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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결한 영혼-1화 (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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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마지막 시작.

고결한 영혼

Prologue. 마지막 시작.

강성운은 온몸을 내달리는 격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나 정신과 달리 몸은 엉망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눈꺼풀은 이미 감겼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이 감각을 느껴보는 것은 4번째이지만 도대체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죽는다는 느낌, 몇 번을 느껴도 최악인 기분이다. 첫 번째와 다른 점은 주마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정도다.

몇 초가 지났을까. 몸을 괴롭히던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던 감각이 사라졌다.

[ 저와 계약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신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해주겠습니다. 단, 그 대가로 이 세계의 당신의 존재가 사라집니다. 묻겠습니다. 저와 계약하시겠습니까? ]

기다렸던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강성운은 생각했다. 여기서 계약을 거부했을 경우를. 도출한 답은 간단하다. 진정한 사후를 경험하게 되겠지.

‘계약……, 한다.’

강렬한 의지를 담아 대답한다.

그와 함께 시야가 돌아왔다. 아래에 보이는 것은 새하얀 구름. 위로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다.

강성운의 정면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부드러운 금발의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미남자였다. 남자는 하얀 천을 몸에 두르듯이 입고 있었다.

그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강성운을 지긋이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영혼 상태인데 형상이 확실하군요.”

그의 말에 강성운이 시선을 내려 자신의 몸을 쳐다봤다. 몸체가 보였지만 육체는 아니었다. 반투명한 유령 같은 몸이었다. 그것을 보며 강성운은 살짝 놀랐다. 첫 번째 때엔 육체의 형상도 뭐고 없는 구슬 같은 형태였었다. 그게 두 번째, 세 번째에서 성장을 하듯 서서히 인간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하더니 네 번째인 지금 완전한 형상을 이루었다.

“조금 놀랍지만 그만큼 뛰어나다는 것이겠죠.”

그, 크루시안의 말에 강성운이 피식 웃음 지었다. 영혼체라 그런지 자신이 웃었는지 감각이 없어 확인하지 못 했지만 상상한 자신은 웃고 있었다.

“새로운 삶을 부여해주겠다고 들었는데?”

“다짜고짜 본론인가요. 제 정체가 궁금하지는 않으십니까?”

정체라면 알고 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 크루시안. 그뿐만이 아니라 계약신들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들’의 목표가 창조주의 인정을 받는 것임을 알고 있다.

“별로 궁금하지는 않은데.”

“그래도 좀 들어주십시오.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입니다.”

크루시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강성운이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제 이름은 크루시안, 바람과 평화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계약으로 인해 당신의 계약신이 됩니다만, 당신이 환생할 세계에서 저는 당신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아, 그래. 난 강성운.”

강성운은 귀찮다는 듯이 대충 대답했다. 전부 다 알고 있는 내용으로 이번이 4번째 듣는 말이다.

“귀찮은데 대충 생략해주면 안 되나?”

“……당신의 환생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제법 중요합니다만?”

모른다면 귀를 기울여 들었겠지만 크루시안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게 강성운이었

다. 학생이 선생을 가르치려는 꼴이다.

“상관없어. 어차피 환생하면 알게 될 텐데.”

두 번째 삶에선 자신이 시간을 회귀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결과 꼬치꼬치 캐묻는 크루시안에게 시간만 더 잡혀 먹혔다. 미안하지만 영체 상태로 있는 게 영 불편하니 될 수 있으면 빨리 환생했으면 한다. 몇 번이나 겪어보지만, 영체 상태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아. 그럼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한숨을 내쉬는 크루시안이지만 미남이라 그런지 제법 어울렸다.

“당신, 강성운씨는 ‘네메스’라는 행성에 환생하게 됩니다. 게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행성으로 시스템이란 게 존재합니다. 신의 게임이라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신의 게임이 아닙니다. 저에게 오는 이익도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계약자인 당신이 해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당신이 그저 살아가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나긋나긋한 미성이 울린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강성운은 멍하니 크루시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육체가 있었다면 분명 하품을 쩍쩍 해대며 졸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멍하니 크루시안을 바라본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렸을까. 그의 말이 드디어 끝나기 시작했다.

“……당신은 네메스 세계에서 살아가면 됩니다.”

“아아. 알아들었어.”

“정말 알아들었는지 의문이지만… 어쩔 수 없군요. 좋습니다. 그럼 환생해서 사용할 이름을 정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아, 참. 성은 계약신인 제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의 질문에 한순간 침묵이 찾아왔다. 이름을 생각하기때문이 아니다. 이름이라면 이미 정해져 있다. 단지, 이름을 내뱉으려는 순간 지금까지 겪은 기억이 느닷없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악착같이 살아남아 클리어 해 창조주에게 소원을 빌었다. 살아생전의 강성운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했다. 계약신과 계약할 때 존재를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고 이미 계약했기 때문에 인과율에서 강성운이란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주의 자비로 3번의 시간 회귀를 얻었다.

두 번째는 전투에서 사망했다. 클리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해 자동적으로 시간 회귀가 발동해 처음 시절로 돌아갔다. 의미 없지는 않았다. 전투경험과 네메스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으니까.

세 번째는 클리어했다. 창조주는 그에게 소원을 빌라고 했지만, 생각나는 소원은 없었다. 신이 되고 싶다는 소원도 이루어준다고 했지만, 신을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는 강성운으로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때 생각난 게 가족이었다. 강성운은 가족이 네메스에 오지 않고 행복하기를 빌었다. 창조주는 기꺼이 들어주겠노라고 확답했다.

네 번째가 지금이다. 첫 번째에서 얻은 마지막 시간 회귀의 결과물이다.

강성운은 이번엔 여유롭게 살아가기로 했다. 지난번에는 살아남기에 급급해 여유란 게 없었다.

“…테드.”

“테드입니까. 확실히 들었습니다.”

크루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웃는 얼굴이라 강성운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가능성은 적지만 간단한 이름이라고 비웃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성운의 지레짐작과 다르게 크루시안은 이름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종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만, 태어나고 싶은 종족이 있으신가요?”

종족에 관해서 알고 있다. 크루시안의 설명이 아니라 직접 겪어 알고 있는 지식이다. 이것 또한 크루시안보다 더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마력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마족.

성력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족.

전투능력만을 따지자면 최고라 할 수 있는 용족.

정령 친화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엘프.

타고난 육체 능력과 재능을 가진 수인족.

생산 쪽으론 따라올 자가 없는 드워프.

그 외에도 리자드맨, 나가, 오크, 뱀파이어 등 수 많은 종족이 있다.

그들과 비교하자면 인간은 하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특출한 장점이 없는 동시에 특출한 단점도 없는 게 인간이었다.

테드는 인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인간으로 살았으니 인간으로 사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인간으로.”

“그럼 환생할 장소입니다만, 도시의 안이면 됩니까?”

강성운이 고개를 저었다. 도시라면 분명히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생은 10살 정도의 어린아이 몸으로 시작한다. 홈리스 꼬마다. 도시가 외려 숲 속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고 인심 좋은 마을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

거기에 강성운은 도시가 아닌 마을 근처에서 시작한 기억이 있다. 두 번째 때엔 운 좋게 동굴에서 마법서를 발견했었다.

“마을 근처가 좋아.”

“…역시라고 해야 하나… 특이하십니다.”

크루시안의 말에 강성운이 고개를 으쓱였다. 특이하다는 말, 제법 들었던 말이라 조금의 감흥도 없다.

“그럼 마지막으로 제 가호를 내려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강성운이라 할지라도 놀랄 수밖에 없다. 가호를 받는 입장에선 더없이 좋지만 내리는 입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의 일부를 떼어내 준다는 것이니까. 특히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의 경우 힘이 적기 때문에 크루시안의 행동은 놀라운 것이다.

“어째서? 왜 그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시간 회귀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는 두 번째의 경우 크루시안의 가호를 받았었다. 클리어 한 경험이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내려준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크루시안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시간 회귀에 대해선 말하지도 않았고 만난 시간은 첫 번째보다 짧다고 할 수 있다.

“음. 글쎄요. 뭐라고 할까…. 당신의 영혼이 특별하게 느껴져서…? 인 듯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잘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확실히 뚜렷한 형상이긴 한데….”

하지만 고작 영혼이 뚜렷하다는 이유만으로 가호를 내릴 이유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강성운도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마법이라면 몰라도 영혼 분야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이 없다.

“그런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의 영혼이 저와 비슷하지만 다른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조금 특이합니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 평범한 인간과 비교하자면…… 그렇군요. 당신의 영혼은 제가 보아온 어떤 영혼보다 고결합니다.”

“고결하다니….”

어이가 없다는 듯 강성운이 중얼거렸다. 고결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더럽다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아득바득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은 고결하다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당신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릅니다. 당신이 겪은 경험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의 영혼은 고결합니다. 신인 제가 인정했습니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당신은 특별합니다.”

마지막 말에 영혼밖에 남지 않은 몸이, 있을리 없는 심장이 두근거린듯한 기분이 든다.

‘아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이랬지.’

두 번째에 모든 것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시간 회귀를 한 것을 말하며 설명할 때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 것이다. 몇 시간이 걸린 대화를 크루시안은 불평하나 하지 않고 들어 주었다. 웃어야 할 때는 웃었고, 울어야 할 때는 슬퍼해 주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또 후회할 뻔했어.’

후회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는데 후회할 뻔했다. 다행이라는 점은 늦기 전에 눈치 챘다는 점이다. 귀찮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이어온 못된 버릇이었다. 고쳐야 하는데 타고난 것인지 잘 되지 않는다.

“정말 고마워.”

갑작스러운 말에 크루시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금 낯간지럽지만, 강성운은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다. 그의 맹세이자 좌우명이다. 여기서 멈추면 필시 후회할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줘서 감사하고 있어.”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게 그렇게 좋은 시원한 일인 줄 몰랐다. 상대는 기억하지 않겠지만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다.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

인간 주제에 신을 친구라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짓이겠지만 혼자서 멋대로 생각하는 정도는 상관없을 것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반드시 또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크루시안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 편안해지는 미소를 바라보며 강성운이 생각했다. 만약, 내가 여자였다면 분명 반했을 거라고.

============================ 작품 후기 ============================

퓨전 판타지지만 현대나 레이드 물은 아닙니다.

한 물간 소재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릅니다.

또 글이 좀 많이 유치할 수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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