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견 (1)>
***
“……DNA 검사로 확인할 수 있어서요.”
다음 날, 장지혁 검사는 과거에 서진의 작은어머니와 사귀었던 남자의 집에 와 있었다.
이곳은 오래된 임대 아파트, 15평의 작은 공간.
그곳에 남자의 어머니가 홀로 살고 있었다.
“그런 게 있었나요?”
바다와 산에서 많은 변사체가 발견되는 중이다. 하지만 유가족의 DNA가 저장되어 있지 않아 무연고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저장해 두시면 저희가 찾았을 때 확인할 수 있으니까…….”
남자의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였다.
“안 죽었을 거예요. 살아 있어요. 분명히…….”
30년이 훌쩍 넘은 시간이다. 하지만 남자의 어머니는 아직도 자식이 살아 있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흐느껴 우는 남자의 어머니를 보며 장지혁 검사는 입술을 씹었다.
***
“받아.”
아파트에서 나온 장지혁 검사가 서진에게 비닐 봉투를 건넸다.
“유전자 등록하는 것도 나한테 맡길 것은 아니지?”
“제가 해야죠.”
“너도 참……. 이런 것은 직접 얼굴 봐도 되잖아?”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서진이 꾸벅 인사했다. 그런데, 장지혁 검사의 표정이 좋지 않다.
“……왜 그러세요?”
“괜히 우리 어머니 같아서. 살아 계셨다면…… 아휴, 됐다. 술이나 한잔하자.”
장지혁 검사가 서진의 등을 툭툭 친 후 앞서 걸었다.
봉투에 담긴 머리카락과 손톱을 확인하던 서진이 시선을 들어 장지혁 검사를 바라봤다.
***
돼지 껍데기가 지글지글 익어 갈 때, 장지혁 검사가 서진의 잔에 술을 채우며 물었다.
“누구야?”
“네?”
“아까 그 어머니의 아들, 죽인 새끼가 누구냐고?”
서진은 대답 대신 채워진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평소였다면 장지혁 검사는 더 묻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시 묻고 있다.
“네가 괜히 30년 전 사건을 들쑤시고 다닐 놈은 아니잖아? 말해. 누구야? 넌 알고 있지?”
“…….”
“30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하잖아! 머리카락 뽑고 손톱 자르면서 얼마나 우셨는지 알아?”
이번에도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장지혁 검사가 주먹을 콱! 쥐었다.
“공소시효 지났지. 30년 지났으니까 흔적도 없겠지. 그런데, 네가 말해 주지 않으면…….”
“작은어머니요.”
“……!”
장지혁 검사의 눈이 커졌다.
놀란 얼굴로 서진을 바라보고 있다.
서진이 장지혁 검사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어요.”
“거, 검찰총장의 사모님이라고?”
“아마도요. 그런데, 30년 전의 원한. 법으로는 끝났고. 뭘 할 수 있을까요?”
장지혁 검사는 타들어 가는 목을 식히기 위해 술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어떤 말도 없었다. 그저 멍한 눈으로 중얼거릴 뿐이다.
“검찰총장…….”
김윤환처럼 확실한 증거가 있는 놈도 잡아넣기가 힘들다.
이런저런 핑계로 재판이 미뤄지는 것은 물론이고 언론을 뒤져 봐도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건 더 어려울 거다.
아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불가능하다.
-30년 전의 사건.
-증거는 물론이고 정황조차 흐려진 일.
-어쩌면 검찰총장의 아내.
장지혁 검사가 짧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오!”
서진이 다시 술병을 들어 장지혁 검사의 잔을 채웠다.
“죗값을 치를 방법이 하나 있어요, 사회적 매장.”
법을 수호해야 할 검사가 할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작은어머니는 살인을 저지르고 수십 년의 인생을 호사스럽게 지내 왔다.
옛 남자 친구의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동안 깔깔 웃었고.
남자 친구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릴 때,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술을 입에 댔다.
그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워하는 시간에 작은어머니는 명품을 걸치고 세상을 거닐었다.
“그렇게 사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잖아요?”
장지혁 검사는 팔짱을 낀 채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
“이것도 내 어깨에 올려라.”
“……네?”
“어차피 유배를 가는데, 타이틀이라도 화려해야지. 검찰총장의 아들과 아내를 체포한 검사. 멋있네. 그리니까, 방법이나 알자. 어떻게 할 거야? 설마, 유기한 장소를 알고 있는 거야?”
“아뇨. 아직은 몰라요. 하지만 곧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석민이 최 실장이란 사람을 찾고 있다.
그 사람이 이 비밀의 열쇠.
서진은 최 실장을 잡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입을 열게 할 생각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부르르르.
장지혁 검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 장지혁 검사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장지혁 검사입니…….”
-나다.
김영준 총장이었다.
그 목소리에 장지혁 검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안, 안녕하십니까?”
-내일 내 방으로 와.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뚝 끊겼다.
서진이 눈을 깜빡이는 장지혁 검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군데요?”
“네 작은아버지.”
“네? 작은아버지요?”
“어, 총장님.”
“왜…… 전화했대요?”
“몰라. 내일 출근하자마자 방으로 오라고 하는데?”
장지혁 검사가 그 말을 끝으로 술잔을 입에 댔다.
얼마 전, 장지혁 검사는 김윤환을 빼내라는 지시를 거부했다.
그 이후 총장의 눈에 찍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호출이라니.
“뭐지?”
장지혁 검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서진은 그 이유를 예상할 수 있었다.
어제 부부 동반 모임에 가야 했던 작은어머니가 갑자기 돌아온 이유.
작은어머니는 김윤환을 꺼내 달라고 난리를 피웠을 거다.
차 안에서 싸웠을 테고 김영준 총장은 홀로 부부 동반 모임에 가야 하는 낭패를 겪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다시 장지혁 검사를 회유하려고? 집안의 평화를 위해?’
하지만 장지혁 검사는 말 그대로 강직한 사람.
회유하기는 어려운 일.
‘그걸, 김영준 총장이 모를 리 없는데…….’
서진은 굳은 얼굴로 술잔을 입에 대며 여러 상황을 그려 봤지만 확실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하나.
“조심하세요.”
“조심할 필요가 있을까? 끽해 봤자 옷 벗으면 되잖아? 내가 사무실 개업하면 화환이나 하나 보내라.”
“그러다 죽으면요?”
“죽어?”
서진은 죽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걱정스레 물었지만 장지혁 검사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 따위 없는 것 같았다.
장지혁 검사는 서진보다 선배다. 하지만 아직 검사로서 거물을 상대한 경험이 적다. 그들이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모른다.
장지혁 검사가 낄낄 웃으며 술잔을 손에 들었다.
“죽는 게 뭐가 무섭나? 내가 꺾이는 게 무섭지.”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입에 댔다.
***
다음 날, 대검찰청 김영준 총장의 사무실.
김영준 총장은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장지혁 검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김영준 총장은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창밖을 보며 입을 열었다.
“평검사가 이 방에 두 번이나 드나들고, 출세했어.”
“…….”
장지혁 검사는 대답하지 않았고 김영준 총장이 계속 말했다.
“윤환이, 쉽게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죄송합니다. 법에 따르겠습니다.”
의지 가득한 목소리에 김영준 총장이 픽 웃었다.
“자네가 언제까지 서울에 있을 수 있을 것 같나? 자네가 내 지시를 따르지 않아도 윤환이는 밖으로 나올 거야. 자네가 있는 동안 구치소에 넣어 두면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유치한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김영준 총장이 몸을 틀었다. 그리고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장지혁 검사가 다시 고개를 꾸벅 숙인 후 테이블로 향하자 김영준 총장이 말했다.
“읽어.”
테이블에 놓인 잡다한 서류.
장지혁 검사는 소파에 앉아 서류를 펼쳤다. 그리고 장지혁 검사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네 삼촌이 아파트를 샀더라고. 그런데, 세금을 아끼기 위해 꼼수를 부렸지. 다운 계약서를 썼어. 그거 걸리면, 가산세가 40%였던가?”
“……!”
“그리고 M 전자에 다니는 친척 동생이 있지? 친하다고 들었는데……. 하청업체에게 뒷돈을 받고 있어. 액수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잘못은 잘못이지.”
“……!”
“그 뒷장. 자네 친구지? 식당을 영업하는 사람이 현금은 세금 신고에서 누락하고 있네? 그러면 쓰나?”
장지혁 검사의 몸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김영준 총장이 그 모습을 보며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똑같은 죄야. 자네가 어떻게 할지…….”
순간 장지혁 검사가 서류를 ‘쾅!’ 덮었다.
남은 게 있지만 더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김영준 총장을 보며 말했다.
“다 잡아 넣어 주십시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고 탈세를 했으면 그만큼 내야 하는 게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여기서 끝낼 것 같나? 자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현미경을 들이댈 수 있어.”
“상관없습니다.”
김영준 총장이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 같은 검사가 있어야 이 나라가 바로 서는 법이지. 그런데, 그 서류. 덮어 버리기에는 아직 읽을 게 많아.”
“총장님!”
김영준 총장이 몸을 틀었다. 그리고 다시 창가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봉사 활동을 하러 다니는 청마 보육원. 보육원이 사라지면 아이들은 어디로 갈 것 같나? 그래, 그 애들은 죄가 없어. 가난하게 태어난 게 죄지.”
“……!”
장지혁 검사의 손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눈이 시뻘겋게 충혈됐고 입은 바짝 말라 갈 때,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스쳤다.
“가난한 아이들과 내 아들, 교환 조건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계속해 봐. 난 자네 주위를 쑥대밭으로 만들 힘이 있어.”
“……!”
“지혁아, 난 널 아껴. 너 같은 검사가 있어야 이 나라가 바로 선다던 말, 비꼰 게 아니야. 하지만,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야. 힘부터 길러라.”
***
“언제부터 근무했는지는 저희가 알 수 없었고, 최씨가 여럿이라…….”
그 시각, 서진은 지검 앞 커피숍에서 장석민을 만나고 있었다.
장석민이 자신 없게 꺼낸 것은 엄 회장이라 불리는 사람의 아래서 일하는 자들. 그들의 신상.
“여섯 명?”
“네.”
서진은 입술을 쓸며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급하게 준비해서 그런지 서류는 부실했다. 사진과 이름이 전부다. 놈들의 연락처는 물론이고 집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게다가 여섯 명.
서진이 아니었다면 ‘최씨’라는 단서만으로 놈을 찾기는 어려울 거다.
하지만 상대는 서진이다.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이미 놈의 얼굴을 확인했던 상태.
서류를 슥슥 넘기던 서진의 손이 툭 멎었다.
‘최지범.’
작은어머니와 함께 있던 인물.
자신이 죽인 게 아니라고 얼버무렸던 사람.
서진이 놈의 서류를 장석민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 사람, 집이 어딘지 알아봐. 자식들은 무엇을 하는지, 재산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찾아.”
“이 사람요?”
서진은 최지범을 옭아맬 생각이다. 엄씨 집안을 배신할 수밖에 없도록, 작은어머니의 죄를 낱낱이 토해 내도록 만들 거다. 그러려면 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그런데 장석민이 조심스레 서진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검사님, 혹시 이 사람이 윤환이 아버지인가요?”
“응?”
“그래서 찾으라고 하시는 거죠? 윤환이 아빠 찾아 주려고…….”
서진이 끌끌 웃었다. 이런저런 정보도 주지 않고 일단 살펴보라고 하니,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것 같다.
“아빠 찾아 주려 하는 것은 맞는데, 그 사람이 아빠는 아니야.”
“네? 아빠가 아니라고요?”
“확실한 게 있으면 그때 알려 줄게.”
장석민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더 묻지 않았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아, 이거요.”
장석민이 바지주머니를 주섬주섬 꺼낸 것은 김윤환의 친자 확인 결과지. 흰 봉투가 구겨져 있다.
서진이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김윤환은 김영준 총장의 아들이 아니다.
“잘 가지고 있어. 그리고 내가 말하면 움직여.”
“옙.”
서진이 커피 스트로를 입에 대며 창밖을 바라봤다.
김영준 총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어떤 계획을 세워 뒀든 상관없다.
다 박살 내면 되는 거다.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