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269화 (269/277)

269====================

33. 미카엘라

9개의 지옥문이 열리는 순간 3만의 천사들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몸이 녹아내리고, 얼어붙고, 불타고, 중독되고, 꿰뚫리고 등의 모든 끔찍한 현상들이 일어났다.

지면에는 스켈레톤들이 가득해서 떨어지는 순간 달려들어 천사들의 몸을 찢어댄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만 눈앞이 캄캄하게 물들어서 이 상황의 근원이라고 생각되는 테드를 공격할 수도 없었다. 어디에 있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감각이 엉망이다. 자신이 날고 있는지. 땅바닥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고통이 멈추지 않는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데미지를 입었는데 어째서인지 죽지를 않는다. 천사들 중에선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죽지 않는다. 육체가 터지고, 내장이 쏟아져도 거짓말처럼 원래대로 돌아와 고통과 죽음이 반복된다.

그러나 진정한 고통은 열 번째 지옥문이 열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무간.

그 지옥문의 효과는 다른 9개의 지옥문의 효과를 상승시켜주면서 고통을 기존의 수 십배로 증가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정신이 망가져도 회복되며 ‘사자의 서’가 펼쳐져 있는 한 영원히 고통에 몸부림치게 된다.

천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하고 지옥문의 힘을 저항하고 있는건 우리엘이었다. 운이 좋았다. 그의 권능인 정화의 불이 지옥문의 효과를 어느 정도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른 천사들의 비해 느껴지는 고통이 적으며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크으윽.”

우리엘은 허공에서 비틀거렸다. 몸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경악한다.

마치 밤이라도 된 것마냥 주위는 어두웠지만 그의 눈에는 주변의 형상이 뚜렷하게 보였다. 이 어둠속에서 3만의 병력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죽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허공에 떠있는 자는 적었고, 그들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날고 있는 것 뿐이다. 눈동자가 돌아간 얼굴을 보면 의식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우나 간간히 터져나오는 비명을 보면 분명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지면 아래는 더욱 가관이었다.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스켈레톤들이 천사들의 몸을 좋을 대로 유린한다. 팔을 뜯고, 내장을 뽑으며 자랑인 날개를 찢는다.

독사가 여기저기 엉켜서 천사들의 몸을 휘감고 독니를 박는다.

천사의 몸이 진한 녹색불로 불타는가 하면, 파랗게 얼어붙어서 산산조각나기도 한다. 날개가

완전한 죽음은 전혀 없는 곳. 흡사 지옥.

“이,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네이놈!!”

우리엘이 분노의 일갈을 터트렸다. 창을 꽉 쥐고서 지옥을 만든 장본인을 노려본다.

테드는 지옥의 중심에 있었다. 관을 깔고 앉아서 조용히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로 우리엘을 보고 있었다.

“네놈은 정말 인간이냐?! 이게 인간이 가능한 짓이냐 말이다!”

우리엘의 12장의 하얀 날개가 푸른색 불꽃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화의 힘이 담긴 불은 우리엘을 향해 뻗어오는 지옥문의 효과를 순식간에 정화해서 효과를 없애버린다. 그가 날개를 한 차례 펄럭이자 사방으로 정화의 불이 뻗어나갔다.

우리엘의 주위에 있던 천사들이 정화의 불에 닿자 고통에 일그러져있던 얼굴이 일순간 평온하게 바뀌었다. 허나 그건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그들은 다시 지옥문의 효과를 받으며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보시는 대로 인간이다.”

“아니다! 너는 인간이 아니야! 인간이, 이런 힘을 가져도 될 리가 없다!

“그럼 천사나 악마는 괜찮고?”

“이런 지독한 힘은 누구도 가져선 안된다! 이것은 세계의 법칙을 비트는 힘이다! 내가 너를 정화하여 세계를 바로 잡겠다!”

창을 쥐고 달려드는 우리엘을 보며 테드가 피식 웃었다.

“개소리도 이 정도면 아주 수준급이군. 개소리의 프로페셔널이냐?”

“널 죽이고 지옥을 끝내겠다!”

“아쉽지만 지옥은 미카엘라가 바알에게 죽을때까지 끝나지 않아.”

테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깔고 앉아 있던 육각관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일어나라. 라파엘. 네 적이다. 죽여라.”

테드가 명령을 내리자 관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곧 커다란 소리와 함께 관짝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열린 관속에서 창백한 손이 뻗어나와 관의 겉부분을 잡는다. 그리고 시체가 몸을 일으킨다.

그것은 창백한 아름다운 남자였다. 탈색된 듯한 백금발은 허리까지 내려왔으며 초점이 없는 두 눈은 신비한 멋이 있었다. 턱선은 날카로웠고 창백한 피부의 몸은 호리호리했다. 얼핏보면 여자라고 착각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졌지만, 시원시원한 얼굴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특유의 날카로운 분위기가 누구라도 남자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엘이 창을 내뻗으며 날아오던 자세를 멈추며 입을 떠억 벌렸다. 두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몸이 살짝 떨렸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반응이었다.

“라… 파엘이라고? 대전쟁 시절에서 회수할 수 있었던 것은 시체의 30%밖에 되지 않을 텐데…!”

네크로맨서가 시체를 중급 이상의 언데드로 일으키긴 위해선 적어도 몸의 70% 이상이 멀쩡해야 했다. 좀비나 스켈레톤같은 하급 언데드의 경우는 말이 다르지만 눈앞에 라파엘은 하급 언데드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엘이군.”

우리엘을 보며 라파엘이 입을 열었다. 우리엘이 몸을 떨었다.

대전쟁 시절 이후 듣지 못했지만,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친우의 목소리다. 특유의 날선 듯 한 목소리와 표현이 서투른 얼굴 표정. 자신이 알고 있는 라파엘과 완벽히 일치했다.

“너… 는, 라파엘이 아니다! 라파엘은 오래전에 죽었다.”

“……나는 라파엘이다.”

라파엘이 그 말을 하고서 입을 다물었다. 우리엘이 알고 있는 라파엘의 반응대로였다.

테드는 라파엘과 우리엘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죽이라고 했을 텐데. 라파엘.”

“…알겠다.”

라파엘의 등에서 12장의 새하얀 날개가 돋아났다. 그에 혼란에서 정신을 다잡은 우리엘이 이를 악물며 창날에 푸른 불꽃을 피웠다.

라파엘이 손톱을 세웠다. 원래의 그는 권능인 ‘절단’을 검을 통해 곧잘 이용하던 검사였다.

라파엘의 손톱과 우리엘의 창대가 맞부딪힌다. 보통이라면 라파엘의 손톱이 아작날 것이다. 우리엘의 창은 특제품으로 일반 병사들의 창과는 내구도 자체가 틀리니까. 하지만 잘려나가는 것은 우리엘의 창이었다.

장창이 단창이 되는 순간이었다.

“절단! 네 이놈…! 언데드 따위가 어떻게 라파엘의 권능을!”

“우리엘 나는 분명히 말했다. 내가 라파엘이라고.”

“웃기지마라! 이 빌어먹을 언데드가! 설령 네가 진짜 라파엘이라고 하더라도…! 너를 정화하겠다!”

우리엘이 호기롭게 외치며 창날을 휘둘렀다. 푸른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그의 권능은 언데드에게 특화되어 있다. 일반 언데드라면 그의 불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화되어 사라진다. 허나 라파엘은 일반 언데드 따위가 아니었다. 테드가 ‘사자의 서’를 활용해 특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언데드다.

우리엘의 창은 라파엘의 가슴을 찔렀고, 푸른 불꽃이 라파엘의 몸을 불태웠다. 그러나 라파엘은 멈추지 않았다. 온몸이 녹아내렸지만 괜찮다. 그는 언데드였으니까. 고통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친우여! 다시금 안식을 취해라!”

우리엘이 이를 악물며 권능을 발휘했다. 아무리 라파엘이라도 하더라도 결국은 언데드. 상성으로 따지자면 자신이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무시하고 우리엘의 코앞으로 다가온 라파엘이 손톱을 휘둘렀다. 절단의 권능인 담긴 손톱은 우리엘의 몸을 간단히 찢었다. 우리엘의 실책은 자신의 권능을 지나치게 신뢰했따는 점과 아주 약간. 라파엘을 자신의 친우라고 인정함으로서 생겨난 안일함 때문이었다.

경악으로 일그러진 우리엘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라파엘의 몸에 붙은 정화의 불은 기어코 라파엘의 육체를 완전히 녹여버렸다.

끝났다. 그렇게 보이겠지만 끝나지 않았다.

여기는 지옥.

끝은 지옥의 주인인 테드가 정한다.

우리엘이 일어난다. 라파엘도 일어난다. 의아한 우리엘은 알 수 없는 현상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라파엘의 손톱에 찢어진다. 그리고 다시 우리엘이 일어난다. 그는 멍하니 있었고 라파엘이 손톱을 휘두른다.

“테드 크루시아아아아안!!”

다음으로 일어난 우리엘은 상황을 인지했는지 테드를 이름을 부르짖으며 달려들려고 했다. 라파엘의 손톱이 우리엘의 몸을 갈랐다.

죽음의 반복. 고통과 비명이 난무하는 이곳에 안식 따윈 없다. 이곳은 지옥이다.

“내가 만들었지만.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군.”

테드는 영웅의 전당이라 불리는 곳의 조금 떨어진 뒤쪽 초원지대에 있는 사이나의 연락을 기다렸다. 바알이 미카엘라를 죽이는 순간, 사이나는 곧바로 연락해올 것이다.

사이나의 연락은 오지 않고 있다.

⁂ ⁂ ⁂

“제법 많이 끌고 왔잖아, 미카엘라!”

바알이 웃음을 터트리며 하늘을 통해 날아오는 미카엘라를 반겼다. 미카엘라의 주위에 100명에 달하는 고위천사가 있었다.

미카엘라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자들이다. 그 중에서 바알이 알고 있는 얼굴도 여럿있었다. 그 말은 즉슨 대전쟁 시절을 겪은 경험 많은 전투 천사란 것이다.

“바알! 그 지긋지긋한 인연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죠!”

“씨발.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오늘 너랑 나 둘 중에 하나는 꼭 죽어야 돼. 내 예상으로는 100%의 확률로 죽는 건 네년이 되겠지만.”

“바알 알고는 계시겠지만….”

곁에 있던 사이나가 바알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에 바알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테드 녀석이 혼자서 시간을 끌고 있는거 말이지? 나도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은 없어. 평소라면 끼어들지 말라고 했겠지만… 미카엘라의 떨거지들은 네들에게 맡길게.”

“알고 계신다면 다행이군요.”

사이나가 롱소드를 꺼낸다. 암시장에서 구한 검이다. 명검이긴 하지만 사이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탄과 싸우다 부서진 자신의 검, 나찰에 상상이상으로 정이 들어버린 탓이다. 그리고 스펙적으로 나찰에 비하면 딸리는 부분이 제법 많았다.

“임무 확인. 저 건방진 하등생물은 내가 죽이고 싶었는데… 마스터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지.”

검의 공주가 핏빛으로 물든 검을 허공에 붕붕휘두르며 말했다.

“이렇게 누군가랑 함께 싸우는 것도 존나 오랜만이네. 옜날 생각나잖아. 씨발.”

작은 여아의 모습에서 본래의 잘빠진 미녀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바알이 정권을 내지를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허리춤에 준비하고 있는 오른 주먹에 모든 마력을 모은다.

테드와 약속했던 대로 질질 끌지 않았다. 초전박살이다.

바알의 오른 주먹에 검은 기운이 모여든다.

광폭의 일격. 본래라면 자신을 중심으로 사방일대를 날려버리는 기술이지만, 사이나와 검의 공주를 휘말리게 할 생각은 없었다.

바알이 전력을 다해 마력을 컨트롤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모든 마력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옛날에는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 자세는…! 좋아요! 이번에는 막아드리죠!”

미카엘라가 바알의 자세를 보며 눈치 챘다.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옛날에는 저 자세를 확인하면 일단 피하고 봤다. 시전하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렸으니 도망가는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주위에 있는 100명의 고위천사들이 있다.

미카엘라가 권능을 발동한다. 황금색 빛의 실이 미카엘라와 고위천사들의 몸과 이어진다.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미카엘라에게 힘이 집중되었다.

미카엘라가 기도를 하듯 양손을 포갰다. 매우 가련한 모습이지만 그녀의 입가에 있는 웃음은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에 빛의 장막을!”

거대한 황금빛의 벽이 나타난다. 미카엘라와 고위천사 100명의 힘이 합쳐진 벽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카엘라 주위에 있던 고위천사들이 제각각 성력을 이용해 빛의 장막을 강화시킨다.

“발전한 건 당신만이 아니에요. 바알!”

미카엘라는 이 공격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모든 힘을 사용하는 공격.

바알의 일격을 막아내기만 한다면 자신의 승리는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완전한 빛의 장막을!”

미카엘라가 외쳤다. 황금빛의 벽이 찬란하게 빛난다. 미카엘라는 자신의 권능과 고위천사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이 벽의 내구도를 정확하게 모른다. 왜냐하면 부서진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엘의 최대 일격을 아주 간단히 막아냈다. 우리엘은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다고 단언한 기술이다.

“뒈져버려! 미카엘라!”

바알이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소리가 사라지고, 바알의 주먹으로부터 시작된 검은색이 세계를 침식하듯 지배하며 미카엘라를 향해 뻗어나갔다.

어둠이 황금빛의 벽과 부딪힌다. 처음에는 어둠이 가로막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뒤이어 이어진 바알의 두 번째 주먹이 어둠에 힘을 더했다.

황금빛 벽이 부서졌다. 미카엘라가 기겁을 하며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권능을 발동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어둠이 한 차례 쓸고 간뒤, 바닥에 쓰러진 미카엘라가 중얼거렸다.

미카엘라가 한계에 다해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애써 일으키자 눈앞에 바알이 있었다.

식은땀을 잔뜩 흘리면서도 시니컬하게 웃고 있는 바알이 있었다.

“막히는 줄 알고 존나 식겁했네. 씨발.”

바알이 보란 듯이 주먹을 흔들었다.

“보기 좋네. 씨발년아.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