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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3화 (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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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프 마을 제누.

탈옥은 밤에 하는 게 정석이지만 애가 어머니가 걱정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붙잡히면 문제가 되지만 인구가 작은 엘프 마을이라 그런지 간수도 한 명밖에 없다. 테드는 성공할 자신이 충분히 있었다.

“그냥 얌전히 있는 게 어때? 때리는 것도 아니고 신원만 확실하다면 나갈 수 있다고?”

모나는 테드의 행동에 믿음이 가지 않는 듯이 테드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으며 말렸다.

“걱정 마. 성공할 수 있어. 모나는 빨리 어머니에게 약을 가져다줘야지.”

“……혹시 나 때문에?”

“아니, 원래 밤에 탈옥하려고 했어. 급하다고 하니 그냥 조금 빠르게 하는 것뿐이야.”

“…….”

약간 감동한 듯한 표정으로 모나가 지긋이 바라보자 테드가 고개를 돌려 창살을 살폈다. 뒤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녹슨 부위를 바라봤다. 아까 창살을 볼 때부터 신경 쓰인 부분이다.

‘뭐라고 할까. 약해 보이는 부분이네. 고결한 눈의 효과인가.’

테드가 지긋이 보고 있는 부분은 녹이 슬어 있었는데 유난히 시선이 간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다른 곳보다 약해 보인다. 테드가 손을 뻗어 녹슨 부분을 매만졌다. 녹이 슬었지만 여전히 딱딱하다. 테드의 힘으로 창살을 부수는 건 무리다.

“모나. 여기가 좀 약한 것 같은데 부술 수 있겠어?”

“…진짜 하는 거야?”

“물론이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테드를 바라보며 모나가 다가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말이라고 무시하기에는 테드가 신의 사도라는 점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나가고 싶다.

“음. 난 봐도 모르겠는걸. 정말 약한 부분이 맞는 거야?”

녹슨 창살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모나가 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겉모습도 촉감도 다른 부분의 창살과 비슷했다.

“일단 한번 시도해봐.”

모나가 창살을 양손으로 잡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수인족은 육체 능력이 뛰어나다. 어떤 동물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인간보다 뛰어난 것은 확실하다. 여자아이라도 성인인간 이상의 힘을 낼 수 있다.

창살을 쥔 양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숨이 멎을 정도로 힘을 주었지만 창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아. 무리야. 내 힘으론 부러뜨릴 수 없어.”

숨을 몰아쉬며 모나가 고개를 저었다. 녹이슨 창살은 겉보기와 달리 굉장히 튼튼했다.

“역시 안 되나.”

테드가 예상했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창살 쪽으로 다가갔다. 그 태연한 모습에 모나가 발끈하려 했지만, 진지한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이 감옥은 다른 감옥과 다르다. 지하 감옥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한 것만 봐도 그렇다. 또 아무리 어리다곤 하나 남자와 여자를 한 방에 넣어두었다. 빈 감옥도 많은데 굳이 남자와 여자를 한 감옥에 넣어둘 이유가 있을까.

이 감옥은 특별하다. 정확하게는 벽과 창살에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다. 바로 ‘마나’를 억제하는 마법이다. 마나란 것은 신비한 놈이라 육체 능력을 극대화 시키거나 마력 혹은 성력 등으로 변화시켜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감옥의 의미가 없어진다. 곧바로 감옥을 부수고 탈옥해버릴 것이니까.

아이언 엘프들은 테드와 모나의 몸 안에 있는 마나를 느끼고 이 특별한 감옥에 넣은 것이다. 그 양이 아무리 적어도 마나를 다룰 줄 안다면 일반적인 감옥은 의미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테드는 창살문 앞에 다가갔다. 그의 몸속엔 적지만 마력이 있다. 마력이라 하지만 근본은 마나이기 때문에 이곳의 마나를 억제하는 감옥에선 사용할 수 없다. 일반적이라면.

‘일반적이라면 말이지.’

도시의 감옥이라면 모를까 마을 단위의 감옥은 대게 거기서 거기다. 아예 감옥 자체가 없는 마을도 부기지수다. 마나량이 엄청나게 많으면 마나 억제 마법이 제대로 발동하지 않고 역으로 타격을 받아 부서질 위험이 있다.

‘오른쪽 벽 속에 있지.’

마법진의 파악은 이미 끝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다른 고생도 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테드는 시간 회귀전에 ‘대마도사’라 불렸던 적이 있다. 이런 어린애 장난 같은 마법진 쯤이야 순식간에 해석할 수 있다.

굳이 마법진을 파괴할 필요는 없다. 해석한 마법진을 해석해, 마법진을 무시하고 마력을 사용하면 그만이다.

“언락(Unlock).”

마법을 사용한다. 몸 내부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며 잠긴 창살의 문이 열렸다. 테드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창살문을 열었다. 마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앞으로 공격마법 한 번이면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어, 어떻게 마법을 사용한 거야?!”

모나가 당황해 물었다. 당황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떨어져 있는 간수에게 들릴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다.

테드는 모나를 향해 웃으며 검지를 세워 입에 가져다 대었다. 이런 일은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설명할 시간은 없다.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여야 해. 할 수 있겠지?”

모나가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은 열렸다. 그렇다면 할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아. 간수가 졸고 있어.”

테드가 창살 밖을 조심히 살펴보며 눈에 보이는 대로 말했다. 20M 정도 떨어진 입구 쪽에 간수가 일어선 채로 벽에 기대어 졸고 있다. 입구 옆 구석에 갈색 가방이 보였다. 모나의 가방이다.

“기척에 민감한 엘프니 전투는 필수불가결이겠지. 그러니 내가 정면에서 시선을 끌고 모나가 뒤에서 공격하는 거야. 완벽한 작전이지.”

“아니, 아니. 내가 정면에서 싸우는 게 좋지 않아? 테드는 마법사잖아.”

“마법사가 접근전에 약하다는 편견은 버리는 게 좋아. 근접이 전문인 마법사도 있으니까. 그리고 회피는 자신 있어. 문제는 공격력이지. 간수를 한 번에 기절시킬 힘이 내겐 없어.”

마법을 사용하면 손쉽겠지만 그건 만일을 대비해 아껴둬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모나가 틈을 봐서 간수를 단숨에 기절시켜. 아, 죽이면 안 돼.”

“안 죽여. 테드야말로 조심해.”

죽이면 탈옥한 죄가 살인죄로 바뀌게 된다. 관대한 대우가 험악하게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엘프는 동족애가 강하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덤벼들 가능성도 있다.

“그럼 움직이자.”

감옥내의 다른 수감자는 없고 지하 감옥이라 복도에는 주먹만 한 마광등(魔光燈)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어둡다. 질이 좋지 않은 마광등이면서 수도 적어 어둡긴 매한가지다.

먼저 테드가 움직였다. 호흡과 기척을 최대한 죽이며 움직였다. 테드가 슬쩍 자신의 옆을 바라봤다. 반대쪽 벽에 붙어서 모나가 최대한 숨을 죽이며 걷고 있었다. 과연 수인족이라고 할까.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다.

간수의 5M 앞에서 멈춰선 테드는 모나에게 손짓했다. 모나는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테드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회색 머리의 엘프를 바라봤다. 무장상태는 허리춤에 있는 롱소드가 전부다.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보아 간수 일에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하기야 엘프 마을이니 감옥을 사용할 일이 잘 없을 터다.

테드는 소리 없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뛰었지만, 과연 엘프라고 할까. 가까이 다가가자 말자 눈을 떴다.

“뭐, 뭐야?!”

훈련을 잘 받았는지 어리둥절하면서 테드의 주먹질을 피해내며 허리춤의 롱소드를 검집에서 뽑아냈다. 어린아이의 주먹이다 맞아도 위력은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얌전히 있으면 해치지는 않으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간수가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같은 감옥에 있는 모나를 눈치 채지 못했다.

“롱소드라니. 무서운데.”

테드는 말과 달리 입가에 웃음을 걸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테드의 지식 속에 맨손 격투기는 없다. 검술은 어느 정도 할 줄 알지만 맨손으로 검을 든 상대를 제압할 기술은 없다.

“널 벨 생각은 없다. 포기하고 얌전히 돌아가라.”

엘프 간수가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지만 테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범죄자였다면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겠지만 테드는 경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저 마을 가까이에 있었다는 이유로 잡힌 것뿐이다. 거기에 어린아이다. 싫어하는 인간이라고 해서 어린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벨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군.”

엘프 간수는 다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어린아이를 제압하는데 양손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패착이었다.

검에 검집을 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테드가 달려든 것이다. 노리는 곳은 남성의 공통급소라 할 수 있는 사타구니 부분!

“이 녀석이…!”

엘프 간수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노리며 달려드는 테드의 행동에 깜짝 놀라 손을 뻗어 테드의 양팔을 붙잡았다. 신체능력의 한계다. 그러나 모나가 접근할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속박(束縛)!”

모나의 낭랑한 음성이 울렸고 오른쪽에서 하얀 붕대가 날아와 엘프 간수의 몸을 감기 시작했다.

“젠장! 수인… 읍!”

입이 막히고 손과 발이 묶이기 시작한다. 붕대에 칭칭 감기는 엘프 간수를 바라보며 붙잡혔던 양팔을 털고 있는 테드의 옆으로 갈색 가방을 등에 멘 모나가 다가왔다.

“주술사였어?”

“주술사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야. 아는 주술도 적어.”

테드의 질문에 모나가 대답했다. 주술은 마력을 사용하는 마법과 달리 마나를 사용한다.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마법보다 비교적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며 마력이 없어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입과 팔과 다리 몸통 등 붕대에 꽁꽁 묶인 간수를 바라보며 모나가 쪼그려 앉았다.

“자, 기절할 시간이야.”

주먹을 말아 쥔 모나가 간수의 후두부를 후려쳤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축 늘어지는 간수를 바라보며 테드가 어색하게 웃으며 간수의 허리춤을 바라봤다.

“롱소드는 가지고 갈까.”

허리 부분의 붕대를 잡아 뜯으며 검집을 가져간다. 허리에 차기엔 컸기에 양손으로 들었다. 조금 무겁긴 하지만 능력치 보정 덕분에 휘두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검술도 할 줄 아는 거야?”

“음. 조금은?”

마력이 고갈되었을 때 육체 능력으로 전투를 할 수밖에 없다.

테드는 웬만한 기사 뺨칠 수 있을 정도의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현재의 육체능력이다. 검을 몇 번 휘두르면 몸이 비명을 지를 게 분명하다.

“무기도 얻었겠다. 가볼까.”

롱소드를 양손에 들고서 지하 감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지하 감옥이 마을 외곽 쪽에 있기에 운이 좋았다. 마을 중심에 있었으면 탈출은 시작도 전에 잡힐 뻔했다. 지하 감옥의 바로 앞이 숲이었다.

모나는 지하 감옥의 밖으로 나와 숲의 앞에서 환하게 웃었다. 숲의 종족인 엘프라고 해도 숲 전체를 뒤질 수는 없다. 또 큰 죄를 저지른 죄인도 아니니 마을을 어느 정도 벗어나면 추적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자! 테드! 빨리 가자고! 자유가 우릴 기다리고 있어!”

신나게 말했지만 돌아오는 반응이 없다.

“테드?”

모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심각한 얼굴을 한 테드가 있었다.

“들켰어. 내 실수야. 설마 엘프 마을 전체에 결계가 쳐져 있을 줄이야. 발동되기 전

까지 깨닫지 못했어.”

마을에 들어올 때는 결계가 발동하지 않고 있었기에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지하 감옥에서 나오는 순간 확실하게 느꼈다. 다행인 점은 바깥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결계라는 것이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여기서 시간을 끌어야겠어. 먼저 가.”

“시간을 끌어야겠다니… 그냥 같이 도망가자! 응?!”

“여긴 숲이라 같이 가면 엘프들에게 잡힐 뿐이야. 모나는 어머니가 기다리시잖아?

내 걱정은 하지 마. 시간을 끄는 것뿐이야. 죽지는 않아. 거기에 난 마법사야. 여차하면 비전의 마법을 사용하면 돼.”

비전의 마법은 있지만 사용하지는 못한다. 마력이 부족하다.

“…하, 하지만!”

모나가 우물쭈물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그녀의 투정을 들어주기엔 시간이 없다.

“어서 가! 여자애가 외박하면 부모님이 걱정하신다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테드의 눈을 바라본 모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탈옥한 죄가 있지만 테드는 어린아이다. 간수를 처리한 것도 자신이다. 온화한 성정의 엘프라면 감옥에 몇 일 넣어두는 것으로 끝낼 수도 있다. 그러다 신의 사도라는 것이 확인되면 풀려날 것이다.

모나가 테드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래 보여도 나! 21살이니까! 애 아니거든?!”

달려가며 외쳤다. 이 빚은 언젠간 반드시 갚겠다고 가슴 깊이 다짐하며 달렸다.

“…엑, 진짜…?”

맥 빠지는 테드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이야. 잘 달리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모나의 등을 바라보며 테드가 감탄 성을 내뱉었다. 둘이 함께 도망갔으면 십중팔구 붙잡혔을 것이다. 그것도 짐이 되는 자신 때문에.

그러나 모나 혼자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육체 능력이 뛰어난 수인족이라면 숲 속에서도 빠르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시간을 끌어야 되는 건 변하지 않는다.

“수인족 여자는 어디 있지?”

숲을 바라보고 있자니 뒤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엘프 마을 제누에 끌려올 때 들었던 목소리. 마을의 경비대장을 맡고 있는 남성의 목소리다. 이름이 로크라고 했던가.

테드는 몸을 돌렸다. 거기엔 아이언 엘프 수십 명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처음과 같은 상황이지만 그때 보다 엘프의 수가 늘어나 있다. 대략 20명 정도다. 제압되는 건 순식간이지만 그들은 로크의 지시 없이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로크는 눈앞의 인간 아이에게서 마력의 유동을 느끼고 있었다. 마력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마족이라 하기엔 너무 미약했지만 이것이 마법이란 것을 알고 있다. 마법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미약한 마력이라도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문이 들었지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나 마력을 유동시킬 수 있다면 달라진다.

머리를 조금 굴리자 결론은 금방 나왔다.

“…신의 사도인가.”

“난 끌려오기 전에 신의 사도라고 말했어. 너희들이 믿지 않았을 뿐이지.”

테드는 양손에 쥐고 있던 롱소드를 바닥에 버렸다. 한 명 정도라면 롱소드를 사용해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숫자가 너무 많다. 지금은 검술보다 마법이 더 효과적이다.

“한 가지 제안할게 있어.”

남은 모든 마력을 쥐어짜내어 허공에 불덩어리를 만들어 낸다. 엘프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뭐지? 들어는 주지.”

로크는 만일의 사태를 준비했다. 불덩어리, 파이어볼로 추정되는 저것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이 무섭다. 마을엔 물의 정령사가 없다. 민가 쪽으로 날아가면 나무로 만든 집은 활활 타오를 것이다. 운이 좋지 않으면 불이 옮겨 붙어 큰일이 될 수 있다. 파이어 볼의 화력이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마법사 필요하지 않아? 보아하니 결계도 손상된 것 같던데. 내가 고쳐주지.”

“…….”

로크가 숨을 들이켰다. 마법사는 귀하다. 마족 중에는 널린 게 마법사라지만 그건 마족의 이야기고 다른 종족의 경우 일반적으로 마나를 마력으로 변환시키지 못하니 마법사가 부족한 게 당연하다. 엘프의 경우 유난히 마법사가 적다. 작은 마을에선 평생 볼 수 없을 정도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마을에 설치되어 있는 결계는 마법이다. 200년 전에 설치된 마법 결계로 마지막으로 점검한 지 50년이 지났다. 결계가 손상된 것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확신한 것은 방금 눈앞의 소년이 말을 내뱉었을 때다.

“…너를 어떻게 믿지? 아니, 애초에 결계를 고칠 실력은 되나?”

“믿을 수 없다면 감시를 붙여도 좋아. 당신이 직접 날 감시해도 상관없어. 실력 면에선… 당신이 믿을 지 알 수 없지만 아예 결계를 다시 설치해줄 수도 있을 정도야.”

“…….”

로크는 머리를 굴려 이득과 손해를 계산한다.

만약 그의 말이 진실로 방금 막 환생해 우연히 마을 근처에 나타난 것이라면, 그에겐 아무런 죄도 없다. 마을을 떠난 감정사가 돌아온다면 신분증을 하나 주고 확인할 수 있다. 손해는 신분증 하나와 수고비뿐이다.

반면 이득은? 우선 고급인력인 마법사를 얻을 수 있다. 고장난 마도구를 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실인지 모르지만 손상된 마을 결계를 고칠 수 있다는 점이 크다. 마을 결계는 적과 몬스터로부터 지켜주는 방벽이다.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이득이 훨씬 크다.

“좋다. 하지만 우리에겐 너무나 좋은 조건이군. 뭔가 다른 꿍꿍이라도 있나?”

“꿍꿍이는 아니고 약간의 조건이 있어.”

“조건?”

로크가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가 되는 조건이면 들어줄 생각은 없다.

“모나를 추적하는 걸 그만둬. 그리고… 의식주인가. 의식주가 필요해.”

“의식주라… 그게 전부인가?”

모나라면 너구리 수인 족을 말하는 것일 거다. 감정사가 오면 신분증을 확인하고 바로 보낼 예정이었기에 굳이 추적할 생각은 없었다. 모나의 사정을 알고 있는 로크는 문제가 생길 소지가 적다고 판단했다. 의식주의 경우엔 손쉽게 들어 줄 수 있는 문제다.

“응? 일단 그게 전부인데… 아! 무기한 노동이 아니니까. 결계를 고치면 난 떠날 거야. 그때 가서 말리지 말아 줬으면 해.”

“오히려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면 이쪽이 곤란했다.”

테드의 머리 위에 있던 불덩어리가 검은 연기를 내며 사라진다. 그와 함께 테드의 몸이 비틀거렸다. 파이어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냥 파이어다. 구체로 불을 일으킨 것뿐이다. 파이어볼을 사용할 수 있지만 마력이 적어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지 알 수 없기에 허세로 속였다. 저들에게 마법사가 없었다는 점이 천만다행이었다. 있었다면 사용하자마자 들켰을 게 분명하다.

“거래는 성사됐어. 무르기 없기다.”

“너야말로 제대로 일해주길 바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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