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13. 우크사이어.
어렸을 적 부모에게 버려진 제니는 깨닫고 보니 암살자로서의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녀가 가진 가장 처음의 기억은 작은 강아지를 죽이는 훈련이었다. 다리가 줄에 묶여 옴싹달싹 못하는 강아지를 나이프로 찔러 죽이는 것이 전부였기에 어린 제니도 간단하게 해낼 수 있었다. 아니, 간단하게 해낸 것은 제니뿐이었다. 그녀 또래의 아이들은 강아지를 죽이는 것을 망설였고, 복면을 쓴 교관의 호통을 듣고서야 떨리는 손으로 나이프를 내리 찍었다.
훈련은 힘들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교관들은 어딘지 모르는 넓은 지하 공간에 그들을 집어넣고 항상 감시하며 훈련을 시행했다. 반항하는 아이도 나왔었다. 그러나 반항하는 순간이 목숨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교관들은 반항자들에게 가차 없이 날붙이를 휘둘러 목을 잘라버렸다.
제니는 부모의 얼굴은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 그들은 그녀를 46이라 불렀었다. 그녀의 옆에 있던 남자아이는 47이었다.
제니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지었다. 훈련을 끝내고 조직에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아 자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는 권한을 얻은 것이다. 인정받은 그 순간부터, 46이란 이름 대신 제니라는 이름을 가지는 순간 그녀의 인생은 송두리째 변했다.
맛보지 못했던 호화로운 요리들은 온몸을 녹일 정도로 황홀했고, 칙칙하고 누더기 같은 검은 옷을 버리고 비단같이 부드러운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교관의 날카로운 호통소리도 없으며, 시끄러운 동료의 비명소리도 없었다.
새로운 세상을 알아버린 제니는 열심히 조직이 시키는 일을 해냈다. 그들은 임무를 성공시킬 때마다 제니에게 일정량의 보수를 지급 했다.
제니는 암살자로서의 삶이 즐거웠다. 자신은 어렸을 적부터 온갖 고생을 했는데 행복에 겨운 연놈들은 태어날 때부터 전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도 알고 이름도 알고 요리도 즐기고 목숨이 사라질 위험도 없는 축복받은 환경을 가진 것을 질투했다.
제니는 어린아이나 늙은이를 죽이는 것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물론 눈물이 나올 정도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여인을 죽이는 것에도.
최근에는 임무의 양이 굉장히 줄어들었다. 새로 즉위한 라이거 국왕이 숙청을 시작하며 왕국 내부가 떠들썩하기 때문이다. 괜히 나섰다가 모난 돌이 되어 두들겨 맞을 것은 걱정한 조직이 몸을 사리는 것이었다. 한 달에 2~3번 있던 임무가 2~3개월의 한 번 꼴로 줄어들었다. 제니는 그것이 조금 불만이었다.
이번에 지령 받은 임무는 모처럼의 것이었다. 조직에는 그녀를 제외하고도 뛰어난 암살자가 몇몇 있었지만, 코스모스 아카데미에 잠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녀만큼 적임인 암살자가 없는 것이다.
“교복인데도 촉감이 좋은걸. 좋은 옷이야.”
제니는 자신이 입고 있는 하얀 교복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교복은 아카데미에서 지급하는데 많은 옷을 입어본 그녀는 한 눈에 고급의 원단을 사용해 만든 옷임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정면의 전신거울을 쳐다봤다. 거기엔 교복을 입고 있는 갈색머리의 여인이 있었다. 처진 눈 꼬리가 그녀의 몸에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었다. 새하얀 피부와 슬쩍 미소 짓고 있는 입술. 10명 중 10명이 미인이라고 생각할 아름다운 이목구비였다.
제니의 눈동자가 슬쩍 옆으로 향한다. 전신거울의 바로 옆, 웅크리듯 잠들어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녀가 있었다. 엘리제 제크테리안이다. 하얀 속옷만을 걸친 엘리제는 고른 숨을 내며 깊게 잠들어 있었다. 차가운 바닥임에도 일어날 기색이 전혀 없다.
수면제가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 제니가 거울속의 자신을 바라봤
다.
“나이 때문일까. 옷이 조금 작네. 특히 가슴부분이 너무 꽉 끼여.”
가슴부분의 교복이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다. 주름하나 없이 팽팽한 게 조금만 건드려도 참사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제니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고는 몸 안의 마나를 움직인다.
마나가 특수한 비법으로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제니가 눈을 감았다. 앞으로 일어날 장면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우드득, 뿌드득, 꽈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육체가 비틀리고, 뒤틀리고, 일그러진다. 입고 있는 교복이 찢겨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격렬하게 반응한다. 약 1분간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에서야 제니의 육체의 현상이 멈추었다.
제니는 천천히 눈을 떴다. 거울의 안에는 제니는 온데간데없고 붉은 머리의 엘리제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완벽한걸.”
제니는 실망시키지 않는 자신의 역용술에 마음 깊이 찬탄했다.
역용술. 제니가 조직에서 배운 기술이었다. 처음 배웠을 때는 얼굴의 형태나 몸의 체격을 약간 변형시키는 것이 전부였으나, 지금에 와서는 골격은 물론이고 동공의 색과 체모까지 바꿀 수 있었다.
제니는 이 기술을 이용해 많은 타겟을 암살해왔다. 지인이나 애인의 모습으로 변해서 표적에게 다가가 방심한 순간 죽이는 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제니는 그저 완벽하게 연기만 하면 되었다.
“한 번쯤 아카데미에 가고 싶었는데. 설레는걸.”
제니는 들뜬 마음으로 붉은색 머리카락을 한 곳으로 묶기 시작했다.
겉모습으로 보았을 땐 엘리제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똑같았다.
엘리제의 말투라던가 지인관계, 성격, 가치관 등은 조직에게 받아서 몇 일전부터 연습해왔다. 완벽하게 엘리제를 연기할 자신이 있었다.
“죽이지 못해서 아쉽네.”
제니는 쩝하고 입맛을 다셨다. 귀족들을 보면 질투가 나서 죽이고 싶었다. 자신은 태어나자 말자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는데, 편안하게 사용인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생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열불이 났다.
소매에서 나이프를 꺼내 한 차례 쓰다듬은 제니가 엘리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녀로 변장한 이유는 1학년 D반 중에서 유일하게 그녀만이 기숙사가 아닌, 아카데미 밖의 고급
스러운 호텔에서 사치스럽게 생활하기 때문이다.
기숙사의 경우 마법 결계가 펼쳐져 있어 침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 일할 시간이야. 제니… 아니, 엘리제 제크테리안.”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제니가 웃었다.
⁂ ⁂ ⁂
제니는 어렵지 않게 아카데미의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처음 들어오는 곳이지만, 건물의 구조는 조직에서 가르쳐준 대로였다. 아카데미 입구에서 하는 경비원의 학생증 확인도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학생증 사진 속에 있는 엘리제와 모습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교실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슬쩍 자리를 살폈다. 여기서가 가장 큰 문제다. 엘리제에 자리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아무리 조직이라도 완벽하게 정보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입구에서 슬쩍 주위를 살핀다. 제법 많은 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책등을 읽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제니가 가장 끝자리에 앉았다.
같은 반 학생들에 대한 정보는 알아두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서 출석번호 순서대로 앉는 것을 단번에 눈치 채고 끝자리에 앉는다.
제니는 앉자마자 책상 서랍 속에서 책을 꺼내들었다. 엘리제의 이름이 적힌 마도서였다. 책에는 제니가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뿐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책에 고정되어 있지만, 그녀는 교실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원래 아카데미의 교실이 이렇게 조용 했나…?’
그녀가 상상한 아카데미의 교실은 또래 아이들이 장난치듯 말하는 떠들썩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제니가 이해하기도 어려운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뿐이었다.
간혹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무언가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정말 비밀이야기 일까 싶었던 제니가 청력을 극대화시켜 엿들어 보았지만, 비밀이야기는 개뿔. 어제 먹은 저녁 이야기였다.
제니가 한쪽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7시 50분.
등교 시간은 8시까지였고 제니는 45분에 교실에 들어왔다. 그 후에 학생들이 몇 명 들어오더니 50분이된 지금은 20명이 전부 들어와 있었다.
‘기숙 생활이라 그런 걸까. 애들이 빨리 등교하네.’
등교하자마자 하는 것은 책을 펼쳐서 보는 것이다. 복습인지 예습인지 아니면 그냥 독서인지 알 길은 없었으나, 모두 성실해보였다. 이 아카데미에는 모범생들뿐인가. 그럼 너무 재미없는데.
괜히 코스모스 아카데미가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제니는 8시가 가까워짐에 따라 이상함을 느꼈다. 등교시간인 8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변의 학생들은 익숙한 듯 자신의 책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굳게 닫힌 교실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15분 정도의 지루한 시간을 더 보냈다.
교실문이 스르륵 열리고 한 명의 소년이 나타난다. 붉은 모자를 쓴 소년은 졸린 듯 나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긴장감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소년의 모습을 보며 제니는 보이지 않게 아랫입술을 핥았다.
현재 우크사이어 가문에서 생활하고 있는 A등급 모험가, 테드 크루시안. 천재 마법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겉모습과 걸맞지 않은 마법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제니의 타겟이었다.
“번호 시작.”
교탁으로 향하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에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앞줄에 앉은 갈색머리의 청년이 고함을 외치듯 큰소리를 지른다.
“1번! 브라고 베라고니!”
갑작스럽게 외치는 그의 행동에 제니가 깜짝 놀랄 틈도 없이 바로 옆에 앉은 소년이 외친다.
“2번! 티피스 티파나!”
주르륵 외쳐대는 학생들을 보며 제니가 식은땀을 흘렸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의 번호와 이름을 외치는 그들은 굉장히 익숙해보였다. 호흡이 딱 맞아 떨어졌다.
순식간의 자신의 차례가 되자 제니도 큰 목소리로 외쳤다.
“20번! 엘리제 제크테리안!”
교실내의 있던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제니는 당황스러움을 최대한 숨기며 태연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시선이 조금 흔들리는 것까지 숨기진 못했다. 목소리는 완벽했을 터다. 그런데 왜 자신을 보는 것이지? 설마, 무언가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불안한 마음을 조리고 있을 때, 테드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뛰어난 청력으로 들을 수 있었다.
“아침에 도라지 먹었나…….”
구제불능의 무언가를 보듯이 제니를 바라보던 테드가 귀찮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그리곤 모두가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키워 말한다.
“오늘 본 교사는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고로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습니다. 다시 번호 시작.”
“1번! 브라고 베라고니!”
맨 앞에 있는 갈색 머리 청년이 다시 외치기 시작한다. 제니는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옆 사람에게 물어볼까? 아니, 물어보면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존심 높은 엘리제는 타인에게 물어보는 행위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심을 살 행동은 하지 않는게 최선이었다.
“20번! 엘리제 제크테리안!”
테드가 안되겠다는 듯이 검지로 그녀를 가리켰다. 그리고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가 제니의 귓가에 날아든다.
“앞으로 나와서, 박습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앞으로 나온 제니였으나, 박으라는 말은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박으란 것이지? 이도저도 못하고 있자 테드의 눈썹이 참을 수 없다는 듯 경련한다.
“최근엔 좀 잘한다 싶었더니…… 전부 나와서 박습니다!”
학생들은 의자를 밀어 젖히고 우르르 일어나서 달려오더니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제니는 두 눈을 끔벅거렸다. 박으라는 손이 아닌 머리로 엎드리라는 거였나. 엘리제가 멍하니 학생들의 행동을 보고 있을 때였다.
“넌 안 박고 뭐하냐?”
으르렁거리는 듯한 말에 제니가 황급히 바닥을 향해 머리를 박았다. 바닥에 머리를 박는 순간에도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교가를 부릅니다. 소리가 부르면 다시 부릅니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제니는 학생들이 부르는 알지도 못하는, 존재했는지도 몰랐던 교가를 다급하게 따라 불러야 했다. 암살자로서의 순발력 덕분인지 걸리지는 않았다.
“수업에서 하는 각종 평가를 연습한다고 정신이 없는 건 이해하는데… 아침부터 이건 조금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다음 수업이 마도학이라 이번 한 번만 봐드리는 겁니다. 전부 일어서서 자리에 들어갑
니다.”
학생들은 재빠르게 일어섰다. 물론 제니 또한 마찬가지다. 머리가 조금 욱씬 거렸으며 피가 쏠렸다. 좋은 기분은 결코 아니었다.
자리에 들어가 앉은 제니는 학생들의 원망스러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제니는 무언가 일이 틀어졌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