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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의식
32. 의식.
테드는 실험소를 습격한 날로부터 2달 가까이 사탄교가 있는 드래프리온의 도시를 전전했다.
목적은 사탄교의 전멸이었다. 데비크를 만들어내는 시설은 모조리 파괴하고, 막아서는 사탄교도와 하급 악마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죽여 댔다. 너무 멋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여러 가지 문제가 되긴 했지만, 더 이상 드래프리온에서 사탄교가 활동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되었다. 후반부에 대륙에서 찾아온 정예 병사들이 잘해준 덕분이기도 했다.
찾지 못할 정도로 깊숙이 숨어버린 사탄교의 잔당이 무엇을 하더라도 사탄교의 손에서 벗어난 드래프리온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사탄교가 어떻게 하도록 대륙의 국가들이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목적의 절반은 완료되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시작조차 못했다.
결국 끝끝내 아스타로트를 찾지 못한 것이다.
사탄교의 수장이자, 현 사태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아스타로트가 사탄교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다. ……라고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테드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드래프리온이라는 섬 국가를 장악했으면서도 미련 없이 내다 버린 것으로 보였다. 이미 목적은 완수했으니 필요 없다는 듯 방치해버린 것 같았다.
냉정히 생각하면 목적의 절반은커녕 일부밖에 달성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사탄의 심장’이라 불리는 시스템의 제약을 무시해버리는 무언가는 행방을 알 수 없는 아스타로트가 가지고 있다. 또한 정보원이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니며 제작한 실종자 명단과 테드가 지금껏 상대해온 데비크의 숫자가 지나치게 맞지 않는다. 약 4배 정도 차이난다고 할 수 있었다.
테드는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기분 나쁜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는 직감을 느꼈다.
어떻게는 하고 싶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썩 시원하지 않은 기분을 품으면서 테드는 네메스 대륙으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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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스 왕국에 들어와 작은 도시의 호텔을 구해 임시로 생활하고 있는 테드는 베란다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양손으로 턱을 괴고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물었다.
“이 천사 놈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엄격하면서도 근엄하고 진지하게 눈앞의 대상에게 물었다.
“아앙? 그딴 걸 왜 나한테 묻는 건데?”
그러나 불량스럽게 다리를 꼬고 앉은 연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자 아이는 목소리에 짜증을 한껏 담아 되물었다.
“드래프리온에 있던 사탄교는 대충 정리 됐어. 아스타로트는 신경쓰이지만 찾을 방법이 없고. 그럼 남은 건 천사잖아? 난 이 천사 놈들을 어떻게 하고 싶은데.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말을 마친 테드는 사이나가 준비해준 시원한 사과 주스를 원 샷 했다. 사이나가 직접 갈아 만든 사과 주스인데 몸에도 좋고 맛도 좋으며 묘한 중독성까지 느껴지는 주스였다.
바알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내용물은 당연히 비어 있었다.
“……너 그때 말했지? 네 노예가 된다면 미카엘라를 죽일 수 있게 해준다고?”
“……노예가 된다면이라… 그런 말을 한 기억은 없는데. 미카엘라를 죽일 수 있게 해준다고는 했지.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답이 안 나와.”
사탄교의 악마와는 다르게 천사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프리티스 제국에서 천사는 신성시 되고 있고, 테드가 드래프리온에서 사탄교 박멸에 힘쓰는 동안 미카엘라는 자신들이 시스템에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미카엘라와 싸우게 된다면 상대해야 하는 것은 천사 뿐만이 아니라 프리티스 제국 전체이며, 천사를 추종하는 무리들까지도 상대해야 한다.
더군다나 테드에겐 정당한 명분도 없었다.
“뭘 그런 걸로 고민하냐? 그냥 쳐들어가서 다 죽여 버리면 되지.”
“생각 없이 말하지 마. 지금 그런 짓을 벌인다면 사탄교보다 더 나쁜 놈이 된다고.”
“명분 따위야 나중에 생각하면 되잖아? 그래. 미카엘라와 아스타로트가 간통했다던가.”
“아주 쉽게 생각하네. 네 말대로 쉬운 세상이었다면 이런 고민 따윈 하지도 않았어.”
일단 미카엘라를 죽이고 난 뒤에 사태를 수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리티스 제국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고, 명분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조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거짓 명분이라는 것은 금방 들통날것이고, 네메스 대륙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비난받을 것이며, 막대한 현상금이 붙어 쫓기는 신세가 되는 미래가 쉽사리 그려졌다.
“진짜 이해가 안가네. 강자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게 정설 아니야?”
“그럴 리가 있나.”
“내가 마계에 있을 땐 그랬어.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을 죽였지. 심심풀이로도 죽였고. 아무 이유 없이 죽이기도 했는데 누구하나 반항하지 않았지. 아, 씨발,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리니 조금 부끄럽잖아.”
테드는 질린다는 눈으로 바알을 쳐다봤다.
“여긴 마계가 아니야. 마계에 있을 때처럼 멋대로 행동하다간 나한테 맞는다?”
“알고 있어! 네가 명령한다면 네발로 땅을 기면서 발도 핥아야 하는 노예가 지금의 이 몸임을! …생각하니 좆같네! 천하의 바알이 인간의 노예가 되다니…!”
바알은 작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쳐대며 분통을 터트렸다. 힘 조절은 하고 있는지 테이블이 박살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지진이라도 난 듯 심각하게 흔들렸을 뿐이다.
그렇게 10초 정도 애꿎은 테이블에 분풀이를 하던 바알은 이내 숨을 가다듬고 테드를 쳐다봤다.
“그래서 뭘 묻고 싶은 거야?”
“미카엘라의 약점. …아니. 미카엘라를 상대하기 위해 내가 알아야 할 것. 뭐든지 좋아. 그 여자에 대해 말해줘.”
자신은 아스타로트와 더불어 최대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미카엘라를 모른다. 이전에 바알에게서 미카엘라에 대해 듣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수박 겉핥기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정도의 정보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나도 잘 몰라.”
테드의 질문에 잠시간 생각에 잠겼던 바알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은 드물게도 장난기가 느껴지지 않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나도 그 년에 대해 전부 아는 건 아니야. 오히려 적지. 그 샹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를 같은 동료에게도 숨기는 년이니까.”
“시답잖은 정보라도 좋아. 가령 전투에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공격해온다던가. 하는 버릇같은 거 말이야.”
“그때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고 생각 하냐? 전투와 관련된 버릇 따윈 고치고도 남았을 시간이야.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그년은 직접적인 전투 보다 지휘하는 쪽에 특화되어 있지.”
그로부터 바알은 주저리주저리 미카엘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이전에 들었던 내용이었지만, 듣지 못했던 내용도 있었다.
“그년을 상대할 땐 말이야. 가장 조심해야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야.”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이라…. 암살자 같은 거?”
“농담 하지마. 넌 내가 말하는 게 뭔지 알고 있잖아?”
바알은 미카엘라와의 전쟁, 대성전에서 패배했다.
화끈하게 전투를 벌여서 패배한 것이 아니었다.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서로 전력을 다해 전투를 벌이고 패배했다면, 바알은 그 전투에 깔끔하게 승복하며 미카엘라에 대한 증오를 접었을 것이다.
대성전의 패인은, 바알의 패배 원인은 동료와 부하에 의한 배신이었다.
악마는 제각각 욕망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집착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그것은 쉽사리 떨쳐낼 수 없는 종족 특성이다.
미카엘라는 악마의 욕망을 이용해 바알을 배신하도록 유혹하고 부추기며 협박했다.
“1초 전까지만 해도 내 등을 지키고 있던 놈들이 내 등에 칼을 꽂았어. 내 명령이라면 불구덩이에도 웃으면서 돌진하던 놈들이 내 다리를 베었어.”
바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노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테드는 그녀의 얼굴에서 괴로움을 보았다.
“그게 평범한 통수였다면 나도 이해는 해. 내가 그것들을 인정사정없이 대했거든. 근데 놈들은 나한테 사과하면서 내 몸에 칼을 꽂았어. 진짜 재수 없네. 씨발. 이왕 배신할거 존나 사악하게 웃으면 하면 좋잖아? 안 그래?”
“바알 그건….”
“그래. 나도 알아. 그 때, 저 너머에서 이쪽을 보며 웃고 있는 샹년을 보면서 곧바로 깨달았지. 그 빌어먹을 년이 뭔 짓을 했다고.”
알아차렸을 때는 늦었다.
악마는 대성전에서 패배했고, 뿔과 자존심을 잃었다.
“그러니 네가 그 년을 상대하며 조심해야 할 건 언제 거하게 통수 때릴지 모르는 보이지 않는 놈들이야. 아, 뭐…. 부하도 뭣도 없는 넌 상관없나. 메이드 년은 벌리라고 하면 아무 반항없이 벌리는 광신도 수준이라 배신할 것 같지도 않고.”
“……뭘 벌린다는 말입니까?”
“아씨! 깜짝이야!”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온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에 바알이 펄쩍 뛰었다. 사이나는 태연히 테이블 위로 반듯하게 깎아 놓은 과일이 담긴 접시를 올렸다.
“기척 좀 내고 다녀라, 망할 메이드!”
“딱히 기척을 숨긴 적은 없습니다. 당신이 대화에 빠져 눈치 채지 못한 것뿐입니다.”
바알은 그녀를 향해서 중지를 꼿꼿이 세웠다.
“뭘 벌린다고 물었지? 당연히 네 가랑이지! 이 음란 메이드야!”
“정말이지. 당신의 그 저속한 말투는 도저히 고쳐지지가 않는군요.”
사이나는 한숨을 내쉬며 바알의 말에 대꾸했다. 그녀는 바알의 태도를 고치기 위해 모종의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바알의 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테드가 명령해도 마찬가지였기에 지금에 와서는 포기한 상태였다.
테드는 과일을 먹으며 욕을 내뱉고 있는 바알과, 그녀의 말을 적당히 무시하고 있는 사이나를 익숙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테드의 머릿속에는 미카엘라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아스타로트가 실종되어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 자신이 펠리스 왕국에 돌아왔다는 것을 그 여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미카엘라에게 있어 테드는, 아니 바알은 내버려둘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대륙 회담에서 그녀가 바알에게 보인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미카엘라는 바알이 제약으로 인해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조만간 죽이기 위해 움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테드는 눈을 감았다. 귀속으로 바알의 욕설과 담담히 받아치는 사이나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바알.”
테드가 그녀를 불렸다. 불만스럽게 과일을 씹어먹던 바알의 얼굴이 테드에게 향했다.
“프리티스 제국으로 갈 거야. 당연히 노리는 것은 미카엘라야. 숨어버린 아스타로트를 찾겠다고 시간을 질질 끌 여유는 없어.”
“너. 아까는 함부로 건들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냐?”
“네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어. 미카엘라를 그냥 내버려 두는 건 위험할 것 같아.”
“방법은 있고?”
“없어. 하지만 방법 정도는 찾아내면 돼.”
바알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그러나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씨발. 그년을 족치러 가자고. 그냥 죽이면 아쉬우니까 돌림빵 해버리자. 아, 물론 네가 첫빠따로. 난 두 번째로 괜찮아.”
“……바알 누누이 말하지만, 그 말투는 좀 고쳐.”
“나도 계속 말하는데. 포기해.”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