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이야기 (2)>
서진이 고깃집 안으로 발을 들이는 찰나였다. 그곳에 모인 국회의원과 보좌관 그리고 각 정치인 들이 서진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김서진! 김서진! 김서진!”
그리고 서진의 앞으로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이 섰다. 전국구 인지도를 갖고 있는 자다. 그가 서진을 향해 악수를 권했다.
“고맙네.”
서진은 중진 의원이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고맙다?’
서진이 김영준 총장을 끌어내리고 백기호 의원을 무너뜨린 것은 여당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검사로서 괴물을 잡아낸 거다.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있기에 그 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일단 그 손을 잡았다. 그러자 중진 의원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 덕에 대선의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게 됐어.”
맞잡은 손이 흔들렸다. 그러자 “와!” 하는 소리가 고깃집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회식이 시작됐다. 이곳에 모인 사람은 약 이백 명, 그 중 국회의원이 약 오십 명, 당직을 가진 사람이 삼십여 명, 거기에 보좌진까지……. 이곳은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테이블과 바닥에 술병이 빠르게 쌓였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자들인데, 고상한 모습은 없다. 물컵에 소주가 채워졌고 냉면 그릇에는 소주와 맥주가 뒤섞여 찰랑거렸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여기저기 고성이 난무했고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서진을 불러 댔다.
“김서진 검사! 여기요, 여기! 한잔 받아요!”
서진이 자리에 앉으면 그들은 술잔에 술을 채우며 비슷한 말을 건넸다.
“대선 끝나면 한자리 해야죠? 원하는 곳 있어요?”
이들은 대선의 승리를 확신했다. 샴페인을 터뜨렸고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검찰에 있기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이 많던데……. 파견 원하는 곳 있으면 말해 봐요. 한 2, 3년 밖으로 돌다 보면 검찰도 잠잠해지겠죠. 어디가 좋을까? 국회?”
말이 이어질 때, 옆에서 허리띠를 풀던 정치인이 끌끌 웃었다.
“국회로 오면 딱이네. 나랑 매일같이 술 마시면 좋잖아? 그러다가 인맥 좀 쌓은 후에 검찰 때려치우고 여의도 입성. 어때요?”
그때였다. 얼굴이 벌겋게 변한 공대출 전 의원이 옆에 앉으며 무거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헛소리 그만!”
그 말과 동시에 허리띠를 풀어헤친 정치인이 입을 꾹 닫았다. 공대출 전 의원이 현직에서 떠났지만 그 이름에 달린 무게가 어지간한 정치인보다 높기 때문이다.
공대출 전 의원이 서진의 잔에 술을 따르며 정치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인맥 쌓은 후에 여의도 입성? 헛소리를 하고 있어.”
“김서진 검사 같은 사람이 여의도에 와야죠. 우리 당에 오면 딱일 것 같은데요. 하하…….”
정치인이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하자 공대출 전 의원의 타박이 이어졌다.
“인맥 쌓을 시간이 어디 있나? 김서진 검사가 원한다면, 다음 보궐선거에 공천 넣기로 이성윤 의원하고 이야기됐어.”
“……!”
이성윤 의원은 젊은 정치인으로 여당의 스타, 당의 지분을 꽤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이가 어려 이번 대선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대통령이 확실시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 사람이 서진에게 기회를 준다고 하자 허리띠를 풀어헤친 정치인의 눈이 커졌다.
“바로 다음이요? 정치라는 게…… 그래도 훈련이 되어야…….”
“자네, 전직이 뭐야? 김 검사보다 내세울 간판이 있었나? 개나 소나 비례 달고 의원 되는 세상인데, 김 검사가 못할 게 뭐야?”
“그렇기는 하죠…….”
정치인이 민망하게 웃으며 술잔을 입에 댔다. 그러자 공대출 전 의원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정치인을 볼 때와 전혀 다른 표정이다. 공대출 전 의원이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낙선을 해도 걱정하지 말게. 바로 총선이 이뤄질 거야. 그때 비례를 해도 좋고 텃밭에 나가도 좋아. 자네의 결정만 있으면 되는 거야.”
남들은 국회의원 배지 한번 달아 보겠다고 돈을 싸 들고 당을 오간다.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쥐고 세상에 이름 한번 떨쳐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서진은 슬쩍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술잔을 입에 대며 물었다.
“그런데 이성윤 의원은 안 왔나요?”
“그놈은 워낙 공사다망해서……. 지금도 시장 통 돌아다니면서, 민원 듣고 있을걸.”
“아쉽네요.”
젊은 정치인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서진이 술잔을 내려 두자 공대출 전 의원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자네 생각은 어떤가?”
“글쎄요.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그래, 바쁜 일 아니니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해.”
서진은 시선을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정치인들이 술을 항아리째 퍼 먹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국회의원이고 보좌관이고 그저 평범한 인간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국민을 위한 생각은 없다. 그저 대선의 승리를 높일 뿐이다.
“포토 라인에 설 때, 백기호 표정 봤어?”
“난 그 새끼가 깨끗한 척할 때, 알아봤다니까?”
“거만 떨더니, 잘됐다.”
그래도 백기호에 대한 욕을 하는 놈들은 양반이다. 다른 쪽에서는 여자 이야기를 하고 있다.
“끝나고 한 잔 더 해야죠?”
“종로에 괜찮은 룸살롱 열었는데, 갈래?”
그들은 부어라 마셔라 술을 처먹으며 여자의 몸매가 어쩌고저쩌고 저잣거리의 농담을 지껄여 대고 있었다.
서진은 그들의 얼굴 전부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조용히 술잔을 내려 두며 공대출 전 의원에게 시선을 틀었다.
“아……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해.”
“엄 회장 있잖아요?”
“엄 회장?”
지난번 김영준 총장의 지시로 엄 회장의 자택을 압수 수색했지만 나온 것은 없었다.
서진이 첩보를 전해 준 덕에 엄 회장이 재산을 빼돌렸기 때문이다.
“김영준 총장 게이트, 청문회를 열어 엄 회장을 한번 소환해 주세요.”
엄 회장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 기생충으로 살아온 자다. 각 정권의 등골에 달라붙어 서민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왔다. 그런 자의 마지막이 편안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빼앗은 후 철저하게 지옥을 보여 줘야 한다.
“검찰이 움직일 겁니다. 지금껏, 엄 회장이 저질렀던 모든 죄를 찾아내겠죠. 그 사람을 시작으로 엮인 모든 사람을 국민에게 알려 주세요. 여당이고 야당이고, 성역 없이 가려 주셨으면 합니다.”
공대출 전 의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엄 회장은 김영준 총장이 나섰지만 먼지 한 톨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의 죄를 입증하겠다고?’
하지만 상대는 서진이다. 어떻게든 지금의 말이 현실로 이뤄질 것 같았다. 공대출 전 의원이 입술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지.”
* * *
엄 회장은 비서와 함께 자택의 정원을 걷고 있었다.
“김영준 그놈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될 거야. 내 이름도 분명 나오겠지. 신마그룹부터, 지난 정권의 모든 사람이 단두대에 목을 집어넣어야 할 게야.”
“…….”
“그런데 그렇게 되면 죽는 것은 나 혼자야. 역사적으로 권력을 가진 쓰레기들이 했던 짓은 똑같아. 돈 받을 때는 고개를 숙여도 위기에 처하면 장사치부터 잡아넣거든.”
엄 회장이 걸음을 멈추며 계속 말했다.
“잠시 한국을 떠나야겠어. 시영이나 선주는 다음 정권을 기대해야 할 것 같아.”
엄 회장의 눈이 슬펐다. 두 딸, 엄시영과 엄선주를 옥에 가둔 채 홀로 떠나야 한다는 게 가슴 아파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김영준과 백기호의 손을 끝까지 잡지 않았다는 거야.”
만약 엄 회장이 끝까지 김영준 총장의 손을 잡고 있었다면, 지금 더 최악의 상황이 되었을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엄 회장을 살려 놓지 않았을 거다. 본보기로 삼기 위해 처참할 정도로 찢어 죽였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비벼 볼 수 있다.
“범죄인인도 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휴양지를 찾아봐. 개인 수영장이 있고 바다가 가까운 곳이면 좋겠어. 그리고 같이 가자. 5년 정도만 더 이 늙은이 수발을 들도록 해.”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엄 회장이 그녀를 향해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5년…… 그 후에는 지금보다 더한 영광을 누리며 살 게야. 정치인들은 내 돈을 바라고 난 그들에게 줄 돈이 있어. 그럼 난 너에게 자유를 줄 게야.”
엄 회장의 시선이 그녀의 배를 향했다.
“내 아들과 행복하게 살 거라. 시영이와 선주는 걱정하지 말고.”
비서의 눈동자가 자택의 문이 있는 곳으로 틀어졌다. 그녀가 공허한 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스무 살이었나요? 아니, 더 어렸었나? 이제 그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안 나요. 돈을 못 갚는 아버지를 대신해 회장님 앞으로 끌려와 지금까지 살았죠. 회장님의 지시에 죽어 나가는 사람을 보며 무서웠어요. 그래서, 인형처럼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약속한다. 앞으로 5년, 그 시간만 지나면 넌…….”
비서가 엄 회장의 두 눈을 마주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잖아요? 그 시간이 지나도 안 풀어 줄 거잖아요. 회장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전 곁에 있어야 할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은요? 엄시영과 엄선주가 저를 가만 놔둘까요? 알량한 재산을 지키겠다고 제 머리채를 쥐어뜯겠죠.”
엄 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다 해결하고 갈 거야. 그러니까…….”
하지만 이번에도 비서는 회장의 말을 끊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갔다.
“회장님…… 원치 않았지만, 얻게 된 아기, 제 배 속에 품은 아기. 그래도 아기는 살리고 싶어요.”
“그래, 그 아기도…….”
“모성애는 대단하네요. 그 무섭던 회장님을 배신할 수 있으니까요.”
“……뭐라?”
배신이라는 단어에 엄 회장의 눈이 찌푸려지는 순간이었다. ‘쾅! 쾅! 쾅!’ 하고 대문이 두들겨지더니 ‘꽈앙!’ 문이 열렸다.
“검찰입니다!”
소름 끼치는 목소리와 함께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검찰과 수사관들이 들어오는 거다.
엄 회장의 눈빛이 긴박해졌다.
“네, 네가?”
비서는 수십 년 동안 엄 회장의 옆을 지켜 왔다. 그 비리를 알고 있다. 배신이란 뜻은 그 비리를 검찰에게 넘기겠다는 거다. 그녀가 스산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회장님.”
“네, 네가 나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도, 돈 있어? 돈이 있어야 아기도 키우고……!”
엄 회장은 돈과 함께 인생을 살아온 자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했고 돈으로 돈을 벌어 왔다. 이 상황에서도 엄 회장의 입에서는 ‘돈’이라는 단어가 내뱉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서의 눈빛은 건조했다. 그 눈빛에 엄 회장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 설마…….”
엄 회장은 떠올렸다. 얼마 전 압수 수색이 들어오던 때, 엄 회장은 그녀를 통해 그 많은 재산을 해외 이곳저곳에 뿌렸었다.
“……그 돈을 믿고 있나?”
비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 회장은 비서가 그 돈을 빼돌리려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엄 회장이 무서운 눈빛으로 비서를 쏘아봤다.
“네 힘으로 그 돈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못해. 그 많은 돈이 움직이려면, 내 힘이 필요해. 그러니까, 입 닥치고 조용히 있어.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지었던 죄, 이 세상에서 받아야 할 벌, 다 받고 가세요.”
“뒈져!”
엄 회장이 비서의 목을 꽉 쥐었다.
“컥!”
비서의 눈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녀는 노인의 손에 목이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몸이 파들파들 떨려 왔다.
엄 회장이 주름진 눈으로 살벌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약속했잖아! 5년이라고! 그 시간만 지나면, 넌 자유라고! 지금껏 먹여 주고 키워 줬더니, 배신을 해?”
그녀가 고통을 견디며 차갑게 웃었다.
“그쪽이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입혀 주던 그 시간…… 인형같이 살아오던 그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어.”
뒤에서 수사관들이 달려와 엄 회장을 뜯어말렸다. 노인의 몸은 허공에 매달렸고 발만 동동거렸다.
“죽여! 죽이라고! 돈 줄게! 저년부터 죽여! 아아아악!”
엄 회장은 질질 끌려가는 순간에도 비서를 향해 삿대질하며 목청을 높였다.
비서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자국이 남은 목을 만지며 숨을 토해 냈다.
그리고 비서의 앞으로 익숙한 그림자가 섰다. 그녀가 시선을 들자 서진이 보였다.
“고생하셨어요.”
서진이 조용히 미소를 그리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을 그녀가 맞잡았다.
지난번, 엄 회장과 서진이 마주했던 날이었다. 서진은 화장실을 간다며 비서의 뒤를 쫓았었고 그녀를 섭외했었다.
엄 회장의 자산이 이동한 루트를 알려 주면, 엄시영과 엄선주가 임신 사실을 절대 알 수 없게 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일정의 보상도 해 주겠다는 약속.
그녀는 서진에게 재산이 은닉된 곳을 알렸고 곧장 도광현이 움직였다.
엄 회장이 가졌던 수조 원에 대한 재산은 이미 도광현의 손에서 세탁되는 중이며 조만간 그 모든 게 서진의 손에 들어올 예정이다.
“청문회가 끝나고 관련자들이 구속되면, 약속한 돈을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남은 생은 편안하게 사세요.”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질질 끌려가는 엄 회장을 향했다.
“저 인간…… 지금껏 편안하게 살았는데, 남은 생은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세요.”
“그것도 약속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