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82)
“크르르!”
오식이의 모닝스타가 다섯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클린의 몸뚱이를 강렬하게 후려쳤다.
퍼어어억!
구부정하게 몸이 접힌 클린이 허공을 날아 고급스러워 보이는 탁자 위로 떨어졌다.
우당탕탕!
탁자는 멀쩡했지만, 그 위에 놓여 있던 컵과 화병 등의 집기들이 휩쓸리며, 무척이나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날아간 클린은 더욱더 만신창이가 되어 끝내 하얀 연기로 기화했다.
―오식 씨! 다음은 제 차례입니다린!―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린이 교체를 알려 왔다.
오식이가 거친 숨을 뱉어 내며 답했다.
―괜… 찮… 다….―
그런 오식이를 향해 소리쳤다.
“오식아, 뒤로 물러나!”
오식이는 벌써 네 명의 클린과 연달아 싸웠다.
거친 숨만큼이나 체력도 많이 빠지고, 몸에 상처도 즐비했다.
‘그래, 이쯤에서 교체하는 게 옳아!’
이제 겨우 반이 지났을 뿐이다.
아직 다섯이나 더 남았다는 소리다.
“린! 일단은 한 타임만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린!―
린이 씩씩하게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여섯 번째 클린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리이인!”
“린린!”
콰아아악!
빗자루와 빗자루가 맞부딪치며, 제법 강렬한 소리가 났다.
똑같이 생긴… 그러나 한 쪽은 깔끔하고, 다른 한 쪽은 피로 얼룩진 모습을 한, 두 명의 메이드가 격렬함을 내비치며 사투를 이어 갔다.
“하단이 비었어!”
내 훈수에 린이 곧장 몸을 회전시키며, 클린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화려한 로우킥을 맞은 클린이 중심을 잃었다.
때를 놓치지 않은 린의 빗자루 난타가 이어졌다.
퍼억! 퍽! 퍽….
클린이 몇 번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냈다.
하지만, 집요하게 이어지는 난타에 결국 들고 있던 빗자루를 놓치고 말았다.
“지금이야!”
“린!”
나와 린의 외침이 동시에 어우러졌다.
린의 빗자루가 비어 있는 클린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터어억!
“…??”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들려온 소리에 한 쪽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저런….’
복부에 꽂혔어야 할 빗자루가 언제 빼 들었는지 모를 먼지떨이에 가로막혀 있었다.
아쉽다는 듯 짧게 소리를 낸 린이 한 걸음쯤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자세를 추스르는 클린을 향해 다시금 달려들었다.
‘늦어!’
결정타는 아니었더라도 복부 공격이 성공했어야만 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맞붙어 싸우는 린과 클린의 뒤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기다렸다는 듯이 또 다른 클린… 일곱 번째 클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크륵!”
오식이도 눈치를 채고는 반응했다.
녀석을 향해 소리치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기다려! 내가 간다.”
빠르게 내달렸다.
내달린 속도를 이용해 몸을 한껏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굽혔다.
등 뒤에서부터 크게 세로의 반원을 그리며, 아수라 스워드가 내리꽂혔다.
휘이익….
파아앗!
갑작스러울 수 있는 내 공격을 일곱 번째 클린이 빗자루로 잘 막아냈다.
아니, 본인은 분명히 잘 막아냈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콰아아아악!
한참이나 남아 있던 내리치는 힘이 막아서던 힘을 압도했다.
가로로 막아선 빗자루를 그대로 두 동강 내고는 그것도 모자라 클린의 몸뚱이를 세로로 긁었다.
검의 끝이긴 했지만, 짜릿한 손맛이 확실하게 전해졌다.
“….”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듯 잠시 멈칫했던 클린의 입가가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이크!”
이어질 상황을 눈치채고는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그와 거의 동시에 비틀대고, 부들대던 클린의 몸뚱이에서 핏빛의 분수가 터져 나왔다.
촤아아악!
그러다가 이내 하얀 연기로 사라졌다.
맞서던 클린의 끝을 확인하고는 뒤쪽을 쳐다봤다.
린도 막 마무리를 지은 상태였다.
안심과 안도의 숨을 뱉어 내고는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꽈악!
손에 든 아수라 스워드를 고쳐 잡았다.
그 뒤 여덟 번째 클린을 기다렸다.
….
부우우웅!
콰자작!
회전하는 모닝스타에 머리가 깨진 클린이 미처 바닥에 주저앉지도 못하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열 번째 클린이었다.
“크르르….”
낮게 으르렁거린 오식이가 자세를 고쳐 잡으며, 다시금 전투태세를 갖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잠시 기다림을 이어갔다.
하지만, 사전에 숙지하고 있던 것과 일치하는 현상이 시작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긴장과 함께 자세를 풀었다.
“휴우, 끝났다. 다들 수고했어!”
내 말에 오식이와 린도 자세를 고쳐 잡고는 변화하는 주변을 돌아봤다.
이미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챈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저주받은 저택 1층에서 벌어지는 조금은 특별한 상황들을 말이다.
앞서, 정원에서 정원사를 불러내는 방법이 따로 있던 것처럼, 이곳 저택 1층에서도 클린들을 불러내는 방법이 존재했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도전하고 클리어 해 나가야 할 저택의 2층과 3층 그리고 최종 보스가 있는 4층에서도 각기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원사 놈들을 불러내는 방법은 정원 장식물의 훼손이었다.
자신이 가꾼 꽃과 나무들을 망가뜨리니, 화를 내며 달려든다는 참으로 단순하고, 간단한 이치이자 이유였다.
그렇게 뻔해 보이지만, 타당한 이유가 방식이고 룰이라 했을 때, 저주받은 저택의 메이드인 클린을 불러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맞다.
바로 어지럽힘이다.
집 안에서 맡아 하는 일이 청소이고, 선천적으로 결벽증까지 가지고 있는 클린이었다.
해서, 무언가를 이용해 1층의 공간을 어지럽히거나 청소할 거리를 만들어 주면, 당장에 클린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타난 클린은 청소를 한다.
그런 뒤 공간을 어지럽힌 이들을 응징(?)한다.
웃긴 건, 그 와중에 집기들이 파손되거나 어지럽혀지는 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뭐, 응징이 끝나고 나면 그때 가서 깨끗이 청소를 하고 정리를 다시 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정원에서는 꽃 한 송이를 훼손했을 때 정원사 한 명이 나타났고, 열 송이를 훼손하면 열 명의 정원사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저택 1층에서는 단 한 번의 어지럽힘만이 인정되고, 작용했다.
동시에 여러 곳을 어지럽힌다거나 난리를 피워도 한 번으로만 취급된다는 얘기다.
대신에 그 한 번의 어지럽힘으로 무조건 열 명의 클린이 나타난다.
뭐, 앞선 상황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건 아니다.
일정 시간… 대략 30초 정도의 간격을 두고서 한 명씩 나온다.
먼저 나온 클린이 살아있든 죽었든 간에 나타나는 것도 정해진 룰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서 ‘클린 웨이브’라 불렀다.
열 명의 클린을 모두 처리하면, 당연히 웨이브가 끝난다.
그리고 웨이브의 끝과 함께 난장판이 된 주변은 자연적으로 정리가 된다.
깨졌던 화병이나 장식물 등이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부서지거나 저만치 날아간 탁자와 의자 등도 말끔하게 고쳐져 제자리를 찾아간다.
‘겁나 신기하네.’
마치, 시간이 되돌려지는 것처럼 잔상을 그리며 주변의 것들이 빠르게 복구되는 모습은 정말이지 신기하고, 넋을 놓은 채 볼만한 광경이었다.
‘다음은….’
이미 머릿속에 저장되어있는 정보를 통해 다음으로 이어질 상황을 찾았다.
주변의 복구가 약 80%쯤 이루어진 후였다.
지이잉….
기묘한 소리와 함께 우리가 서 있는 곳 반대편의 오른쪽 구석… 저택의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계단에 게이트가 생성됐다.
당연히 게이트를 넘으면 저택의 2층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아직은 무리지.’
저주받은 저택 2층의 최소 클리어… 아니, 입장 레벨은 25 이상이었다.
지금은 절대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한다.
저택 2층에서 등장한다는 25레벨의 ‘그것’과 그것을 불러내는 방법의 특성상 들어서자마자 목숨을 잃을 것이 뻔하니 말이다.
스르릉….
생성됐던 게이트가 기묘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어느새 주변의 복구도 완벽하게 끝이 났다.
이제 다시금 어지럽힘을 통해 클린들을 불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
‘실전을 한 번 치러봤으니까 다들 감이 좀 잡혔겠지?’
밤새도록 걱정했던 부분… 클리어는 고사하고, 사냥 자체가 되지 않으면 어쩌나 했던 고민은 완전히 잊은 채, 이제는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빠르게 생각들을 정리하고는 곁으로 모인 오식이와 린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 줬다.
“음… 일단 순서부터 다시 정하자.”
처음엔 아무것도 확실치 않은 까닭에 오식이를 먼저 내세웠었다.
하지만, 녀석이 린과 똑같이 생긴 클린을 보고는 멘붕이 온 탓에 일이 좀 꼬였다.
뭐, 그 뒤에는 확실히 제 몫을 했기에 별 상관이 없었지만, 한 번의 경험으로 순서를 다시 정하는 게 나을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첫 번째는 린이 나서도록 해.”
―네, 주인님.―
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린의 말투와 표정이 제법 비장해 보였다.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시작이기도 하고, 일단 청소부터 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있을 거야. 다치지 않는 게 최우선이니까, 최대한 침착하게.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린.―
“다음은 내가 나설 거야.”
―에? 저는 한 마리만 상대하는 건가요린?―
린이 의아함을 내비치며 물었다.
질문의 요지보다는 명이 아니라 마리라는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이 먼저 와 닿았다.
“응! 일단은 하나만 확실하게….”
―더 할 수 있습니다린.―
“그래, 알아. 하지만, 한 번만 하고 끝낼 게 아니잖아? 체력 분배를 해야 한단 말이지.”
―아아… 알겠습니다린.―
당연한 얘기지만, 린과 클린은 20으로 같은 레벨이다.
외모는 물론, 기술도 같고, 체력도 같고, 실력도 같다.
해서, 이론적으로 봤을 때, 누가 이기고 질지가 확실치 않았다.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이번 사냥에서 제외하고 싶었지만, 제 몫을 하고 싶어 하는 열망이 넘치고, 처음 사냥에서 나름의 우위를 보이는 듯했기에 좀 더 두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또한, 그렇기에 내 순서를 다음으로 정하기도 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린의 위기에 빠르게 대처하고, 다음으로 등장하는 클린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뭐, 나는 물론이고, 클린들보다도 월등하게 강한 오식이가 나서는 게 가장 좋을 듯싶지만, 넘치는 힘과 주체 못할 공격성에 린이 다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나 다음은 바로 오식이!”
“크륵!”
“너는 연달아 세 번 싸워야 해! 자신 있지?”
“크륵!”
“좋아! 이건 혹시나 다치면 바로 먹도록 해.”
오식이에게 육포 몇 개를 건넸다.
녀석이 바로 침을 흘리며 눈빛을 번쩍거렸다.
“야야, 다치면 그때 가서 먹으라고!”
“크르르….”
아쉽다는 표정의 오식이를 한 번 째려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오식이 다음엔 다시 린 네 차례야.”
―아아… 한 마리, 한 마리, 세 마리 순이로군요린?―
“맞아! 그렇게 체력 분배도 하고, 뒤에서 서포트 할 수 있게 준비도 하는 거지.”
솔직히 순서를 정해 1:1로 붙을 게 아니라, 셋이서 동시에 하나를 공격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뭐, 싸울 공간이 넓고, 합이 짝짝 맞는다면야 그보다 좋은 사냥법이나 수는 없을 터.
그러나 넓지만 비좁고, 추구하는 공격 스타일이 달라 합이 잘 맞지도 않을뿐더러, 재수 없으면 적이 아니라 아군에게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순서대로 나서는 게 좋을 듯했다.
어쨌든.
그렇게 순서와 계획이 정해졌다.
“자자, 고고!”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며 멀쩡하게 돌아온 코끼리 조각상을 힘껏 바닥에 내팽개쳤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조각상이 부서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린의 자그마한 발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