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11)
새벽 1시경.
걸음을 재촉해 부랴부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PC방이었다.
나중에 돈 좀 벌면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과 소망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루게 된 것.
“흐흐….”
실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과 함께 보무도 당당하게 PC방 문을 열었다.
“어서 오… 세요.”
여자가 인사를 하다 살짝 끊어 먹고는 다시 이었다.
나를 알아본 게 분명했다.
‘훗! 나의 멋진 외모가 쉽게 잊힐 만한 수준은 아니지!’
며칠 만에 감아 찰랑거림이 남다른 앞머리를 고갯짓으로 넘기고는 카운터 앞에 섰다.
그러고는 상큼하게 미소를 날려 줬다.
여자가 당장에 입을 헤 벌리고는 멍을 때렸다.
나의 초절정 꽃 미소에 넋이 나간 모양이었다.
사실 이곳으로 오는 중에도 걱정을 좀 했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자리에 없을까 봐서였다.
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
내게 홀딱 빠져 있는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그녀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잠도 마다하고, 피곤함도 무릅쓴 채, 이곳으로 온 게 아니겠는가?
후훗!
스윽….
그녀가 내 앞으로 뭔가를 내밀었다.
23번이란 숫자가 적힌 일반석 자리의 카드였다.
어제 일반석을 사용했으니, 오늘도 그러리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뭐로 보고!’
내 멋진 외모에 빠져 나를 기억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런 것까지 모두 기억하는 건 별로였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라고!’
딱 잘라서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대신에 여유와 느긋함, 젠틀함까지 한꺼번에 무장하여, 어디서도 보기가 쉽지 않은 극강의 멋짐을 뽐내기로 했다.
척!
먼저, 왼손 팔꿈치를 카운터 데스크 위에 올렸다.
엄지와 검지를 ‘가위’ 모양으로 편 채, 턱과 입 주변으로 가져갔다.
구부정….
자연스레 허리가 굽어지며, 몸이 살짝 앞으로 쏠렸다.
이때, 덩달아 구부러지는 무릎을 꼿꼿이 펴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고 양쪽 다 꼿꼿이 세운다면 그것도 없어 보인다.
한 쪽은 세우고, 한 쪽은 살짝 구부려, 최대한 편하고,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
또한, 섹시한 엉덩이를 뒤로 쭉 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크으!’
내가 내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확실하게 감이 왔다.
지금의 내 모습이 겁나게 섹시하고, 완벽하게 각이 잡혀 있음을 말이다.
움찔!
여자가 반응을 보였다.
커다란 눈망울로 뚫어지라 내 눈을 응시했다.
서비스로 가벼운 미소를 보여 줬다.
다음으로 오른손 검지를 폈다.
내 앞에 놓인 카드 위에 올리고서는 천천히 그녀 쪽으로 밀었다.
스윽….
그녀에게 카드를 돌려 주고는 쭉 펴고 있던 검지를 그 상태 그대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서 가볍게 좌우로 까딱거렸다.
말하지 않아도 ‘NO’라는 의미가 강렬하게 전달될 터였다.
이때, 한 쪽 입꼬리를 살짝 말아 줘도 좋다.
다만 너무 심하게 말아 올리면, 정말로 재수가 없어 보일 테니, 이 점만 주의하도록 하자.
“….”
나의 완벽하고, 멋들어진 모습과 행동에 여자가 완전히 넋을 빼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서 목소리를 착 깔며, 나직하게 말했다.
“오늘은 캡슐로 부탁드립니다.”
나의 멋짐 외모만큼이나 귀를 호강시키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일깨운 듯했다.
“아, 네….”
급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대고는 흘리듯 대답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 보였다.
주섬주섬….
여자가 허리를 구부린 채, 카운터 아래를 뒤적였다.
캡슐 머신의 구동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물품을 챙긴 여자가 이내 카운터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를 향해 말했다.
“저쪽으로 가시죠.”
곧장 걸음을 옮기는 그녀를 따라가지 않고 불러세웠다.
“저기요.”
“네?”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만 돌리고서 나를 쳐다봤다.
“가기 전에 잠시….”
“…??”
그제야 몸까지 돌린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녀를 두고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캡슐 머신이 늘어서 있는 곳이 아닌, 한 쪽에 마련된 테이블과 의자 쪽으로였다.
드르륵….
털썩!
의자를 빼고 앉았다.
살짝 몸을 옆으로 기울이며, 다리까지 멋들어지게 꼬았다.
그런 뒤 살짝 느끼한 눈빛과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여자는 여전히 얼굴에 의아함을 가득히 그린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우선, 라면 하나!”
“네? 아아….”
어리둥절하던 그녀가 바로 상황을 파악하고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내가 앉은 테이블 옆, 다양한 먹거리들이 줄줄이 진열된 곳에서 컵라면 하나를 꺼냈다.
어제 내가 주문했던 바로 그 컵라면이었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오지게도 그녀의 뇌리에 나란 남자가 깊게 박혀 버린 모양이었다.
‘훗! 이거 제대로 한 번 만나 줘야 하는 거 아냐? 아주 그냥 앓겠네, 앓겠어!’
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또 할 말이 있기에 바로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아, 오늘은 컵라면 말고, 직접 끓인 라면으로!”“네? 아, 네에….”
그녀가 집어 들었던 컵라면을 다시 내려놓고 나를 스치며 카운터 쪽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다시금 말을 건넸다.
“저기요.”
“네?”
“물은 좀 적게 넣고, 면은 꼬들꼬들한 상태로 부탁합니다.”
“아, 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려 했다
아직 주문이 다 끝나지 않았기에 급히 그녀를 다시 불러세웠다.
“달걀도 하나… 아니, 두 개 풀어 주시고요.”
“네.”
“단무지도 많이… 어제 먹어보니, 여기가 단무지 맛집이더라고요. 하하!”
“아, 아… 네에….”
여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괜한 농담을 던진 게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아, 단무지 맛집 얘기는 하지 말 걸 그랬나? 달걀까지는 괜찮았는데… 쩝!’
뭐, 후회해도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만회할 뭣도 없기에 그냥 빠르게 마지막 주문을 뱉어 냈다.
“끝으로 탄산 하나도 주세요.”
주문을 받은 그녀가 카운터 뒤편으로 사라졌다.
의자에 몸을 조금 더 기대며 편안하게 기다렸다.
….
잠시 후.
주문과 딱 맞아떨어지는 라면과 음료수가 내 앞에 차려졌다.
단무지도 많았고, 어제는 없었던 김치도 나왔다.
뭐, 내게 잘 보이려고 김치를 내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좀 오버인 것 같고, 아마도 끓여 주는 라면을 시키면 나오는 것이라 보는 게 옳을 듯했다.
끓여 주는 라면은 컵라면보다 두 배나 비싸니 말이다.
“음….”
만족의 표현과 함께 단무지를 하나 집어 먹었다.
“아작아작… 크으….”
역시나 이곳은 단무지 맛집이 맞다.
어쩜 이렇게 아삭하고, 달콤하면서, 짠맛까지 완벽할 수 있는지….
다음은 라면의 맛을 봤다.
“후루룹… 후룹후룹! 하아… 오물오물….”
덜 익은 면의 딱딱함이 화려한 면 치기를 방해했다.
갓 끓인 탓에 뜨거움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맛은 죽여줬다.
어금니에 약간의 무리를 주는 듯한 단단한 식감과 입안 가득 퍼지는 밀가루의 맛.
‘그래, 이 맛이었어!’
몇 년 전에 딱 한 번 먹어 본 덜 익은 라면이었다.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로도 없는 살림에 무조건 배를 든든하게 채우자는 식으로 라면을 팅팅 불려 먹기만 했다.
그러나 당시, 가히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표현할 만큼 강렬한 자극을 받았기에 그 맛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기억이 틀리지 않았음을 지금 확인할 수 있었다.
지잉….
눈가가 시큰해졌다.
진심으로 감격스러웠다.
최대한 맛을 음미하며 느긋하게 라면을 먹었다.
“호로록… 꿀꺽! 하아아… 호록호록, 꿀꺽!”
국물까지 모두 비웠다.
이토록 많은 양의 국물… 그것도 제대로 된 것을 먹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불린 라면에는 국물이 없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봤자, 제대로 된 맛이 나지는 않으니까.
이 또한 감격스러웠고, 가히 천상의 맛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가 뭐라 해도 끝내 주는 라면의 맛.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나름의 하이라이트가 남아 있었다.
바로 달걀이었다.
하나는 중간에 먹었다.
달걀 특유의 비릿함과 포들포들한 식감은 당연히 예술이었다.
맛에 취해, 바로 먹어 치우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애써 참았다.
라면 국물의 칼칼함을 잠재우고,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지금을 위해서 말이다.
아껴 뒀던 달걀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씹을 때마다 입안에서 알갱이로 분해되는 달걀흰자의 미친 식감을 음미했다.
그와 함께 씹는 순간, 미세한 가루가 되었다가 이내 진득한 잼처럼 변하는 달걀노른자의 돌아 버린 식감도 즐겼다.
“꿀꺽….”
입안에서 화려한 식감을 자랑하는 달걀.
하지만,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부터는 답답함의 목멤을 자아낸다.
그러나 크게 문제는 없다.
나에게는 그런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탄산’이 있었으니까.
“벌컥! 벌컥….”
단숨에 탄산 한 캔을 비워냈다.
달걀로 꽉 막혔던 목이 시원하게 뚫리다 못해, 온몸을 오그라뜨리는 짜릿함도 전해졌다.
“크아아… 꺼어어억!”
짜릿한 쾌감의 탄성에 이어 거하디거한 트림까지 배출했다.
비릿한 달걀 냄새가 이내 코를 찔렀다.
카운터 쪽에서 날아드는 눈치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는….
황홀하기가 그지없었던 덜 익은 라면의 맛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 고민이었다.
‘하나 더 먹을까?’
….
라면의 추가는 없었다.
원래 조금이라도 아쉬울 때 그만두는 것이 가장 여운으로 남는 법이었으니까.
게다가 다음으로 내정된 일의 기대감과 호기심이 나를 자꾸만 부추기고 있었기에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박자박….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던 여자가 바로 다가왔다.
“바로 사용하실 거죠?”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따라오세요.”
앞서가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여자는 뚜껑이 열려 있는 캡슐 머신 앞에 섰다.
“캡슐 머신을 사용해 보신 적 있으세요?”
있었다.
딱 한 번.
PC방은 아니었다.
각성자에 한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기본 교육을 수료하는 과정에서 캡슐 머신을 경험해 봤다.
뭐, 5년 전의 일이고, 그때보다 머신의 기술력이나 사양 등이 많이 업그레이드된 터라 많은 것이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얼굴에 미심쩍은 표정이 얼핏 드러났다.
“이쪽에 먼저 발을 올리시고요. 네, 좋아요. 다음은 이렇게 몸을 돌려서….”
여자가 차분히 설명하며, 내가 캡슐 머신 안에 안착(?)할 수 있게 도와줬다.
긴장감 때문인지 몸이 뻣뻣해졌지만, 별다른 문제 없이 머신 안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여기 있는 게 비상 탈출….”
여자가 옆에서 쉼 없이 설명을 해 댔다.
하지만, 하나도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설명과 함께 안전장치를 채우고, 이것저것 가리키는 와중에 그녀의 손길이 내 몸을 몇 번이나 스치고 갔기 때문이었다.
‘으으….’
긴장감으로 뻣뻣해졌던 몸이 풀리기도 전에 더욱더 굳어 버렸다.
그러나 전혀 싫지 않은… 아니,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하는 굳음과 그것을 만들어 내는 손길의 스침이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어느새 설명을 마친 그녀가 고개를 까딱하며 말하고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아쉬움이 너무나 크게 밀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치이익….
가스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캡슐 머신의 뚜껑이 닫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