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28. 주권결정전.
“내가 꺼낸 물건을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지. 네 자만의 실수다.”
테드가 뇌전의 마법을, 이시스가 불의 마법을 바알을 향해 동시에 발동했다.
그러나 불과 번개는 바알의 발치에서 일어난 어둠에 삼켜진다. 테드가 혀를 찼다. 미약한 영력을 담은 마법인데도 폭식에 먹혔다. 라그나로크에 저항하는 힘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직접보니 짜증이 날 정도의 사기성이다.
그래도 공략 법은 있다. 방금 전과 같이 바알의 사각을 노려서 공격하면 된다. 폭식은 그녀가 인식해야 발동하는 모양이니까.
“게좆같네!”
바알이 기합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육체를 약화시키던 저주가 풀려나갔다. 테드가 아공간을 열어 검은색 장갑을 꺼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마법 장갑이다. 오른쪽의 장갑은 글로리아, 운이 좋아 찾게 왼쪽 장갑인 빅토리아는 그 자체만으로 뛰어난 마법 장갑인데 지금은 테드가 개조한 상태로 접근전에서 타고난 위력을 발휘한다.
테드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눈앞에 나타난 바알의 주먹이 지나갔다. 테드의 주먹이 바알의 복부를 노렸다. 테드의 주먹은 그녀의 복근을 타격했다. 추가로 장갑에 부여되어 있는 충격강화 마법까지 발동되어 완벽했다.
그러나 바알의 얼굴은 밝았다. 도리어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딱 걸렸어!”
그녀의 복부에서 흘러나온 어둠이 테드의 팔을 타고 기어 올라와 몸을 삼켰다. 바알은 이제까지 그래온 모든 적들의 최후처럼 그 또한 폭식에 먹혀 자신의 힘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허나 어둠은 그녀의 생각과 달리 테드를 삼키지 못했다. 테드의 몸 전체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막같은게 있고, 그걸 뚫기엔 폭식으론 한 발자국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 옷 때문인가?”
마법을 사용해 몸을 보호하는 특별한 기척은 느끼지 못했으니 십중팔구 확실할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검은 폭식에 둘러싸인 테드의 왼손이 그녀의 복부에 닿았다.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 전체가 감싸듯이 복부에 접촉한다.
“그 상태에서 움직인 건 칭찬해줄게. 하지만 소용없다고. 마나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이상 마법은 사용하지 못해. 괜한 헛지랄이야. 아님 뭐야. 마지막으로 내 매끈한 배라도 만져보고 싶었냐?”
아무리 자신의 권능에 저항한다고 해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복부에 닿은 왼쪽 손바닥으로부터 테드의 몸을 감싼 폭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가루가 바람에 휩쓸리는 광경 같았다.
그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바알은 어안이 막혀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 아주 작은 빈틈을 테드는 놓치지 않았다.
“익스플로전(Explosion).”
제로거리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한 순간에 반짝이는 빛과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뭉게뭉게 피어나왔다.
당연히 영력을 실은 마법이었다. 아무리 바알이라도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연기가 걷히자, 익스플로전에 날아간 바알의 복부에는 화상자국이 있었다. 그녀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듯 있는 대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저번 같은 개싸움 쪽이 더 내 취향인데. 함께 뒹굴지 않을래? 응?”
복부에 난 빨간 화상은 지금 순간에도 회복하고 있었다. 피부의 색이 원래의 매끈하고 깔끔한 색을 되찾는게 눈에 보일 정도다.
“알고 있겠지만, 난 마법사다. 육체로 싸우는 전사가 아니야. 그때가 좀 특별한 경우였지.”
“설마하니 날 상대로 원거리 전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아니. 거리를 벌려도 단숨에 거리를 좁혀 쫓아오겠지. 접근전은 필수불가결이다. 그건 나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아공간을 열어 두 자루의 검을 꺼내들어 양손으로 각각 하나 씩 쥔다.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그것은 일전에 바알에게 상처를 입힌 마법검과 똑같은 것이었다. 다른점이 있다면 드워프의 검이니 만큼 내구도가 훨씬 뛰어나다는 점이다.
마법을 발동시키자 검에서 새하얀 불길이 피어오른다.
“…그거 하나밖에 없는 거 아니었냐? 분명 내가 부러뜨린 것 같았는데.”
확실히 저번의 물건은 그녀의 손에 간단히 부러졌다. 싸구려 양산 검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힘은 드래곤을 주먹 한 방으로 날릴 정도란걸 상기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의 검은 드워프가 만든 검이지만, 그녀의 힘을 생각하면 반항한 번 하지 못하고 단번에 부러질 것이 분명했다.
“내가 한 자루만 있다고 말했던가? 백 자루 혹은 천 자루가 있을지도 모르지.”
“어딘가 이상하긴 했어. 그런 위험한 힘이 담긴 힘이 별볼일 없는 검에 담겨 있다는 게. 이젠 알겠어. 그 검, 네가 만들었지? 씨발. 이 새끼 알면 알수록 위험한 새끼네. 아스타로트가 널 주의하는 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
테드는 숨을 삼키며 시간을 멈췄다. 아무리 포션을 사용해 마력을 회복했다곤 하나, 라그나로크를 발동하면서 영력은 대규모로 사용해버렸다. 지금에 와선 멈출 수 있는 시간도 얼마되지 않고, 알게 모르게 피로도 쌓여 있었다. 전투를 이어갈수록 불리한 것은 자신이었다.
달려가 바알의 뒤를 점한다. 노리는 곳은 저번과 같은 목이었다.
양손에 든 백염의 검을 가녀린 그 목에 가져다 댄다. 테드는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텁! 바알이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치이익, 거리며 검을 쥔 손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고기가 타는 냄새를 풍겼다.
“병신. 내가 똑같은 수에 당할거라 생각했냐? 네가 그 검을 꺼내든 순간부터 예상했어!”
“어떻….”
허공을 가르며 바알의 발이 날아왔다. 샌들의 통굽은 정확하게 테드의 복부를 적중했고, 테드가 검을 놓치고 뒤로 날아갔다. 이시스가 재빨리 충격완화와 에어쿠션 마법으로 테드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산에서 벗어나 몇 백 미터는 족히 날아갔을 것이다.
위광이 상당히 손상되었다. 안 그래도 바알의 폭식에 저항하느라 무리를 했는데, 방금전의 일격으로 내구도가 대폭 깎였다. 앞으로 한 방이면 위광은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선 그렇게 되면 진짜 끝장이다.
“…어떻게 폭식으로 감싸지도 않고 맨손으로 검을 잡은 거지?”
바알은 대답하기 앞서 손에 쥐고 있는 검을 악력으로 박살내고 자신의 손바닥을 보았다. 화상을 넘어 시커멓게 탔다. 거기다 회복까지 느려서 통증이 생생하게 뇌로 전달된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넌 어떻게 이 빌어먹을 공간에서 어떻게 멀쩡한 거야? 내가 힘을 이용해 강화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정도인데.”
주위에 깔린 백염이 공간자체를 건드리고 있었다. 바알이 본모습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힘을 선보이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힘의 대부분을 몸을 온전하게 보호하는데 쓰고 있었다.
테드는 위광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위광이 부서지면 꼼짝없이 라그나로크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시스도 곧 한계인가.”
굳이 그녀에게 가르쳐줄 이유는 없었기에 이시스를 보며 말을 돌렸다. 이시스는 테드와 달리 마법을 사용해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버티고 있지만 슬슬 한계였다. 제대로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이시스 돌아와.”
아공간에 이시스를 집어넣었다. 무리를 한 다면 앞으로 몇 십초는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시스를 잃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이시스는 아직 활용도가 높았다.
“질문에도 제대로 대답안하냐? 존나 짜증나는데.”
바알이 오른주먹을 쥐었다. 주먹에 검은 기운이 모여들었다. 폭식에 비상용으로 저장되어 있는 에너지를 모은 것이다. 이건 마지막 밑천이었다. 이걸 사용하면 다시 쌓기 위해선 제법 시간이 필요하다.
바알의 흉폭한 마력이 오른주먹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듯이 모여든다.
심상치 않다고 즉시 파악한 테드가 아공간의 마법진을 열었다. 마법진으로부터 라크나로크의 힘이 담긴 검 한 자루와, 스크롤을 꺼내든다. 스크롤은 곧바로 발동시키자 테드의 머리위로부터 검은색의 구체가 튀어나왔다.
“검은 태양(Black Sun).”
이어서 아공간에서 똑같은 스크롤 11개를 추가로 꺼내 발동한다.
총 12개의 검은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딴 걸로 날 막겠다고?”
검은 태양은 진짜 태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대상과 닿아 폭발하는 한순간의 열기만큼은 라그나로크 보다 한 수 위의 열기를 가지고 있다. 미약한 영력이 담겨 있기에 바알에게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는 테드도 알 수 없었다.
“그건 해봐야 알겠지.”
테드가 왼손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12개의 검은 태양이 일제히 날아갔다.
마침 바알도 준비가 끝났다. 그녀는 씩 웃으며 다리를 벌려 힘을 지지하고 팔을 옆구리로 뺐다. 정권을 내지르는 안정된 자세였다.
“이 일격이야말로 내가 광폭의 마왕이라 불리게 된 원인이지. 지금까지 이걸 막아낸 놈은 없었어. 개쩌는 필살기지.”
“단순한 주먹질이?”
“짜식. 허세는. 네 얼굴에 흐르는 식은땀이 다 보이거든? 만약에 이 일격을 막아낸다면 정말로 인정해줄게. 네가 미카엘라 만큼 짜증날 정도로 강한 녀석이란 걸.”
“어차피 시간을 멈춰서 피하면 그만…….”
그만이다 라고 말하려던 테드가 얼굴을 굳혔다. 미래가 보였다. 그녀가 사용할 기술은 자세와 달리 정면으로만 한정된 기술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방위의 기술이다.
시간을 멈춘다고 해도 제한 시간내에 그녀의 범위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바알은 테드의 말에서 무언가를 눈치 챈 듯 입가를 찢으며 웃었다. 테드가 아공간에서 이시스와 스크롤을 쏟아냈다.
그리고 검은 기운을 담고 있는 주먹, 광폭의 일격을 내질러 졌다.
바알의 몸으로부터 검은색 무언가가 사방으로 펼쳐졌다.
한순간 시계에서 색상이 사라졌다. 거대한 소리도 압도적인 힘 앞에 소멸되어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검은 태양이 지우개에 지워지듯이 사라진다.
테드는 시야가 어둠에 파묻히기 전에 바알의 얼굴을 보았다. 분명히 들리지 않았을, 그녀가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환청이 되어 울렸다.
바알은 비틀거리는 몸의 중심을 다시 잡았다. 그녀의 주위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아귀처럼 탐욕스럽게 모든 걸 불태우던 백염도 사라졌다.
비록, 범위 밖에 있던 하얀 불꽃이 다시 번지기 시작했지만.
‘광폭’을 사용하고 항상 봐오던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예외가 하나 있었다. 강대한 힘앞에 바스러져 사라져야 할 남자가 서있었다.
검은색 머리카락은 사방으로 뻗쳐서 엉망이고, 옷은 절반 이상이 사라져 탄탄한 근육질의 몸이 드러났다. 입과 코, 귀로부터 피를 흘리고 있다. 자세히 보면 피부가 붉게 변해 있었다.
그 곁에 두둥실 떠있는 은백색 빛을 내는 구체… 아니, 이젠 구체라고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절반 이상이 파괴된 그것은 죽음을 앞에 둔 노인의 숨처럼 미약하게 은백색 빛을 점등시키고 있었다.
“인정해.”
바알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덩달아 목소리로 묘한 열기를 띄고 있었다.
비록 멀쩡하다곤 할 순 없지만, 오연하게 서있는 테드를 바라본 그녀의 몸에 짜릿한 전율이 내달렸다.
그건 태어날 때부터 강했던 그녀가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평생 동안 느낄 일이 없다고 생각한 공포라는 감정이었다.
“넌 미카엘라처럼 강해. 아니, 어쩌면 그 썅년 보다 더 강할지도 모르지.”
두려움이란 생소한 감정은 그녀의 몸을 지배하지 못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기에는 그녀가 살아온 세월이 너무 많았다. 도리어 그것은 새로운 것이라는 쾌락으로 변했다.
“좋아. 깨끗하게 죽어 줄게. 그 검으로 날 찔러. 미카엘라 년을 죽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너한테 죽는 거라면 좋아.”
막대한 힘에 의해 정해진 수명이 없는 바알은 언젠가 죽겠지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비참하게 죽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죽고 싶다고 바랐다.
“쿨럭…!”
테드는 입안에든 피를 토했다. 부러진 검에서 손을 떼고 아공간을 열어 이시스를 집어 넣었다. 방어 스크롤을 모조리 사용했고, 이시스의 보조를 받으며 방어 마법을 펼쳤다. 그럼에도 위광이 박살났다. 위광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확연하게 죽었을 것이다.
테드가 손바닥을 펼쳤다. 황금빛의 마법진이 그려지며 황금색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바닥에 황금색의 창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 서늘함은 달아오른 테드의 몸을 적당히 시켜주었다.
“브류나크(Brionac).”
황금빛 창에서 악마의 상극이라 할 수 있는 성력이 나돌았다. 현재 약해져 있는 그녀라면 이것만으로 충분히 위협적이리라.
“전개.”
날카로운 창날의 주위에 추가로 4개의 창날이 생성되었다. 창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테드가 투창의 자세를 잡았다. 오라는 듯이 팔을 벌리고 있는 그녀였다. 그래도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는 듯, 그녀의 몸 주위에 검은 오오라가 뿜여져나오고 있었다.
테드는 숨을 멈추고 근육을 긴장시키며 전력을 다해 빛의 창을 던졌다. 마법으로 창의 위력을 강화 시키고 싶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브류나크가 직선의 황금빛 궤적을 그리며 허공을 가로질렀다.
“후하하하! 드디어 만났는데! 재미있어 보이잖아?!”
테드와 바알의 사이, 중앙 지점에서 무언가가 날아와 브류나크와 부딪혔다. 브류나크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손쉽게 사라지고, 튕겨져 나간 검을 새로이 나타난 스킨헤드의 사내의 손에 천천히 떨어졌다.
“선수 교대다. 바알. 막타는 내꺼야.”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