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47화 (247/250)

<그들의 이야기 (1)>

김영준 총장은 어떤 말도 못했다. 그저 덜컥거리는 눈동자로 서진을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네, 네가 이겼다고 생각해?”

서진의 무심한 눈동자가 김영준 총장의 손으로 향했다. 꽉 쥐였던 주먹이 스르륵 풀려 있었다. 그 스스로도 끝났다는 것을 느낀 거다. 그러면서도 발악하는 중이다. 서진이 스산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기억해라. 이기고 지는 게 아니야. 넌 죄를 지었고 그 죗값을 치르는 거야. 모든 게 끝났으니까, 인정하고 반성해라.”

“아, 아니야! 아직 안 끝났어!”

김영준 총장은 제정신이 아니다. 조카를 죽이려 했던 게 드러났고 온 세상에 부모를 죽였다는 게 알려졌다.

“안 끝났다고!”

헛소리를 더 들어 줄 필요는 없었다. 서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에 쥔 휴대폰을 경위에게 넘긴 후 재판장을 향해 느릿하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몸을 틀었다.

“씨발, 어디 가!”

동시에 ‘우당탕!’ 소리와 함께 법정 경위가 김영준 총장을 끌어내는 소리가 이어졌다.

“놔! 놓으라고! 나 김영준이야!”

서진의 귓가에서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서진은 법정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방청석 한쪽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어찌 되었거나 김영준 총장은 아버지의 동생이다. 그리고 서진은 그 동생을 잡은 검사다. 철저히 파멸시킨 사람이기도 하다.

서진의 본질은 서준경 검사, 가족도 형제도 없이 자라왔지만 동생에게 배신당한 형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기에 지금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서진의 앞에 익숙한 그림자가 섰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 보자 아버지 김준만이 보인다.

아버지는 말없이 서진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서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여전히 어떤 말도 없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 역시 이 법정에 앉아 동생이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자신의 아들이 다른 사람 몰래 김영준 총장을 잡기 위해 애를 써 왔다는 것을 봤다. 그 심정은 처참했다.

서진의 어깨를 토닥이던 아버지의 손길이 멎었다. 이어서 그 어깨를 살짝 쥐며 아버지가 희미하게 미소를 그렸다.

“밥 안 먹었지? 배고프다. 가서 밥 먹자.”

아버지가 서진의 등을 쓰다듬으며 법정의 밖으로 이끌었다.

먼 곳에서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놓으라고!”

* * *

서진이 아버지와 함께 간 곳은 법원 근처의 국밥집이었다.

국밥이 테이블에 오를 때까지 서진과 아버지는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국밥이 나왔을 때, 아버지가 서진의 앞으로 수저를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밥 먹기 전에 무거운 이야기 해도 될까?”

“네, 말씀하세요.”

서진은 아버지가 김영준 총장 또는 자신의 부모를 이야기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검사 그만두고 회사로 들어와.”

“……네?”

뜬금없는 말에 서진이 눈을 깜빡였다. 아버지는 서진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검찰 조직은 잘 모르지만, 거물을 잡으면 정치인이나 그런 쪽에서 부담스러워한다며? 내 아들 유배 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니까, 와서 일이나 배워.”

“…….”

“나도 이제 은퇴를 해야 할 나이야. 그런데 진영이는 요리한다 하고…….”

아버지의 목소리를 귀에 담으며 서진은 조용히 숟가락을 손에 들었다.

김영준이라는 괴물을 잡아내며 서진에게는 여러 가지의 새로운 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공대출 전 의원은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했다. 여당의 텃밭에 공천을 넣어 줄 테니, 젊은 국회의원으로서 세상을 바꿔 보라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기업인의 미래를 보여 준다. 법무 팀을 시작으로 여러 경험을 쌓고 아버지가 만든 재정건설을 더 크게 만들어 보자고 권한다.

끝이 아니다. 얼마 전, 도광현은 말했다.

“그동안 모든 돈이 얼마인지 아세요? 평생 펑펑 써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써요. 그러니까, 이제 힘든 일은 그만하시고 신선놀음이나 하죠?”

잠시였지만 서진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으로 복잡했다. 서진이 아버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고민해 볼게요.”

* * *

-김영준 총장이 비명을 지르며 난동을 피웠습니다. 공판은 휴정을 거듭한 끝에…….

채널이 돌아갔지만 마찬가지로 김영준 총장에 대한 이야기다.

-김영준 총장이 부모를 살해했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특검은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진실을 밝혀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언론은 모두 김영준 총장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후보의 커넥션이 드러났습니다. 김영준 총장은 백기호 후보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공대출 전 의원을 기소하기로 했고…….

댓글도 난리다.

-30년 이상 예상합니다.

└이건 사형 아니냐?

└사형이지. 부모도 죽이고 조카도 죽이려 하고.

-그런데 김서진은 계속 검사할 수 있나?

└못할걸. 아무리 그래도 자기 작은아버지가 김영준이잖아.

└김영준이 무슨 상관이야? 총장 백 사용한 적 없어. 지금까지 보여 준 게 있는데.

└난 못한다고 생각해. 검찰에 남는다고 해도 거기서 왕따 당할 듯.

└설마…….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은 그런 유치한 짓을 할까?

└다 그만두고 영화배우나 해라.

* * *

백기호 의원의 사무실 앞으로 검찰의 승합 차량이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장지혁 검사와 이소희가 내렸다.

장지혁 검사가 이소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 봐.”

“검사님은요?”

장지혁 검사는 이소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서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백기호의 마지막은 이소희에게 맡겨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장지혁 검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흡연 구역 찾아서 담배나 피우고 있을 테니까, 가서 잡아 와.”

이소희는 잠시 생각에 빠진 눈빛을 보였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이소희는 수사관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장지혁 검사는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차량에 등을 기댄 채 하늘을 바라봤다.

장지혁 검사는 이소희와 백기호 의원의 관계를 모른다. 하지만 서진의 말을 토대로 어떤 악연이 있다는 것만 예상할 뿐이다. 장지혁 검사가 중얼거렸다.

“넌 또 무슨 악연이 있는 거냐?”

* * *

그 시각, 백기호 의원은 뒷짐을 쥔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검찰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의외로 침착했다.

그때,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기호 의원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높다란 빌딩에서 보는 세상은 언제나 쥐고 싶은 대상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가질 수 없는 대상이 되었지.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잠시 보고 싶으니까,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만 기다려 주겠나?”

백기호 의원이 느긋한 손길로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런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연 건물이에요. 그리고 냄새나니까, 피우지 마세요.”

이소희였다. 백기호 의원은 이곳에 이소희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 못 하고 있었다. 백기호 의원이 눈을 부릅뜬 채 천천히 시선을 틀었다. 그리고 그곳에 홀로 서 있는 이소희를 보며 손에 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실수라고 말한 거 미안하다.”

“…….”

“해 준 것 하나 없지만, 이 약속은 하고 싶다. 네가 내 딸이란 사실은 영원히 입을 다물 테니…… 행복하게 살아라.”

백기호 의원이 그 말을 끝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이었다. 이소희의 입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피우지 말라고 했는데……. 과태료도 받아야겠네.”

“……!”

문이 거칠게 열리며 수사관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억센 손으로 백기호 의원을 붙잡자 피우려던 담배는 바닥에 떨어졌다. 백기호 의원이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뭐, 뭐 하는 거야!”

이소희가 백기호 의원의 앞으로 한 발 다가서며 말했다.

“난 당신 같은 범죄자가 거물인 척, 느긋한 척 하는 것 정말 보기 싫어.”

“이, 이소희!”

“백기호 씨, 당신을 뇌물 수수 및 재판 개입 등의 혐의로 체포합니다.”

“야!”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체포 구속 적부심을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게 정말!”

백기호 의원은 당황한 눈동자로 이소희를 살폈지만 이소희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시선을 틀어 수사관들을 바라봤다.

“가세요.”

수사관들이 백기호 의원을 끌고 나갔다.

“놔! 내 발로 갈 테니까!”

백기호 의원은 풀려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들은 더 거칠게 백기호 의원을 끄집어냈다.

“이 새끼들이 진짜!”

그렇게 백기호 의원의 목소리가 멀어졌고 소란은 잠시였다. 그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해졌다. 이소희는 그 넓은 사무실에 홀로 서 있었다.

이소희가 백기호 의원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작은 손이 ‘국회의원 백기호’라 적힌 명패로 향했다.

‘고작…….’

백기호는 고작 이 명패를 얻기 위해 짐승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그 명패의 다음을 욕심내려다가 추락했다.

이소희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을 때,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가 엄마다.

이소희는 진동하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통화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엄마, 이제 다 끝났어.”

-…….

“그러니까, 이제 나랑 행복하게 살자. 내가 효도할게요.”

이소희가 종료 버튼을 누르며 손에 들고 있던 백기호 의원의 명패를 쓰레기통에 툭 버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 사무실을 벗어났다.

* * *

“지금 출발하려고요.”

-천천히 와. 자네가 주인공이니까, 늦어도 아무도 뭐라 못 해.

중앙지검이었다.

서진은 책상을 정리한 후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사무실을 나서고 있었다.

통화하는 상대는 공대출 전 의원이다.

“그래도 빨리 가야죠.”

-괜찮다니까.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의 몰락으로 세상은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여당은 축제 분위기였다.

여당은 이번 대선을 포기했다는 평가가 강했다. 백기호 의원의 지지율이 50%를 넘어서는 중이었고 휘몰아치는 바람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여당은 패배가 확실시되는 대선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자네 덕에 기적이 일어났잖아.

공대출 전 의원의 목소리는 즐거웠다. 김영준 총장을 시작으로 백기호 의원까지 구속되며 반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야당의 지지자들은 투표를 포기했고 여당의 지지자들은 집결했다. 그 덕에 여당의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확실시되는 중이다.

이제는 대선을 치르지 않아도 누가 대통령이 될지 초등학생도 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당연하지만 그 일등 공신은 자네야.

그래서 공대출 전 의원과 여당의 많은 정치인들은 서진에게 감사를 표하는 자리를 준비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서진을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권력자들이 기다리는 거다. 누군가는 그 상황에 긴장을 하거나 설레는 감정을 가질 수 있겠지만 서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금방 가겠습니다.”

서진은 차를 타고 회식 자리로 향했다. 장소는 경기도 하남에 있는 정육 식당이었다.

정치인들이 자주 모인다는 곳으로 3층 전체를 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잠시 후, 고급 승용차가 가득한 주차장에 서진의 차량이 주차되었다.

차에서 내린 서진이 툭툭 옷매무새를 만질 때, 그 옆으로 한 보좌관이 섰다. 보좌관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김서진 검사님이시죠?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진은 보좌관을 따라 길을 걸으며 정치인이 가득한 고깃집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 눈빛이 매서웠다. 회식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사냥감을 찾으러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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