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5)
306호 앞에 도착했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그냥 둬도 닫히지 않게 작은 고임목이 받쳐진 상태였다.
발끝으로 고임목을 툭 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킁킁!”
모텔의 입구부터 시작해 계단과 복도까지 내내 진동하던 퀴퀴한 냄새가 방에서는 그나마 덜 나는 듯했다.
“흠… 크기도 뭐, 괜찮네.”
방 크기도 나쁘지 않았다.
있어야 할 것들도 나름으로 갖춰져 있었다.
방을 둘러보고 이내 벽과 살짝이 떨어진 채 놓인 침대를 밀어 공간을 넓혔다.
“끄응!”
침대 아래쪽 자투리 공간으로 낡은 소형 탁자를 옮겨 놓기도 했다.
“후우, 됐다.”
넓혀 놓은 공간을 바라보며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그 자리에 오식이 녀석을 소환했다.
카드를 허공에 띄운 다음, 녀석을 소환하기 직전에 ‘앉은 채로 얌전히 나와!’라는 명령을 내린 후였다.
피이잉….
카드를 꿰뚫은 빛이 녀석의 실루엣을 그렸다.
내가 내린 명령대로 녀석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자세를 취한 채였다.
휙!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의 실루엣을 향해 이불을 던졌다.
여전히 녀석은 헐벗은 상태였고,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짜증과 함께 소름이 좍좍 돋는 흉측한 것을 덜렁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으으….”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크르르….”
몇 번을 제외하고서 늘 등장할 때마다 우렁차게 토해 내던 울부짖음도 없었다.
그런 녀석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좋아, 잘했어!”
―배… 고… 파….―
“어, 알아. 고기 사 왔다.”
―고… 기….―
“좋냐?”
―좋… 다… 고… 기….―
“나는?”
―좋… 다… 서… 누….―
녀석은 단순했다.
어느 모로 보나 본능에 충실한 타입이다.
해서, 거짓말을 못 한다고 봐야 했다.
그럴 만한 주변머리나 지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건 무조건 빼박!
하지만, 내가 좋다고 하는 것에는 살짝 입맛이 씁쓸해졌다.
단지, 고기를 먹여 줬다는 것에 네 칸이나 차올랐던 호감도가 여전히 네 칸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좀 오르려나?”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다.
녀석의 호감도가 오를수록, 내 말을 더 잘 알아듣는 듯했으니까.
또한, 나와 비슷한 타입의 각성자… 정령을 소환하여 부리는 이들도 그렇다고들 하니 말이다.
“옜다! 많이 먹고, 얼른 호감도나 채워 줘!”
녀석 앞에 고기가 든 비닐봉지를 내려놨다.
녀석이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어허! 비닐은 벗기고 먹으랬지? 천천히 먹어!”
내 명령에 녀석이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내 눈치를 살폈다.
“먹어도 돼! 내 것은 여기 따로 있으니까, 다 먹어!”
손에 들린 작은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녀석이 먹을 고기 외에 내가 먹을 순대를 따로 산 것이었다.
그제야 녀석이 투박한 손끝으로 비닐을 벗겨냈다.
그러더니 맛있게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크르르… 우걱우걱….”
언제봐도 경이로운 녀석의 엄청난 먹방을 보며, 나도 순대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
“후우… 역시, 안 오르네.”
이번에도 녀석의 호감도는 오르지 않았다.
단순히 먹을 것만 주면 오를 것이라 예상하고, 믿었던 부분이 꽉 막힌 것 같아 답답하기만 했다.
“도대체 뭐를 어떻게 해야 오르는 거냐?”
―고… 기… 좋… 다… 서… 누… 좋… 다….―
“쩝! 됐다. 잠이나 자라.”
녀석을 다시 카드에 봉인했다.
실내에서 소환하여 꺼내 놓을 만큼 얌전해지고, 나름으로 내 말을 알아듣는다고는 하지만,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취침 시간까지 녀석을 풀어놓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었다.
머릿속이 아닌 귀로 직접 들어야 하는 녀석의 우렁찬 코골이도 문제고, 행여 잠결에 뒤척이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도 알 수가 없었으니까.
“뜨거운 물은 나오겠지?”
옷을 벗고 욕실로 향했다.
다행히 뜨거운 물은 나왔다.
솨아아아….
욕조가 없는 것이 살짝 아쉬웠지만, 그래도 뜨끈한 물에 피로를 씻어 낼 수 있었다.
….
샤워를 막 끝마치고, 욕실을 나왔을 때였다.
침대 머리맡의 작은 테이블 위에 있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려 댔다.
따르릉! 따르릉!
“…??”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기도 닦지 못한 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총각….”
당연하겠지만, 모텔 주인인 할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무슨 일이시죠?”
뜨끈한 샤워로 기분이 좀 좋아진 상태라 정중하게 물었다.
잠시 틈을 준 할줌마가 전화를 건 용건을 말했다.
“정말 아가씨 필요 없어?”
필요가 없었다.
해서, 단호한 투로 답했다.
“네, 필요 없어요.”
“아니, 왜?”
왜라는 물음에 답할 이유는 많았다.
돈도 문제고, 위생도 문제고, 이런 상황에서 뒤통수를 맞았다는 끔찍한 후기들도 문제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25년 간 지켜온 나의 순결하고, 고귀한 동정을 아무렇게나 몸을 굴려 대던 여자에게 바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처음을 가질 여자는 따로 있다고!’
그랬다.
나의 순결하고, 고귀한 동정을 가질 수 있는 여자는 그 누구도 아닌 하나쿠 짱뿐이었다.
“뭐가 왜에요? 그냥 필요 없어요.”
“아니… 혼자 자면 외롭지 않아? 옆구리도 시리고….”
“괜찮다니까요? 정말 왜 그러세요? 이만 끊겠습니다.”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좋아졌던 기분이 겁나게 찝찝해졌다.
“젠장….”
애꿎은 전화기를 한 번 노려보고 침대에 누웠다.
몸은 피곤하고, 나른하기까지 한데, 짜증과 찝찝함에 정신이 산만해져서 참으로 지랄 같은 상태가 계속 이어졌다.
“후우우… 후우우….”
깊은 심호흡으로 안정을 찾으려 애를 썼다.
눈도 지그시 감은 채였고, 몸도 최대한 힘을 뺀 채 늘어뜨렸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그나마 안정이 되어가는 듯했다.
그때였다.
똑똑!
난데없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는 상체를 반쯤 일으켜 세우며 문 쪽을 쳐다봤다.
딸깍딸깍….
문의 손잡이를 억지로 비트는 소리가 이어졌다.
당장에 소리쳤다.
“누, 누구야?”
대답이 바로 이어졌다.
“나야, 총각….”
할줌마였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다다닥 박혔다.
“뭐, 뭐에요?”
“총각, 문 좀 열어 봐.”
“에? 아, 안 돼요.”
황급히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할줌마가 계속해서 문의 손잡이를 흔들어댔다.
“에이, 그러지 말고… 아님, 내가 열고 들어갈게.”
농담이라 여겼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나 싶기도 했다.
그 와중에 귀를 쫑긋하게 하고, 뒷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그락….
여러 개의 자잘한 금속이 어우러지며 부딪치는 소리.
당장에 어떠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열쇠 꾸러미였다.
‘씨바, 열쇠 같은 거 없다며?’
미간이 확 좁혀졌다.
살짝 멘붕이 왔고,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당최 뭐를 해야 할지 몰라서 몸만 움찔거렸다.
그때였다.
“아, 여깄네. 후후….”
할줌마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소름이 확 돋았다.
움찔거리기만 하던 몸이 저절로 반응하기도 했다.
휘익!
후다다닥!
침대의 탄력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편안한 걸음으로 대여섯 발자국쯤은 될 문까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찰칵….
열쇠 꽂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잽싸게 문고리를 붙잡았다.
이내 문고리가 덜거덕거렸다.
할줌마의 당황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 이게 왜 이러지?”
바로 소리쳤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제야 내가 문고리를 잡고 있다는 걸 알아챈 할줌마가 능글맞음을 풍기며 말했다.
“아, 총각이 잡고 있었구나? 난 또… 일단 문 좀 열어 봐. 응?”
“안 돼요! 싫어요!”
전보다 훨씬 더 강하고, 단호한 투로 거부의 의사를 표했다.
할줌마는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듯 억지로 문을 열려고 했다.
계속해서 회유의 말도 날려댔다.
“잠깐만 들어갈게. 얼른 좀 열어 봐. 응? 잠깐이면 된다니까?”
“아, 절대 안 돼요. 그냥 거기서 말씀하세요.”
문고리를 잡은 손에 더욱더 힘을 줬다.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였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절대로 문을 열어 줄 수 없었다.
필요가 없다는 데도 계속해서 여자를 권하는 할줌마의 지랄 같은 마인드가 이상했다.
아니, 위험했다.
게다가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오려 하기까지 한다는 것은 분명히 뭔가가 있고도 남음이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터였다.
옥탑방을 벗어나 모텔 생활을 하면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었다.
바로 샤워와 빨래였다.
옥탑방은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기에 며칠씩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한 번 씻었고, 빨래도 몰아서 한꺼번에 했었다.
하지만, 모텔은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오기에 매일 같이 샤워도 하고, 빨래도 했다.
뭐, 옥탑방에 전부 두고 온 터라 옷이 한 벌밖에 없다는 것도 나름의 이유이긴 했다.
오늘도 그랬다.
뜨끈한 물로 샤워를 한 뒤에 겉옷과 속옷을 빨았다.
안에 입는 전투 타이츠는 물로만 세탁하여 뒤집어 놨다.
그리고 욕실에 잘 걸어 놓은 상태였다.
원래는 어느 정도 물기가 빠지면, 방으로 가져와 널어뒀다.
아무래도 축축한 욕실보다는 방에서 말리는 게 잘 마르니까.
겉옷은 그렇게 했고, 속옷은 드라이기로 말린 뒤에 다시 입었다.
가끔 귀찮을 때는 비치된 나이트가운을 입고 잔다거나 아니면 그냥 벗고 자기도 했다.
어차피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어쨌든.
오늘은 빨래 후의 과정이 모두 생략됐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직후, 할줌마의 전화를 받았고, 그 뒤에 짜증이 나서는 그냥 침대에 누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맞다.
나는 지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이 상태에서 음흉한 할줌마와 마주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꽈아악!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흐음….”
할줌마가 한숨과 신음의 중간쯤 되는 낮은 소리를 내며, 연신 비틀어대던 문고리를 놨다.
순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방심을 하지는 않았다.
바스락….
문 너머에서 가벼운 인기척이 이어졌다.
뭐를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어, 할줌마의 물음이 날아왔다.
“총각… 몇 살이야?”
“스, 스물다서… 앗!”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아차 싶어 바로 멈추기는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나의 멍청함을 자책하려는데, 할줌마의 말이 이어졌다.
“아, 스물다섯이구나. 나랑 얼마 차이도 안 나네.”
귀를 의심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개소리 중의 개소리란 말인가?
그냥 봐도 50살은 훌쩍 넘어 보였었다.
아니, 60살이라고 해도 전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낳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우리 엄마가 살아 있어도 할줌마보다는 훨씬 어릴 터.
그런데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는다니….
25년을 살면서 가장 어이없고, 황당하며, 지랄 같은 뻘소리에 개소리였다.
‘씨바… 죽일까?’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엉뚱한 생각까지 하고 말았다.
당연히 그냥 한 생각일 뿐이었다.
고작 이런 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어찌 말이나 될까.
예나 지금이나 살인은 인륜을 저버리는 최악의 행위나 범죄 중 하나였다.
더욱이 각성자로서 일반인을 상대로 그런 짓을 저지른다는 건 진심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전 세계가 공통으로 지정한 각성자 전용의 ‘헌터 법’에서도 가장 최상위로 구분 지어 놓고, 무엇보다 엄격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각성자와 일반인의 시시비비 및 사건이었다.
‘그나저나 어째야 하지?’
뭐가 됐든, 이 지랄 같은 상황을 빠져나가거나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이리저리 짱구를 굴리는데, 할줌마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