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야기 (3)>
* * *
서진은 주말을 이용해 춘천에 와 있었다.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호화스러운 분위기는 없지만 감나무가 운치 있게 보인다.
이소희가 감나무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지?”
“좋네.”
이소희는 이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 생각이다.
“검사는 이제 그만할 거야.”
“…….”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이소희는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려 한다. 정신이 피폐한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저곳 발령지를 옮겨 다니는 게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이소희가 마당을 걸으며 계속 말했다.
“여기는 상추를 심으려고 하거든? 가끔 놀러 와.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으면 맛있을 거야.”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소희의 표정을 살폈다. 백기호의 그림자가 사라지며 홀가분한 얼굴이다.
이소희가 서진에게 캔 커피를 건네며 물었다.
“넌?”
서진이 캔 커피를 뜯으며 ‘뭐?’ 라는 눈빛을 보이자 이소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 갔다.
“어떻게 할 거야?”
김영준 총장은 서진의 작은아버지다. 부패한 권력의 심장부였던 김영준 총장과 핏줄이 이어졌다는 것만으로 서진의 검사 생활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어디선가는 뒷말이 들려올 테고, 누군가는 대놓고 서진을 피하고 있을 거다. 이소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서진은 이소희의 예상과 달리 조용히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피해자가 됐어.”
“어?”
“다들 불쌍한 눈으로 봐 주더라. 대화 한번 한 적 없던 부장검사님이 힘내라면서 커피도 사 주던데?”
이소희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게 가능해?”
* * *
며칠 전이었다.
서진은 언제나처럼 업무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앞으로 펼쳐질 일로 고민이 가득했다.
김영준 총장의 조카라는 이유로 좋지 않은 시선과 수군대는 말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준경이었던 시절부터 검사를 천직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생활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식사하러 안 가세요?”
문이 열리고 이동영 수사관이 들어왔다. 점심을 먹고 온 이동영 수사관은 서진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이것만 마치고요.”
“아이고…… 식사부터 하세요, 어서.”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에게 등 떠밀려 복도로 나갔다. 그리고 지금부터 시작될 따가운 시선을 예상하며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그런데 따가운 시선은 없었다. 지나던 선배 검사가 서진의 등을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복도를 걷는 내내 마주한 모든 사람이 서진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심지어 어떤 검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괜찮아?”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게 뭔가 싶을 때였다.
“내가 힘을 썼지.”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진의 옆에 섰다.
“……힘을 썼다고요?”
조우재 부장검사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한다고 한다.
“네가 세운 공적 중에 드러나지 않은 게 더 많은데, 그게 다 김윤환한테 넘어갔었다고 말했어.”
“네?”
그런 일 없다. 서진은 자기 밥그릇은 확실히 챙겼었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김 총장이 김윤환을 키우려고 너 이용하려 했던 것은 알지? 그걸 좀 과장되게 말했지.”
조우재 부장검사는 김영준 총장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재정건설을 어떻게 한다는 것처럼 서진을 협박했다고 사람들에게 알렸다.
“거기에 재정건설의 자금을 슈킹한 것까지 양념으로 버무리니까, 사람들이 믿더라고.”
“…….”
“넌 그냥 이용만 당하던, 불쌍한 새끼가 된 거야. 그러니까, 어깨 펴고 다녀.”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진의 팔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이걸로 빚은 다 갚은 거다.”
조우재 부장검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능글맞게 미소를 그렸다. 그 웃음에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픽 웃으며 말했다.
“이제 착하게 사세요.”
“나 원래 착했어. 나만큼 착한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손을 흔들며 서진의 옆을 스쳐 떠나던 조우재 부장검사가 멈칫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서진을 보며 말했다.
“난 너 같은 놈이 검사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는 것 알고 있는데, 좋은 결정 했으면 좋겠어.”
* * *
서진은 며칠 전의 일을 떠올리며 캔 커피를 입에 댔다. 달달한 맛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이소희가 평상에 앉으며 서진을 바라봤다.
“그래서…… 남아 있을 거야?”
서진은 대답 대신 조용히 미소를 그릴 뿐이었다.
* * *
그날 밤, 서진은 이소희와 헤어진 후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차량 내부에 장지혁 검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주말이라고 놀러 다니냐? 부럽다. 우리는 재판 준비로 죽을 맛이야.
장지혁 검사는 특검에 소속되어 있다. 김영준 총장의 선고가 가까워지며 주말을 뒤로하고 일을 하는 중이다.
-사형 받아 낼 거야. 20년, 30년으로는 안 돼.
“고생하시네요.”
-아…… 그리고 나 유배 안 갈 것 같아. 흐흐흐.
여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게 확실시되고 있다. 장지혁 검사를 비롯한 특검의 일원 역시 이번 대선의 일등 공신이다. 공신을 유배 보내는 짓은 하지 않는다.
서진이 핸들을 틀며 슬쩍 웃었다.
“동남군에 갔으면, 회 먹으러 자주 갔을 텐데 아쉽네요.”
-그러게, 나도 그건 아쉽네. 그래서…… 오늘 밤에 뭐 해? 회 먹을래? 특검 사무실로 와. 내가 광어 한 마리 배달시킬게.
“아, 죄송해요. 선약이 있어서요.”
-약속?
서진이 차를 주차한 곳은 강남의 한 한정식집 앞이었다. 여당의 국회의원과 식사 약속이 있어서다. 차량에서 내린 서진이 건물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김민준 의원…….’
김민준은 변호사 출신의 국회의원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부터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이후에는 변호사로 탄탄대로를 걸어왔다.
공천을 받게 된 것은 시사 프로그램에 논객으로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으면서다.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 외모와 함께 감성적인 언어를 사용해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매만져 준다는 평가를 받았고 40대 중반의 나이에 국회까지 입성했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방송 출연을 이어 오며 초선이지만 꽤 탄탄한 지지를 유지하는 중이다.
서진은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손목을 틀어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아 있다.
‘늦지는 않았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초선 의원에게서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 이유는 듣지 않아도 뻔하다.
서진은 정계의 인물이 아니지만, 정치인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진의 이름을 떠들어 대는 중이다.
“곧 정계로 온다며?”
“햐…… 어린 거물이 탄생하겠네.”
“될까? 검사 출신 중에 메이저로 오른 사람은 드물지 않아?”
“김서진이 그냥 검사냐? 얼굴 잘생겼지, 금수저 물고 태어났지, 거기에 전국구 인지도까지 갖고 있잖아? 오기만 하면 바로 고위직을 차지할걸.”
“씨발, 어린놈 밑에서 손바닥 비벼야 하나?”
김민준 의원은 처세에 강하다. 서진의 이름으로 정계가 들썩이자, 다른 사람보다 한발 먼저 서진의 손을 잡으려 한다.
서진과 친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거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 이름값이 알려진 사람을 많이 알수록 그 힘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입구에서 대기하던 보좌관이 허리를 굽힌 후 넉살좋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실물로 뵈니까, 훨씬 잘생기셨네요.”
보좌관이 몸을 틀어 서진을 안내했다. 김민준 의원이 대기하는 곳은 한정식집의 VIP실이었다. 서진이 안으로 들어가자 김민준 의원이 몸을 일으키며 사람 좋은 미소를 그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민준입니다.”
“김서진입니다.”
보좌관이 허리를 굽힌 후 자리를 피했고 방에는 서진과 김민준 의원만이 남았다.
김민준 의원의 술병을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입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진은 술병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 병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술이다.
“비싼 술이네요?”
“한번 드셔 보세요. 제가 좋아하는 술인데, 맛이 꽤 좋습니다. 하하하.”
서진은 채워진 술잔을 보며 김민준 의원이 출연했던 토론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그는 상대로 나온 정치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었다.
-요즘 서민들, 이자 내고 나면 통장에 100만 원도 안 남아요! 그걸로 살아 봤어요? 전철 요금이 얼마인지 압니까?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하고 있어! 나가!
그 호통을 보며 사람들은 시원하다고 말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김민준 의원의 삶은 했던 말과 달리 호화스러웠다.
술잔을 입에 댄 후 김민준 의원의 말이 이어졌다.
“이 바닥에 들어올 거란 이야기가 많던데, 생각은 좀 정리하셨습니까?”
서진은 대답하지 않고 무심한 눈으로 김민준 의원을 바라봤다. 김민준 의원이 서민적으로 보이는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계속 말했다.
“사람들이 다 김서진 검사님을 칭찬하고 있는데, 쭉쩡이 같은 몇 놈이 정치 검사라며 비난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이 누군지 알죠? 야당 쪽 지지하는 인간들이에요. 그런데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 쳐 낼 수 있어요. 입 조금만 털면, 비난은 칭찬으로 바뀔 거예요.”
“…….”
“이제 한편인데, 그 정도는 해 드려야죠.”
서진이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김민준 의원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한편요?”
그 말과 동시에 김민준 의원이 서진을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처음 마주했을 때도 권하지 않던 악수다. 서진이 그 손을 꽉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서진의 시야가 흑백으로 변해 갔다.
사이코메트리에서 본 것은 가관도 아니었다. 권력을 이용한 성폭행과 성추행, 어린 여성들이 사무실에 앉아 눈물을 흘렸고 김민준 의원은 그녀들의 머리채를 손으로 움켜잡으며 말했다.
“사진 찍자. 이제 우리 사귀는 거다?”
김민준 의원은 여성의 나체를 휴대폰에 담았다. 피해 여성들이 이곳저곳에 구제를 요청했지만, 김민준 의원은 권력으로 그 요청을 묵살시켰다.
“사귀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헤어지니까 저 지랄을 하네.”
구제를 요청했던 여성들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아버지의 회사에 갑자기 일거리가 끊기는 등, 길거리로 나앉게 된 거다.
서진의 시선에 다시 색이 채워졌다. 마주한 김민준 의원이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편, 같은 편, 우린 같은 배를 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편하게 생각하세요.”
그런데 그 순간 김민준 의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서진이 마주 잡은 손에 힘을 꽉 줬기 때문이다.
“악!”
김민준 의원이 짧은 비명을 내뱉을 때, 서진의 입에서 살벌한 음성이 흘렀다.
“이거 쓰레기네?”
“네?”
서진의 표정이 난데없이 돌변하자 김민준 의원이 눈을 깜빡였다. 서진의 얼굴에서 순하고 착한 청년의 모습이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 지금은 악마가 마주 앉은 것 같은 느낌이다.
서진이 놈의 손을 끌어당기며 무섭게 말했다.
“누가 같은 편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