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98)
보금자리를 잠시 떠나기로 했다.
당연히 새로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그건 그냥 두고 가도 되지 않을까? 그래, 그건 가져가고….”
짐들을 챙겼다.
트럭에 싣고 다녀야 할 것들은 챙겼고, 나머지는 좀 더 깊은 숲에 숨겼다.
어차피 다시 돌아와야 했고, 나름의 흔적도 남을 테지만, 이곳에서 먹고 자고 했다는 느낌은 지우고 가는 게 좋을 듯했다.
새로운 계획을 위해 보금자리를 떠나는 기간은 약 한 달쯤으로 잡았다.
하지만, 가 봐야 아는 것이고, 더 걸릴지 덜 걸리지는 솔직히 알 수가 없었다.
“다 된 거지?”
“네, 주인님.”
“좋아, 그럼 출발한다.”
린을 트럭의 조수석에 태우고는 덜컹거리는 길을 달려 나갔다.
….
해안 도로를 따라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한참 후, 강원도를 벗어났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먼 옛날, 대게의 고장이라 불렸던 곳이었다.
물론, 지금은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C 구역 같은 B 구역이었다.
“역시나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군.”
제대로 찾은 듯했다.
던전 주변은 물론,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에서도 사람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편이 이로웠기에 만족스러웠다.
“일단 오늘은 쉬기로 하고, 내일 일찍 들어가 보자.”
“네.”
던전 근처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육포와 통조림 등으로 저녁을 해결하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옆에서 린이 자고 있기에 잠이 올까 싶었는데, 바로 곯아떨어졌다.
천추의 한으로 남을 멍청한… 아, 아니다.
….
날이 밝았다.
세상모르고 꿀잠을 잔 덕에 컨디션이 너무나 좋았다.
준비를 마치고는 게이트를 넘어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뭐, 아무것도 없네….”
초원형의 던전 안은 텅 빈 것처럼 조용했다.
어째 안이나 밖이나 다를 바가 없다 여겨졌다.
“그래도 아직 던전이 닫히지는 않았으니까, 안쪽으로 가면 제법 있을 거야.”
“네.”
린과 함께 더 깊숙한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내 기대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초원형 던전 치고는 그리 넓지 않은… 해서, 딴짓 없이 하루 만에 다 돌아본 던전은 진짜로 텅 비어 있었다.
“흠… 이상하네? 괴물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어째서 던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지?”
“우리가 못 찾은 게 아닐까요?”
“그렇겠지? 에이, 온종일 헛고생만 했네!”
당연히 정보를 확인하고 움직였다.
작성 시기가 꽤 오래전이긴 했지만, 워낙에 인적이 드물다는 것과 내가 원하는 수준에 딱 맞기에 선택한 곳이었다.
“뭐, 괜찮아. 그럴 줄 알고 몇 군데 더 찾아 놨으니까.”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주인님은 늘 계획이 있으시니까요.”
“하하… 이왕 들어 온 거 여기서 저녁이나 먹고 나가자.”
살짝이 씁쓸해지는 입맛에 허투루 웃음을 흘리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흡사 인디언의 것을 연상케 하는 천막이 여러 개 눈에 들어왔다.
그리 많지는 않고, 열댓 개 정도?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운 흔적도 보였다.
지금은 불씨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보이는 것처럼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텐트나 모닥불 등의 크기가 보통의 것보다 두 배는 컸다.
오식이가 쓴다면 딱 어울릴 만큼이었다.
그랬다.
이곳은 ‘오크의 마을’.
얼마 되지 않은 수의 오크들이 멸족 또는 몰살되어 버린 장소였다.
린이 진화를 통해 만렙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바로 오식이를 떠올렸다.
이전, 저주받은 저택의 공략을 떠올리며, 문득 고민하게 됐던 녀석의 만렙과 차후의 포지션.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생긴 것에 너무나 기뻤었다.
‘그래, 오식이도 진화를 시키자. 그러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차근차근 정보들을 모았다.
레벨 30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면서였다.
그러다 내 능력치 상승의 비밀(?)을 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좀 할애했다.
그것을 바로 해결하자마자, 이렇게 오식이를 위한 계획을 실행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뭔가 꼬이는 느낌이라니….
“후우우….”
도무지 숨길 수 없는 허탈함의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오식이를 소환했다.
….
저녁 준비는 린이 하기로 했다.
이왕 있는 모닥불과 여기저기 널려 있는 쓸 만한 집기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오식이는 멍하니 한곳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오크 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담으려는 것 같은 느낌.
녀석답지 않은 분위기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말없이 녀석의 옆에 같이 있어 줬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 어떤 기분일까?’
이곳이 녀석의 고향이거나 생활을 하던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과 생김새는 비슷할 터였다.
추억을 되새기거나 그리움 또는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지 싶었다.
툭! 툭툭….
녀석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가만히 두들겨 줬다.
보통은 어깨여야 하고, 뭔가 남자의 의리나 고독의 분위기가 나야 했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크르르….”
녀석이 나를 힐끔 내려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다 안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서 한 번 더 녀석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자 녀석이 내게 물었다.
―왜… 그… 러… 냐….―
리스닝 스킬로 인해 오식이의 말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나 나나 습관이 돼서 그런지 머릿속으로 전달받는 게 더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오식이의 물음에 반문하듯 반응했다.
“응?”
―왜… 그… 러… 냐….―
녀석이 똑같이 물어왔다.
계속 같은 반응이라면 끝없이 반복될 분위기라 물음을 바꿨다.
“뭐가?”
―형… 님… 이… 상… 하… 다….―
“내가 이상하다고?”
―그… 렇… 다….―
“아닌데? 이상… 아니, 네 기분에 맞춰 주고 있는 건데?”
―내… 기… 분?―
“그래, 네 기분! 너 뭔가 막 기분이 애틋하거나 하지 않아?”
―애… 틋?―
오식이는 애틋의 뜻을 모르는 듯했다.
“그러니까, 기분이 막 우울하다거나… 여기가 아프다거나 뭐 그런 거 말이야!”
왼쪽 가슴을 툭툭 치며 설명했다.
그래도 녀석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답답함에 한숨이 나왔다.
“하아….”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천천히 말했다.
“네가 살던 곳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아? 그런 걸 보면 보통은 그리움 같은 게 생긴단 말이지. 네 표정도 그래 보였고, 해서….”
―다… 르… 다….―
“응?”
―내… 가… 살… 던… 곳… 이… 렇… 지… 않… 다….―
“아, 그래?”
―내… 기… 분… 괜… 찮… 다….―
“아아… 그럼, 왜 그런 표정이었어?”
한껏 분위기를 잡고 있던 녀석의 의중이 궁금했다.
녀석이 눈을 한두 번쯤 깜빡거린 뒤에 말했다.
―배… 고… 프… 다….―
“으응?”
―고… 기… 언… 제… 먹… 나… 기… 다… 린… 다….―
오식이의 엉뚱한 대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녀석이 아니라, 내가 분위기에 취해서는 크나큰 오해를 한 모양이었다.
타이밍 좋다고 해야 할까?
오식이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저녁 준비가 끝났다.
“다들 식사하세요.”
린의 부름에 녀석이 황급히 자리를 떴다.
어이가 없어서 이렇다 할 반응도 못 하고 서 있다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모닥불 쪽으로 향했다.
….
“주인님.”
식사를 하는 중에 린이 나를 불렀다.
입에 든 고기를 우물거리며 표정으로 답했다.
린이 말을 이었다.
“돌아보니까 챙길 것들이 좀 있어 보였어요.”
린의 말에 씹던 고기를 힘껏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는 답했다.
“꿀꺽… 그래?”
“네.”
“뭐가 있는데?”
“음… 이런 냄비나 그릇도 많고요. 도마나 주전자도 있고….”
누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던 이 아니랄까 봐, 쓸 만하다 하는 것들이 죄다 주방 용품이었다.
‘이걸 직업병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천직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쩝!’
살짝 살아나려 했던 관심의 불씨가 확 사그라들었다.
입맛을 다시며 손에 들린 고기를 크게 베어 물고 뜯었다.
내 시큰둥해진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린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저쪽에는 천막을 짓기 위한 두꺼운 천도 있었어요. 그걸 이용하면 오식 씨의 옷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것은 조금 괜찮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큰 관심을 둘 정도는 아니었다.
“저쪽에는….”
계속 이어지는 린의 말을 자를까도 싶었다.
들어 봤자, 영양가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직전에 베어 문 고기가 너무 커서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린의 해맑은 음성이 귓속을 파고 들어왔다.
“이만한 보석 같은 것도 있어요.”
보석이란 말에 눈과 정신이 번쩍 뜨였다.
나도 모르게 빠른 속도로 입속에 있는 고기를 씹어댔다.
“우물우물….”
그러다 참지 못하고는 고기를 뱉어 냈다.
“퉤! 퉤퉤….”
순간, 오식이의 불꽃 튀는 시선이 내게로 날아들었다.
애써 무시하고는 린을 향해 물었다.
“보, 보석?”
내 반응에 린이 흠칫하고는 살짝 말을 바꿨다.
“아, 보석이 아닌가?”
“엥?”
“아니… 그러니까… 보석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꼭 보석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런….”
“그게 무슨 소리야? 보석이란 거야? 아니면, 보석이 아니라는 거야?”
내 다그침에 린이 한껏 풀이 죽어서는 목소리를 낮췄다.
“그게… 이만큼 큰 보석… 아니, 돌덩이가….”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 보자! 어디에 있다고?”
“저쪽에….”
손가락질과 함께 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식이는 눈치를 보며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넌 그냥 먹고 있어. 둘이서 다녀올게.”
둘이란 말에 자극이라도 받은 걸까?
오식이 녀석도 황급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들고 있던 고기는 차마 포기할 수 없었는지 손에 꼭 쥔 채였다.
“앞장서 봐. 얼른 가 보자.”
“네.”
린을 따라 보석일지 모를 무언가가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저기로군!’
앞서는 린의 너머로 눈에 들어온 천막을 보며 확신했다.
마을의 가장 끝쪽… 게다가 다른 천막들과 비교해 조금은 화려한 느낌이 그렇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뭐, 앞서서 마을을 돌아보던 중에 내 눈으로 다 확인을 했었다.
천막 안을 일일이 들여다보거나 샅샅이 살핀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다른 것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향하고 있는 천막도 그때는 전혀 화려하다거나 특별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만큼 별 볼 일 없고, 관심도 가지 않을 만한 수준이었단 소리.
하지만, 그곳에 뭔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 보니, 굉장히 특별해 보였다.
그만큼 기대감에 가슴이 콩닥거리기도 했다.
예상처럼 린이 해당 천막 앞에 섰다.
“여기… 이 안에 있습니다.”
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걸음을 옮겼다.
상당히 없어 보이는 다급함을 표하며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두둥!
당연히 없을 효과음의 환청과 함께 린이 말한 보석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중한 것을 보관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전혀 특별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특별하기는커녕, 이건 너무나 평범… 아니, 그 이하였다.
“아, 뭐야?”
기대감이 확 무너졌고, 불만의 소리가 그냥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그냥 돌덩이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불만과 의문의 소리가 입 밖으로 쏟아졌다.
“이게 보석이라고? 그냥 돌이잖아?”
이리 살피고, 저리 살펴도 그냥 돌덩이였다.
크기는 약 1미터쯤 될까?
하지만, 그 외에는 전혀 볼 것도 없는… 다듬어지지도 않은 삐뚤빼뚤, 울퉁불퉁, 삐죽빼죽한 자연적인 원석 그대로의 것이었다.
린을 향해 언짢은 시선을 보냈다.
내 시선에 당황한 린이 한 걸음 나서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하지만, 이렇게 반짝거리긴 하잖아요.”
뭔가 억울하다는 듯 말하는 린을 보다가 다시 돌덩이로 시선을 돌렸다.
“반짝거리는 개뿔! 푸석푸석하니, 만지면 부서지겠구만!”
린의 헛소리에 짜증을 섞어 말했다.
그 순간!
―기… 억… 의… 돌….―
오식이도 생뚱맞은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