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40화 (240/250)

<목을 베다. (6)>

남자는 반대하려 했다. 하지만 20억이란 돈은 크다. 조금만 지원하면 공부를 잘할 것 같은 아들에게 과외를 붙여 줄 수 있다.

아파트로 이사 갈 수도 있다. 그럼, 밤길이 무섭다며 울먹이는 딸이 활짝 웃을 것만 같다. 그리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아내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해 줄 수도 있다.

게다가 아버지 박정길, 매일같이 술을 먹고 동네 주민과 싸운다. 아버지 때문에 경찰서를 들락거린 것은 이제 셀 수도 없다.

며칠 전에는 동네 주민과 싸우던 아버지를 말리다가 주먹질까지 당했다.

이제 그 꼴을 보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이가 들었다며 퇴직을 하라고 눈치를 주는 시기.

거지 같은 블랙 기업의 문을 박차고 나와 보란 듯이 가게를 꾸릴 수도 있는 돈이다.

‘20억…….’

그 돈이 손에 쥐이면 지금 생각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다. 폐륜을 저지르기에 남자의 마음이 모질지 못했다.

그때,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30억.”

“……!”

“말씀드렸습니다. 박정길 씨의 안전은 보장해 드리죠. 어디에 박혀 있는지도 알려 드릴 겁니다. 조건은 몇 가지 있겠지만, 이 정도로 30억이면…… 만족스러운 거래라고 생각하는데요.”

남자는 거부할 수 없었다.

* * *

서진의 시야가 점차 색을 되찾았다.

김영준 총장의 얼굴이 사라지며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남자가 간절한 표정으로 더듬거리고 있다.

“시, 신고할 거예요. 검사면 다야? 어?”

서진은 남자의 말을 외면하며 천천히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미처 보내지 못한 메시지가 보인다.

-김서진 검사가 찾아왔습니다. 아버지의 행방을 묻는…….

전하려던 전화번호는 처음 보는 거다. 예측하건대, 김영준 총장의 대포폰일 가능성이 크다.

서진의 시선이 다시 남자에게 틀어졌다. 그리고 남자의 눈앞에 휴대폰 화면을 보이며 물었다.

“김영준 총장에게 보내려 했습니까?”

“……!”

남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서진이 남자를 향해 바짝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를 이었다.

“아버지를 넘기는 조건으로 30억 받았네요. 그 돈으로 이 아파트를 샀고요.”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은 말투에 남자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한다. 핏기가 쑥 빠져 백짓장 같던 얼굴이 붉어졌다가 검어졌다가 난리도 아니다.

김영준 총장이 이 사람을 살려 둔 이유를 알 것 같다. 겁이 많은 사람, 김영준 총장이 무서워 어떤 말도 내뱉지 않을 사람.

이런 사람에게 진실을 듣는 방법은 더 큰 두려움을 주는 거다. 그럼, 자신의 안위를 위해 모든 것을 내뱉을 사람이다.

“아파트 구입과 관련해서 자금 출처 전수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음식점을 하고 계시죠? 식품위생법 관련해서 단속이 들어올 겁니다. 막으려면 바쁘시겠네요.”

“거, 검사님…….”

“마지막으로 그쪽의 아버지, 박정길.”

서진이 휴대폰을 꺼내 이은하 기자의 연락처를 찾았다. 남자가 그 주소록을 확인할 수 있도록 슬쩍 보인 후 입을 열었다.

“<세상을 본다>의 이은하 기자입니다. 살인마 박정길의 자식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박정길이 죽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비교해서 방송이 나갈 겁니다.”

서진의 말이 이뤄진다면 남자의 인생은 망한다. 그 가족 역시 성할 수 없다.

“검사님!”

“그럼, 말씀하세요. 박정길 씨,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남자는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김영준 총장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컸다. 서진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김영준 총장은 특검 수사 대상이에요. 언제까지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습니까? 잘 생각하세요. 몰락한 권력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도 없어요.”

* * *

서진은 차를 타고 홍천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곳의 요양 병원에 박정길이 잡혀 있다.

살려 둔 이유는 뻔하다. 박정길이 기록한 그 무엇인가가 어디에 있는지 김영준 총장이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 견디고 있었네.’

박정길은 필사적으로 버티는 중이다. 놈은 김영준 총장의 손에 기록이 넘어가는 순간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신호에 걸렸을 때, 서진은 이은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량의 스피커에서 이은하 기자의 목소리가 흘렀다.

-잠시만요. 사람들이 없는 데서 받을게요.

이은하 기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바스락거리며 들렸다. 그리고 조금 뒤에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말씀하세요.

서진은 백기호 의원을 지옥으로 보낼 생각이다. 신마그룹에서 용돈을 받으면서 대쪽 판사를 연기했던 그 가면을 부숴 버릴 거다.

“오늘, 날씨 좋네요. 폭탄 터지기 좋은 날이에요. 터뜨려 주세요.”

백기호 의원을 향해 방아쇠가 당겨지면 김영준 총장은 서진에 대해 신경을 쓸 수 없다. 백기호 의원을 살리기 위해 이를 악물고 움직일 거다.

하지만 헛수고다. 그 행동은 더 깊은 늪으로 빠지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백기호 의원의 비리는 폭탄을 시작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동안 이소희가 준비해 온 것, 그 총성이 여기저기서 울릴 거다.

백기호 의원은 비참할 정도로 추락할 게 분명하다. 김영준 총장의 손을 잡고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거다.

그리고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신경이 백기호 의원에게 쏠린 틈을 타 박정길을 만나 그가 기록한 증거를 손에 얻을 생각이다.

이은하 기자와 통화를 종료 후, 곧바로 대검의 전동국 차장검사에게 전화를 돌렸다.

“오늘 이은하 기자가 시원한 기사를 쏠 거예요. 여기저기 지라시가 터질 거고요. 그래서 중앙지검 검사장을 만나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신마그룹에 대한 압수수색을 부탁드립니다.”

서진의 목소리가 끝나는 동시에 전동국 차장검사의 웃음소리가 차량을 채웠다. 그는 정말 한참을 웃었다.

서진이 거론한 상대는 대선 후보 백기호와 신마그룹이다. 일개 평검사가 내뱉을 상대가 아니다. 그런데 서진은 그들이 손에 잡힌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전동국 차장검사는 서진의 거침없는 행동을 보니 자신의 젊을 때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자넨 정말 미쳤어.

“동남군 출신입니다. 차장검사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옷 벗을 각오는?

“항상 하고 있습니다.”

-좋아, 돕겠네.

통화가 종료됐다. 서진은 액셀을 꾹 밟았다. 홍천으로 가는 뻥 뚫린 고속도로가 눈앞에 드러났다.

* * *

그 시각, 백기호 의원은 춘천의 한 군부대를 방문하고 있었다.

병사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기자들이 찍어대고 있다.

병사들이 식사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외치는 모습에 백기호 의원이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뜬금없는 감사의 말에 병사들이 눈을 깜빡였다.

백기호 의원이 그들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 놀고 싶을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갇혀 있는 생활을 견뎌야 하고 여자 친구와의 이별에 모포를 덮고 홀로 울겠죠.”

“…….”

“여러분은 그 괴로움을 견디며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

“그래서 부대를 돌며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해 봤습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지금의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는 방안, 이 시간이 진정한 보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여러분이 있어서 이 나라가 평온한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백기호 의원의 두 아들은 모두 군 면제다. 한 놈은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 또 한 놈은 무릎이 안 좋다는 이유. 그러면서 골프가 취미다.

잠시 후, 식당에서 나온 백기호 의원이 차에 올랐다. 그리고 앞에 앉은 보좌관에게 입을 열었다.

“줘 봐.”

보좌관이 재빨리 태블릿 PC를 넘겼다. 부대를 시찰한 것이 벌써 기사로 올라왔다.

[백기호 의원의 말에 장병들 감동]

[백기호 의원, “장병들의 힘듦을 공감하고 있다.”]

백기호 의원이 조용히 웃었다.

마음에 드는 기사 제목이다.

그런데.

[백기호 의원, 군 생활 보상에 대한 약속. 군 가산점 부활하나]

백기호 의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보좌관에게 태블릿 PC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군 가산점 부활, 이거 쓴 기자한테 연락해. 당장 내리라고.”

“아, 네.”

“그리고 그놈은 앞으로 내 옆에 못 오게 해. 가산점은 무슨 가산점? 남들 다 가는 군대구만. 요즘은 휴대폰도 쓴다며? 그 미친놈 때문에 여성의 수백만 표가 날아갈 수도 있어.”

백기호 의원은 보좌관의 “알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으며 차량의 시트에 등을 깊숙이 파묻었다.

“강원지검 근처에 있는 한정식집 하나 예약해.”

백기호 의원은 장병들과의 식사에서 숟가락 한 번 제대로 뜨지 않았다.

밥은 제대로 된 곳에서 먹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백기호 의원의 차량이 강원지검으로 향했다.

* * *

백기호 의원은 한정식집에 앉아 있었다.

문이 드르륵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백기호 의원의 시선이 들어온 사람을 향한다. 이소희였다. 그녀가 뾰족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왜 부르셨어요?”

“주변에 들를 일이 있었어. 밥이나 같이 먹자는 거니까, 인상 펴고 얌전히 앉아.”

이소희는 입술을 씹었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 앞에 마주 앉았다.

“여기 나물이 맛있어.”

백기호 의원이 이소희의 앞에 반찬을 내려 뒀다. 이소희는 그 손이 끔찍할 만큼 싫었다.

“말씀하세요. 이유 없이 부를 분이 아니시잖아요.”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대선을 말하는 거다.

백기호 의원이 나물을 씹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도 이런저런 네거티브가 심한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러니까, 입 다물고 있으라는 건가요? 누가 와서 바람을 넣어도 외면한 채?”

백기호 의원이 히죽 웃었다.

“똑똑해서 좋아.”

“…….”

“가끔 내 유전자가 너에게 몰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두 아들은 한심하다. 일류 대학을 졸업했지만,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앉아 있던 백기호 의원의 눈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이소희는 달랐다. 자신의 힘으로 검사까지 되었다.

“아쉬워. 네가 다른 배에서 태어났어야 하는데…….”

이소희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테이블 아래에 꽉 쥔 주먹이 조용히 떨릴 뿐이다. 저런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 짐승과 일분일초도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꾹 참고 있다. 곧 터질 포탄에 변해 버리는 백기호 의원의 표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기호 의원은 이소희의 표정과 생각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정말 맛있다는 듯 나물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쑤셔 넣었다.

“끝나면 자유를 주지. 네 어미도 돌려줄게. 검사 그만 두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느긋하게 살아.”

“하나…… 하나만 여쭤볼게요.”

“뭐든.”

“어머니를 사랑하긴 했나요?”

백기호 의원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대답해 주세요. 제게는 중요해요.”

백기호 의원이 힐끗 이소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실수였어.”

이소희의 입술이 비틀렸다. 그녀가 서늘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으며 대답했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미닫이문이 쾅, 열리며 보좌관이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의, 의원님!”

젓가락으로 시뻘건 육회를 집던 백기호 의원이 눈을 찌푸리며 보좌관을 바라봤다.

“왜?”

보좌관이 긴장된 표정으로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기사가 보인다.

[충격! 백기호 의원 뇌물 수수 혐의]

[신마그룹, 백기호 의원이 대학생이던 시절부터 뇌물을 건네!]

[검찰, 신마그룹에 대한 기습적인 압수 수색

백기호 의원은 바위처럼 멎어 있었다. 젓가락으로 쥔 육회가 뚝뚝 떨어지고 있지 않았다면 시간이 정지되었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백기호 의원은 그 상태로 눈동자만 움직여 기사를 살폈다.

갑자기 신마그룹, 뇌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상황을 파악하려 했지만 정지된 뇌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다.

“씨발…….”

재벌에 대한 불신을 가진 국민이 많다.

청렴하고 강직한 판사의 이면을 물고 뜯는 것을 즐길 사람은 가득하다.

몰락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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