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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미카엘라
“보기 좋네. 씨발년아.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바알의 말을 들으며 미카엘라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이 데려온 고위 천사들을 찾았다. 자신이 살아남았으니 그들도 분명 살아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카엘라는 의외로 쉽게 그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은발의 메이드와 고대 병기의 검에 학살당하고 있었다. 검의 공주는 그렇다치고 사이나의 무력이 미카엘라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높았다. 아무리 고위천사들 중에서 자신처럼 멀쩡한 자들이 없다곤 하나 너무 일방적으로 죽어가고 있다.
미카엘라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역시 자신은 정면싸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테드 크루시안이라는 변수가 상당히 심했다. 설마하니 혼자서 우리엘과 병력을 막을 줄이야.
“얼른 끝내시죠. 바알. 설마 제가 당신에게 목숨 구걸이라도 하기를 바라시나요? 안 됐지만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빠르게 끝내지 않으면 확 자살해버리는 수가 있어요.”
“말 안 해도 알아. 이 년아. 그냥 조금… 감상에 젖었을 뿐이야.”
“당신이 말이죠? 의외이긴 한데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이 장면은 당신이 꿈에서도 바랐을 장면이었을 테니까요. 자. 얼른 그 주먹으로 절 죽이시죠.”
“막상 죽이려니까 말이야. 이렇게 편하게 죽이는 건 뭔가 아닌가 싶은데. 너무 허무하잖아.”
말과는 다르게 바알의 주먹에 검은 기운이 깃든다. 테드와 했던 약속이 있는 만큼 그녀를 데리고 질질 끌 생각은 없다.
“그럼 고문이라도 하시던가요. 변하는 건 없으니까요.”
“하. 왜 그렇게 담담하냐. 네년은. 짜증나게.”
“너무 오래 살아서 못해본 게 손에 꼽을 정도라 미련이란게 별로 없거든요. 있다면 당신을 죽이지 못했다는 것 정도일까요. 잡설이 너무 길어지네요. 자. 얼른 죽이시는 게 좋을 거에요. 저 아까부터 반격의 기회를 보고 있거든요. 그렇게 방심하다가 죽는건 당신이 될거에요.”
“넌 재수 없게 운이 좋아. 그 녀석만 아니었으면 이대로 편하게 안 죽였어. 빌어먹을 사탄만 아니었으면 내 부하들이 겪었던 것들을 만 배로 되돌려 줄 텐데.”
“당신은 어떻게 죽을까요. 늙어서 죽는 건 불가능하겠죠. 분명 누군가가 싸우다 죽겠죠. 상대를 점지하자면 가브리엘 정도네요. 그래도 한 가지 바라는데. 당신이 자살해서 죽었으면 좋겠어요. 기왕이면 지금 당장.”
“그럴 일은 없어. 개년아. 지금 이 순간부터 내 삶에 자살이란 끝은 사라졌어. 씨발년.”
바알이 미카엘라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미카엘라의 상반신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그녀의 육편이 사방에 널렸다.
바악이 주먹을 들었다. 진득한 피와 살 조각이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더 기분 좋게 죽이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너무 쉽게 죽였어. 후회의 감정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시원한 기분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쫓아온 복수가 드디어 끝났다.
“끝났어! 메이드! 병기!”
바알이 한 쪽에서 검을 갈무리하고 있는 사이나와 검의 공주를 향해 발랄하게 외쳤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핀잔이었다.
“이쪽은 옛날에 끝났습니다. 뭘 그렇게 꾸물거리시는 겁니까.”
“동감. 무력화된 적을 처리하는데 너무 시간이 걸렸어. 주제에 맞지 않는 소녀 감성이야.”
신랄한 그녀들의 말에 바알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고함을 질렀다.
“이, 이 씨발년들이!”
⁂ ⁂ ⁂
우리엘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테드는 미카엘라가 죽었다는 사이나의 연락을 받았다.
“10분 정도인가. 빠르면 빠르고. 늦다면 늦겠지. 지옥은 끝났어.”
테드가 이시스를 회수하고 사자의 서를 덮었다. 지옥의 매게체가 되는 마도서가 덮어짐에 따라 10개의 지옥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무한할 것 같은 고통을 받던 천사들이 실 끊긴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예전부터 한계에 달한 그들의 몸은 이윽고 재가 되어 사라진다. 고대 마법 ‘니플헤임’을 발동하지 않았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테드는 그들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3만에 달하는 병력이 복수를 한답시고 인간계로 쳐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건. 인간이 가져선 안 될… 힘이다! 네가 가져선 안 된단 말이다…!”
바닥에 엎어진 우리엘이 몸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의 몸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지 않는건 그의 남들보다 강인한 육체와 단련된 정신력의 힘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한부다. 곧 있으면 그의 몸 또한 바스라져 사라질 것이다.
“또 그 소리냐. 질리는군.”
“너는 반드시 내가…!”
“죽이겠다고? 무기도 없는 네가?”
우리엘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창은 박살난 지 오래다. 있는 것이라곤 두 주먹뿐. 하지만 바닥에 엎드려서 꿈틀거리는 것이 지금 가능한 전부다.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고 있어. 나는 천계를 박살낼 생각이 없어. 그럴 시간도 없고 이유도 없어. 이건 경고에 가깝지. 내가 있는 한 중간계는 꿈도 꾸지 말라는.”
“크으윽! 왜 네게 그런 힘이…! 나에게도 그 힘이 있었다면…!”
분노와 질투심이 어린 눈동자가 테드에게 향했으나, 이내 그의 몸이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테드가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3만이라는 생명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걸 입밖으로 내지 않는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그럴 각오가 없었다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테드의 눈동자가 한 곳으로 향한다. 이곳을 주시하는 시선은 수 십 개가 있었다. 대부분이 공포를 담은 시선이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곳. 약 700M 정도로 떨어져 있는 곳의 시선의 주인은 존재감이 남들과 달랐다.
“숨어 있는 거. 다 알고 있어. 나오지 않는다면 전투의지로 판단한다.”
10초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허공이 일렁거리더니 한 명의 바닐라색 짧은 머리 여인이 나타났다. 150cm의 작은 키와 사이나와 버금가는 무뚝뚝한 표정. 등에는 미카엘라와 우리엘과 같은 12장의 날개. 바알에게 들어 알고 있는 인상착의다.
“…가브리엘인가.”
테드가 손바닥을 허공에 저었다. 즉시 가브리엘의 주변에 마법진 몇 개가 펼쳐진다. 700M라는 거리는 이미 테드의 사정거리 내였다.
“잠깐! 멈춰라! 나는 승산 없는 전투를 할 생각은 없어.”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성력을 담아 내지른 목소리인 탓이다. 확성기라도 사용한 것 같은 목소리에 테드는 잠깐 미간을 찌푸리고서 다시 손을 저었다.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들이 사라졌다.
“…용건은?”
테드가 물었다. 바알에게 듣기로 가브리엘은 호전적이면서도 우리엘과 달리 냉정함을 갖춘
전사라고 한다. 바알이 말하기를. 미카엘라 다음으로 껄끄러운 적.
“전투가 아니면 대화밖에 없지.”
가브리엘이 다가 오는 게 보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지만 거리가 쭉쭉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가브리엘은 10M거리에 있었다.
“우리엘의 복수라도 하러 왔나?”
“설마.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개죽음은 사양이야. 지금 시점에서 복수는 불가능해.”
그가 지옥을 멈췄다는 것은 미카엘라도 죽었다는 뜻일테니까. 전력차이도 심하다. 천계에 있는 모든 천사들이 달려들어도 지금의 모습을 보면 감당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너는 머리가 돌아가서 다행이군. 적어도 우리엘 보다는 이야기가 통할 것 같군.”
“저 녀석도 나쁜 녀석은 아니야. 조금… 급한 성격일 뿐이지.”
“급한 성격인건 나도 마찬가지지. 무슨 대화를 하려왔지?”
“너의 목적을 들으러 왔어. 그것에 따라 천계의 방침을 정해야 하니까.”
가브리엘은 상대가 바알보다 더한 상대라고 인정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의 힘은 고대 종족 레칸과 비슷했다. 미카엘라보다 젋은 가브리엘은 레칸에 대해서 들은 것 밖에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목적이라…. 천계를 지배할 생각은 없다. 이건 경고다.”
테드의 붉은 눈동자가 가브리엘의 작은 몸을 꿰뚫어 보듯이 쳐다봤따.
“중간계를 포기해라. 너희들이 탐낼 수 있는게 아니야.”
“좋아. 포기할게.”
가브리엘이 즉답했다. 테드는 조금 의외라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너무 담백하게 말해서 신뢰가 생기지 않는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지금 상황에서 중간계 침공은 무리야. 중간계에 넘어갈 방법도 없고, 우리엘이 이끌고 있던 3만의 병력은 정예라고 할 수 있어. 당장 천계의 전속부터가 걱정해야 할 판이야.”
가브리엘은 냉정하게 지금의 상황을 봤다. 더군다나 지금의 지옥을 본 천사들을 의외로 많다. 그들이 과연 테드를 향해 전투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오히려 꺾이지 않으면 다행이다.
“천사는 오래 사는 편이라 중간계의 종족과 달리 출산율이 상당히 낮아. 전력을 복구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네 목적이 천계의 지배나 멸망같은게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
“그럼 이야기는 끝났군. 너희들이 중간계에 관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나또한 천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테니 안심해라.”
테드가 몸을 돌렸다.
가브리엘은 조용히 그의 등을 쳐다봤다. 무방비해 보이는 등이다. 만약 지금 여기서 기습을 한다면 죽일 수 있을까? 잠시간의 고민 끝에 가브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저건 강자의 오만 같은 게 아니다. 절대자의 자신감이다.
테드가 마법을 사용해 사라졌다.
가브리엘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순간에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다.
⁂ ⁂ ⁂
네메스 대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네메스의 눈은 대륙에서 가장 큰 호수다. 물은 그 어떤 곳의 물보다 맑아서 고개를 호수에 쳐박고 마셔도 상관없을 정도다. 더군다나 이 호수에 살고 있는 물고기는 상당히 비싼 값에 거래된다. 민물고기면서도 회로 먹어도 아무 문제없으며, 바다에서 산다고 알려진 해수어도 이 호수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일설로는 네메스 대륙의 모든 어종이 이 호수에 살고 있다고 한다. 상어도 서식하니 말 다한 것이다.
테드 일행은 천계에서 곧바로 네메스의 눈으로 돌아왔다. 이곳이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관광을 즐길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조금 확인할게 있어 왔을 뿐이다. 1시간 뒤면 사탄을 죽이기 위해 마계로 떠날 예정이었다.
목적은 호수위에 있는 마법같은 성.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고 있는 수수께끼의 성이다. 마법을 이용해 곧바로 성의 앞으로 온 그들은 호수위를 걸었다.
“호수위에 있는 성이라… 존나 신기하네. 수면 아래에는 지지대 같은 것도 없어 보이는데 이것도 마법이야?”
“마법이 아니야. 시스템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는 성이지.”
바알의 물음에 테드가 대답하며 푸른색의 강철 성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예전에는 손이 성문에 닿는 순간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튕겨져 나가지 않았다.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싸늘한 감각에 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대로다. 크루시안의 말대로 주머니 속에 있는 세계열쇠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문제는 문을 여는 건데…. 밀면 될려나.”
손에 힘을 준다. 필요하다면 마법까지 사용할 생각이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의외로 성문은 손쉽게 밀렸다. 바알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성문이 열리고 푸른색의 거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기척이라곤 조금도 없는 거성은 어딘가 유리 세공품을 떠올리게 해서 굉장히 아름다웠다.
“여기에 뭐가 있는데?”
바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어왔다. 그녀는 별로 흥미가 동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스템의 본체. 어쩌면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을 지도 몰라. 그럼 사탄과 싸울 때 엄청난 도움이 되겠지.”
테드 일행은 성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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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간은 정말로 오타입니다. 제가 의도한게 아닙니다. 제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