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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디스본.
션을 필두로 모험가 길드의 소속원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그들은 거리에 벌어진 참상의 흔적을 보고 한숨을 내쉬더니 익숙하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모여 있는 군중들을 흩어지게 만들고 팔이나 다리가 잘린 도적들을 길드로 연행해갔다. 피투성이 거리의 청소는 따로 청소원들이 찾아와 마도구를 이용해 빠르게 정리한다.
션은 테드와 사이나를 데리고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모험가 길드 근처에 있는 가게로 사람이 별로 없는 작은 가게였다. 건물과 인테리어 방식이 낡아서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션은 익숙하게 차를 시키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나란히 앉는 테드와 사이나를 보며 반갑다는 듯이 미소지었다.
“한 달… 조금 넘었나. 오랜만이군. 설마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리더. 사이나 씨도 여전하군.”
“난 파티의 리더가 아니야. 그냥 테드라고 불러.”
사이나는 션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고, 테드는 손을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파티, 레드헥사그램은 해체되었다. 더 이상 리더라고 불릴 수는 없다.
“음. 그러도록 하지. 그런데 묻고 싶은 게 있다고?”
“네가 모험가 길드 일을 하는 것도 궁금한데… 그보다 더 방금 전에 있었던 도적들에 대해서가 급해. 왜 도적이 디스본의 거리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거야?”
루크에이스 같은 경우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모험가 길드가 관리하고 있는 것도 이유지만, 주민들이라고 해도 모험가 출신이 많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주민들에게 제압당해서 강제로 모험가 길드에 넘겨질 수도 있다. 평범한 주민이라고 얕봤다간 큰코다친다.
“설명하면 조금 긴데…….”
션은 말을 흐리며 생각을 정리하듯 침묵을 고수하더니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테드, 너는 데저트 오크에 속한 도적을 잡아 모험가 길드에 넘겼다고 들었다.”
“아, 그래. 그것 때문에 사이나에게 보복하러온 도적들도 데저트 오크잖아. 아니, 그 놈은 디스크리트라 했던 것 같은데….”
“그도 데저트 오크 소속이다. 하지만 디스크리트의 소속이기도 하지.”
테드가 미간을 좁혔다. 데저트 오크면 데저트 오크지. 디스크리트는 또 뭔가.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데저트 오크의 다른 이름이 디스크리트야? 아니면, 두 개의 서로 다른 도적단에 함께 속해있는 거야, 뭐야?”
“디스크리트는 최근… 듣기로는 2개월 전쯤에 생긴 도적단의 연합이다. 데저트 오크는 연합 도적단 중 하나지.”
“그건 듣지 못했는데.”
도적 연합. 테드 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다. 디스본에 나타난 도적 연합이라면 그 크기도 보통은 아닐 것인데 신문 등에서 정보를 얻은 기억이 없다. 상단을 호위하며 사막을 건너면서 상단주인 녹한에게 디스본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그 정보들 중엔 디스크리트에 대한 것은 없었다. 2개월이면 충분히 중립지대 전체에 소문이 퍼지고도 남을 시간이다. 소문에 민간한 상인인 녹한이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디스본의 모험가 길드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모험가 길드가? 뭐, 비리 같은 건가. 그래도 도적이 도시 내에서 활동하는 건 좀 심한 것 같은데.”
대낮에 도적들이 당당하게 사람을 습격한다. 아무리 중립지대의 미궁도시라 해도 이딴 도시에서 살고 싶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아니다. 테드라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고 디스본을 떠났을 것이다.
의문점은 디스본의 주민들이 구경거리라도 된 듯이 모여서 사이나와 도적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던 점이다. 그 중에서는 모험가들도 있었다. 물론 사이나의 실력을 보면 그들의 도움은 필요 없다. 그래도 사이나의 겉모습만 보자면 가녀린 미녀다. 흑심을 품고 도적들에게 나설 모험가 몇몇은 나올 수도 있다. 도적들의 습격을 단지 구경하며 방관하는 그들도 어딘가 이상했다.
“도적 연합 디스크리트는 사실 디스본의 거대 클랜이었다. 루크에이스의 실버 울프 클랜 정도는 아니다만, 디스본에선 제법 유명한 클랜이다. 그들이 타락해서 도적 연합의 중심이 되었다. 디스본의 주민들에게 있어 그들의 평판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편에 속하지. 그래서인지 디스본의 주민들 중에선 디스크리트를 옹호하는 자들도 있다.”
“……모험가 길드의 길드원들도 디스본의 주민들이니, 그렇게 생각하면 정보 통제도 조금 이해가 가는걸.”
“모험가 길드에서 그들을 옹호하는 자들은 적다. 정보를 통제하는 건 디스본의 명성 때문이다. 거대 클랜이 한 순간에 도적으로 변모했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 디스본의 명성에 흠이 가기에 길드에서 통제하는 것이지”
“…뭐. 루크에이스의 주민들이라면 낄낄거리며 디스본을 비웃겠지.”
같은 중립지대의 미궁도시이기 때문일까. 루크에이스의 주민들은 디스본에 대해서 일종의 라이벌 의식 같은 걸 가지고 있다. 테드는 루크에이스에서 가끔 디스본의 험담을 하는 모험가들을 종종 보았다.
“2개월 전이라면 모험가 길드만으로 어떻게든 대처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너무 커져버렸다. 중소 클랜에서는 아예 디스크리트를 따라 도적으로 변모하는 클랜도 있다고 하더군.”
그 시점에 주문했던 차가나왔다. 깔끔한 하얀색 앞치마를 걸친 중년 남성이 녹차를 션에게 놓고, 시원한 얼음이 담긴 과일 음료를 테드와 사이나의 앞에 두었다. 그는 신사적으로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이더니 카운터 쪽으로 사라진다.
테드의 앞에 있는 투명한 컵에는 붉은색의 음료가 들어있다.
“모험가 길드가 진심으로 나선다면 도적들 정도는 쉽게 토벌할 수 있을 텐데?”
“디스본 지점의 모험가 길드 지점장이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겠다고 상부에 보고한 모양이다. 그의 패기는 인정하는데… 해결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지점장은 디스본의 거대 클랜에게 의뢰해 사태를 해결할 생각인 듯 하다만…, 디스본의 거대 클랜들은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대 클랜 출신의 도적들이니 말이지. 전투를 하면 이득보다는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높지.”
디스크리트는 거대 클랜이었다. 클랜원들이 전부 도적들로 변모했다면, 디스크리트가 가지고 있는 무력은 거대 클랜들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전투를 벌이면 손해는 필수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테드가 션에게 듣기로는 디스크리트에 속한 도적들은 디스본의 주민을 최대한 건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하는 짓은 주로 무역을 위해 사막을 이동하는 상단을 터는 것. 인명피해는 적은 모양이다.
지금으로선 눈에 띄는 피해는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디스본의 주민들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도시의 생활이 위험해지는 걸. 무역은 줄어들고 물가는 높아진다. 밤이 되면 통제가 되지 않는 도적들이 나와 활개를 칠 것이다. 테드의 눈에는 그 미래가 그려졌다.
션 또한 마찬가지로 그것을 아는지 대화를 하는 내내 얼굴이 굳어 있다.
“테드. 데저트 오크의 행동대장… 루크락슨을 잡아서 넘겼다고 들었다. 디스크리트는 자신들의 동료를 건드린 자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들 중에서 모험가 출신이 많기 때문인지 쓸데없이 의리가 있지.”
“……그 디스크리트가 도적으로 변모한 이유는 뭐야? 멀쩡하던 클랜이 아무이유 없이 도적이 된 건 아닐 테고.”
“모험가 길드와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다.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했는데…… 은밀히 나도는 소문으로는 디스크리트의 클랜 마스터의 동생이 죽었다고 하더군.”
테드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즉, 모험가 길드에 대한 반발심으로 도적이 된 것이다.
심각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모험가 길드의 입장에선 조금 거슬리는 것이 전부다. 모험가 길드가 진심으로 움직인다면 가지고 있는 막대한 자금과 길드의 권력으로 디스본의 거대 클랜을 모조리 움직이게 만들 것이다. 일개 도시의 도적 연합이 감당하기엔 모험가 길드가 너무 크다. 결과가 정해져 있는 싸움이다.
“마지막 질문이고, 진짜 궁금한 질문인데… 놈들의 본거지가 어디야?”
뒷말은 션이 흠칫 놀랄 정도로 지독하게 싸늘한 목소리였다.
션의 등에서 식은땀이 배여 나왔다. 그는 테드가 진심으로 화내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테드가 잘 화내지 않기 때문이다. 파티원들이 가끔씩 저지르는 장난도 웃으면서 넘긴다. 클랜 워 때도 지금처럼 화난 느낌은 아니었다.
“디스크리트는 약 2,000명 정도 된다. 그 본거지에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도적들이 모여 있겠지. 디스크리트엔 A급 모험가 출신의 도적들도 있다. 위험한 일이다.”
“나도 A급 모험가야.”
테드가 불쑥 말했다. 단호함이 담긴 목소리는 얼른 놈들의 본거지를 말하라는 듯이 재촉한다. 테드의 검은색 눈동자가 션의 갈색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봤다. 션은 기묘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이나가 거리에서 놈들에게 습격당했어.”
습격당한 사이나는 태연하게 테드 옆에 앉아서 음료수를 음미하듯 느긋하게 마시고 있다. 테드와 션의 대화에는 관심 없었다.
“디스본에 올 때 함께 온 상단과 모험가들이 있어. 어쩌면 그들도 습격 받을지도 몰라.”
테드의 칠흑 같은 검은색 눈동자에 붉은색의 액체를 한 방울 떨어뜨린 듯 붉게 변한다. 진홍색으로 변한 붉은색 눈을 보며 션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은 아직 습격 받지 않았지. 하지만 만약 그들이 습격 받아 피해를 입는다면…… 진짜 제대로 한 번 미칠지도 모르겠군.”
션은 테드의 붉은 눈을 몇 번 본적 있고 본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가 말하기를 스킬의 종류라고 했다. 감정이 격해지거나 전투에 빠져들면 스킬이 발동한다고 했다. 물론 스
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킬을 발동하면 능력치가 대폭 상승한다. 유일한 부작용이라고 한다면, 성격이 약간 변한다는 것 정도다.
“션. 놈들은 어디에 있지?”
테드의 말에 션이 끄응하고 신음하더니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자세한 위치는 나도 잘 모른다. 길드에서 추정하기론 도시 밖의 서쪽 사막에 있는
암석지대를 놈들의 본거지로 의심하고 있다. 그 외에도 동쪽에 있는 오아시스와 암석지대
의 위에 있는 선인장 무리도 의심스럽지.”
테드의 눈동자가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테드는 조금 남은 음료수를 모두 들이켰다. 빈컵 속에서 얼음이 잘그락 거렸다.
“그 정도면 충분해. 고마워. 나머진 알아서 할게.”
션이 테이블을 짚고 일어서려는 테드의 손목을 잡고 만류했다.
“알아서 한다고? 2,000명이다. 대부분이 모험가 출신이다.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다. 적어도 길드에 알려 동료를 모아서….”
테드의 뛰어난 실력은 알고 있다. 그러나 상대가 너무 많다. 그들은 도적이다. 실버 울프 클랜처럼 ‘클랜 워’ 같은 결투 방식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해.”
근본모를 자신감이 가득 찬 말에 션이 저도 모르게 테드의 손목을 놓았다. 일어나던 테드가 마침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더니 션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넌 왜 모험가 길드에서 일해? 디스본에선 사촌동생이랑 수련한다고 하지 않았어?”
“모험가 길드의 도움을 요청받았다. 도적들 때문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더군. 이 도시를 위해 일하는 것. 그것 또한 수련의 일환이다.”
테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션은 도움을 요청하는 자를 뿌리치지 않는다. 그 성격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나쁘게 말하면 이용해먹기 좋은 호구 성격이다.
“너답네. 아, 부탁하나만 하자. 나와 같이 온 상단… 이름이 녹한 상단이었던가. 여하튼, 상단주의 이름이 녹한인 상단이야. 도적들에게 습격 받을 수도 있으니 네가 신경 좀 써줘. 오늘 하루면 돼. 디스크리트는 오늘 안에 정리 할 테니까.”
“아니, 그래도 혼자서는 위험하다! 나도 함께 가지!”
옆에 있던 사이나가 션을 노려봤다. 션은 저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같은 파티의 일원이었지만, 션은 예전부터 그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니, 그가 알기로 그녀와 사이가 좋은 건 테드… 그리고 시온이 전부였다. 시온은 볼 때마다 투닥거리는 사이다만, 사이나와 대화하는 인물이다.
“아뇨. 주인님은 혼자가 아닙니다. 제가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실력으론 폐가 될 뿐입니다.”
“…….”
사이나의 가차 없는 말이 비수가 되어 션의 가슴을 관통했다. 사이나의 실력을 자신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션이다. 강자인 그녀에게 뭐라고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옆에서 쓴웃음을 지으며 테드가 말했다.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해. 그리고 네겐 상단을 부탁하고 싶어. 너라면 믿을 수 있어.”
배려심 담긴 그 말이 더 가슴속에 남는 것은 왜일까.
가게의 밖으로 나가는 그들을 보며 션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약함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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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와 2,000인의 도적들.
병신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영어로 하면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