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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의식
“음~ 음음~ 음~”
조시아는 앞에서 들리는 차분한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길을 걸었다. 최근들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깊게 청하지 못했던 그의 몰골은 처참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엉망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폐인이라 손가락질 받아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다.
머리카락은 푸석하다 못해 걸레 꼴이고, 눈가에는 판다 뺨치는 진한 다크 서클이 있으며 볼은 안쓰러울 정도로 들어갔다. 입술은 말라비틀어졌고, 입고 있는 옷은 넝마나 다름없다.
조시아는 공허한 눈으로 자신의 조금 떨어진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숲길을 걸어가는 여자를 바라봤다. 숲길과는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였다. 그녀가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백금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머리위에는 청은색으로 빛나는 티아라를 쓰고 있다.
“음~ 으음~ 음~”
맑고 쾌활한 콧노래였다. 그러나 정작 그걸 부르고 있는 검의 공주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조시아는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콧노래를 들으며 피로에 의해 천근만근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겼다.
딥크스의 서쪽끝 바다에서부터, 네메스 대륙의 중립구역까지 오는데 걸린 며칠간 조시아는 조금도 쉬지 못하고 검의 공주의 뒤를 따라 걸어야 했다.
검의 공주는 조시아의 사정 따윈 봐주지 않았다. 조시아가 지쳐 쓰러지면 그제서야 걸음을 멈추고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깨어나면 다시 움직였다. 그것의 반복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검의 공주는 길을 가다 마주치는 모든 생명체를 죽인다는 것이다. 마족이든, 동물이든, 몬스터든 구분하지 않고 평등하게 죽였다. 노인이든, 어린아이든, 임산부든 배려하지 않고 생명을 빼앗았다.
조시아는 그들을 구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무서우리만치 평등한 죽음을 지켜보는 것과 그녀에게 억지를 부려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로 가는 길을 바꾸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천 년이 넘도록 바다속에 봉인되어 있던 그녀는 확실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고 있었다. 분명 길을 모를터인데 확실하게 중립구역에 도달했으며, 프리티스 제국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왜.”
조시아의 입에서 갈라지다 못해 불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던 검의 공주가 멈칫하며 뒤를 돌아본다.
그녀의 콧노래 소리가 사라진다. 무표정한 그녀의 청은 빛 시선이 왜소한 조시아에게 향했다.
“…왜 그 쪽으로 가는 거야?”
이곳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물었던 질문이었다. 검의 공주는 의외로 조시아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이유는 조시아가 임시 마스터이기 때문이다.
“저 방향에서 불온분자가 포착됨.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하등 생물을 죽이는 게 그분들에게서 부여받은 의무이자 역할이야.”
이전에 들었던 대답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조시아는 그녀에게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아주 약간의 기대를 하며 전에도 했던 똑같은 질문을 해댔다.
“…그 불온분자라는 것은?”
“주제도 모르는 하등생물.”
그 주제도 모르는 하등생물이 뭔지 물어도, 하등생물은 하등생물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래도 조시아는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가 말하는 하등생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됐다.
그녀가 말하는 하등 생물은 지성을 가진 종족, 몬스터, 동물 등이었다. 마족이든, 천족이든, 인간이든, 엘프든 모두 하등 생물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있었다.
검의 공주가 프리티스로 향하고 있음으로 보아, ‘주제도 모르는 하등생물’는 천족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전에 모험가 파티에 있던 천족을 가리켜 물었을 때 그녀는 ‘하등생물’이라고 말했다. 즉, 주제도 모르는 하등생물은 천족이 아니다.
‘……주제도 모르는 하등생물은 아마도 천사. 검의 공주는 천사를 죽이려 하고 있어.’
추측에 불과했지만, 조시아는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뭐가 목적이야?”
“섬멸. 그게 내 유일한 목적이자 의무야.”
망설임 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조시아의 공허한 눈동자가 떨렸다.
섬멸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하등생물, 즉 네메스 대륙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니, 자신은 깨워서는 안 되는 걸 깨워버렸는지도 모른다.
“……살려 줄 거지?”
조시아가 물었다. 그건 이전의 질문과 다르게 매일 또는 반나절마다 묻는 질문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수 십 번을 들어 알고 있지만, 묻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그건 조시아의 희망이었다.
“살릴 수 있음. 부활검이 완전히 충전되기까지 8,000 마리 정도 남았어.”
부활검.
검의 공주가 가지고 있는 199번째 검으로 생명을 죽여 영혼의 일부를 흡수하는 검이다. 10,000에 달하는 영혼 흡수가 완료되면 죽은 이를 부활시킬 수 있다.
시체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조시아의 아공간 덕분에 만족할 수 있었다.
“8,000…… 명.”
그 숫자는 몬스터와 동물이 포함되지 않은 숫자이다. 부활검의 영혼은 오직 지성을 가진 종족만을 흡수한다.
그녀가 부활검으로 8,000명을 더 죽여야 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데 벌써 2,000명이 죽었다.
“…….”
조시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죄악감이 육체를 지배하고,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검의 공주른 그를 보며 살포시 웃었다. 공주라는 이름에 걸맞는 조신한 웃음이었으나, 보고 있는 조시아는 섬뜩함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빠른 방법 있음. 하등생물들이 모여 있는 도시에 가서 모조리 죽여 버리는 거야. 8,000… 아니, 28,000은 금방이야.”
“안 돼!”
조시아가 고함쳤다. 주먹을 꽉 쥔다.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것만은… 안 돼.”
희미하면서도 고통이 가득한 목소리로 조시아가 말했다.
검의 공주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 불가. 결국 빠른 길과 느린 길의 차이 일뿐이잖아? 동료를 빨리 보고 싶지 않은 거야?”
“…….”
그렇다 결국은 3만 명을 죽여야 한다.
조시아는 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뭐라고 말해도 변명밖에 되지 않고, 변명은 자기혐오가 되어 정신을 부술 것이다.
“알았음. 임시 마스터의 선택은 존중해줄게.”
검의 공주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타이밍 좋게 몬스터의 포효소리가 울렸다.
“크어어어워!!”
조시아는 숨을 삼켰다. 나타난 것은 녹색 피부를 가진 트롤들이다. 숫자는 대략 20마리에 달한다.
“말도 안돼! 트롤이 무리 지어 움직인다고? 그 이전에 여긴 트롤의 서식지도 아닌데!”
트롤들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 하는 기색이었다. 그 두려움의 대상은 검의 공주가 아니었다.
무리의 가장 앞에 있는 트롤은 나무 하나는 간단히 박살내는 크고 단단한 주먹으로 검의 공주를 향해 휘둘렀다. 지면에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굉장한 모욕임. 하등 생물 따위가 덤비다니….”
트롤의 머리 위에 나타난 검의 공주가 오른손을 칼날모양으로 세우고선 트롤을 향해 내려쳤다.
“불쾌함. 죽어.”
트롤의 몸이 수박이 쪼개지듯 정확하게 절반으로 갈라졌다.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파리를 쫓듯이 손날을 허공중에 몇 번이나 휘둘렀다.
더 없이 날카로운 검기가 트롤들을 향해 날아간다.
그 검기는 빠르면서도 교묘하게 날아간다. 알아도 피할 수 없는 사각을 노리는 것은 기본이고 트롤들이 뭉쳐 있다 보니 무리하게 피하려고 했다간 동료와 부딪혀 몸의 균형이 흐트러져 결국 검기에 썰리게 된다.
트롤들이 선택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검기를 피하고 보는 것이었다. 무리하게 피하려다 보니 근처의 동료들의 몸과 엉키게 된다.
애초부터 트롤은 무리지어 행동하는 몬스터가 아니다 보니 동료 간의 연계라는 것이 없다는 점도 크게 작용됐다.
“역시 하등생물. 이해할 수 없어.”
재차 검기를 날리는 것으로 살아 남은 트롤들을 모조리 학살한 검의 공주가 땅에 내려서며 말했다.
조시아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검의 공주의 무력은 중립구역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두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볼 때 마다 그녀의 힘에 경악하게 된다.
“……고대 병기. 저걸 어떻게 막으란 거야.”
조시아는 현기증을 느끼고 몸을 비틀거렸다. 몸 안의 마력이 빨려나가면서 느끼는 현기증으로, 검의 공주가 힘을 사용할 때 마다 일어나는 익숙해진 감각이다.
원래 검의 공주는 2가지 모드가 있다. 수면 모드와 활동 모드가 바로 그것이다. 활동 모드를 유지하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마스터의 마력을 공급받아야 하고, 수면 모드는 마스터의 아공간에 자신의 몸을 숨기며 말그대로 수면에 들어가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마력을 공급해야 하는 마스터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모드가 수면 모드다.
그러나 검의 공주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수면 모드에 들어간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조시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면모드에 들어갔다가 영영 불러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조시아가 죽거나, 자력으로 탈출하는 수밖에 없다. 자력으로 탈출하게 되면 몸에 부담이 가게 되어 꺼린다.
“먹이 준비 완료. 빨리 흡수해.”
검의 공주의 강압적인 말을 들으며 조시아는 넝마 같은 옷 속에서 단검을 꺼냈다. 검자루에 푸른색 보석이 박혀 있고, 검신에는 조시아가 모르는 고대어가 새겨져 있었다.
조시아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트롤의 사체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아직 온기도 가시지 않은 그 커다란 녹색 몸체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검의 공주에게 받은 단검은 손쉽게 트롤의 가죽을 뚫었고, 단검은 괴걸스럽게 트롤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마력으로 치환해 조시아에게 전해주었다.
조시아의 얼굴에 약간씩이지만 생기가 돌아온 반면, 트롤의 사체는 뜨거운 태양빛에 오랫동안 노출된 식물처럼 말라 비틀어졌다.
“으으으읏…!”
마력이 단검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건 강제로 몸안에 이물질을 넣는 기분이라 굉장히 기분 나빴다. 그러나 검의 공주의 뒤를 따르려면, 그녀를 유지하기 위한 마력이 필요했다.
트롤들의 생명의 마력으로 전부 치환한 그는 여전히 공허한 눈으로 검의 공주의 뒤를 따랐다.
“……왜 갑자기 길을 바꾸는 거야?”
검의 공주가 걷기 시작한 방향은 트롤 무리가 나타났던 방향이었다. 프리티스 제국으로 향하는 길의 정반대는 아니더라도 돌아가게 되는 것은 틀림 없었다.
“특이한 기운 포착. 흥미가 동했어.”
조시아는 그녀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 ⁂ ⁂
“감사합니다! 저희 마을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험가님 이건 보잘 것 없는 답례입니다만 부디 받아주십시오!”
테드는 어색하게 웃으며 초로의 노인이 건네는 주머니를 받았다. 살짝 보니 주머니의 내용물은 은화가 대부분이고 간간히 금화 몇 개가 있는 것이 전부다. 마을 규모가 인구수 500도 되지 않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이건 여행 경비에 도움이 되겠네요. 고마워요.”
테드의 입장에선 푼돈도 되지 않았으나,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이 돈은 갑자기 나타난 몬스터 무리에게서 마을을 지켜준 테드에게 지불하는 정당한 대가였다. 테드가 거절한다면 되려 그들은 불안해할 것이다. 여기선 깔끔하게 주고 받으며 관계를 끝내는 것이 옳았다.
“하나 물어보죠. 갑자기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나타난 이유를 아시나요?”
“아, 아뇨. 모르겠습니다. 이런 적은 60년 평생 처음있는 일입니다…. 정말 모험가님이 아니었다면….”
노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테드는 이제 괜찮다며 그를 위로하면서 몬스터가 있는 시체무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고블린, 트롤, 오우거 등등 제각각 다른 몬스터 100마리다. 본래라면 먹고 먹히는 관계여야 하는 몬스터가 뭉쳐서 나타난 것은 명백한 이상 현상이었다.
처음 생각한 것은 누군가가 일부러 몬스터를 조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를 살펴본 결과 누군가의 지배를 받은 흔적은 없었다. 이 몬스터들은 무언가에 겁먹은 듯 도망쳐온 것 같았다.
“이 사실은 모험가 길드가 알고는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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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