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2)
가상 현실 세계에 접속됐다.
“와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감탄부터 나왔다.
이전에 경험했던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전된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러니 비싼 돈 내고 하고 집에도 하나씩 들여놓으려 기를 쓰지.”
한때 이 비싼 캡슐 머신이 없어서 못 판다던 얘기를 들었던 게 얼핏 생각났다.
둘러 보기를 대충 마친 뒤에 바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당연히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내가 올린 게시글이었다.
“어디 보자….”
그사이, 엄청나게 많은 글이 올라와 내가 올린 것은 한참이나 뒤로 밀려 있었다.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조회 수는 올라가 있었지만, 시간 대비 많은 수는 아니었다.
“흠….”
댓글의 수도 이전보다는 많았다.
나름의 기대를 안고, 확인했다.
하지만, 죄다 개소리에, 뻘소리 같은 장난질이 다였다.
“쩝….”
씁쓸해진 입맛을 다시고 헌터 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해 다시금 카드 소환사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해 봤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후우우… 진정 아무도 모른다는 건가?”
한숨을 길게 뱉어 냈다.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섣부른 낙담이었다.
특성 개화로 카드 소환사가 된 지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다.
전부인 듯 말을 했지만, 내가 올린 게시글을 읽은 이들은 전 세계 인구와 비교했을 때, 새 발의 피만큼도 되지 않았다.
더불어 본인이 카드 소환사이거나 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바쁘다는 핑계, 개인적인 사유… 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등의 이유로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뭐,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랬으면 참 좋겠다 싶은 바람과 기대감이기는 했다.
해서, 이전에 올렸던 게시글을 그대로 복사해 헌터 협회 홈페이지는 물론, 다른 커뮤니티들에도 올렸다.
혹시 몰라, 마지막에는 만들어 놓고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이메일 주소도 첨부했다.
‘분명, 한 명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을 거야!’
제발 그러기를 간절히 원하며, 눈앞의 허공에 뜬 수많은 웹사이트 페이지를 전부 닫았다.
“…!!”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바로 검색창을 열어 ‘이대준’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좌르르르륵….
예상보다 훨씬 많은 자료가 줄줄이 떠올랐다.
이름 하나만으로도 사진에, 프로필에… 거의 연예인급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호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유명한 아저씨였나 보네?”
맞다.
우연들이 겹치며, 본인도 모르게 나를 구해 준 털보 아저씨의 이름이 이대준이었다.
검색된 자료 중에 가장 많이 보인 것은 역시나 그가 속해 있는 ‘투신 길드’라는 단어였다.
뭐, 대한민국의 헌터 길드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크고 유명한 곳이니, 그럴 만도 했다.
또한, 놈들이 흘렸던 ‘마장동 털보’라는 단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몰라서 확인도 해 봤다.
이유를 알고는 살짝 뜨악했다.
“어쩐지… 검을 다루는 솜씨가 남다르긴 했어.”
당시에는 그저 레벨이 높아서 당연하게만 여겼던 털보 아저씨의 솜씨였다.
그러나 마장동 털보라는 닉네임의 뜻을 알고서 다시 생각해 보니, 전혀 다른 의미와 이미지 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군더더기가 거의 없고, 있을 필요가 없는 자비는 더더욱 없이, 일단은 사지부터 하나씩 절단하고서 마지막에 목을 댕강 날려 버리는 호쾌한 스타일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었던 것.
몇 개의 자료들을 더 살펴봤다.
어디서 들었다거나 직접 겪은 일화들도 있었는데, 그것들을 종합해 본 결과….
그는 생긴 것과 다르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몸소 실천하여 정의구현에 앞장서는 그런 인물이었다.
“생긴 거는 아무리 좋게 봐도 딱 악당 쪽 같은데… 그래서 더 착하게 살려고 하나?”
아무튼.
그에 대한 검색과 정보의 결과는 ‘친해져서 나쁠 게 전혀 없다!’였다.
아니. ‘어떻게든 친분을 쌓아 놓으면, 훗날 뭐가 됐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였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수중에 그의 명함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놈들의 손에 넘어갔던 마정석과 지갑은 내게 다시 돌아왔지만, 그의 명함은 그렇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다시 만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짐꾼 공고를 통해 다시 만날 수도 있고, 그게 귀찮다면 아예 투신 길드로 직접 찾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설마, 자기가 직접 연락하라고 명함까지 줬는데, 나를 기억하지 못할 리는 없을 터.
진심, 그냥 지나가는 말로 했다거나 아니면, 아무한테나 명함을 마구 날리는 스타일이라면 살짝 곤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사람은 아니라는 게 지금까지 살피고 알아낸 그의 이미지였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를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을 일이기도 했다.
….
확인할 것들을 다 끝냈다.
이왕 캡슐 머신에 접속했으니, 팔자 좋게 최신 게임을 즐긴다거나 ‘실제보다 더 좋다!’는 광고로 유명한 ‘므흣므흣 파라다이스!’를 경험해 볼 수도 있었다.
아니면, 편안한 휴식과 안락한 수면을 도와주는 ‘힐링 서비스’를 이용해도 될 터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죄다 돈이었다.
일반 PC보다 다섯 배 이상이나 비싼 만큼, 분당…. 아니, 초당으로 빠져나가는 금액이 만만치 않았고, 너무나 아까웠다.
그런데도 굳이 일반 PC가 아닌, 캡슐 머신을 이용한 이유도 따로 있었고 말이다.
“좋아! 그래도 1시간은 채웠으니까, 불만은 없겠지.”
나름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할 만큼 했다.
이제는 내가 받아 먹을 걸 마음 놓고 챙길 시간이었다.
오늘의 외출… 푹신한 침대에서의 꿀 같은 취침까지 잠시 미루고서 이곳으로 온 것에 대한 최고의 하이라이트를 말이다.
“사용 종료!”
허공에 대고 외쳤다.
이내, 정전이라도 된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머릿속이 살짝 멍해졌고, 정신마저도 전원이 내려간 듯 잠시 끊겼다.
….
“으음….”
막 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꽤 무거운 눈꺼풀을 몇 번이나 껌뻑이다가 완전히 떴다.
“잠시 그대로 누워 계세요. 완전히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여자의 음성이 귓가에 흘러 들어왔다.
나긋나긋하고, 나풀나풀하는 것이 절로 따스한 봄날의 꽃밭에서 춤을 추듯 나는 나비를 연상케 했다.
이내, 그 나비가 내 몸에 앉아 가벼운 날갯짓을 하는 상상도 했다.
‘이제 시작인가? 흐흐!’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음흉함이 깃든 미소였다.
마치,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만 같은 최고조의 기분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이어질 여자의 조근조근한 마사지라니….
정말이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불끈불끈해 왔다.
그랬다.
여자의 직접적인 손길이 닿는 마, 사, 지!
그것이 바로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늘 밤 최고의 하이라이트.
이 비싼 캡슐 머신을 이용한 가장 큰 이유였다.
‘어서… 어서… 아으으, 어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므흣한 상상과 함께 더불어 재촉까지 하면서 여자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렸다.
“….”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의아함에 살며시 눈을 떴다.
언제 자리를 떴는지,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라?’
더욱더 의아함을 갖고는 살짝 고개를 들고서 주변을 살폈다.
원래 서 있던 위치의 반대편에 그녀가 서 있었다.
정확히는 내 바로 옆 캡슐 머신 곁에 선 채였다.
‘뭐지? 왜 안 해 주지? 지금 날 무시하는 건가?’
의문과 함께 불만스러움이 폭발하려 했다.
그때였다.
치이익….
가스 빠지는 소리와 함께 옆의 캡슐 머신 뚜껑이 열렸다.
여자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딸깍… 딸깍….
여자의 등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안전장치를 푸는 것이라 여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마사지를 해 주는 것이 분명한 여자의 몸짓을 볼 수 있었다.
이내, 쌓여 가던 불만이 한계치를 넘어갔다.
‘아, 나는! 나는 왜 마사지 안 해 주는데?’
흥분과 함께 한계치를 넘은 불만의 목소리를 터트렸다.
그러나 목소리가 목구멍으로 빠져나오지 않았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실정.
마음은 굴뚝 같은데, 어째서인지 그러지 못했다.
주물주물….
그 사이에도 여자의 마사지는 계속되고 있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통에 몸으로라도 어필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움찔움찔….
목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목소리처럼 내 몸 또한 캡슐 머신에 걸리기라도 한 듯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끙끙대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애를 쓰는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그대로 누워 계세요. 완전히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따스한 봄날의 꽃밭에서 노니는 나비를 연상케 했던 여자의 나긋나긋하고, 나풀나풀하던 음성.
뭐, 다시 들어서인지 아니면, 불만인 상태라 그런지는 몰라도, 그 정도의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내가 들었던 것과 똑같은 대사를 읊어대는 여자였다.
그 순간.
머릿속을 강하게 스치는 것이 있었다.
‘서, 설마….’
불안감? 불길함?
뭐, 그런 것들이 빠르게 엄습해 왔다.
자박자박….
그 사이, 여자가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 여자가 말했다.
“정신이 드셨나요? 이제 천천히 일어나 보세요.”
여자의 말에 홀린 듯이 몸을 움직였다.
좀 전까지 꼼짝도 하지 않던 몸이 지금은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헐….’
어리둥절하고, 멍한 상태로 그렇게 캡슐 머신을 빠져나왔다.
그런 나를 향해 여자가 다시금 말을 붙였다.
“자, 이제 스트레칭 하세요.”
그러고는 다시 옆자리의 캡슐 머신으로 다가갔다.
그렇게 머릿속에 데자뷔란 단어를 떠올리도록 내게 했던 말과 행동을 똑같이 이어 나갔다.
“정신이 드셨나요? 이제 천천히 일어나 보세요.”
나도 모르게 ‘헐…’이란 반응을 내뱉고 말았다.
….
계산을 마치고, PC방을 나왔다.
아직도 기분이 멍한 상태였다.
강하게 뒤통수를 맞은 것만 같았고, 사기를 당해도 무척이나 크게 당한 느낌이었다.
스윽….
고개를 돌려 2층의 PC방을 응시했다.
멍해졌던 정신이 차츰 돌아왔고, 지랄 같던 기분이 점점 더 거세졌다.
그리고 폭발했다.
“젠장! 이런 거였다면, 내가 굳이 안 했지! 아아, 이게 뭐야? 으으, 짜증 나!”
제법 큰 소리로 불만을 토해 내며, 애꿎은 땅을 발로 쾅쾅 차댔다.
따지고 보면, 여자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혼자서 김칫국물을 사발로 드링킹하고, 오해한 내 잘못이 컸다.
뭐,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할 그런 것이었다.
“에휴,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맛을 안다더니만, 역시나 사람은 뭐든 경험을 해 봐야 한다니까?”
그나마 한 가지를 뼈저리게 깨달은 듯했기에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으드드! 아으, 피곤하다. 얼른 가서 잠이나 자야지.”
뻐근한 몸을 쭉쭉 펴고는 모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후훗! 그래도 즐거운 하루였어….”
난생처음, 있는 자의 삶이란 것을 살짝이나마 맛본 것에 만족했고, 그런 삶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다는 욕망과 앞으로 분명히 그렇게 될 거라는 기대감에 얼굴 가득히 미소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