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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32화 (23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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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탄의 자식들.

테드는 미카엘라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바알에게 들었어. 지금 발휘할 수 있는 힘이 70%가 전부라지? 바알의 제약이 아니었다면 넌 확실하게 죽었어. 천사라서 그런가? 운이 정말 좋네.”

미카엘라의 눈동자가 테드를 향해 움직였다. 뻔히 보이는 도발이었다.

도발에 일부러 넘어가서 바알과 테드를 전투를 벌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바알을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테드의 힘이 만만치 않았다. 그 바알을 이길 정도라면 지금으로선 이길 확률이 없다.

“당신이야 말로 운이 좋군요. 제 권능에 관해선 당신의 잘난 노예에게 들었겠죠? 만약 이곳에 저 뿐만이 아닌 다른 천사들이 있었다면 확실하게 죽었을 거에요.”

미카엘라의 권능은 천사들과 함께 있을 때 진정으로 발휘된다. 완전한 상태의 바알과 1대1로 붙는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다츤 고위 천사가 미카엘라와 있을 때는 바알 혼자서는 이길 수 없다.

덤으로 신체 능력은 악마 쪽이 뛰어나도 천사가 사용하는 ‘성력’이 악마에게 지나칠 정도로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샹년. 몇 년이 지났는데 변한 게 하나 없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중간계가 아직도 탐나냐?”

바알의 말에 미카엘라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원래 중간계는 우리의 것이었죠. 잃어버린 걸 되찾을 뿐이에요. 그리고 변하지 않은 건 바알도 마찬가지잖아요? 아니, 몸이 어려졌으니 오히려 퇴화했다고 봐야하나요?”

“개소리 지껄이고 있네. 원래 중간계는 너희가 아닌 그들의 것이었지. 날조와 왜곡이 아주 자연스럽구만? 그리고 이 몸이 작아진 건 주인놈이 그런 취향이라서 그래.”

“바알. 너도 날조와 왜곡이 보통이 아닌데.”

테드가 바알의 정수리에 주먹을 쥐어박았다. 취향은 무슨 얼어 죽을.

“테드 크루시안이라고 했던가요? 당신의 이름은 확실히 기억했어요.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때는 오늘처럼 평화로이 넘어가리라곤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 그건 나랑 반대되는 생각이네. 난 다시 만났으면 좋겠는데. 그때 넌 바알에게 죽을 테고, 네메스 대륙을 위협하는 요소 하나가 사라지는 날일테니까.”

회담이 벌어진 방을 지나 복도를 나란히 걷다보니 어느새 건물 밖과 이어진 출구가 보였다. 출구 너머에는 어둑어둑한 하늘이 보였다. 벌써 저녁때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많이 흘렸다.

“미리 말하는데 이건 경고야. 괜한 짓거리는 하지 않는 게 좋아.”

“바알도 그렇고. 당신도 저를 만만하게 보는군요. 당신의 말뿐인 경고가 무언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말 뿐인 경고라… 그 정도로는 부족했나.”

“……그 정도?”

미카엘라가 작게 되물었다.

테드의 말만 보자면 이미 자신에게 무언가 경고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테드를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남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는 들었어도 얼굴을 맞대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원하지 않고 불쾌한 초대면이었다.

“바알을 이곳에 데려온 게 당신의 경고였나요? 경고라 할 정도로 위협적인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아니. 오늘이 아니야. 조금 오래전의 일이지. 뭐, 네가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오래전도 아닌가.”

“……오래전? 저는 중간계에 강림한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어요. 당신의 말에는 논리가 없어요. 저를 또 우롱하려는 건가요?”

“은색 창.”

미카엘라의 발걸음이 멈췄다.

멈춰선 그녀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 순간에 갑자기 폐허가 된 천계의 도시였다. 도시의 이름은 엔트리였고, 그녀가 중간계로 보냈던 시리엘이 살던 도시였다. 시리엘의 육체는 도시와 함께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도시를 완전히 박살낸 것은 궁니르. 아름다운 은색의 창이었다.

“설마… 당신이….”

조용히 말을 잇던 미카엘라는 숨이 멎는것만 같았다. 테드가 입고 있는 재킷의 등 부분에 새겨진 황금색의 새는 그들의 문장이다. 절대로 잘못 볼 리가 없었다.

“허튼짓 하지 마. 미카엘라. 창은 하나가 아니니까.”

미카엘라는 한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우두커니 서서 밖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움직인 것은 뒤에서 따라온 천족이 말을 걸었을 때였다.

“어디 편찮으신지요. 미카엘라 님?”

“…아뇨. 전 괜찮아요. 예상 밖의 일에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미카엘라는 미세하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듯 자신의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레칸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인간으로서 레칸의 힘을 발휘했다. 아니,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레칸의 문장을 당당하게 사용하고 있다.

미카엘라는 두려움과 혼란을 느끼며 프리티스 제국으로 돌아갔다.

⁂ ⁂ ⁂

“이걸로 미카엘라가 함부로 움직이진 않겠지.”

회담이 벌어진 건물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뒤에서야 들고 있던 바알을 땅바닥에 내려놓은 테드가 말했다.

미카엘라를 제약하기 위한 협박이 잘 먹혔는지는 그로서는 알 수 없다. 반응을 보아하니 천계에 떨어진 궁니르에 관해선 알고 있는 모양인데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시리엘을 죽이기 위해 사용한 궁니르가 천계의 대도시 중 하나인 ‘엔트리’를 통째로 날려버렸단 사실을 테드는 모른다.

“네 협박은 확실하게 먹혔어. 아까 그년의 굳어지는 표정을 똑똑히 봤다고! 얼마나 통쾌했던지! 질질 싸면서 오르가즘을 느낄 뻔 했다니까!”

“몇 번을 말하지만 저속한 말은 관둬.”

“그렇게 말하는 너도 실실 웃고 있잖아.”

“아니. 뭐. 조금 통쾌하긴 했어.”

“발딱 설 정도로?”

“안 섰거든.”

테드는 자신의 하반신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바알을 밀어냈다. 그녀의 행동이 어디까지나 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시선이 있을지 모르는 밖에서 이러면 곤란해진다. 자신의 평판에는 큰 관심이 없는 테드지만, 페도라 불리는 것 만큼은 절대로 피하고 싶었다.

“약속. 잊지 않았겠지?”

바알이 물어왔다. 테드는 그녀의 질문 속에 있는 한 줌의 불안을 느꼈다.

“잊지 않았어. 미카엘라와 네가 원 없이 싸울 수 있는 기회는 마련해 줄게. 그게 오늘이 아니었을 뿐이야.”

“그러려면 망할 시스템의 제약을 풀 필요가 있는데. 당연히 방법은 있겠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니까. 응?”

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약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우선은 사탄교의 악마들이 사용했던 것처럼 사탄의 힘을 이용한 것이다. 사탄교를 상대하다 보면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바알과 자신의 계약이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테드는 사탄의 힘을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으로 미뤄두고 싶었다.

두 번째는 사이나처럼 악마 계약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는 것이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바알을 제어할 수 있다는 이점이 붙는다. 또 숙련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이건 바알이 알면 안 되는 일이다. 알게 된다면 분명히….

“내가 봤는데. 네 메이드는 시스템의 제약도 별로 받지 않는 모양이더라?”

“사이나? 아. 얼마전에 스킬을 한계까지 올리는데 성공했거든. 사이나는 더 이상 시스템의 제약은 받지 않아.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지.”

“거의 10년 가까이 걸렸다며? 그건 너무 많이 걸리는데.”

“정확하게는 12년이지. 넌 1,000년을 넘게 기다렸잖아. 그에 비하면 겨우 10년이야. 못 기다릴 것도 없잖아.”

“정확하게는 1,400년이야. 아무리 나라도 이제 슬슬 한계야. 특히나 그 년의 얼굴을 직접 보니 몸이 달아올랐다고. 내가 저 안에서 얼마나 참았는지 알아? 네가 내 몸을 잡지만 않았어도 당장 그년의 얼굴 가죽을 벗기려고 달려들었을 거야.”

“그리고 넌 죽었겠지.”

테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회담에서 바알을 시종일관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너무 그렇게 조바심 내지마. 바알. 나는 너와 한 약속을 지킬 생각이니까. 그러니… 날 믿어. 바알.”

테드와 바알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그 상태가 고착된 것도 잠시. 바알이 먼저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이미 믿기로 했어. 이건 그냥… 재촉일 뿐이야.”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테드는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가자. 사이나가 기다리고 있어. 사이나의 요리는 끝내주니까 너도 마음에 들거야.”

“……맛없으면 엎는다..”

“그럴 일은 없지만 엎지 마라. 맞는다.”

⁂ ⁂ ⁂

“이게 사탄의 자식? 그냥 데비크에서 조금 진화했을 뿐이잖아. 생각보다 강하지도 않고. 너무 거창한 이름인데.”

테드는 눈앞에서 꿈틀 거리는 검은색의 데비크를 쳐다봤다. 딥스크의 마을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놈으로 외양은 보통의 데비크나 다를 바 없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검은색 몸체에 하얀색의 기괴한 문양이 있다는 것뿐이다. 또한가지고 있는 신체 능력이 일반 데비크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지능은 거기서 거기다. 테드에겐 조금의 위험도 되지 않았다.

테드의 앞에 있는 데비크는 하반신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심장을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

잘라진 하반신으로부터 꿈틀거리는 내장이 보이고 있었다. 내장과 살은 증식을 하듯이 느리지만 확실하게 회복하고 있었다. 속도로 보아 1시간 정도면 하반신을 완벽하게 재생할 것이 분명했다.

“사탄교가 왜 이걸 사탄의 자식이라 부르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테드가 공기를 움켜쥐듯이 손을 오므렸다.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데비크의 머리가 박살났다. 그러나 죽지 않았다. 머리는 다시재생하기 위해 꿈틀 거린다. 심장이 파괴하지 않아 죽지 않는 것도 일반적인 데비크와 다르지 않았다.

불에 태우고, 물에 담구고, 번개로 구워도 죽지 않았다. 테드는 데비크와 이 사탄의 자식의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검은 몸에 그려진 하얀색의 기괴한 문양을 빼고는.

“마법 쪽은 아니고. 주술 쪽인가… 아니. 주술도 아닌 것 같은데. 바알도 이 녀석에 대해선 모른다고 했고. 조금 걸리긴 하지만 이 정도면 무시해도 상관없나.”

심장을 터트리자 더 이상 재생하지 않았다.

테드는 데비크의 시체를 쳐다봤다. 사탄의 자식이라 불리는 이것들은, 애쉬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같은 데비크를 먹는다고 했다. 그건 일반적인 데비크와 다르지 않았다. 일반 데비크도 아주 가끔씩 같은 데비크를 먹는 것을 테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테드는 한 동안 데비크의 시체를 쳐다봤다.

사탄교가 이놈을 ‘사탄의 자식’이라 불리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사탄교의 간부를 잡아내어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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