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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41화 (24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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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검의 제단.

케니스가 말한 마을은 탁트인 초원위에 덩그러니 지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사탄교의 인체 실험이 벌어지는 장소는 둘째치고 마을 자체가 기분 나빴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건 둘째치고 집이라고 지어진 건물은 나무판자를 성의 없이 올려다 놓은 것에 불과했다. 덤으로 마을의 중심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높은 벽을 가진 건물이 있었다.

대귀족이 사는 대저택이라고 불려도 좋은 그 건물이 바로 케니스가 말한 인체 실험소다. 정확하게는 저 건물의 지하에서 일이 벌어진다.

중심에 있는 깔끔하면서도 화려한 대저택과 주위에 있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판잣집. 그 언밸런스함은 근처 도시나 마을에 소문이 퍼져도 이상하지 않으나, 지금까지 이곳에 대한 소문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 마을과 근처에 쳐져 있는 결계 때문이다.

평범한 마법 결계였다면 마나 변화에 민감한 마법사나, 실력있는 모험가들이 지나치면서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결계는 높은 수준의 주술로 자연스럽게 숨겨져 있었다.

여기에 마을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무심코 지나가게 된다. 특출나게 민감한 자가 아니라면 절대로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이 주술 결계를 칠 놈은 그놈 밖에 없지.’

그레온 그레모리. 자신의 손에 죽은 악마의 실력이 틀림없었다.

테드는 마을 입구를 향해 몸을 숨기지도 않고 당당히 걸어갔다. 생각 같아서는 고대마법으로 한 번에 쓸어버리고 싶었다. 허나 실험소 안에는 수 십 혹은 수백에 달하는 생존자가 있으며, 사탄교가 지금껏 쌓아온 실험 자료가 남아 있을 것이다.

‘구역질이 나는 자료지만, 사탄교를 상대하는 일에 분명 도움이 될 테지.’

근처에 있는 마법 센서는 해체하지 않고 일부러 걸려 주었다. 이미 적들은 자신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의 판잣집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투시를 해본 결과 판잣집 내부에  데비크가 있는게 보였다. 한 가구당 최소 10명에서 많으면 30명까지 꽉꽉 들어서 있다.

데비크는 무언가의 신호를 받은 듯 잠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집밖으로 나온다.

마을에 있는 100채가 넘는 판잣집에서 기어 나오는 데비크는 지구에서 보았던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일렉트로닉 필드(Electronic Field).”

테드가 오른발 굴렸다. 전기를 머금은 충격파가 대지를 타고 마을로 흘러들어갔다.

전기장에 닿은 데비크는 그대로 육체가 감전되어 바닥에 쓰러지거나, 꼼짝달싹도 못했다. 전기장은 마을 중심의 저택에도 향했으나, 높은 성벽같은 담벼락에 막혀서 사라진다.

“마을에 있는 데비크는 대충 2,000마리 정도 인가.”

중심의 저택을 제외한 판잣집에 있는 데비크를 헤아린 숫자였다. 기감으로 대충 파악한 것이기에 실제로는 더 적거나 많을 수도 있었다.

지금의 테드에게 있어선 데비크의 숫자가 천이 되든 만이 되든 상관없는 일이지만.

테드의 발아래에서 다시금 전기장이 마을로 퍼져나간다. 주기적으로 발생해주지 않으면 회복력이 말도 안되게 빠른 데비크들은 금세 적응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테드는 마을의 입구에서 중심의 저택을 노려봤다. 단단한 담벼락을 사이에 있는 커다란 대문은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테드는 시선을 위로 올렸다. 달이 보이지 않는 오늘같은 밤에는 발견하기 힘든 까마귀 한 마리가 판잣집 지붕위에 앉아 테드를 보고 있었다.

“보고 있겠지. 지금부터 이곳을 파괴하겠다.”

까마귀를 통해 이쪽을 보고 있을 상대방에게 말을 건다. 패밀리어 마법의 역추적을 할 필요도 없이 실험소의 내부 인물일 것이다.

“마나 축약(Mana Charge).”

테드의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선명한 푸른색의 입자가 오른손으로 모여들었다.

이건 양동 작전이었다. 테드는 생존자의 구출과 실험 자료를 사이나와 바알에게 맡겼다. 그의 임무는 최대한 시선을 끄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선만 끌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애초에 양동작전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우선은 상대가 테드 혼자만 이곳에 쳐들어 왔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낮다. 당연히 양동의 가능성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도 테드에 대한 신경을 끌 수는 없다. 테드의 실력을 무시하는 순간 실험소 자체가 날아갈테니까.

마나의 시원한 감각이 느껴지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민다. 목표는 판잣집 너머에 있는 대저택.

푸른빛의 마나 입자는 산산히 부서지듯 하더니 크기를 늘려간다. 졸지에는 입자가 아니라 빛의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크기는 1초가 지날수록 무서우리만치 커진다.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직경 5M가 넘는 거대한 푸른색의 탄환이 쏘아졌다. 대포라는 말로도 부족한 크기의 그것은 일직선으로 호쾌하게 쏘아졌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판잣집이 부딪히고, 그대로 분쇄되어 사라진다. 그 안에 있는 데비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윽고 마법 탄환은 단단한 철로 이루어진 저택의 대문에 도달했고, 부딪혔다.

특대 매직 미사일이 폭발하고 굉음과 함께 날아간 대문이 저택에 쳐박혔다. 저택 안에 있던 사탄교 일원들이 당황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생각보다 단단하군. 문이 아니라 저택을 박살낼 생각이었는데.”

생각대로라면 저택의 일부를 날려버렸을 공격이었다. 테드의 매직 미사일에는 충분히 그럴 힘이 들어 있었다. 상정하지 못한 것은 대문이 평범한 철문은 아니라 모종의 수단으로 강화한 것이었으며, 판잣집과 데비크 때문에 위력이 감소한 것도 있었다.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으며 충격파를 생성하고, 오른손을 들어 다시금 마나 입자를 모은다. 처음 공격으로 부족했다면 다음 공격으로 하면 된다.

“이런 제길! 또 온다! 막아!!”

“데비크는 뭐하는 거야?! 좀 움직이라고!”

“테드 크루시안!! 본교의 숙적!!”

적의가 휘몰아쳤다. 저택 안에 있던 사제복 비슷한 시커먼 옷을 입은 사탄교도들이 제각각 날붙이를 들고서 뛰어나왔다.

테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누가 봐도 말단인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미움 받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들의 감정은 미움같은 귀여운 것이라기 보단 증오에 가깝다.

뭐, 피장파장이지만.

“열렬한 환영 참 고맙군. 이래서야 답례를 안 할 수가 없지.”

특대 매직 미사일에 또 다른 마법을 부여한다. 부여하는 것은 지옥불(Hell Flame).

매직 미사일의 영향 탓인지 표면에 타오르는 불꽃은 푸른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테드는 망설임 없이 탄환을 쏘았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막아서는 판잣집이 없다는 것과, 매직 미사일이 지나간 대지에 푸른 불이 옮겨 붙어서 타오른다는 점이다. 푸른불은 이내 판잣집을 통해 빠르게 번진다.

매직 미사일은 정확하게 저택에 적중했다. 휘말린 사탄교도들의 비명이 쩌렁쩌렁 울렸으며, 저택이 반파되면서 불타올랐다.

저택이 박살나도 큰 문제는 없다. 그건 테드와 사탄교의 공통된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실험소는 저택의 지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택은 사탄교도들이 편안히 생활하는 곳이었다.

“왜 비명을 지르는 거지? 너희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몸이 불타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텐데.”

테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되돌아오는 답은 사탄교의 비명이었다.

“충실한 신도들이여! 두려워 말라! 사탄님께서 항상 우리를 보호하신다!”

날아오는 불의 탄환에 가장먼저 몸을 던져 피해낸, 검은 옷에 화려한 금장식을 한 중년 남성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로 대지를 찍었다. 지팡이 끝에 달린 종이 흔들린다.

데비크가 종소리에 섞인 특수한 마력 파장에 반응했다. 데비크가 재빠르게 테드를 향해 달려들려고 했으나, 테드가 다시 일보를 내딛자 생성된 전기장이 데비크의 몸을 멈췄다.

그리고 테드는 블링크를 사용했다.

“그래. 네가 이곳의 책임자냐?”

무정한 테드의 손아귀가 중년 남성의 목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커, 컥! 네, 네이놈…! 이, 이거 놔라…!”

그가 침과 눈물을 흘리며 팔과 다리를 버둥거렸다. 테드의 팔을 주먹으로 내리치나, 투명한 배리어가 완벽히 막아낸다. 간단한 배리어를 부수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 신체능력은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공포에 질린 얼굴을 보니 정신력도 약해보였다.

“이해가 안 가는군. 너같은 놈이 어떻게 데비크를 조종할 정도의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거지?”

질문의 대답을 듣기 위해 손아귀에 힘을 살짝 풀었다. 그러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주위에 흠칫거리고 있는 부하들을 향해 호통을 질렸다.

“이, 이! 무능한 것들! 뭐하냐! 당장 이 놈을 죽여라! 둘도 없는 기회지 않느냐!”

부하들은 그제서야 무기를 들고 제각각 마나를 일으켰다. 사탄교라는 위험한 집단에 속해 있는 만큼 대부분이 마나를 다룰 줄 알았다. 그들은 뒤숭숭한 흉기를 들고 비명같은 기합을 지르며 테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테드의 몸에서 바람이 불었다.

손아귀에 들려 있는 남성은 어울리지 않게 시원하면서도 산뜻한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그의 부하들의 감상은 전혀 달랐다.

사방에서 고막을 찟는 듯한 비명과 함께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남성은 눈알을 굴려 부하들을 살폈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떴다.

온몸이 난자된 부하들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대부분이 죽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자들이 배를 붙잡고 흘러나오는 내장을 보며 소리 없는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한심하다는 감정 보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신도 저런 꼴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남성이 몸을 떨었다.

피비린내에는 남성이 알고 있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건 실험체들이 죽기 직전에 싸지르는 오줌 냄새였다. 냄새의 근원지는 자신의 바지춤이었다.

“이, 이 괴물놈! 사, 사사사, 사탄께서 너를 벌 하실 거다…!”

테드는 그의 말에 기가 찼다.

“만일 내가 괴물이라면. 아무 관련없는 시민들을 납치해 지하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인체 실험을 자행한 너희들은 뭐지?”

“그, 그들은 사탄을 위한 제물이다!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한 포석이 되었다! 그들 또한 사탄의 품에서 기뻐할 것이다!”

“도저히 못 들어주겠군.”

테드가 그를 내던졌다. 허공에 뜬 그는 놓치 않았던 지팡이를 이용해 데비크를 부르려고 했다.

우드득, 하고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의 몸이 알수 없는 힘에 의해 허공에서 뒤틀렸다. 팔이 돌아가고, 종아리가 양옆으로 꺾였다. 무릎이 박살났으며, 피부가 한 방향으로 쓸린다. 그의 몸이 젖은 걸레를 짜내는것처럼 허공에서 뒤틀리고 있었다.

압력을 견디지 못한 몸으로부터 피가 아래로 흘려 내렸고, 뒤이어 뭉게진 내장이 쏟아졌으며, 그의 가벼운 몸이 철푸덕 떨어졌다.

테드는 무감정하게 시체를 내려다봤다. 이런자가 실험소의 책임자라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아마도 지하에 있는 자들 중에 책임자가 있을 것이다.

눈을 이용해 저택에 남아 있는 사람을 확인하던 테드는 저택의 지붕위를 쳐다봤다. 거기엔 3마리의 날개달린 데비크가 있었다.

피막의 날개를 가진 시커먼 데비크는 테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체구는 테드보다 작으나 겉모습은 그레온이 변한 모습과 굉장히 흡사했다. 그레온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악기(惡氣)’라는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레온과 같은 종류일 것이라고 테드는 생각했다.

테드를 노리고 데비크가 모여들었다. 지붕 위의 것들이 입가를 찢으며 웃어댔다. 더러운 침이 아래로 떨어졌다.

테드는 머리를 한 차례 쓸어 넘겼다. 어차피 데비크를 모조리 처리하고 지하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지금와서 저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침을 질질 흘리는 꼴을 보니 지성도 없는 것 같군.”

테드가 인사를 하듯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허공에서 생성된 얼음 화살 12발이 놈들을 노리고 쏟아졌다.

놀들은 피하지 않았다. 그 단단한 몸으로 아무렇지 않게 얼음 화살을 받아 들였다. 얼음화살이 박살났다. 놈들이 날개를 파닥이며 밤하늘로 날았다.

전투에 임하기 위해서 날아오른 것 같지만, 만일의 하나라도 밖으로 도망치게 둘 수는 없었다.

테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땅바닥에 거대한 하얀색 마법진이 그려졌고 순식간에 발동하면서 사라졌다.

밤하늘을 날고 있는 세 놈과, 2천 마리에 달하는 데비크가 힘을 잃고 허공에 떠올랐다.

“그래비티 존(Gravity Zone)”

테드가 양손을 들었다. 박수를 치듯 천천히 손바닥을 가까이 대자, 그에 반응하듯 허공에 떠오른 데비크들이 3마리의 날개달린 데비크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 현상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2천마리의 데비크가 한 곳에 모여들어 거대한 구체를 형성했다. 대부분이 인간형의 데비크인지라 수 백개의 팔이나 다리, 머리가 삐져나와 있는 그 모습은 굉장히 역겨웠다.

마침내 테드의 손바닥이 서로 만났다. 데비크의 덩어리는 압축되듯 줄어들더니 터져나갔다. 바닥으로 폭포 같은 피가 흘러내리고 뒤늦게 집한채 크기로 압축된 검은 살덩어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압력에 의해 뭉개졌을게 분명하니 다시 일어설리는 없을 것이다. 테드는 그것으로부터 시선을 뗴려다가 아직까지 느껴지는 꺼림칙한 기운에 인상을 찡그렸다.

살덩어리 속에서 검은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곧이어 머리와 몸을 드러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온 것은 한 마리이지만, 느껴지는 힘은 3마리가 합친 것 보다 더 강대했다.

“귀찮게 하는군.”

테드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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