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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65화 (16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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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재회.

“마법을 사용할 정도면 정신 지배는 힘들겠네. 그냥 죽여 버려.”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데스나이트와 팔라딘 골렘이 뛰쳐나갔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유령 마녀가 할 수 있는 대항은 손톱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유령 마녀의 웃음소리에는 남성의 정신을 공격해 매혹하는 힘이 있다고 하는데, 골렘과 언데드에게 통할 리가 없고 테드 또한 정신적 공격은 아예 통하지 않는다.

유령 마녀의 손톱은 갑옷에 기스를 내는 것이 전부였다. 결국 유령 마녀들은 육체를 유령화시켜 숨으려 하지만, 팔라딘 골렘과 데스나이트의 검에는 밴시마저 베어낸다. 유령화되었다고 해도 베지 못할 리가 없었다.

“깔, …깔깔. …깔깔깔깔!”

마녀들의 웃음소리는 멈추지 않고, 그 몸에서는 검은색의 피가 흩날려 땅과 썩은 나무를 적신다.

“속이 시커멓군.”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였다.

유령 마녀의 배를 가르고 튀어나온 내장과 머리가 갈라지며 보인 뇌까지. 전부 검정색이다. 유일하게 하얀 것이 있다면 뼈뿐이다.

제법거리가 있었기에 냄새가 맡아지진 않았지만, 대충 상상하기로 썩은 내를 지독하게 풍기지 않을까. 테드는 생각했다.

“깔깔깔깔깔깔!!”

목이 잘려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테드의 앞까지 다가온 유령 마녀의 머리가 큰소리로 웃었다. 눈동자가 없는 눈이 테드를 바라보고 검은 입술을 크게 벌려 웃는다. 성대가 없는데 어떻게 웃음소리를 내는지 참으로 미스테리 했다.

테드가 턱을 까딱이자 듀라한이 앞으로 나서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산산 조각난 유령 마녀의 피와 뇌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무리 언데드가 죽지 않는다고 해도 머리가 박살나고 몸통이 조각나면 영면에 들 수밖에 없다.

“괜히 기분 잡쳤네. 가자.”

유령 마녀의 웃음소리가 워낙 인상 깊었던 탓일까. 길을 걷는 중에도 깔깔 웃는 마녀의 웃음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데스나이트와 듀라한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와 스켈레톤의 뼈가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바람하나 불지 않는 메마른 숲에 울려 퍼졌다.

간간히 튀어나오는 구울과 스켈레톤을 제외하면 특이한 점은 없었다. 유령 마녀는 처음 이후에는 볼 수 없었다.

쿵, 쿵!

지면이 흔들리는 느낌에 테드가 걸음을 멈추자 언데드들이 따라서 멈췄다. 테드는 가만히 서서 감각을 집중했다. 쿵, 쿵 하고 지면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발생지는 앞이고 점점 소리가 커져간다.

“자인언트 언데드 같은 놈인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정면을 쳐다본다. 자이언트 언데드. 크기만 더럽게 큰 언데드를 말한다. 평민의 집보다 더 큰 그 몸은 질량 자체가 무기다. 일반 병사들은 현대 병기인 탱크를 상대하는 것이겠지만, 테드와 데스 나이트에겐 이야기가 다르다. 좀 큰 언데드에 불과하다.

쿵, 쿵!

곧이어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테드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그건 높이만 8M가 넘어가는 덩어리였다. 폭은 5M 정도인 그것은 동그란 몸통에 달린 8개의 커다란 다리를 천천히 움직였다. 다리가 땅을 찍을 때마다 땅에서 미세한 울린다. 창백한 회색의 피부를 가진 덩어리는 머리가 없었다. 대신 팔의 숫자만 15개로 몸 곳곳에 달려 있다.

정면에는 심장으로 보이는 3개가 피부에 들러붙어서 고동치고 있으며 그 주위에 있는 창자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더군다나 피부 곳곳에는 고름이 있다. 녹색의 무언가를 품고 있는 고름은 지금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모습이다. 실제로 터진 고름도 있었다. 녹색의 고름이 질질 흐른다. 녹색의 액체는 땅바닥에 닿는 순간 연기를 내며 땅을 녹이고 있다.

고름 시체누더기(Acid Abomination).

“야! 흩어져!”

테드가 명령을 내리자 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흩어져 숲으로 들어갔다. 테드는 눈앞의 커다란 시체를 향해 마법을 준비했다. 애시드 오보미네이션의 경우 접근전은 자살이나 다름없고, 고름에서 나오는 산성 물질은 강철까지 녹이는 독이다. 데스나이트와 팔라딘 골렘은 산성이 좋지 않았다.

어보미네이션의 땅바닥에 붉은색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곧바로 불기둥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어보미네이션의 몸이 불탄다. 화력은 충분했을 터인데 마법저항력이 높은 것인지 온몸에 불타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의 화를 돋군 것인지 발놀림이 빨라지며 테드를 향해 돌진한다.

“미친.”

테드가 기겁하며 다크 체인을 뻗었다. 수 십 개의 검은 쇠사슬이 불타는 어보미네이션의 몸체를 휘감는 순간 고름이 퍽 터졌다. 쇠사슬이 연기와 함께 순식간에 녹는다.

드물게도 테드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렸다. 온몸에 활활 타오르는 불을 묻히고 바퀴벌레마냥 다리를 움직이며 뛰어오는 어보미네이션은 토악질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역겹기 그지없었다.

“……프로즌 프리즌(Frozen Prison).”

3M의 앞으로 다가온 어보미네이션의 육체에 붙은 화염이 꺼지고 동결된다. 내부는 물론이고 고름까지 단숨에 얼려버려서 제스스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보미네이션의 새파랗게 변한 회색피부에서 서리가 흘러내렸다.

후, 하고 테드가 숨을 내쉬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테드조차 질색할 정도의 어보미네이션이었다.

“애초에 어보미네이션이 8M가 넘는 게 말이 돼? 얼마나 많은 시체를 뭉쳐서 만든 거야.”

일반 어보미네이션이라면 자연적으로 생성되지만, 애시드 어보미네이션의 경우엔 말이 달라진다. 그건 네크로맨서가 직접 손을 대서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즉, 저 어보미네이션을 만든 놈이 이곳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것도 처리를….”

단숨에 없애 버릴 특대 마법을 준비하려는 찰나에 쩍, 하고 동결되어 있는 어보미네이션의 몸이 움직였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십 수개 넘는 팔 중 하나였다. 크고 두꺼운 팔이 살짝 움직이더니 이내 풀어져서는 자신의 몸을 쾅쾅 쳐대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살덩어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며 검붉은 핏물이 튀었다.

“블링크.”

얼어붙지 않은 핏물을 보는 순간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처음에 느낀 것이지만 시체 주제에 이상하게 내구도가 좋았다. 만든 놈이 상당히 정성들여서 만든게 틀림없다.

그래도 다행히 동결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동결이 풀릴 때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강력한 위력의 마법을 준비한다.

어보미네이션의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펌프질하며 동결이 풀린다. 그리고 어보미네이션의 몸이 천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회색의 피부가 방사능을 떠올리게 하는 밝은 녹색으로 변했다.

그 육중한 몸은 툭 건들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몸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계까지 오른 몸이 터졌다. 사방으로 산성 물질이 퍼져 비처럼 바닥으로 쏟아졌다.

비교적 먼거리에 있던 테드는 무사했지만, 주변 나무에 몸을 숨긴 테드의 언데드는 무사하지 못했다. 썩은 나무는 산성 물질에 너무 쉽게 분해되었고, 데스 나이트는 서둘러 몸을 놀려 피했지만, 비교적 몸이 굼뜬 듀라한은 절반 이상이 민첩하게 피하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스켈레톤은 운도 좋게 다 살아남았네.”

다행히 팔라딘 골렘은 3기 모두 무사하다. 데스 나이트는 11기 중 3기가 산성을 뒤집어쓰고 회복불능이다. 듀라한은 절반 이상이 당해 5기 밖에 남지 않았다.

테드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언데드들을 이끌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애시드 어보미네이션 같은 놈이 또 있을 리는 없겠지.”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얼마 걷지 않아 어보미네이션을 발견했다. 그러나 앞서 만난 애시드 어보미네이션과 달리 2M크기의 고름도 없는 시체누더기다.

다만 앞모습이 거대한 여성기를 닮아 있다. 아니, 누가봐도 여성기를 표현하고 있었다. 시뻘건 음순과 음핵이 있으며, 위에는 갈색의 음모까지 듬성듬성 나있다. 끝부분이 새까만 소음순은 활짝 벌려져 있고 요도구와 질구가 보였다. 질구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왔다.애액은 아니다.

질구는 입이다. 자세히 보면 안쪽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뾰족한 이빨이 보인다.

“네크로맨서 중에선 변태 새끼들이 많다지만 이건 상상이상이야.”

곧바로 불기둥을 일으킨다. 어보미네이션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살이 순식간에 불에 타 재가 되어 흩날린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애시드 어보미네이션이 지나치게 내구도가 좋은 것이다.

더욱더 썩은 숲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언데드는 꾸준히 튀어 나왔다. 대부분이 하급의 언데드로 테드가 나설 필요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1시간을 걸었을까. 드디어 숲의 끝이 보였다.

그곳은 검은색 묘지였다. 검은색 흙으로 가득한 땅에는 반쯤 부서진 묘비가 아무렇게나 묵혀있다. 그리고 그 묘지에서 온갖 언데드들이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광란. 그 이상으로 어울리는 단어는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묘비에 해골을 박으면서 자해를 하는 스켈레톤과 자신의 몸을 뜯어 목고 있는 구울은 양반이다. 바닥에 누운 유령 마녀는 양 다리를 쩍 벌리고 반쯤 썩어 있는 좀비와 떡을 치고 있다. 데스나이트는 검으로 할복하고 있고, 듀라한은 자신의 머리를 철저하게 짓밟고 있다. 밴시는 지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비명을 내지른다.

“…….”

테드는 입을 떡 벌리고 경악성을 숨기지 않았다. 자해와 폭력, 강간으로 혼돈을 만들고 있는 묘지의 상황도 놀랍거니와 부서진 언데드가 시간을 되돌리는 것처럼 멀쩡하게 변해서 무한히 상태를 반복하고 있었다. 특히나 유령 마녀의 꼴이 가관이다. 그것들은 자신의 몸에 올라타 허리를 흔드는 좀비의 내장을 끄집어내며 축 늘어진 좀비를 갖다 버리고 구울의 성기를 쪽쪽 빨고 있다. 그것도 질리면 스켈레톤의 갈비뼈로 자신의 음부에 쑤셔 넣는다.

테드의 시선이 묘지의 중앙으로 향했다. 계단위에 놓인 왕좌 위에 한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창백한 피부의 사내는 백색의 머리카락을 가르마대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귀족 특유의 옷을 입고 있다. 그는 지친 얼굴로 힘없이 입을 열었다.

“나는 죄인. 영원히 고통 받는 자. 나는 처벌자. 죄인에게 벌을 내리는 자. 나는 간수. 이 죽음의 땅을 지키는 자.”

그의 양손을 들었다. 왼손에는 붉은 루비가 장식되어 있는 단검을 쥐고 있다. 오른손에는 이름 없는 검은색 표지의 책이 들려 있다.

테드는 직감했다. 저 검은 책, 틀림없이 마도서다.

“고결한 영혼 가진 자여. 이곳은 그대 같이 선한 자가 올 곳이 아니다. 이번 한 번만 못 본체 해주겠다. 돌아가거라.”

“……그 책. 당신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책이 필요해.”

대화가 통해서 얻을 수 있다며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어리석구나. 사자의 서는 생자가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허나 그대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그렇다 해도 사자의 서를 그대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분에 넘치는 탐욕은 파멸을 초래하는 법이다. 돌아가거라.”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테드가 마력을 끌어 올렸다. 검은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동시에 테드는 숨을 들이켰다.

광란을 행하고 있는 언데드의 고통 받는 영혼이 두 눈에 똑똑히 보였다. 그 광경이 너무 소름끼쳐서 일순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나는 단테.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을 범했으며, 탐하지 말아야 할 것을 탐해 죄인이 된 자.”

의자에 앉아 있는 단테는 한 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사자의 서를 펼친다. 책을 중심으로 마나가 요동치고 태양이 빛을 잃고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광란을 행하던 언데드들이 행동을 멈추고 동시에 테드를 쳐다봤다.

테드가 뒤늦게 손을 들었다. 팔라딘 골렘과 데스나이트, 듀라한이 검을 뽑아들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언데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곳은 니플헤임. 이곳에 들어서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가 선언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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