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결한 영혼-166화 (16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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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재회.

“이곳은 니플헤임. 이곳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가 선언했다.

“으윽…!”

테드가 머리를 붙잡고 몸을 휘청거렸다. 갑작스레 덮쳐온 두통과 함께 몸의 중심을 잃었다.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에 다리에 힘을 주어 억지로 버틴다. 두통은 곧이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정신 공격? 아니, 정신 공격이 아니야.’

마법도 아니다. 알 수 없는 힘이 자신을 건들고 지나갔다. 기분 나쁜 소름이 등골을 타고 내달렸다.

호흡을 가다듬는 테드를 향해 구울이 달려들었다. 곁에 있던 팔라딘 골렘의 신성검이 단숨에 구울의 몸을 양단했다. 구울의 몸은 다시 합쳐져서 덤벼들었다. 비단 그 구울 뿐만이 아니다. 묘지에 있던 모든 언데드가 죽지 않고 있다. 이름 그대로 죽음이 없는 것 같다.

테드의 데스나이트가 수 십 마리 언데드의 공격으로 인해 바닥에 쓰러졌다. 그 위로 유령마녀가 올라타서 깔깔 웃으며 손톱을 휘둘렀다. 손톱은 갑옷에 기스를 내는게 고작이었다. 오히려 손톱이 박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녀는 멈추지 않고 손으로 갑옷을 긁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마법? 주술?’

언데드는 이미 죽은 자들을 가리킨다. 불멸로 보여도 몸이 박살나면 움직이지 못한다. 시체로 만들어진 것이라 영혼도 없다.

‘이것들에겐 영혼이 있지. 그게 문젠가?’

몸이 박살날 때마다 괴로워하는 영혼이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몸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박살나고 고쳐지고의 반복이다.

“그대, 혼란스러운 모양이구나.”

단테가 말했다. 오롯이 서서 내려다보는 그는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분노가 없으며, 기쁨도 없어보였다. 그저 공허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 언데드들은 어떻게 만든 거지? 다른 언데드와의 차이라곤 영혼의 유무 정도인데….”

말을 하는 와중에도 밴시가 테드를 향해 날아왔다. 곁에 있던 팔라딘 골렘이 검을 들어 밴시를 가른다. 밴시는 소멸하지 않고 땅으로 추락하더니 다시 쌩쌩하게 허공을 날아다녔다.

“이 죄인들의 영혼이 그대의 눈에도 보이는 건가. 이들은 죄인들이다. 그분의 명령에 따라 영원한 벌을 받는 중이지.”

“그분이라면…?”

“사자의 서의 원래 주인.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명령에 따라 사자의 서를 지키며 죄인들에게 벌을 주고 있다.”

“곧이곧대로 대답해줘도 괜찮나? 난 당신 적이라고.”

“마모되고 썩어가는 시간 중 그대가 찾아 왔다. 비록 적이라 할지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하고 있다.”

테드가 오른발을 굴렸다. 지면에서 튀어나온 바위 송곳이 언데드들을 꿰뚫었다. 꿰뚫린 언데드가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렸지만 쉽지 않았다.

테드가 숨을 내쉬고 들이마셨다. 탁하면서 차가운 공기가 머릿속을 휘저어 가라앉혔다.

“……몇 년이지?”

“이곳에 있던 시간을 묻는 건가? 그건 모르겠군. 그대도 알다시피 이곳의 태양은 가짜. 항상 그곳에 있지. 훨씬 예전부터 시간을 세는 걸 포기했네.”

단테가 왼손의 단검을 검은 하늘로 치켜들었다. 자루에 박혀 있는 커다란 루비가 반짝였다. 단검이 허공을 가른다. 단테는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 고급스러운 옷이 찢어지며 붉은피가 옷으로 스며들었다. 바닥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크윽!”

테드가 허리를 숙이며 자신의 복부를 감쌌다. 마치 검에 찌른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힐끗 복부를 보자 피가 새어나오진 않는다. 겉보기에는 멀쩡하기 그지 없다.

“그 단검… 저주 아티펙트인가…!”

“이 단검은 나의 고통을 상대에게 공유시키지.”

단테가 검을 옆으로 그었다. 붉은 피가 후두둑 떨어진다. 찢어진 옷 사이로 꼬불거리는 창자가 삐져나왔다. 단테가 단검의 끝으로 창자를 꽂아 그대로 잡아 당겼다. 윤기로 매끈거리는 창자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

소리 없이 숨을 삼킨 테드가 무릎을 꿇었다. 전생화 회귀전의 시간까지 포함해서 창자를 끄집어내는 고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테드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가?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대가 부럽군.”

단테가 자신의 가슴의 중앙을 찔렀다. 그 상태로 단검을 쭉 내리긋는다. 피가 의자를 적시고 계단아래로 내려갔다.

테드가 바닥으로 다시 쓰러졌다.

“……플레임 버스터…!”

단테의 머리위에 붉은 마법진이 나타난다. 고통을 참아내며 그린 테드의 마법진이 발동한다. 회오리치는 불꽃이 단테의 몸을 감쌌다. 회오리치는 불꽃은 단테의 옷과 함께 살을 태웠다. 그리고 이내 불꽃이 폭발하며 자욱한 연기가 지천에 깔렸다.

“……크윽!”

테드는 고개를 숙이고 양팔로 몸을 감싸고 사시나무마냥 떨었다. 이를 악물고 온몸을 불타는 고통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연기가 걷히고 단테의 모습이 드러났다. 원래라면 그 뼈조각 마저 불에타 재가 되어 흩날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단테는 온전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들은 불에 타버렸으나 창백한 육체는 그대로다. 배를 갈랐던 흔적도 사라져 있었다. 그는 불에도 타지 않은 검은 책을 들어올렸다.

사자의 서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제물의 단검’으로 자신에게 뽑아낸 생명력은 이미 충분하다.

“제 1의 지옥문. 도산(刀山).”

단테의 등 뒤에 검은 문이 나타났다. 굳게 닫혀 있는 철문에는 통곡과 절규로 일그러진 사람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문이 끼리릭, 열리기 시작한다.

“팔라딘 골렘!”

테드가 외침에 팔라딘 골렘 3기가 지면을 박찼다. 거치적 거리는 언데르를 일격에 베어내며 단테의 앞에 도달한다. 팔라딘 골렘이 단테의 몸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팔이 날고, 다리가 쓰러지며, 내장이 조각난다. 완전히 침묵할 때까지, 죽을때까지 베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테드가 지면에 머리를 박았다. 온몸이 난자당하는 고통이 정신을 헤집는다. 아연해지는 정신 속에서 고통 마비(Pain Paralyze)의 마법을 스스로에게 걸었다. 그러나 효과는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지옥문이 열렸다.

하늘에서 지면에서 허공에서 시퍼런 칼날이 나타난다. 떨어지고 솟아나고 흩날렸다. 테드가 배리어를 전개해 칼날을 막았다. 문제는 팔라딘 골렘이다. 팔라딘 골렘 3마리가 온몸에 칼이 꽂혀 기동을 정지했다.

“오래 버티는 구나. 그대는 그 눈으로 어떤 희망을 보고 있느냐?”

어느새 몸을 완전히 회복한 단테가 단검의 끝을 자신의 눈을 겨누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찔렀다.

가까스로 일어선 테드가 자신의 오른쪽 눈을 붙잡았다. 단검의 날이 뇌를 건드린다. 준비하고 있던 마법이 집중이 끊어지면서 실패한다.

‘이건 위험하다!’

가장큰 문제는 고통이다. 자해뿐만이 아니라, 타인의 공격에 의한 고통도 자신에게 전해진다. 공유 된다는 것은 단테 자신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인데 어떻게 저리 담담할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다음으로는 죽지 않는다. 그는 공격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팔라딘 골렘의 공격에도 무감각 했다. 신성력이 담긴 검에 조각이 났음에도 회복했다.

‘의심스러운 건 저 검은 책.’

플레임 버스터에도 타지 않은 책이다. 어쩌면 불사의 비밀이 저 책에 있을 지도 모른다. 저 책을 빼앗아야 한다.

“제 3의 지옥문. 아비규환(阿鼻叫喚).”

뼈로 이루어진 문이 나타났다. 사람의 뼈가 겹겹이 쌓여서 문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테드가 블링크를 사용해 하늘로 벗어났다. 마법으로 날아서 아래를 쳐다봤다. 테드의 언데드를 포함해 묘지에 있던 언데드 까지 무수히 많은 칼에 찔려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제 3의 지옥문이 열리며 새하얀 뼈가 둑터진 댐의 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테드는 헛웃음을 삼켰다. 저것들 전부가 스켈레톤과 구울이다. 그것들이 지옥문에서 끊임없이 나왔다. 어림잡아 수 천 마리 이상.

테드가 뼈로 된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단테가 다시 자해를 시작해 복부의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고통에 벌벌 떨고 있을 시간은 더 이상은 없다. 적응은 끝났다.

“블레이드 스톰.”

칼나같은 바람의 폭풍이 휩쓴다. 스켈레톤과 구울의 몸이 폭풍에 따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서로가 부딪혔고, 몸이 부서지는 순간 재가 되어 사라졌다. 다행히도 묘지의 언데드처럼 재생하지 않았다.

“제 8의 지옥문. 마하발특마(摩訶鉢特摩).”

허공에 얼어붙은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문은 제 1의 지옥문과 똑같이 생겼지만, 푸른색의 얼음이 붙어 있다. 문의 하단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테드가 마법을 전개했다. 붉은색의 마법진이 그를 지키듯 사방에 둘러쌌다.

허공에 나타난 파이어볼이 얼어붙은 철문을 공격했으나, 철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 문에 붙어 있는 얼음조차 녹이지 못했다.

이윽고 지옥문이 열렸다.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냉기가 지옥문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세계가 얼어붙었다. 지상에 있던 언데드가 행동을 멈추고, 썩은 나무가 파랗게 멈췄으며 공기는 서리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테드는 정신 바짝 차리며 붉은색의 마법진을 유지했다. 이 마법진은 불의 속성을 가진 결계다. 지옥문에서 나온 한파는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었기에 결계로 막아낼 수 있었다.

테드는 심장이 파괴되는 통증에 미간을 찡그렸다. 단테가 단검으로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파고 있었다.

그래. 고통에 익숙해진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진다.

테드가 하늘을 향해 양손을 펼쳤다. 붉은색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첫 번째 마법진. 불(Fire)."

이어서 마법진을 그린다. 두 번째 마법진, 물. 이어서 연속으로 마법진을 그린다. 바람, 흙, 나무, 얼음.

“제 9의 지옥문. 흑암(黑闇).”

어둠으로 이루어진 지옥문이 나타났다. 문이 열리자 공간이 어둠으로 잠겼다. 모든 감각이 사라진다. 마력의 감각이 사라진다. 마법이 끊긴 줄 알았으나 테드의 두 눈에는 하늘에 떠있는 마법진과 그 아래에 있는 단테와 언데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둠은 테드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 마력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도 눈만 제대로 보이면 충분히 마법진을 그릴 수 있다.

철. 전기. 어둠. 빛.

9개의 형형색색의 마법진이 하늘에 그려졌다. 이제 남은 것은 저 제각각의 마법진을 이어 하나의 마법진으로 재탄생 시키는 것이다. 하얀 빛의 선이 마법진 사이에 나타났다. 빛의 선은 마법진을 이어 하나의 거대한 마법진을 그린다.

하물을 자르는 고통이 번개처럼 뇌를 강타했다. 순간 눈이 아득해질 뻔했다.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무효화 된다. 어금니를 물고 정신을 바짝 차린다.

“제 7의 지옥문. 초열(焦熱).”

녹색의 불길로 뒤덮인 지옥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이 더 빨라. 원소 폭격(Elemental Bombardment).”

마법진에서 형형색색의 작은 빛줄기 수 백 개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밝은 붉은색의 빛줄기가 땅에 닿는 순간 거대한 화염 폭발이 일어났다. 녹색 빛줄기는 폭풍을 몰았으며 청백색의 빛줄기는 수 천 줄기의 뇌전으로 땅을 태웠다. 검은 빛줄기는 어둠을, 황금색 빛줄기는 빛의 폭발을 일으킨다. 대지가 얼어붙으며 불타고, 나무가 치솟으며 강철이 주변을 찢는다.

아름다운 빛줄기의 끝은 항상 폭발만이 남았다.

“생각보다 위력이 별로군. 버프를 쓰지 않아서 그런가.”

테드는 자신의 마법을 냉정히 평가했다. 이것은 테드가 만들어 놓고 처음 써보는 비전 마법이다. 마력의 7할 이상을 한 번에 소모하는 마법이다.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 버프 마법을 쓰지 않았다.

“……큭!”

테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몸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얼어붙는 고통, 감전되는 고통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확신할 수 있었다. 단테는 폭격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원소 폭격은 약 10초 동안 유지되었다. 지상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묘지 더 이상 묘지라 부를 수 없고, 숲은 황폐하게 변했다. 유지되어 있던 지옥문들도 원소 폭격 앞에 무너져 사라졌다.

던전의 땅은 작고 많은 크레이터로 달의 표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중간에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치 단테와 자신과 이어져 있던 무언가가 끊어진 것처럼.

테드는 바닥에 대자로 뻗어있는 단테를 확인했다. 무한히 재생하던 언데드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단테는 하반신과 왼팔을 잃고 숨만 붙어 있었다.

블링크를 이용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단테와 조금 떨어진 곳에 단검이 부셔져 있다. 사자의 서는 바닥에 힘없이 떨어져 있다.

“그대는 알고 있었나? 묘지 자체가 니플헤임이었던 것을.”

단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테드는 그 미소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모른다.”

“이 니플헤임은 육체에 영혼을 속박한다. 영혼이 있는 한 시체가 되어도 벗어나지 못하지. 나의 의무는 죄인들을 감시하머 영원히 벌하는 것. 그것이 나의 벌.”

단테가 오른손을 위로 뻗었다.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 파란 하늘과 태양이 보였다. 저것들이 가짜인 것은 알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의무를 행할 수 없게 되었고, 벌은 그대에 의해 끝이 났다. 그대여. 사자의 서를 가져가거라. 그대에겐 자격이 있다. 다만 어리석은 충고를 하자면, 사자의 서를 조심 하거라. 탐욕을 경계하고 선을 범하지 말거라. 그대라면 능히 사자의 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단테의 손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수 백, 수 천 년을 억지로 살아온 육체가 마법의 힘을 잃자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의 영혼이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테드의 눈동자가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단테는 힘을 전부 발하지 않았다. 네크로맨서인 그가 언데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혼자서 싸웠다. 뭐,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애초에 그가 네크로맨서인지 확실하지도 않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그분’이란 자가 언데드를 만들어 놓고 관리를 떠맡긴 것일 수도 있다.

테드가 사자의 서를 주웠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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