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3)>
***
김영준 총장과 작은어머니를 태운 차량이 잠실을 빠져나가던 중이었다.
지방에 있는 부부 동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차량을 채우고 있었다.
“윤환이 짝지어 주기로 했던 애. 서진이를 결혼시키려고 해.”
“뭐?”
“스펙도 괜찮고 얼굴도 예쁘잖아. 당신 마음에는 들지 않겠지만, 형님과 형수님은 마음에 들어 할 거야. 당사자들도 서로 알고 있으니, 편할 테고.”
“당신…….”
작은어머니의 얼굴이 언짢아졌다.
이소희는 첩의 자식, 당연히 마음에 들 수 없다. 하지만 서진에게 주기는 아깝다.
“조만간 형님에게 이야기하려고 해. 선 자리 마련했으니까, 한번 살펴보라고. 서진이도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됐잖아?”
“그래서? 윤환이 언제 꺼내 줄 거야!”
뜬금없이 김윤환의 이야기가 나오자 김영준 총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어? 바로 꺼내 올 수 없는 거 알잖아? 그러니까…….”
“그 애 마음이 여린 거 몰라? 에어컨 없이는 여름을 못 나는 아이인데, 그 좁은 방에서 어떻게 견딜까? 생각만 하면 참을 수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여보!”
김영준 총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운전기사가 앞에 있다. 지금의 대화가 어떤 식으로 와전되어 흐를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어머니는 상관하지 않았다. 뜬금없이 김영준 총장을 압박했다.
“내려 줘.”
“당신!”
“자식새끼 옥살이 시키고 마음 편히 웃음 팔고 술을 처먹을 수 있을까?”
“중요한 자리라고 했잖아!”
하지만 작은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중요한 자리에서 미친년이 뭔지 보기 싫으면 내려 줘.”
김영준 총장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도로의 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사에게 말했다.
“세워.”
기사는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도로가로 핸들을 틀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소리가 나는 동시에 문이 덜컥 열리며 작은어머니가 신경질적으로 내렸다. 그리고 ‘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문을 닫았다.
작은어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택시가 멈춰 서 있는 곳으로 또각또각 힐 소리를 내며 다가섰다.
택시에 탄 작은어머니는 집 주소를 말한 뒤 뒷좌석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애가 어떤 아이인데…….”
작은어머니의 시선이 창밖으로 틀어졌다.
***
그 시각.
서진은 작은어머니의 드레스 룸에 있었다.
열린 가방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뜬 상태다.
‘이게…… 뭐지?’
갖가지 종이 뭉치.
서진은 아무거나 손에 쥐며 펼쳐 봤다.
차명으로 사 둔 땅과 아파트.
‘임야가 대부분…….’
작은어머니가 차명으로 사 둔 땅의 대부분은 임야, 즉 산이다.
그런데, 이미 개발이 되었다.
산이었던 곳에 전철역이 들어오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20만 원에 샀던 땅이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그런데…….’
점쟁이도 아니고 구입한 임야가, 그것도 짧은 시간에 높은 확률로 개발되기는 어려운 법.
‘임야가 개발될 것을 미리 알고 있던 거야?’
미리 정보를 들었다면 가능한 일.
‘이것도 김영준 총장과 연관이 되어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김영준 총장의 옆에서 권력자들을 만나며 앞으로 일어날 개발 소식을 전해 들었을 확률이 크다.
서진은 휴대폰으로 서류를 사진 찍은 후 계속해서 넘겼다.
모든 서류가 재산에 관련된 것이다.
그것도 차명, 차명, 차명…….
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들은 개발을 기획하고 자기들끼리 정보를 나누며 큰돈을 번다.
개미 떼가 철 지난 정보를 듣고 우르르 몰려갔을 때는 부스러기만 남은 상태.
하지만 이들은 개미에게 부스러기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개미가 부스러기를 물면 ‘투기!’라는 이름으로 단죄한다.
김영준 총장과 작은어머니는 전형적인 그들이다.
서진은 읽은 서류를 옆에 내려 두며 다른 것을 손에 들었다.
심지어 엄선주와 관련된 것도 있다. 작은어머니는 엄선주를 통해 깡패들의 자본을 대주고 있었다.
‘이건 좀 충격이네.’
탐욕스럽게 돈을 번 것은 그렇다 쳐도 검찰 총장의 아내라는 사람이 깡패의 뒤를 봐주고 있다니.
서진이 혀를 끌끌 차며 그것 역시 카메라에 담았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은 보이지 않는다.
서진이 원했던 것은 과거의 남자 친구.
그 사망에 대한 것.
드레스 룸에서는 ‘찰칵, 찰칵’ 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음만 들려왔다.
그렇게 거의 모든 서류를 내려놓고 있을 때다.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편지 봉투가 보인다.
‘설마?’
서진은 저것이 과거의 남자 친구와 연결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손을 뻗었다.
다행히 봉투는 열려 있었고 손쉽게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뭐지?’
낯선 글씨.
오랜 시간 보관한 편지.
전 남자 친구에게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최 실장님을 만났어. 하지만 난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아. 미안해, 내 생각대로 움직일 게.
서진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최 실장’이란 이름을 곱씹어 봤다.
최 실장은 비밀의 열쇠를 가진 자가 분명하다.
하지만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최 실장…… 최 실장…….’
서진이 편지를 촬영하는 순간이었다.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장석민.
장석민은 지금 김영준 총장의 집 앞에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감시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장석민에게 전화가 왔다는 것은 다급한 상황이 펼쳐졌다는 것.
서진이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어, 말해.”
-지금 어떤 아줌마가 택시에서 내려서 집 앞에 섰어요!
“어떤 아줌마?”
-명품으로 도배하고 눈이 되게 무섭게 생긴 아줌마요!
김윤환의 엄마, 작은어머니다.
‘젠장.’
서진은 입술을 씹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김영준 총장과 부부 동반 모임에 가야 할 작은어머니가 돌아왔다.
“작은어머니야. 어떻게든 막아.”
-네?
서진은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서둘러 움직였다. 널브러졌던 서류를 다시 낡은 캐리어 가방에 넣은 뒤 원래 있던 자리로 옮겨 뒀다.
‘이제…….’
이 집을 빠져나가야 한다.
***
작은어머니는 또각또각 힐 소리를 내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문의 비밀 번호를 누르기 위해 손가락을 뻗었다.
“어머니!”
작은어머니가 낯선 목소리에 시선을 틀었다.
낯선 청년.
처음 보는 얼굴.
장석민이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누구?”
“윤환이 친구 석민이라고 해요. 윤환이 어머니 맞으시죠?”
“아, 그때?”
작은어머니는 며칠 전 김윤환에게 받았던 전화를 떠올렸다.
당시 김윤환은 자신의 휴대폰에서 장석민의 이름을 찾아 달라 요청했었다.
그 이름을 떠올린 작은어머니는 경계를 풀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장석민을 바라봤다.
“그런데, 무슨 일로?”
“윤환이 일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집에 들어갈 수는 없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네요. 하하.”
장석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커피숍에 가서 커피라도 한잔…….’이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들어와요.”
작은어머니는 거침없이 비밀번호를 눌렀다.
동시에 장석민의 얼굴이 처참하게 변했다.
이대로 들어가면 서진이 걸린다.
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김윤환의 어머니와 서진을 마주치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덜컹!’ 소리와 함께 문은 열렸고 작은어머니는 집 안으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자, 잠시만요!”
장석민이 빠르게 말했다.
작은어머니가 천천히 시선을 틀어 장석민을 바라봤다.
모든 것을 살피는 눈초리에 장석민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 그…… 제가 지금 발을 안 씻고 와서…….”
“괜찮아요.”
“아뇨, 제가 좀 민망해서요. 근처에 커피숍이 있으면 거기서 말씀드려도 되는데…….”
“괜찮다니까요?”
“하지만…….”
“내가 괜찮다는데 왜 그러죠?”
작은어머니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장석민을 바라봤다.
***
서진은 2층에서 1층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괜히 2층에서 숨어 있다가 작은어머니가 들이닥치면, 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할 거다.
-김서진 검사님 오셨는데요.
그럼, 상황은 복잡해진다.
김윤환의 부탁으로 왔다고 하면 작은어머니는 김윤환에게 연락해서 무슨 부탁을 했는지 질문할 테고, 그것은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안 돼.’
장석민이 작은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지금, 서진은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가시게요?”
“네, 감사했습니다.”
“가세요.”
퉁명스러운 아주머니의 인사, 서진은 다급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아주머니에게 입을 열었다.
“제가 왔다는 것은 작은어머니나 작은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네?”
“윤환이 형 부탁인데, 괜히 제가 왔다 갔다고 하면 더 걱정하실 거잖아요.”
서진의 서글서글한 미소에 아주머니는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다.
“아, 네.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말하지 않을 거다. 이 집안의 분위기가 그렇다. 쓸데없는 참견 또는 잘못된 말 한마디에 사람을 죽일 듯 만들어 버린다.
‘이건 됐고.’
문제는 작은어머니 몰래 이 집을 탈출하는 것.
현관을 벗어난 서진이 귀를 쫑긋 세웠다.
작은어머니와 장석민의 목소리가 들린다.
“됐으니까, 들어오세요.”
“그래도…….”
장석민이 작은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그럼…….’
작은어머니가 대문에서 이곳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길게 잡아 1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꼬불꼬불 이어진 정원과 나무 덕에 대문에서 이곳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서진의 눈동자가 담벼락으로 향했다.
‘넘어?’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접었다. 담을 넘기는 어렵다. 담벼락에 붙은 CCTV, 경호업체가 출동할 거다.
그때,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두렵게 들려왔다.
작은어머니가 계단을 걸오 올라오는 소리.
서진의 눈이 부릅떠졌다.
***
‘미쳐 버리겠네!’
작은어머니의 뒤를 쫓던 장석민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정원을 지나 현관문에 설 때까지 장석민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끼이이익!’ 문을 열고 들어섰다.
동시에 장석민은 눈을 콱 감았다.
하지만 어떤 일도 없다.
“오셨어요?”
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가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주방으로 이동할 뿐이다.
“들어와요.”
그리고 서진의 작은어머니가 친절한 목소리로 장석민을 안내했다.
장석민은 눈을 깜빡였다.
서진은 어디에도 없었다.
***
잠시 후, 장석민이 영혼 빠진 눈동자로 걸어 나왔다.
장석민이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차를 향하며 중얼거렸다.
“……뭐야?”
김윤환의 어머니 앞에서 이런저런 말을 꾸며 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서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지금도 저 집에 있나?”
서진은 빠져나오지 못했고 그곳에 그대로 있을 확률이 높다.
“하…….”
장석민은 휴대폰을 꺼내 ‘어디 계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차량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조수석에 서진이 앉아 있다.
어떤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안히.
장석민이 놀란 눈으로 서진을 바라보며 더듬더듬 물었다.
“어, 어떻게 도망치셨어요?”
서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의 와이셔츠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흙이 묻어 있던 흔적이 보인다.
“땅에 엎어져 있었어.”
작은어머니와 장석민이 들어오는 순간, 서진은 정원의 바위 뒤에 바짝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집에 들어갈 때, 몸을 일으켜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장석민은 무너지듯이 운전석에 앉았다.
“하, 심장 터져 죽는 줄 알았어요. 나오셨으면 연락이라도 주시지. 그 안에서 얼마나 쫄깃했는지 아세요?”
“아, 그건 미안. 어쨌든 고생했어.”
“아이고…….”
장석민이 식은땀을 식히기 위해 손부채를 부쳤다.
그 행동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서진이 수첩에 ‘최 실장.’이라는 이름을 적어 장석민에게 건넸다.
“최 실장요?”
“우리나라 큰손 중에 엄 회장이라고 있어. 지금도 정정하게 살아 있지. 이 사람의 심복 중에 최씨가 있는지 확인해 줘. 30년 전에 근무하던 사람이라 지금은 없을 수도 있는…….”
뒷말을 끌던 서진은 곧 말을 멈췄다.
떠오른 게 있어서다.
지난번, 작은어머니와 대화하며 봤던 사이코매트리.
작은어머니가 만났던 남자.
그때 작은어머니와 남자는 이렇게 대화 했었다.
-난 기억하고 있어. 너도 내 인생 망친 놈들 중 하나라는 것. 그런데 직접 나서 달라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를 말려 달라는 것도 못 해?
-아가씨…….
-하라고! 네가 죽였잖아!
-그건 제가 한 게…….
‘그 사람이 최 실장이야.’
서진의 시선이 다시 장석민에게 틀어졌다.
“지금도 있어. 그러니까 찾아봐. 최씨 성을 가진 사람.”
당시의 대화를 기억하면, 살인 청부.
이미 공소시효는 확실히 지났지만 상관없다.
만약 작은어머니가 전 남자 친구를 죽였다면, 이것은 지옥행 급행열차다.