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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크사이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빼내자 상당히 낡은 책임을 알 수 있었다. 표지는 일부가 찢어져 있어 겨우 너덜너덜하면서 겨우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만만찮게 두꺼운 책의 첫 장은 악마와 천사에 대해서 서술하며 시작한다. 목차를 펼칠 생각이었는데 아쉽게도 목차부분은 절반 이상이 찢어져 있어 원하는 내용이 어느 페이지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직접 책장을 넘기며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테드는 낡은 종이를 사정없이 획획 넘기며 살피다가 어느 한 쪽에 멈칫하고 만다. 찾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테드의 흥미를 끄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악마는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다. 그 욕망에 의한 행동은 우리의 입장에서 선이 될 수 있고, 악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천사는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 그들만의 규율이 있으며, 규율을 어기는 모든 자들이 적이다.]
“…….”
사이나를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이 영혼이라고 스스로 말했었다. 영혼에 대한 지식이 적은 테드는 그녀의 욕망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악마나 천사는 생물의 영혼을 좋아한다. 영혼이야 말로 생물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보가 부족하기에 어떠한 기준으로 그들이 영혼이 격을 판단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천사와 악마 중 일부는 영혼을 수집하거나 흡수하는 등의 행위를 하기도 한다.]
“……흡수라.”
안타깝게도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뒷장에는 천사와 악마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흥미 없는 이야기이기에 그것을 획획 넘긴 테드는 책의 후반부에서 원하는 내용을 찾았다.
고대 종족, 마법을 창시한 종족인 레칸에 대한 것이다.
[고대 종족 레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창조주 제울에 의해 그 흔적 대부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얼마 안 되는 레칸의 흔적은 고대 마법과 고대 유물이라는 이름으로 레칸의 흔적을 발견 할 수 있다. 레칸은 고대 마법의 주인이다. 고대 마법의 압도적인 위력을 생각하면 그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보유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고대 유물을 보아 지금의 네메스 대륙에 있는 어느 종족과도 비교가 불가능한 찬란한 문명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레칸은 마나와는 다른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만능에 가까운 그 힘으로 중간계의 패자가 되었으나, 신들 마저 소멸시키는 오만함에 분노한 창조주 제울이 레칸을 멸종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레칸족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레안족은 창조주의 자비로 태어난 종족이다.]
“신비한 힘…… 영력?”
테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것은 사이나와 시온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그 ‘신비한 힘’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기를 바라며 책장을 넘긴다. 그러나 테드가 원하는 이야기는 없었다. 레칸족은 다른 종족에 비해 정보가 적기 때문인지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간 것이다.
테드가 불만스럽게 혀를 차며 낡은 책을 덮었다. 소득은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몰라 다른 책들도 살펴보았는데 레칸에 대한 것은 거의 없었다. 있다고 쳐도 간단히 언급만 한고 넘어가는 정도였다. 결국 먼저 포기한 테드는 마나에 관한 책들이 모여 있는 2구역 쪽으로 움직였다.
2구역은 1구역 보다 배이상은 넓었다. 책의 양도 현기증이 나올 정도로 많다. 여기서 특정한 책을 찾는 것만 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테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의욕이 확 떨어졌지만, 이후로 다시 마법도서관에 올 생각은 없기에 고생하기로 한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책을 찾았다. 책꽂이 사이를 종횡무진 한다.
“마나, 마력, 성력, 정령력…… 죄다 이런 것들뿐이잖아.”
테드는 손바닥을 들어 코에 대고서 킁킁 거렸다. 잉크와 종이의 냄새가 손에 배겨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자신의 손을 희생했는데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힘없이 터덜터덜 걸으며 돌아갈 준비를 한다.
테드가 책장을 도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무언가에 부딪혀 충격의 의해 몸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웬 벽이….”
반사적으로 불평을 내뱉으려던 테드가 입을 다물었다. 벽이 아니라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검은색의 로브를 몸에 걸쳐 후드까지 쓰고 있다. 자신이 마법사라고 주장하는 듯한 차림새의 그는 푸른색의 눈동자로 테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그의 얼굴은 창백해보일 정도로 새하얗다.
“테드 크루시안인가.”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적의가 서려있었다. 테드가 몸의 자세를 되잡았다. 마주 보고 있는 지금에서야 느끼는 건데 일부러 숨기는 것인지 기척이 엷다. 아니면 타고난 것이거나.
“그런데?”
“생각했던 대로 버릇이 없군.”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테드의 말에 그는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몰크 트리센이다. 마도학을 맡고 있으며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학생주임이다. 오늘 입학식에는 왜 참가하지 않았지?”
“…어, 그게….”
테드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설마 학생주임 일 줄이야.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는 것도 그의 말을 듣고 이해가 갔다. 그는 자신이 입학식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조금 사정이 있어서요.”
테드가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잘못한 것은 자신이었다. 여기서 화를 내면 적반하장이었다.
잘못한 것이 있어 쩔쩔매는 테드를 보며 몰크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교사가 첫날부터 입학식을 빼먹으면 학생들에게 모범이 서지 않는다. 다음부터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 앞으로 주의하도록.”
다음에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이 테드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한 차례 훑어보고서 테드를 지나쳐 간다.
사람마다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몸과 얼굴, 행동과 표정, 성격 등에 따라 바뀌기도 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나기도 하는 분위기다. 몰크의 경우엔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학생주임이라고 했던가. 그 직함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학생들에게 인기는 그다지 없을 것 같은 선생이야.’
테드가 뒤로 지나치는 몰크를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대로 몰크는 학생들에게 두려움을 사고 있었다.
⁂ ⁂ ⁂
전투 마법 준비실 몇 개의 서류를 정리하던 베진이 오후 수업이 없어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는 테드를 향해 말을 걸었다.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인공 던전을 알고 있나요?”
한가로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던 테드가 두 눈을 빛냈다.
“아뇨. 처음 듣는데요. 아카데미에 던전이 있어요?”
“지하에 실습용으로 만들어져 있지요. 전투 마법과는 이 인공 던전을 사용해 1년에 한 번씩 시험을 치르지요. 테드 씨는 2달 뒤인 6월에 학생들의 시험을 준비하시면 되요.”
“던전이 처음이면 위험하지 않나요?”
이곳의 학생들은 제대로 된 전투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전투 마법을 가르치는 테드
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어수룩한 학생들을 떠올렸다. 던전에 들어가면 십중팔구 죽을 것이다.
“그러니 가르쳐야지요. 인공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는 모두 환상마법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큰 위험은 없을 겁니다. 함정도 마찬가지로 조치가 되어 있어요. 함정에 걸려도 죽을 일은 없지요.”
“연습 던전 같은 거네요. 코스모스 아카데미에는 신기한게 많아서 놀란다니까요.”
“저도 처음에 그랬지요.”
베진은 하나의 서류와 책을 꺼내들었다. 테드가 몸을 긴장시켰다. 저 서류를 처리할 자신이 없었다.
“인공 던전을 사용하려면 서류를 제출해야하는데, 서류는 제가 작성하겠습니다. 이 책은 인공 던전에 관해 적혀 있어요. 한 번 읽어주세요.”
“알겠어요.”
테드는 안심하며 책을 받아들였다. 서류를 처리해주는 베진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책을 펼친다.
인공 던전의 정식 명칭은 코스모스 던전이었다. 던전 중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동굴 형태의 던전이며, 던전의 마법을 설정하는 것에 따라 던전 안에 나오는 몬스터를 구성할 수 있었다.
던전의 총 길이는 약 800M. 미로 형식으로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설정에 따라 길을 일부 바꿀 수 있었다. 함정의 개수는 총 37개로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치명적인 함정은 없었다. 던전의 내부 상황을 비쳐주는 마법 감시등이 50개가 설치되어 있다.
“보스 몬스터까지 구현이 가능하네요. 나오는 몬스터는 제가 임의로 설정해도 되나요?”
“너무 강력한 몬스터면 곤란합니다. 학생들이 어느 정도 고전할 수 있는 몬스터면 좋겠군요. 아, 정하시면 제게도 말씀해주세요.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이론을 가르쳐야 해서요.”
8종류의 몬스터가 있었다. 고블린, 오우거, 놀, 자이언트 스파이더, 미노타우르스, 스켈레톤, 좀비, 스트라이프 타이거. 오우거와 미노타우르스를 제외하면 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보스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보다 클 뿐이다. 종류는 같았다.
“이거 몬스터들끼리 조합을 짤 수도 있군요. 그럼 자이언트 스파이더와 스켈레톤, 좀비로 짜야겠어요.”
“……악취미가 느껴지는 조합인데요.”
베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테드가 말한 3종류의 몬스터는 외관이 특히나 징그러운 몬스터들이다.
베진은 오우거나 미노타우르스가 아님에 감사했다. 오우거와 미노타우르스는 학생들이 잡기에 무리가 있는 몬스터다. 아무리 환상이라고 해도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으며, 이건 학생들의 실전 훈련과 시험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너무 강한 몬스터는 훈련이 되지 않
는다.
“그럼 그 세 마리의 종류로 알겠습니다. 설정이 되는 대로 인공 던전을 사용해 학생들을 교육 시켜주세요.”
“혼자서 공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할 테고… 조를 짜서 보내도 되죠?”
“상관없습니다만, 한 조에 너무 많은 인원을 배치하면 공평하게 시험을 매길 수 없어요.”
“3명 정도가 적당한 것 같네요.”
테드가 씩 웃음 지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천장에서 뚝 떨어진 자이언트 스파이더를 보며 비명을 지르는 학생들의 얼굴이 그러졌다.
사악하게 웃는 테드의 표정을 확인한 베진이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화제를 돌렸다.
“아, 한 달 뒤에 학원장님이 2주 정도 자리를 비우실거에요.”
“그렇게 쉽게 비워도 되는 거에요?”
부러움을 담아서 테드가 말했다. 그 속내를 눈치챈 베진이 오해하지 말라는 듯 이어서 말한다.
“매년 이맘때쯤 왕궁에 집행관들이 모이거든요. 국왕 전하께서 정한 연례행사라 어쩔
수 없어요.”
“그러고 보니 그분은 집행관이었지요.”
“왕국의 현자라 불리시는 분이다보니, 앞으로도 아카데미에 없는 날이 상당히 많을 거예요.”
테드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테드는 학원장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지금도 모르고 있다.
‘저번에 봤을 때는 마법으로 화단에 물주고 있던데.’
사실은 하는 일이 전혀 없는 게 아닐까? 진심으로 학원장이 부럽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A등급 모험가로서 던전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테드씨네 학생들은 유난히 조용하더군요. 수업시간에 조는 인물도 없고.”
베진은 바짝 긴장한 채로 자신의 수업을 듣는 1학년 D반의 학생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마법사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수업을 듣기 때문에 태도가 좋은 편이지만, D반의 경우 유난히 심했다. 꼭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성실한 녀석들이죠.”
테드가 웃으며 말했다.
테드는 전에 한번 동료 교사에게 지나가는 투로 학생 중 한 명이 수업 시간에 태도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학생은 귀족 출신의 학생인 엘리제였다.
테드는 대충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교사가 평민 출신의 이름 없는 마법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도 테드 처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임시로 채용된 교사였다. 고귀한 귀족인 엘리제는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첫날에 자신에게 대드는 그 모습을 보면 거의 확실했다.
그리고 그날, D반은 1시간가량 기합을 받아야 했다. 그때 테드가 한 명이라도 수업태도가 좋지 않으면 오늘 같은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테드의 지랄같은 성격이 아카데미 내에 알려져서 인지 학생들은 고분고분하게 따랐다.
‘아마 속으로는 엄청나게 욕했겠지. 내 별명이 악마교사니까 말다 한 거지.’
베진의 칭찬을 들으며 테드는 흐뭇하게 웃었다.
지구였다면 부모가 찾아와서 뭐라고 했겠지만, 네메스 대륙의 아카데미는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곳이다. 특히나 코스모스 아카데미의 경우 졸업한 것만으로도 창창한 인생을 약속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학생들은 더러워도 3년만 참자라고 생각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