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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16화 (16/240)

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6)

그저 부름일 뿐이었다.

하지만,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꽈아악!

손아귀는 물론, 온몸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딱히 정한 것은 없었지만, 무언가를 찾듯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욕실 안에 걸려 있는 옷가지와 전투 타이츠였다.

‘옷이라도 입고 있었더라면….’

그랬으면 참 좋았을 듯싶었다.

그러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었다.

겨우 서너 걸음쯤이겠지만, 어째 지구 반대편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다음으로 보인 것은 검이었다.

오식이 꺼내 놓기 위해 자리를 만들면서 침대 아래쪽으로 옮겨 놨던 작은 탁자.

그 위에 20만 원짜리 나의 검이 놓여 있었다.

“….”

검을 보자마자, 다시금 살인의 충동이 살짝 일었다.

“쓰읍… 쯧!”

혓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끓어오르려던 충동이 아쉬움(?)을 남기며 사그라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할줌마는 계속해서 뭐라 뭐라 떠들어대고 있었다.

딴짓에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그리 좋은 말은 아니었을 듯싶었다.

아니, 만약에 제대로 들었다면, 진짜로 칼부림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아… 대체, 내가 뭘 잘 못 한 거지?’

할줌마에게는 물론, 하늘과 양심에 걸릴 나쁜 짓을 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봤다.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지랄 같은 시련이 닥친 것일까?

이유를 몰라 더욱더 답답할 뿐이었다.

….

할줌마는 무척이나 끈질겼다.

벌써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도무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총각….”

“아, 진짜 그만 좀 하세요.”

“에이, 그러지 말고….”

“아니, 뭘 그러지 말아요? 아줌마나 제발 그러지 마세요.”

“우리 외로운 사람들끼리 오붓하게 앉아서 말동무도 좀 하고, 더 나아가서는….”

평생을 외롭게 살긴 했다.

그러나 이렇게 외로움을 달래는 건 싫었다.

아니, 죽는 것보다 더 끔찍했다.

그런 정도인데, 뭐? 더 나아가겠다고?

상상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리고, 귀는 물론, 뇌까지도 썩을 것 같았다.

해서, 당장에 말을 끊어 버렸다.

“외롭지 않아요! 절대! 뭘 더 나아가요. 진짜 미치신 거 아니에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

나의 완강함이 먹혀든 것일까?

할줌마가 한참이나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뭐야? 왜 그래?’

어째, 불안함이 더 커졌다.

눈동자를 굴리며, 문 너머로 신경을 집중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그렇게 잠시 후.

기다란 한숨과 함께 할줌마가 포기를 선언했다.

“휴우우… 알겠어. 진짜 생각이 없는 거로 알고 갈 테니까, 편히 쉬어.”

말뿐이 아니었다.

정말로 할줌마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정말 간 거야? 진짜?’

뭔가 허무하게 끝난 것 같은 기분이라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딸깍!

바로 문의 잠금장치를 누르고는 문고리를 놨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저릿저릿했다.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아아… 다행이다.”

그 자리에 선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욕실에 걸려 있는 옷가지들을 걷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위이이잉!

드라이기로 팬티부터 말렸다.

얼추 말린 뒤에는 그냥 입어 버렸다.

나머지는 체온으로 말리면 될 터였다.

“으, 차가워라….”

짜증이 났다.

야밤에 이게 뭔 짓인가 싶었다.

투덜대면서 나머지 옷도 빠르게 말리기 시작했다.

….

나머지 옷을 말리기까지는 2시간이 더 걸렸다.

그런데도 팬티처럼 1/3가량은 축축한 상태였다.

그래도 입었다.

모텔을 나서기 위해서였다.

불길함과 찝찝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잠든 사이에 할줌마가 몰래 방으로 들어올 것 같았다고나 할까?

“젠장! 내 돈 내고, 편히 쉬지도 못하다니!”

모텔비가 아깝기는 했지만, 괜한 불상사에 얽히는 것보다는 나을 듯싶었다.

또, 오식이 녀석을 불러내 밤새 보초를 서게 할까도 싶었다.

하지만, 앞서도 잠시 얘기했듯이 녀석을 곁에 두고서 편하게 잠을 자는 것도 그랬고, 혹시나 진짜로 할줌마가 재차 침투했다가 녀석과 대면하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었기에 바로 생각을 접었다.

아무튼.

채비를 마치고는 바로 방을 나섰다.

그 뒤 계단을 향해 복도를 걸어갔다.

딱히 조용히 걸을 생각까지는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발끝으로만 조심조심 걷고 있었다.

그렇게 계단 근처까지 왔을 때, 아래쪽에서 계단을 올라오는 기척을 느꼈다.

“…??”

어째, 숨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잽싸게 301호일 듯한 방의 문 아래 있는 고임목을 치우고는 안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흐읍!”

두근대는 심장 소리에 놀라 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뒤에 멈추기까지 했다.

잠시 후.

기척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다가 일부러 열어 놓은 문틈 새로 기척의 주인공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할줌마였다.

‘헐….’

진심으로 놀랐고,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소,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맥준가?’

얼핏 봐서 정확지는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일부러 언급하거나 생각지 않으려 했던 할줌마의 옷차림… 진짜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지랄 같은 모습에 놀라 제대로 기억할 수가 없었다.

‘젠장! 안 본 눈 산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분명, 몸매 좋은 여자가 입었더라면 침을 질질 흘리면서 봤을지도 모를 옷이었다.

그러나 할줌마가 입으니, 이건 섹시가 아니라 그냥 천박 그 자체였다.

‘으으!’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치고 문틈으로 할줌마의 동태를 살폈다.

‘씨바….’

다시 봐도 지랄 같은 할줌마의 뒤태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사이 할줌마가 걸음을 멈췄다.

좀 전까지 내가 있던 306호 앞이었다.

빠직!

미간이 한껏 좁혀지고, 관자놀이 부근에 힘줄이 튀었다.

놀라운 건, 할줌마가 곧장 키를 꽂고 문을 열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하면서 말이다.

‘내 저럴 줄 알았어!’

내가 안심하고 잠들었을 즈음 다시 찾아올 것 같았던… 그것도 몰래 방으로 침투할 것 같았던 내 생각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생각과 판단이 옳았음에 내심 뿌듯해하다가 이내 밖으로 빠져나왔다.

곧 있으면 내가 방 안에 없다는 것을 알고서 할줌마도 튀어나올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후다닥!

부우웅!

탁!

후다다닥!

계단을 날다시피 해 내려왔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 * *

“끄으응! 아이고, 삭신이야….”

어제 사냥을 했던 던전 근처에서 노숙을 했다.

밤이슬이 문제였는지, 축축한 옷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불편한 자세 탓인지는 몰라도 온몸이 욱신거렸다.

‘아니야, 이게 다 새벽에 그 지랄을 해서야.’

할줌마와 문고리를 잡고 실랑이를 한 게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췟! 망할 할망구 같으니라고!”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다시 마주한다는 것조차도 끔찍했기에 끝내는 그냥 접기로 했다.

“게이트나 하나 콱 생겨 버려라!”

나름의 악담을 날려 주는 건 잊지 않았다.

….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에 이어 토끼 사냥을 이어 갈 생각이었다.

“흠….”

곧장 문제에 직면했다.

어제와 비교해 토끼의 개체 수가 확 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핏 봐도 풀을 뜯는 토끼보다 눈에 불을 켜고 놈들을 찾아다니는 헌터들이 더 많은 듯했다.

뭐, 코어가 파괴된 정화 던전에서는 괴물들이 새롭게 생성되지 않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이래저래 시간을 뺏기긴 할 테지만, 이곳에서 허탕을 치는 것보다는 그러는 게 나을 듯했다.

새롭게 찾아간 던전도 비슷한 수준이라면 완전히 낭패겠지만….

‘그래, 옮기자!’

결단을 내리고는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던전의 입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한 50미터쯤 갔나?

내가 되돌아 나오던 곳으로 향하는 이들과 마주치게 됐다.

시끌시끌.

조잘조잘.

무리의 인원은 여자가 넷에 남자가 둘이었다.

내 또래 내지는 조금 더 아래로 보였고, 딱히 고렙의 포스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스윽….

무리 지어 오는 이들을 피해 스치듯 갈 길을 서둘렀다.

그런데 그들 중 하나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부름에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붉은 기가 감도는 가죽 재킷을 입은 여자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미모가 상당했다.

“혹시, 레벨이 어떻게 되세요?”

“1인데요.”

사실대로 말했다.

내게 질문을 한 여자의 어깨너머로 남자 중 하나가 피식하고 웃는 게 보였다.

상당히 기분이 나빴고, 괜히 부끄러워졌다.

“아아… 그럼, 클래스는요?”

여자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어 왔다.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지만, 비웃음을 던진 놈의 콧대를 꺾어 주기 위해 조금은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A입니다.”

내 대답을 들은 여자의 얼굴에 잠시지만 놀라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뒤쪽에 있던 다른 여자들의 입에서는 ‘오’라는 탄성이 흘러 나왔고, 피식거리던 놈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딴청을 피워댔다.

‘야야, 어딜 보는 거야? 날 보라고! 그래야 나도 썩소를 날려 주지!’

놈에게 강렬한 시그널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닿지 않았다.

대신에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괜찮으시다면 저희랑 같이 사냥하지 않으실래요?”

여자의 말에 대뜸 고개부터 갸웃했다.

아무리 내가 A 클래스라지만, 레벨은 1이었다.

토끼조차도 간신히 잡는 수준이라 팀을 이룬다면 나야 베리베리 땡큐지만, 반대로 그들에게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레벨이 낮아요. 그래서 팀으로 뭉쳐서 다니고 있어요.”

“아아, 그러시구나.”

“어때요? 같이 하실래요?”

잠시 고민했다.

레벨이 낮다고는 하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무엇을 어떻게 잡을지도 알 수가 없었다.

괜히 멋모르고 꼈다가 이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아니면, 내가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나름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레벨이 어떻게 되시죠? 사냥은 어디서 하실 생각이신지….”

내 물음에 여자가 싱긋 웃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제 소개부터 할게요. 이름은 정인영이고요. 나이는 스물셋이에요.”

“아, 저는 나선우입니다. 나이는 스물다섯이고요.”

“음, 오빠네요? 선우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아….”

살짝 당황했다.

오빠라는 소리를 그리 많이 들어 본 적이 없던 까닭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예쁜 여자한테는 더더욱….

내 당황함에 그녀가 오해를 한 듯했다.

“어머, 불편하셨어요? 죄송해요. 아직 팀에 합류하신 것도 아닌데….”

“아, 아닙니다. 괘, 괜찮습니다.”

사과를 하는 그녀에게 내가 더 고개를 조아리며 괜찮음을 표했다.

그러자 그녀가 언제 미안해했냐는 듯이 바로 친근함을 표하며 다가왔다.

“그럼, 오빠라고 해도 되는 거죠? 선우 오빠!”

“네? 아아, 네… 그, 그러세요. 하하!”

멋쩍음에 머리를 긁적거리고는 웃었다.

누가 봐도 바보처럼 보였을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때문인지, 뒤쪽에 서 있던 이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여자 셋이 앞장을 섰고, 남자 둘은 삐쭉거리며 느릿하게 움직였다.

“뭐래? 같이 하신데?”

여자 넷 중에서 가장 키가 작고, 그만큼 귀여워 보이는 여자가 정인영에게 물었다.

정인영이 내 눈치를 한 번 보고는 답했다.

“아직….”

그러자 대뜸 키 작은 여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아, 그래? 왜요? 그냥 같이하시면 안 돼요?”

정말이지 거부할 수 없는 막강의 애교가 내 심장을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해, 해요. 네, 합니다. 아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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