”
호흡을 길게 뱉어 내고는 홀연히 사라져가는 로레나를 쳐다봤다.
처음이었다.
로레나를 혼자서 잡아낸 것이 말이다.
‘정말로 됐군.’
넘치는 자신감만큼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유롭고, 쉽게 처리할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오식아와 린이 서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정확히는 녀석들 너머의 복도였다.
아직 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저주받은 저택 2층을 무리 없이 혼자서 클리어 하고도 남을 터였다.
그것은 보통의 각성자들은 물론, 조금 난다긴다하는 이들을 넘어, 특별한 대우를 받는 자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과 범위에 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쩌면….
‘그래, 어쩌면 레전드급일지도 몰라!’
진심,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껏 달달 외울 정도로 찾아본 정보들 그 어디에서도 레벨 31의 각성자가 혼자서 저주받은 저택 2층을 클리어 했다는 얘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름의 기본급 이상인 장비를 착용하고, 실력 또한 얼추 알아주는 수준의 각성자라 해도 최소 33레벨 이상, 대부분은 35레벨쯤 되어야 혼자서 클리어 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레벨의 각성자와는 전혀 다른 능력치를 뽐내는 오식이나 린도 마찬가지였다.
로레나를 한 방에 잠재우는 오식이지만, 그 전에 상대해야 하는 고양이 놈들에게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이 역시 정확하게 확인은 못 했지만, 아마도 혼자서 도전하게 되면 상당한 피해나 상처를 입고, 어렵사리 클리어 하지 않을까 싶었다.
린은 더욱더 무리였다.
오식이와 달리 고양이 놈들이야 쉽게 처리할 것이고, 로레나의 깃털과 부채 공격에도 전혀 당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기품의 아우라를 깰 수 없기에 클리어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내 능력과 수준은 동급 최강… 아니, 나보다 2, 3단계 높은 레벨의 각성자와 비교해도 될 정도였다.
‘어쩌면’이란 수식어를 붙이며 조심스레 의식했던 레전드급과의 비교도 결코 헛소리가 아닐지도 모르고 말이다.
“흐흐! 레전드 헌터 나선우라… 끝내주는군!”
특별함을 확인했기에 나의 미래가 더욱더 기대됐다.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또 다른 특별함을 만족시키기 위한 예정된 계획을 시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