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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73화 (7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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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디스본.

테드는 혼자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사이나는 디스본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서 잠시 헤어졌다. 그녀가 숙박시설을 빌리는 일을 맡고 테드가 도적들을 모험가 길드로 인도하는 일을 맡았다.

그녀가 빌릴 숙박시설은 녹한이 추천한 고급 여관이다. 디스본 내에서도 상당히 높은 건물인지라 가장 비싼 높은 층의 방에선 디스본의 경치가 한 눈에 보인다고 녹한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점원의 서비스는 물론이고 판매하는 요리까지 엄청나다고 한다. 디스본에서 가장 좋은 여관이라 명성이 자자하단다.

녹한에게 들은 여관의 이름은 ’블루 오아시스 호텔’이었다. 하얀색 건물의 디자인은 판타지라기보다는 현대에 가깝다. 사실 녹한에게 들은 규모를 따지면 여관보다는 이름대로 호텔이다.

유명하다는 그 말은 사실인 듯싶었다. 디스본의 입구에서도 녹한이 말하는 높은 건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뚝 솟아 있는 건물은 높이만 따지면 약 40M다. 듣기로는 층이 높아질수록 방의 가격이 비싸진다고 한다. 테드는 사이나에게 가장 높은 층의 방을 빌리라고 말해두었다.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미궁과 가까운 모험가 길드와는 정반대로 도시의 외곽 쪽에 위치해 있기에 그곳까지 가는데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행인 점이라면 거의 랜드마크처럼 유명하고 디스본 어디에서든 보이는 장점이 있어 못 찾고 길을 잃을 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진짜 덥네….”

거리를 걷던 테드가 작게 중얼거렸다. 코트의 앞섶을 이미 열어두었다.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는 후드도 벗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으나, 저 뜨거운 직사광선을 맞으면 피부가 따끔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참았다.

차라리 마법을 사용할까? 진심으로 고민하면서 테드가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식욕을 자극하는 기름진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냄새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튀김꼬치를 파는 포장마차 노점이 있었다. 그곳의 주인이 직접 기름에 튀긴 고기 꼬치를 손님 한분에게 건네는 것이 보였다. 붉은색의 매콤한 소스를 잔뜩 머금은 솔을 현란하게 쓸어 넘기며 고기에 바른다.

튀김고기꼬치를 받아든 손님이 돈을 가게 주인에게 지불하고서 길을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손에든 꼬치를 한입 베어 문다. 즐겁게 걸어가는 그 손님을 멍하니 바라보던 테드가 홀린 듯이 포장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아, 꼬마 손님이군. 어떤 고기를 드릴까?”

가게의 주인은 50대의 남성이었다. 각진 턱에 까슬까슬한 털이 올라와 있는 그는 다부진 체격을 하고 있었다. 무기만 들었다면 모험가라고 믿을 정도로 기도가 좋았다. 그는 테드에게 미소 지으며 물어왔다. 그의 말에서 호의가 느껴졌다.

퍼뜩 정신을 차린 테드의 눈에 포장마차 한쪽에 적혀 있는 메뉴가 보였다. 메뉴는 총 3개로 전부 꼬치 종류였다. 튀기는 것은 똑같고 고기만 다를 뿐이다.

“어… 음. 전부 한 개씩 주세요.”

“점심시간은 방금 지났는데…. 혼자 다 먹을 수 있겠나?”

“점심은 아직 먹지 않았으니 괜찮아요. 현기증나니까 빨리 주세요.”

테드의 재촉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은 그가 포장마차에서 고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낙타고기와 거대 뱀고기, 자이언트 스콜피온의 집게살 총 3종류의 고기를 각각 꼬치에 꽂더니 튀기기 시작했다. 3개의 튀겨지는 꼬치를 바라보며 테드는 군침을 삼켰다. 기름에 튀기는 소리가 너무 자극적이고, 은은하게 풍겨져 나오는 소스의 냄새가 위장을 활성화 시킨다. 뱃속의 위장이 꼬르륵 울리며 얼른 달라고 재촉한다.

테드가 열정적으로 튀겨지는 꼬치를 보고 있을 때였다. 문득 뒤통수에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획 돌리자 건물사이에 있는 골목길이 보였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골목길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지만, 시선은 분명히 느껴졌다. 감각이 예민한 테드다. 잘못 느낀 것은 아닐 터다.

‘……날 감시하는 건가? 왜? 나는 방금 여기에 왔어. 악의를 받을 만한 짓은…… 있

네.’

테드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크 도적단, 데저트 오크의 행동대장인 루크락슨과 그 부하들을 이끌고 직접 모험가 길드에 넘겼다. 데저트 오크 소속의 도적들이라면 충분히 악의를 가질 수 있다. 덮쳐오지 않고 감시를 하는 것은 이곳이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도적이라도 모험가 길드가 관리하는 도시에서 소란을 일으킬 정도로 멍청이는 아닌 것이다.

‘노리는 건 나 하나뿐인가. 내가 직접 넘겼으니까. 도시 입구에서부터 봤다면… 녹한도 위험할지 모르겠네.’

녹한과는 도시 입구에서 헤어졌었다. 입구에는 경비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기 때문에 도적들이 녹한을 봤을 가능성은 적지만,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 잡아서 족칠까.’

역시 귀찮고. 도적이 아닐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또 도적이라 하더라도 테드는 제법 유

명한 A급의 모험가다. 딱히 숨기고 있는 신분이 아니니 도적들이 눈치 채면 보복을 포기할 것이다. 테드는 A급의 모험가 중에서도 명성이 좀 있는 마법사 모험가. 도적들로선 적으로 돌리기엔 부담스럽다.

“다 됐다.”

가게 주인의 말에 테드의 생각이 끊겼다. 아공간에서 5실버를 꺼내 그에게 값을 치루었다. 낙타고기와 거대 뱀 고기는 각각 1실버이고 자이언트 스콜피온의 값이 3실버다.

꼬치 하나가 1실버라면 상당히 물가가 높았다. 그렇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곳은 중립지대의 미궁도시다. 루크에이스도 비슷하게 물가가 높다. 자이언트 스콜피온의 고기가 비싼 것은 몬스터라서 그렇다.

매콤한 붉은 소스가 묻혀진 3개의 꼬치를 받아든 테드가 먼저 자이언트 스콜피온 고기 튀김 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방금 막 튀겨나온 음식은 온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입안에 마력을 둘러 강화시키고 뜨거운 고기를 망설임 없이 씹었다. 바삭거리는 소리가 귀에 확실하게 들려왔다. 바삭바삭 유혹의 소리였다. 자이언트 스콜피온의 담백한 고기는 이가 닿자말자 부드럽게 찢어진다. 너무 손쉽게 찢어져서 녹는 듯한 감각이었다. 소스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입안에서 고기가 찢어지는 순간이었다. 매콤하고 약간 달콤한 소스가 심심하게 느낄 수 있는 고기를 절묘하게 감싸 주는 것이다.

테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입안에 있는 고기를 목뒤로 넘긴 뒤였다.

“이런 뛰어난 맛이라니… 이건 분명 디스본의 명물이 틀림없겠지. 세상은 넓고 맛있는 건 많구나!”

혼자 중얼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물론 입은 조금도 쉬지 않았다.

⁂⁂⁂

목적지인 블루 오아시스 호텔에 도착한 테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호텔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디스본의  다급주민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포위하듯 둘러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군중이 모여 있음에도 소란스러운 느낌은 없었다. 조금의 웅성거림도 없어서 의아스러웠다.

경악한 얼굴로 할 말을 잃은 체 무언가를 보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 테드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인파를 해치고 중심에 있는 것을 확인한다.

거기엔 검은색 메이드복 위에 붉은색 코트를 걸친 은발의 미녀가 있었다. 한 손에는 하얀색의 검을 들고 있었고, 그 검날의 끝에는 붉은색의 액체가 한 방울 떨어졌다. 주변에는 무기를 쥔 남자들이 쓰러져 있다. 전부가 팔이나 다리 한 짝을 잃어버리고 상처에서 붉은 피를 흘리고 있다. 죽어 있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B급의 실력이 아니잖아! 정보를 가져온 놈은 누구야!”

일어서 있는 유일한 남자가 악을 쓰듯이 외쳤다. 그러나 그의 물음에 답해줄 동료들은 모조리 바닥에 쓰러져 끙끙거리고 있다.

5보 이상 떨어져 있는 그를 향해 사이나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군중 틈에 있는 테드를 발견하고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주인님. 송구한 말입니다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피투성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테드는 한 순간의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에 어색하게 웃었다.

“처, 천천히 해.”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사이나에 관해선 잘 알고 있는 테드다. 결코 그녀가 먼저 시비를 걸거나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비를 걸어도 무시하고 지나갈 인물이 그녀다.

사이나와 대치하고 있는 남자의 무장상태를 보자면 모험가는 아니다. 철저하게 준비를 하는 모험가와 달리, 무장이라 할 수 있는 건 손에 쥔 검밖에 없었다.

바닥에 떨어져 신음을 흘리는 자들을 보며 테드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숫자는 약 10명 정도로 전부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오크다.

데저트 오크. 디스본에서 활동하는 오크 도적단의 이름이 떠올랐다.

사이나와는 이 도시에 오자마자 입구에서 헤어졌다. 아마도 입구에서 혼자 움직이는 그녀를 보고 사람이 붙어 미행한 것이리라. 그리고 겉으로 보기엔 메이드일 뿐인 그녀를 덮쳤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상황에 테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정심은 조금도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비명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유일하게 서있던 남자가 사이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절망으로 가득한 얼굴은 자신과 사이나의 차이를 명백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으니 도망가지도 못하고, 주위에 울타리처럼 감싸고 있는 군중들을 해치고 도망갈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자포자기식으로 덤벼든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만…… 그와 사이나의 차이는 고양이와 쥐가 아니었다. 비유하자면 백호와 지렁이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꿈틀대는 것밖에 없다.

그의 검이 사이나에게 닿기도 전에, 그녀의 새하얀 검이 움직인다. 남자의 양쪽 무릎이

베여진다. 남자가 바닥에 볼품없이 자빠졌다.

이 자리에서 그 검이 휘둘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테드 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갑자기 남자의 무릎이 허공중에 잘린 것이다. 너무 빨라서 마법이라 생각될 정도다.

사이나는 검을 몇 번 허공에 털어주더니 그대로 검집에 넣는다. 그리고 테드를 향해 다가왔다.

“스스로를 데저트 오크라고 소개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기다리면 모험가 길드에서 사람이 올 거야. 그동안 이 놈들과 이야기 좀 나눠야겠지.”

테드가 잘려나간 양쪽 무릎을 다급히 지혈하고 있는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앉아 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데저트 오크라고 했지. 이건 나랑 전쟁을 하자는…… 선전포고라고 받아들여도 상관없겠지?”

테드의 말에 사내가 기가 차다는 듯이 바라봤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테드의 뒤에 부

동자세로 서있는 메이드의 눈치를 살피더니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아니, 이건 척살이다. 우리… 디스크리트를 건들인 대가다.”

“……디스크리트?”

테드가 처음 듣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나 사내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리더니 자신의 상의를 찢어 그 천으로 무릎을 지혈한다. 그리고 깔끔하게 잘려진 자신의 종아리를 찾았다. 단면이 깨끗하다. 포션을 잘만 사용하면 문제없이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불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손이 자신의 종아리에 닿기 직전이었다. 하나의 신발이 나타나 돌이라도 차듯이 가볍게 그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허공중에 핏물을 흘리며 멀리 떨어진다.

“이 놈!!”

버럭 소리 지르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테드가 입을 열었다.

“질문에 대답해. 나와 함께 있던 상단도 습격했어?”

“습격했다면 어쩔 테냐! 우리 디스크리트를 건드린 자는 모두 척살의 대상이다! 어린아이라도 예외 없이 모두 척살이다!”

남자는 잘린 무릎을 꽉 잡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옷을 찢어 지혈한 것은 좋았으나, 제대로 지혈이 되지 않은 듯 천은 붉게 물들어 있다.

“……그래. 천으로 지혈하느라 힘들지. 사실 간단하게 하는 지혈은 힘들어. 소독 문제가 있어서 병에 걸릴 수도 있지. 그러니…….”

테드가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의 바로 앞에 붉은색의 작은 마법진이 빛나며 그려진다.

“내가 도와줄게.”

마법이 발동하고 사내의 무릎에서 불꽃이 일었다. 지혈을 위해 무릎을 묶은 천이 순식간에 재로 변해 사라지고, 잘린 단면이 익어가기 시작한다.

“끄아아아악!”

사내가 비명을 내지르며 허리를 비틀어 몸부림쳤다. 불꽃은 신기하게도 잘린 무릎의 단면만을 불꽃으로 지졌을 뿐이다. 다른 곳으로 옮겨 붙지도 않았다.

“팔 두 짝도 잃기 싫으면… 제대로 대답해.”

“…으… 윽. 아, 알았다.”

사내가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습격했어? 안했어?”

“사, 상단은 아직 습격하지 않았다.”

“아직… 인가. 그거 참 다행이네.”

녹한은 이 일에 관련이 없다. 사막에서 잡은 도적들은 테드가 알아서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그 도적들 때문에 그들이 보복 받는다면 면목이 없다.

이렇게 귀찮은 일이 될 줄 알았다면 사막에서 마주친 놈들을 그대로 죽이고 모래 속에 파묻어 없던 일로 해버리는 것이었는데.

약간의 후회를 하며 테드가 군중들 너머에서 뛰어 오는 발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민의 신고를 받고 급하게 뛰어온 모험가 길드일 것이다.

“그만! 모험가 길드다! 당장 전투를 멈추… 음?”

“……모험가 길드로 취직했어? 션.”

구경하고 있던 디스본의 주민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푸른색 머리칼의 건장한 청년이 나타났다. 션 가르트. 테드의 파티. ‘레드 헥사그램’에 속해 있었던 레인저였다.

“리더! 설마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정말 오랜만이군!”

“해후는 나중에 하고… 우선 이놈들부터 어떻게 해주라.”

테드가 바닥에서 끙끙 거리는 도적들을 가리켰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그들을 보며 션이 눈살을 찌푸렸다.

“또 도적들인가……. 지긋지긋 하군.”

============================ 작품 후기 ============================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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