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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주권결정전.
테드는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이니 만큼 조심히 올라가야 한다.
테드가 굳이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이유는 확인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눈은 고성능이고, 마법을 사용하면 섬의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 투시 능력까지 있으니 한 번에 적들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 좋았다.
또한 정상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마법이 발동해 있을 것이다.
산길이 아닌 산길로 등산을 하면서 마법을 준비했다. 마력이 뭉텅이로 빠지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보이지 않게 은폐된 마법진은 그려지고 있었다. 다름 아닌 저 푸른 하늘에.
이곳에서 수 백 미터 떨어져 있는 마나의 흐름을 느낄 정도로 민감함을 지닌 자는 악마 정도 밖에 없다. 그리고 설령 알았다고 해도 단번에 테드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래선 속도가 나지 않아.”
제법 큰 산이다 보니 올라가는 것에도 시간이 걸렸기에 도중부턴 마법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시켜 달리듯이 올라갔다.
중간에 몬스터와 마주쳤으나 테드를 막을 순 없었다. 몬스터가 테드를 눈치 채기 직전, 테드가 먼저 마법을 사용해 몬스터를 황천길로 인도했다. 기습의 효과는 탁월했다.
최종적으로 산의 정상부근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이 가량이 흘렀었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마법은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양손에 주머니에 꽂아 넣고 있던 테드가 신호를 보냈다. 은폐하고 있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 십개의 하얀색의 마법진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뒤덮었다. 동그란 마법진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하늘에 있는 마나를 게걸스럽게 빨아 먹기 시작했다.
섬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마나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 뒤늦게 하늘에 떠있는 마법진을 발견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비를 하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시전자인 테드의 위치를 알 리가 없고, 설령 안다고 해도 장거리 이동 마법이 아니면 단숨에 찾아오기 힘들고, 장거리 이동 마법은 사용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법으로 찾아 왔다고 해도 늦었다.
테드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간간히 들려오던 전투에 의한 굉음이 멈췄다. 그것만으로 참가자들이 하늘에 나타난 이변을 심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이걸로 끝이다. 또 어차피 여기 있는 자들은 죽일 각오든, 죽을 각오든 하고 왔을 것이다.
수십 개의 마법진으로부터 백색의 화염이 일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화염은 이내 검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황홀할 정도로 거대하고 아름다울 정도의 백염의 검의 끝은 지면을 향하고 있었다.
테드는 후드속의 붉은 눈으로 정면, 북쪽을 쳐다봤다.
하얀 설판 위에 서있는 연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자아이가 보였다. 머리칼은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마치 망토자락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차가운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짧은 핫팬츠와 탱크톱은 그대로였다. 여자아이는 붉은색의 눈동자로 가만히 마법진이 가득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직후에 사이클롭스가 바알을 발견하고 눈덮인 하얀 대지를 내달리며 덤벼들었다.
바알은 한 차례 코웃음치며 작은 주먹을 내질렀다. 작은 주먹으로부터 발생된 풍압이 50M 이상 떨어져 있는 사이클롭스의 몸을 휩쓸었다. 사이클롭스의 거대한 상반신이 그대로 날아가고, 비틀거리는 하체가 막대한 양의 피분수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떨어지는 피는 바알이 있는 곳까지 닿았다. 바알의 그림자에서 스며 나온 검은 것이 머리위에서 우산의 형태를 취해 떨어지는 핏물을 막았다.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 피의 비가 그치고 검은 우산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얀 눈이 붉게 물들어서 멀리서 보고 있는 테드는 그녀가 피웅덩이에 서있는 것 같았다. 테드가 보기엔 그녀는 순백의 설판 위에 서있는 것 보다 핏빛으로 물든 곳에 서있는 모습이 배는 어울렸다.
돌연 바알이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향한 곳은 섬의 중심에 있는 산의 꼭대기. 테드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테드와 눈이 마주쳤다. 어림짐작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확실하게 테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바알의 입가가 찢어지듯이 올라가며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라그나로크(Ragnarok).”
테드가 주머니에 넣은 오른손을 빼고 허공으로 올렸다. 그에 반응하듯 수 십 개의 마법진이 반응한다.
테드는 마치 종말을 고하는 신처럼 천천히 손을 내렸다.
화염으로 이루어진 백색의 검이 일제히 섬을 향해 떨어졌다. 검은 느릿하면서도 빠르게 지면으로 떨어졌다.
검은 지면에 닿는 순간 폭발했다. 사방으로 충격파와 함께 새하얀 불꽃이 잠식해 들어간다.
범위는 섬 전체다. 테드가 있는 산은 비교적 멀쩡해보이지만 곧이어 이곳도 하얀 불꽃이 들이닥칠 것이다.
이 불꽃을 마법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갑옷 따위론 막을 수 없고, 특별한 스킬이 있다고 해도 어떤 것이라도 재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시키는 종말의 불꽃 앞에선 소용없을 것이다.
그 바알도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라그나로크라면 견디지 못할 것이다.
수 초가량이 흘렸을까. 테드는 주의를 둘러보았다. 라그나로크의 영향으로 공간 일부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라그나로크는 섬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허수차원까지 소멸시키려는 것이다.
“테드 크루시안!!”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테드가 북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거기엔 하얀 폭풍속에 있는 검은 어둠을 두르고 있는 인영이 있었다.
바알로 추정되는 그것은 지면에 힘을 주며 무릎을 굽히고 뛰었다.
총알보다 빠르게 테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허공에서 어둠이 사라지고 그 모습이 나타났다. 드러난 바알은 여자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긴 연보라색 머리카락은 그대로지만 몸은 20대 중반 정도의 농밀한 여체로 변했다. 팔과 다리는 시원스럽게 뻗어 있고, 납작하던 가슴은 사이나보다 조금 더 커졌다. 신축성이 뛰어난 탱크톱은 중요한 부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다.
복부에는 과하지 않은 복근이 있었다. 당연히 엉덩이 부분도 커졌다. 탱크톱과 마찬가지로 핫팬츠도 찢어지지 않았는데, 속옷보다 작은 수준이었다.
“망할 새끼야! 밑천까지 다 까발려졌잖아!!”
테드는 그녀의 주먹을 향해 자신의 오른 주먹을 날렸다.
어린 상태의 바알의 주먹의 위력이 에이션트 드래곤을 단숨에 날려버릴 정도다. 그걸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행동은 누가 봐도 미친 짓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으로(Power Overwhelming).”
비전 마법을 발동한다. 수 초간 자신이 받는 피해를 완전히 없애 버리는 이 비전 마법은 바알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마법이었다. 문제는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다시 사용하기 위한 준비까지 몇 십 분이 걸린다는 것이다. 바알과 전투를 하면서 준비할 여유는 없으니, 다시 쓰지 못할 마법이었다.
테드와 바알의 주먹이 부딪혔다. 거대한 충격파가 발생해 주위를 일순간 진공상태로 만들었다. 허나 테드에겐 조금의 피해도 주지 못했다.
“…또 뭘 한 거냐, 너.”
바알이 짜증난다는 듯이 말하며 지면에 내려섰다.
그녀는 컸다. 키도 테드 보다 더 크다. 통굽인 것을 감안해도 어림잡아 190cm는 될 듯싶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체구도 컸다.
바알은 당당하게 걸어와 테드의 바로 앞에 섰다. 거리로 따지면 1M도 되지 않았다. 주먹을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테드는 그녀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들었다.
“그게 진짜 모습인가?”
“그래. 씨발! 미카엘라 년을 죽이기 위해서 힘을 비축하고 있었는데 너 때문에 다 망했다고!”
섬 전체를 불태우고 있는 하얀색 불꽃은 권능인 폭식으로도 흡수하는 게 불가능해서 숨겨놓은 본신의 힘을 끌어내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였다. 지금도 저 불꽃이 가득한 공간에 버티면서 힘이 소모되고 있었다.
“좋은 말로 할 때. 불 꺼. 새끼야.”
“그건 불가능하다.”
“어엉? 네 마법이잖아. 거기다 너도 위험할거 아냐?”
“발동 시점에서 이미 내 제어를 벗어난 마법이다. 설령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럴 이유는 없지. 바알, 저 하얀 불꽃 네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테드의 붉은 눈동자에 비친 바알이 병찐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불타는 공간을 한 번 둘러보고서 어이가 없다는 어조로 물었다.
“야, 너 설마 나 때문에 이렇게 만들었냐?”
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널 죽이기 위한 비장의 수였는데. 실패했다. 설마하니 힘을 숨기고 있을 줄이야. 그건 나도 예상하지 못했군.”
하하하, 바알이 메마른 웃음을 흘렀다.
“미친 새끼. 진짜 마음에 드네. 근데 씨발, 이번엔 저번처럼 못 넘어 가겠다. 너 나한테 사기까지 쳤잖아? 응?”
테드는 바알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았다. 저번에 드래프리온에서 싸웠을 때 알려준 레칸에 대한 가짜 정보를 말하는 것이다.
바알은 부하를 시켰든, 자신이 움직였든 간에 모종의 방법으로 프리티스의 성지에 비밀리에 찾아 갔을 것이다. 그리고 테드의 거짓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프리티스의 성지에는 레칸의 유물은커녕 관련된 것도 없었다.
“니 새끼를 먹으면 딱 좋게 힘이 회복할 것 같기도 하거든?”
그녀의 몸에서 쏟아 나온 어둠이 테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시스.”
테드는 서둘러 거리를 벌리며 아공간에서 이시스를 꺼냈다. 어둠은 테드를 노리고 덤벼들었다. 이시스가 배리어 마법을 발동하지만 어둠에 닿는 순간 사라진다.
테드가 아공간에서 하얀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하얀 불꽃의 검이 허공에 생성되어 어둠을 노리며 날아갔다. 어둠과 부딪힌 백색검은 폭발하며 백염을 토했다. 어둠과 백염이 동시에 사라졌다.
“아무리 개선하려해도 고대 마법을 스크롤에 담으면 위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군.”
고대 마법을 스크롤에 담은 건 위대한 발전이었지만, 저걸 하나 만들기 위해 일주일가량을 고생하면서 막대한 마나 액체를 소모한 것을 생각하면 배가 살살 아파올 지경이었다.
틈을 노려 이시스가 마법을 발동했다. 발동한 마법은 ‘마스터 링크(Master Link)’로 테드와 정신을 공유한 것이다. 물론 이시스가 생명체가 아니다 보니 테드가 일방적으로 정신을 공유하는 형태가 된다. 이 마법 덕분에 이시스는 테드가 생각하는 것과 보는 것을 알 수 있고 0.1초 미만의 시간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
바알이 테드의 앞으로 나타나 발을 휘두른다. 턱을 노린 올려 차기다. 샌들의 끝이 고개를 뒤로 젖힌 테드의 턱을 스치고 하늘로 올라갔다. 공기가 터지며 충격파가 발생한다.
“너무 다리를 쉽게 벌리는군.”
“지금 진지한 상황이야. 미친놈아. 네 세 번째 다리를 부러뜨리는 수가 있어. 엉?!”
바알이 반대쪽 다리를 내지르려는 찰나, 그녀의 몸에 검보라색 저주가 작렬했다. 바닥이 옆으로 나가 떨어지며 피를 토했다.
“컥! …저건 또 뭐야, 씨발!”
바알이 청백색의 빛을 내며 공중에 떠있는 구체, 이시스를 한껏 노려봤다.
“약화(Weakness) 저주다.”
“고작 저급한 저주 따위에 내가 당했다고?!”
당연한 말이지만, 악마에게 웬만한 저주는 통하지 않는다. 악마의 신체가 가지고 있는 마법저항력이 높기도 하지만, 흑마법 계열은 악마에게 친숙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저주는 더욱더.
그러나 이시스는 마스터 링크를 통해 테드에게 받은 영력을 저주에 담아서 발동했다. 더욱이 등에 제대로 적중했다. 통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내가 꺼낸 물건을 조금도 경계하지 않았지. 네 자만의 실수다.”
테드가 뇌전의 마법을, 이시스가 불의 마법을 바알을 향해 동시에 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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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