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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231화 (23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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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탄의 자식들.

황금색 빛으로 이루어진 창은 바알의 머리고 들어왔으나, 이마와 불과 5cm의 거리를 남겨두고 멈추었다. 테드가 오른손으로 창을 붙잡은 것이다.

창을 붙잡은 손에 황금색 전깃불이 튀었다. 그러나 테드의 위광은 뚫기에는 위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테드가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빛의 창은 이내 산화하여 사라진다.

“미카엘라. 이게 무슨 짓이지? 다짜고짜 공격이라니. 여기서 전투라도 하자는 건가?”

“그건 제가 묻고 싶군요. 왜 여기에 바알을 소환한 것이죠? 상황만을 보자면 당신이 사탄교에 붙은 것이 아닌가요? 그 광폭의 마왕을 노예로 삼았다는 말을 제가 믿으리라 생각했나요?”

갑자기 나타난 바알에게 당황한 미카엘라지만 곧바로 냉정히 바알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눈치 챘다. 테드의 품속에 있는 바알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바알과 비교하자면 태양과 반딧불처럼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함을. 이것은 바알을 처리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였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카엘라는 바알을 향해 자신의 권능을 담은 창을 던졌다. 비록 시스템에 의한 제약으로 완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바알이라면 충분히 죽일 수 있는 힘을 담았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테드에게 막혔다.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다. 주권결정전에서 바알을 죽이기 직전까지 몰고 갔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결국은 권능조차 없는 중간계의 마법사 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것은 ‘라그나로크’라는 고대 마법이지 테드 하나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 생각은 대폭 수정되었다. 평범한 인간이 권능의 힘이 담긴 공격을 손하나로 막아낼 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녀는 머리를 식혔다. 바알의 도발에 넘어간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저렇게 적나라하게 적의와 조롱이 담긴 말을 드는 것은 그날 이후 처음이었다.

“다른 왕들은 아닌 것 같은데.”

테드의 말에 미카엘라가 빠르게 원탁을 훑어보았다. 갑작스런 상황을 따라가진 못한 체 앉아 있는 대리자들이 아니라 화면 속에 비친 수장들을 살폈다. 그 결과 절반 이상이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큿.”

너무 섣불리 움직였다.

미카엘라는 자신의 실수를 곧바로 인정했다. 바알의 말에 발끈해 기습을 실행했다. 그들의 눈에는 도발에 넘어가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보일 터다. 도발에서 끝났다면 정말로 도발에 불과했을 것이지만, 미카엘라가 공격을 택한 순간부터 정말로 아스타로트와 만났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저에게 날아온 무례한 모욕에 참을 수 없었어요. 제 실수임을 인정하죠. 하지만 저도 그녀의 사과를 받아야겠어요. 그리고 저를 향한 모함을, 얼토당토않은 사실을 입밖으로 내 혼란하게 만든 대가도요.”

미카엘라가 바알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바알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듯 마주봤다.

테드가 보기에도 바알은 지나치게 뻔뻔했다.

“하아? 뭔 개소리야. 샹년아.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사과해야 할 건 너잖아? 거짓말 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중간계를 위한 소리는 다 개소리에요. 중간계를 지배하기 위해 찾아왔어요. 하고. 싹싹 빌어도 모자를 판이라고 멍청한 년아.”

“…….”

그녀의 발치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모여들었다.

테드는 몸을 긴장시켰다. 그녀는 천계 최고 천사다. 진심으로 공격한다면 이쪽으로 진심으로 대처해야 한다.

발치에서 나온 황금빛은 그녀의 손에 모여들어 막대같은 형상을 취했다. 그것은 아마도 검.

“……그만하죠. 바알. 당신의 말이 터무니없는 음모론인건 알고 있나요? 상대를 도발하는데는 아주 도가 텄군요.”

황금빛이 사라졌다. 무표정한 얼굴의 미카엘라는 천천히 다시 의자에 앉았다. 품안에 앉은 바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를 갈았다.

“너 저거랑 나를 싸우게 만들려고 일부러 도발 했지? 나중에 보자.”

테드가 그녀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도 잘했어. 그 여자. 웃는 얼굴이 좀 많이 재수 없었거든.”

“역시 넌 뭘 좀 아는데.”

바알이 고개를 들어 히죽 웃었다. 테드는 못말리겠다는 듯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서 다시금 미카엘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표정한 얼굴의 그녀는 확실한 적의를 가지고 테드와 바알을 쳐다보고 있었다.

“테드 크루시안. 당신이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잘 알았어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죠. 저와 당신은 오늘 이곳에서 처음 만났고 가지고 있는 원한은 없어요. 유일한 접점이라 할 수 있는건 메타엘과 시리엘인데… 그것도 오해로부터 일어난 일이죠. 당신은 바알에게 저에 대해 어떤 소리를 들은 것이죠?”

“내가 널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잘 알고 있군. 그리고 이 일에는 바알과는 관계없어. 설령 내가 바알을 만나지 않았다고 해도 너희 천사를 믿는 일은 없었을 거야.”

“……우리가 천사이기 때문인가요? 대마도사가 종족 차별 주의자일 줄은 몰랐어요. 당신이 이곳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의심 되는군요.”

네메스 대륙에는 수 십 에 달하는 종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인간이나 엘프, 천족이나 마족처럼 국가 규모의 종족이 있는 반면 리저드맨이나 나가족 같은 부족 단위로 생활하는 종족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종족 차별 주의자는 사회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비판 받는 자들이다. 그들의 절반은 범죄자들로 도적보다 질이 나쁘다는 인상이 박혀 있었다.

테드는 네미슈 대통령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이곳에 모인 다른 국가의 수장들과는 다르다. 그는 시종일관 예의바른 태도를 하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여타의 왕처럼 화려하기 보다는 깔끔했다. 한 국가의 수장이라기보다는 기업의 직원으로 보였다.

그는 미카엘라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니, 경계를 너머서 적대하고 있다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본인은 능숙하게 숨기며 행동하고 있으나 테드는 처음부터 남들 모르게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혹시 들어는 봤나 몰라. 인성 차별 주의자라고. 내가 조금 그런 경향이 있어서 오해하나 보네.”

테드는 일부러 말을 끊으면서 원탁을 둘러보았다. 시선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다.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게 사탄교 보다 더 중요한 일인가?”

라이거가 가장 먼저 물어왔다.

“저는 동급이라 보고 있어요. 어느 쪽이든 대륙의 위기인건 변함없으니까요.”

사방에서 침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사탄교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또 다른 일이라니……. 테드는 그들의 생각이 들리는 것 같았다.

“2년 전쯤이네요. 저는 네미슈의 무녀님과 만났어요. 그리고 무녀님에게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네미슈의 대통령은 테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려는 것은 그것 밖에 없었고, 대통령도 무녀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원래라면 무녀가 본 미래를 대통령이 훨씬 이전에 밝히는 게 옳았다. 그것이 진정 대륙을 위하는 길이니까. 허나 한 명의 국가의 대표자로서 보면 아주 민감한 이야기였다.

강대국인 프리티스 제국을 적으로 돌려버릴 수도 있는 내용이다. 외교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그것을 함부로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녀가 본 미래는 천사들이 네미슈 대륙의 사람들을 학살하는 내용이었어요. 어느 종족의 예외도 없이요. 물론 천족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어요. 미래의 네메스 대륙은 천사들로 인해 피로 잠기게 됩니다.”

“이런 불경한!!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나! 미카엘라 님과 천사님들은 네메스 대륙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노라! 이것은 공명정대한 시스템이 인정한 일이니! 무녀 따위가 본 미래를 믿으라는 것이냐?!”

천왕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회담을 지켜보며 인내하고 있었다. 자신이 나선다면 혹여 미카엘라에게 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달했다.

천왕의 얼굴은 인자한 노인같던 첫인상과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얼굴과 목에 핏대가 솟아 있으며 새하얀 눈썹은 가운데로 모이고 있다. 얼굴에 파인 주름 하나하나가 위협적으로 꿈틀거렸다.

테드가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얼굴을 하고서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그보다 먼저 네미슈의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무녀 따위…라. 그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도 본국의 무녀님의 대한 소문을 들었을 거라 알고 있습니다. 무녀 님의 미래 예지는 완벽합니다. 그리고 테드 님의 말은 사실입니다. 무녀님은 천사님들로 인해 고통 받는 네메스 대륙을 보았습니다.”

“……저희는 네메스 대륙을 악마들에게서 지키기 위해 찾아왔어요. 시스템이 보증해주고 있죠.”

미카엘라가 반박했다. 대통령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녀님은 말하지요. 미래는 항상 바뀐다고. 미래 예지는 이미 바뀌었습니다. 테드 님은 무녀님이 본 미래와는 다르게 움직였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바뀌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미래 중 하나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천왕이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미카엘라의 눈빛 한 번에 입을 꾹 다물었다.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이미 회담이 시작되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갑작스럽게 이어진 통신이라 많은 시간을 이곳에 할애 할 수 없습니다. 그건 각국의 왕과 수장 분들도 마찬가지 일터이니 이제 슬슬 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일단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프리티스 제국… 미카엘라 님의 의견에 찬성하신다면 오른손을, 반대하신다면 외손을 거수해주시면 됩니다.”

“다수결인가. 과연 다수결로 뽑힌 네미슈 국가의 대통령다운 발언이오. 지금 상황에서 그 보다 어울리는 결론을 짓는 방법은 없겠지. 그러나 우선은 대통령의 의견을 듣고 싶소. 다수결을 제안한건 대통령이니, 대통령이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소?”

라이거가 말했고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는 반대입니다. 이유로 말하자면 저희가 아직 사탄교의 전력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소수 정예는 좋습니다만, 상대방의 전력도 모르는 채 병력을 보내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미카엘라 님을 비롯한 천사 님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과연. 과인도 반대를 표하겠소. 이유는 네미슈의 대통령과 같소. 악마와 천사. 둘 모두 밖에서 온자들이 아니오?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겠소. 그리고 과인은 시스템도 믿지 않소.”

각국의 의견은 곧바로 나누어졌다. 찬성3 반대6.

미카엘라의 의견은 격침 됐다. 미카엘라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 의견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각국의 수장들의 회담이 시작되었다. 미카엘라와 테드가 끼어들 틈은 더 이상 없었다. 간간히 던져오는 질문들에 대답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바알은 테드의 품에서 궁시렁거리며 미카엘라를 씹어댔고, 귀가 지나치게 좋은 미카엘라는 분명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2~3시간의 회담 끝에 대륙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확실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그러니까 딥스크에 있는 악마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결정이 난 것이다.

이 일에서 미카엘라를 비롯한 천사들이 나설 자리는 없었다. 천사가 처음 중간계에 소환되면서 벌인 학살 탓에 이미 딥크스의 백성들은 천사를 사탄교를 동급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사탄교의 백성들이 거절할 것이 분명했다.

테드로선 딥크스에서 역적으로 취급되기에 껄끄럽기도 했으나 안 갈수는 없었다. 딥크스에는 그레온 그레모리가 있었다. 바알의 말에 따라 그레온은 사탄교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악마였다. 여기서 처단할 수 있을 때 해야 했다.

메피아는 이번 사태에 한해서 딥크스의 백성들은 구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테드의 입국을 허가했다. 다른 국가들은 병사와 물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테드는 지휘권을 요청받기도 했다. 딥크스가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수장들로 부터다. 받아들이면 고생만 잔뜩 할 것이 분명했기에 거절했다. 이번 전투가 치러질 무대는 딥크스다. 거기서 테드는 역적이었다. 그런 자가 지휘관? 웃기는 소리다. 마족 병사들이 퍽이나 잘 따르겠다.

테드는 이번에 병사들과 상관없이 따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아무리 여황인 메피아가 허가했다고 해도 마족들 눈에 띄지 않는게 제일이었다.

“……이걸로 회담은 끝이네요. 다시는 이런 암울한 주제의 회담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자, 통신 끊을게요.”

테드가 말하고 난 뒤, 손바닥을 마주쳐 박수를 한 번 쳤다. 원탁 위에 있던 화면들이 동시에 사라졌다. 테드가 가장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알은 붙잡고 있는 채여서 대롱대롱 매달린 체였다.

“그럼 지금부터 오프 더 레코드네? 이 씨발년아! 너 이리 와봐! 개샹년아! 내가 지금 좆같은 상태라고 해도 너같은 허벌난년은 당장 죽일 수 있어. 씨발!”

테드는 바알의 입을 막았다. 바알이 속사포처럼 욕을 쏟아내서 이미 늦었지만.

“이거. 참 죄송하네요. 제가 노예 교육을 잘 못 시켜서요. 그럼 이만 준비할게 많아서 먼저 가볼게요.”

테드가 밖으로 나가고, 미카엘라도 움직였다. 출구는 미카엘라 쪽이 더 가까웠기에 결국 출입문 앞에서 나란히 걷는 꼴이 되었다. 입이 막혀 있는 바알은 양손으로 중간 손가락을 세워 미카엘라에게 내보이고 있었다.

테드는 미카엘라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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